이승률 박사의 퓨전로드맵 연재

2006년 11월, 필자는 부산발전연구원 주최의 한상(韓商)국제세미나에서 ‘동북아 물류중심도시로서 부산의 발전방안’이라는 제목으로 부산과 후쿠오카시가 경제공동체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또한 작년에 부산시가 주최했던 한일해저터널에 관한 세미나에서도 ‘거제도-쓰시마 해저터널’에 대해 토론하면서 다시한번 부산-후쿠오카간의 경제공동체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랜 기간 연변과기대 교수들과 함께해 온 동북아경제공동체 연구활동의 결과를 지자체에 직접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보람있고 그 결과를 기대케 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얼마 전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부산시와 일본 후쿠오카시가 초광역경제권 추진을 선언한 것이다. 부산 허남식(許南植) 시장과 후쿠오카 요시다 히로시(吉田 宏) 시장은 10월 2일 부산시청과 후쿠오카시청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갖고, 경제협력협의회 구성과 공동협력사업 발굴 등을 내용으로 하는 ‘부산·후쿠오카 초광역경제권 형성 공동협력'을 공식 발표했다. 그동안 국내 광역·기초자치단체 등이 외국 도시와 자매결연하는 등의 교류 사례는 있었으나 외국 도시와 광역경제권을 만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도시는 초광역경제권을 구축해 부산시가 ‘국경 없는 경제시대’를 선도하고 시민들에게는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제공해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돌파구를 구축할 의지를 밝혔다. 그리고 이를 위해 경제 관련 단체장 각 7명으로 구성된 ‘경제협력협의회’를 구성, 함께 추진할 사업을 발굴하고, 경제포럼·세미나 등 경제교류 활동을 지원하기로 했다. 머지않아 두 도시는 조선·자동차·기계부품·IT·영화영상산업 등의 분야에서 상호 보완하는 동반자적 관계로 출발해 자유무역협정(FTA)의 교두보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동북아의 공영을 위한 절묘한 힘의 비등점 위에 서 있다. 우리만이 좁은 역사의 협곡을 지나 갈등구조에 놓여있는 이 강대국들을 평화공존의 시대로 이끌어갈 수 있다. 나는 한일해저터널이 단순히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누가 언제, 먼저 그 얘기를 꺼냈느냐는 케케묵은 과거의 사실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도 않고, 또 지금 그걸 다시 들춰내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저 누군가가 내게 한일해저터널 건설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분명하게 이를 찬성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다시 말해 지중해시대로부터 이곳까지 흘러온 세계역사의 변천은 마침내 일본열도를 한반도에 결속시킴으로서, 동북아 전체를 한판의 키보드(Key Board)로 삼아 태평양과 아시아대륙이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거듭나는 역사를 창출해나갈 것이다. 한일해저터널은 한국이 일본과 함께 중국 및 세계를 향해 힘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만 하는 기초적인 Pan-Asia 대중교통인프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은 지정학적인 기능을 극대화시켜 모든 국제관계의 흐름을 통제, 조정, 관리하는 중추신경 제어장치와 같은 Mainstay Leadership을 주변국들로부터 인정받게 될 것이다. 지금 한중일 3국간에 논의되고 있는 동북아 FTA 같은 사안도 시작단계부터 한국이 중재자로서의 헤게모니를 잡고 선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만하게 일본과 중국과의 관계를 풀어나가면서 그동안 한중일 3국간에 오랜 장벽이 되어왔던 과거 역사속의 피해의식과 현안문제들도 함께 정리하고 새로운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기약하는 상생 (相生)의 이정표를 세워갈 것이다. 과거의 역사적 피해의식을 마치 대단한 유산이라도 되듯 틀어쥐고 있느니 차라리 미래를 향한 도전과 모험의 길을 택하겠으며, 일본이 다시 한반도를 경제속국화 할 것이라고 우기면서 국수주의적인 고립에 빠지는 패배주의자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일본과 함께 공생의 길을 택할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하나의 열쇠로 열 개의 문을 여는 지혜가 아니겠는가.

물론 이런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희생과 헌신이 요구된다. 유럽역사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유럽연합(EU)의 결성과정에서 유럽의 한 가운데 위치한 독일과 프랑스가 보여준 희생전략은 우리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몇 년 전까지 국제안보대사를 지냈으며, 지금 EACOS 사무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김상우 박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이야기 한 바 있다.

“우리는 처절한 30년 전쟁을 끝내고 근대 유럽의 초석을 놓을 수 있었던 베스트팔렌조약의 정신을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서로가 상대방의 이익과 명예를 먼저 추구한다는 원칙을 기초로 평화와 상호신뢰를 구축했으며, 라인강 유역 운하사용권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중부유럽 전체 산업발전의 인프라를 제공한 것은, 당시 프랑스 마자랭 총리의 탁월한 리더십이었다. 동아시아의 외톨이(한국)에서 동아시아의 중재자로 나서려면, 자국 국민들이 당장의 희생을 감수할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는 리더십이 그 시작이다.”

이렇게 동북아의 새로운 역사의 운명은 우리로 하여금 특별한 인내와 헌신을 기초로 하는 희생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에 부응해 나는 ‘부산에서 런던까지’보다는 ‘도쿄에서 런던까지’의 꿈을 쫒을 것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길, 과거가 아닌 미래로 향해 난 길, 나는 그 길 위에서 한국도 일본도 과거역사 인식의 차이로부터 오는 대결의식을 지양하고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대한해협의 해저에 터널을 뚫고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미래 ― Future Vision (Fusion)의 새 길을 열어가자. 확언하건대 이 거래 성사 여부가, 동북아시대 상생의 메치메이커로서 한국의 능력을 증명할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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