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천당과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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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막혔다.
 홀아비 집에서만 풍기는 그 이상한 냄새와 곰팡이의 악취 때문만은 아니었다. 숨통이 열릴 만한 공간마저도 충분하지 않은 콧구멍 만한 반지하방이었다. 습기 때문에 축축한데다 햇빛이 흘러들 수 있는 구멍이라고는 손바닥 만한 창문 하나 뿐이어서 어두컴컴하기까지 하여 대낮에도 조명을 밝혀야 했다. 2층 빌라전체를 소유한 그녀의 저택과는 비교도 안 된다. 그곳이 천당이라면 이곳은 지옥이다.
 그런데도 미경은 천당인 자기 집보다 지옥인 이 반지하방이 훨씬 좋다. 그녀에게는 오히려 이곳이 천당으로 보인다. 샤워할 곳도 없고 실내수세식화장실도 없지만 이 집이 점점 더 정이 든다. 오늘까지 벌써 두 번째이다.
 웃통을 벗어던진 채 탄탄한 근육을 벌겋게 드러낸 최진남이 미경을 침대위에 깔고 누워 헐떡거리며 상의단추를 벗기느라 씨근벌떡거린다.
 “안 벗겨지잖아. 손이 떨려서 안 된단 말이야. 씨발!”
 처음에는 귀에 거슬리고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던 그 무식하고 낯 뜨거운 거친 말투도 이제는 그녀의 흥분을 자극하는 충격으로 느껴질 뿐이다. 거의 폭행에 가까운, 정욕을 향해 무작정 날뛰는 그 거친 동작과 언어는 이제는 까마득하게 잊혀져가던, 녹 쓸고 이끼 끼고 증발되었던 욕정을 발견해내고 재정비하고 원상복귀 시키는 촉매제 같은 신비한 작용을 했다.
 남편이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하신이 불구가 된 지도 어언 십 개월하고도 17일이나 된다. 그동안 미경은 생과부신세가 되어 끊임없이 솟구치는 욕망을 잠재우느라 20년을 산 것 만큼이나 훌쩍 늙어버렸다. 남편이 성불구자가 되어 누워 있는 2층 빌라는 아무리 호화로워도 의미가 없었다. 그 집은 호화빌라가 아니라 그녀에게는 하나의 무덤에 불과했다. 빌라계단을 오를 때엔 스스로 생매장을 당하는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널찍한 실내공간은 황폐하기만 했고 사치한 가구들은 지옥의 무시무시한 궁전을 방불케 했다. 그 모든 거창함과 황홀함과 사치함은 그녀를 억압하고 굴종시키는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녀의 천성적인 단순함과 천진함과 낭만은 그런 위엄 앞에서 1년도 채 안되는 세월인데도 급속하게 퇴색하고 증발해버렸다.  
 최진남은 끝내는 단추 두 개를 떨어트리고야 미경의 상의를 벗겼다. 
 누구도 단추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진남은 바야흐로 눈앞에 드러날 눈부신 미경의 나신을 상상하며 정욕의 천리마에 채찍을 안겼고 미경은 속살을 파고들며 불 꼬챙이처럼 전신을 더듬으며 흥분의 불길을 지피는 사내의 우악스런 손길에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주인 몰래 훔쳐 먹는 감은 시장에서 돈 주고 사먹는 감보다 더 맛있는 법이다. 정욕을 도둑질하는 짜릿한 스릴을 그들은 만끽하고 있었다.
 누구도 그들이 이 어두컴컴한 반지하방에서 금과를 훔쳐 먹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휴대폰이고 전화고 밖으로 통하는 모든 통신수단을 꺼버렸으니 이제는 달콤한 향유만 남아있을 뿐이다.
 미경은 자꾸만 흥분에로 향하는 의식의 통로를 막으려는 남편의 모습을 지우느라 안간힘을 썼다. 그 악귀 같은 험악한 보습이 언뜻거릴 때면 눈을 뜨고 진남의 땀 흐르는 얼굴을 바라보며 어둠 속의 존재를 쫓아버렸다. 가끔 오빠의 얼굴도 떠올랐지만 강하게 머리를 흔들어 귀찮게 매달리는 잡념을 털어버렸다. 양심이요 윤리요 하는 단어들이 귀전에 울리기도 했지만 일부러 신음소리를 내질러 제압해버렸다. 오로지 하나 정욕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하고 있었다. 뜨거운 정욕의 불바다에 풍덩 뛰어들어 육신을 한줄기의 연기조차 남기지 않고 깡그리 태워버리고 싶었다. 열 달간이나 응고되고 냉각되고 썩고 부식되어 버린 여성을 남자의 펄펄 끓는 약수 물에 활활 헹궈내고 싶을 뿐이다.
 한마디로 사라져 가던 여성을 찾고 싶었다.
 미경은 드디어 나신이 되었고 진남의 억센 완력은 황무지가 된 그녀의 굳은 땅에 날이 선들거리는 쇠 보습을 깊숙이 박아 넣는다. 검붉은 토양이 증기를 무럭무럭 피워 올리며 날카로운 보습 날에 갈아엎어졌다. 살진 지렁이가 꿈틀거리고 통통한 개구리가 퐁당퐁당 뛰어 나온다. 보습에 갈아 번져 진 밭이랑을 따라 누런 흙탕물이 꿀렁꿀렁 고여 흐른다.
 “아-으으 음! 으응- 진남 씨. 더 세게요! 으-흥, 으-흥, 응! 아예 날 죽여줘요! 아아-악!”
 미경은 저도 모르게 자지러진 비명을 연달아 내질렀다. 찢기는 듯 폭발하는 듯 펄펄 끓어 번지는 듯한 흥분을 참을 길이 없었다. 전신의 근육이 세차게 경련하기 시작했다. 여명은 지나가고 바야흐로 지평선 위에 태양이 불끈 솟아오르려고 하고 있다.
 “난 이 자리에서 죽어도 원이 없어요. 세게요. 더 세게! 아하-악!”
 대지가 지동치고 천지가 진동하는 듯 한 우렛소리가 들려왔다. 폭풍우가 쏟아지고 집채 같은 파도가 바위를 덮치며 꽈르릉- 무너트린다. 우박 치듯 쏟아져 내리는 뽀얀 물보라 속에서 찬란한 무지개가 황홀한 다리를 계곡 위에 놓는다.
 “어때. 좋았어?”
 온몸이 땀투성이가 된 진남이 흥분의 여운을 마무리하며 가볍게 미경의 나신을 애무했다. 남자의 힘을 과시한 진남의 모습은 당당하고 어엿해 보인다.
 “뼈가 부서지고 몸이 가루가 되는 줄 알았어요.”
 미경은 얼굴에 고춧물이 들며 수건으로 진남의 가슴에 보석처럼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었다. 뭐니 뭐니 해도 남자의 매력은 힘이고 남자의 상징은 강철 같은 굳셈이다.
 “어쩜 힘이 그렇게도 세죠. 바위라도 부서뜨릴 것 같아요.”
 “미경이가 좋다면 언제라도 만족시켜 줄게.”
 “정말?”
 “정말이고말고. 그러니까 우리 어디 남들이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서 둘이서 살자는 거야. 아직도 싫어?”
 “그건……”
 미경은 갑자기 입을 다물고 침묵해버렸다. 언제나 흥분이 가라앉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이 때쯤이면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달아올랐던 분위기를 얼음조각처럼 냉각시키는 화제이다.
 그 선택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감정은 감정이고 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이었다. 결혼서약, 유부녀, 남편, 가족, 도덕적 책임감, 법률적 의무 등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왜 말이 없어. 죽을 때까지 생과부로 살아갈 거냐고?”
 “세상일이 모두 생각대로 되면  고통이라는 것도 없을 거잖아요.”
 “생각대로 살면 되잖아. 제 인생 제 맘대로 사는데 어느 놈이 간섭한다는 거야. 그런 놈은 나와 보라고 그래. 내 손으로다 작살내버릴 테니까.”
 겉으로 보기엔, 옷을 입었을 때는 왜소하게 보이나 옷만 벗으면 탄탄한 몸매의 사내다. 성미도 우락부락하여 주먹깨나 휘두름직도 해 보인다. 하긴 그 말투나 행동을 미뤄보아도 일용직이나 막노동판을 전전했음이 틀림없다. 노동판에서 굳어진 근육일 것이다. 덩치는 체소해도 강철같이 다져진 근육질의 소유자였다.
 “남편은 어쩌고? 결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남들의 시선도 있잖아요. 그뿐인가요. 양심도 있고 윤리도 있고 법도 있고……”
 “그까짓 것들은 신경 써 뭐해. 그것들이 밥 먹여 준대. 씨발!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그 따위 것들은 다 사람을 속이는 거짓말에 불과하단 말이야. 개좆 같은!……”
 그래도 대학을 나온 지성인인데 어쩌다가 이런 시정잡배 같은 졸부와 만났을까 하는 한심한 생각도 든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미경이 원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면 족했다. 사람은 많은 것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 설령 바란다고 하더라도 죄다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빠가 사진첩출간준비로 금년 여름 전국산악지대관광을 떠났을 때 사진관을 지키며 자주 중국집에 식사를 주문했던 것이 배달 진남이와 인연이 맺어진 계기가 되었었다. 처음부터 노골적인 추파를 던져오기도 하고 말속에 은근한 암시를 담아 보내기도 했지만 웬일인지 싫지가 않았다. 물론 그때는 그녀를 유혹하려고 자제해서였던지 지금처럼 언행이 저질적이지는 않았었다. 그 무렵이자 그녀의 남편 광혁이가 교통사고를 일으킨 지 반년이 다 된 시기였다. 자장면그릇과 함께 은근슬쩍 넣어주던 남자의 과장 확대된 누두화보들을 보고 미경은 처음엔 놀랐지만 내색은 내지 않았다. 도리어 점점 더 진남이가 일하는 중국집에 자장면을 주문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그를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어쩌면 최진남은 생과부신세가 된 미경의 불우한 처지를 알고서 의도적인 접근을 시도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그런 세부사항들은 의미가 없었다.
 남자!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남자였다. 남자구실도 못하면서 공연히 밤마다 발가벗겨놓고 어루만지고 학대하며 성욕만 자극하는 남편의 변태적성폭행으로 남자를 원하는 미경의 욕망 역시 병적으로 급속하게 팽창했던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었을 의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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