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자백하고 사과해.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그럼 광혁이도 옹졸한 사람이 아니니까 관용을 베풀 거야.”
 “오빠 가면 난 죽어. 알아. 난..... ”
 미경은 전신을 화들화들 떨며 눈물까지 흘렸지만 정도는 동생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미경은 오빠를 따라 밖으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등 뒤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놀라 흠칫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등 곬으로 선득한 냉기가 구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지나갔다.
 “어딜 가! 이리 오지 못해!”
 미경은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광혁의 지령에 따라 공손히 움직였다. 벌써 폭풍우를 거느린 비바람이 가슴 벌에 울부짖고 있었다.
 “옷 벗어.”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어디 갔었어? 누구랑 놀아났어? 하고 따질 줄 알았는데 전혀 엉뚱한 곳으로 화제가 흐른다. 그리고 그 목소리 또한 평소보다 낮았고 그래서 음흉하기까지 했다.
 “귀가 먹었어? 벗으라고 했잖아.”
 가슴에 바늘이 콕 박혀드는 느낌이다.
 미경은 질겁하여 분부대로 옷을 벗었다. 늘 그렇게 발가벗겨 놓고 구렁이처럼 손으로 알몸을 구석구석 쓰다듬곤 했었다. 손가락으로 바람 빠진 남자의 성기를 대신할 때에는 인간이하의 치욕과 능멸을 느꼈지만 징그럽고 수치스럽게도 그런 성학대에서마저도 성적 쾌감을 느끼며 신음소리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나가곤 했다. 나신裸身위에 맥주를 쏟아 붓고는 아래로 흘러내리는 붉은 액체를 혓바닥으로 핥아먹었고 손가락 끝에 소주를 묻혀 배위에 근질근질 하트heart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침대위에서 뒹굴게 하고 창문 앞에서 섹시한 몸짓으로 육신을 비틀도록 강요했다.
 그런데 오늘은 또 어쩌려고……
 “속옷까지 홀랑 벗어.”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수밖에 없었다.
 “방바닥에 엎드려.”
 미경은 영문도 모른 채 방바닥에 풀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방바닥의 찬 기운이 전신에 싸늘한 냉기를 몰고 왔다.
 “죽을죄를 졌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한 번만 용서……”
 “기어!”
 “네?”
 “한국 사람이 한국말을 못 알아들어?”
 “여보.”
 “이년이, 죽여 버리기 전에 고분고분 말 들어!”
 버럭 고함을 지르며 이를 악문다. 송곳니에 찍힌 아랫입술에서 빨간 액체가 스며 나와 이슬로 맺힌다.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미경은 벌렁벌렁 방구들 위를 기기 시작했다. 비굴한 굴종으로라도 남편의 광기를 해소시킬 수 있을까 싶어 열심히 그의 지령을 따랐다.
 “짖어. 왕- 왕- 개처럼 짖어.”
 “잘못했어요. 다시는……”
 “이런 씨발년이. 짖으라고 했잖아! 맥주병에 대갈통이 박살나기 전에.”
 “왕- 왕-.”
 미경은 훌쩍훌쩍 울면서 개 짖는 흉내를 냈다. 수치와 능욕과 경멸과……
 남편이 자신을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대하고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통곡이 터져나갔다.
 “그래. 넌 개야. 사람이 아니라 바람 난 암캐야. 남편을 배신한, 개보다도 못한 요부妖婦년이지. 이거나 핥아먹어. 뭐해. 깨끗하게  혓바닥으로 핥아먹으라니까.”
 광혁은 키들키들 웃기도 했다가 이를 으드득- 으드득- 갈기도 했다가 악담을 퍼붓기도 했다가 하며 맥주병을 거꾸로 들고 붉은 액체를 방바닥에 뿌려 던진다. 그녀는 거품이 부글부글 잦아드는 맥주를 혓바닥으로 핥아먹으며 엉엉 울었다.
 이젠 더 이상 사과하지도 용서를 구걸하고도 싶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방바닥에 머리를 짓찧어 죽고 싶도록 수치심이 온몸을 전율시켰다. 차라리 진남이와 함께 야반도주라도 했을 걸.
 “이쪽으로 기어와. 돌아누워 어서. 반듯하게 돌아누우라고.”
 천장을 바라고 반듯하게 누운 미경의 얼굴과 가슴 그리고 하체에 차가운 맥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차라리 날 죽여줘요.”
 “더러운 년! 개보다 못한 년! 마른벼락을 맞고 급살 맞을 년! 기름 솥에 튀겨 죽일 년!”
 광혁은 미친 듯이 온갖 악담을 다 퍼부었다.
 “일어나서 방안을 뛰어. 빨리, 더 빨리! 어떤 놈인지 그 개자식에게서 묻혀온 더러운 오물을 씻어내고 털어내야 할 게 아니냐. 그 개새끼의 오물을……”
 “인젠 좀 그만하라고. 걔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잖아.”
 그때까지 가지 않고 밖에서 방안의 동정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모양 문이 벌컥 열리더니 정도가 달려 들어왔다.
 미경은 극도의 수치와 모멸감,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정도의 품에 쓰러져 실신하고 말았다.
 정도는 얼른 자신의 양복저고리를 벗어 미경의 알몸을 가려주었다.
 “이런다고 무슨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아. 이건 너무 잔인해. 그래도 한 번쯤은 기회를 줘야 하는 게 아니냐.”
 “형이 간섭할 일이 아니라니까요.”
 “내 동생이라서 편드는 게 아니야. 나도 미경의 외도에 대해서는 질타한다고. 그러나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기로서니 사람인데 이렇게 가혹할 수가 있어. 형벌도 이런 형벌은 없어. 이런 굴욕을 줄 바엔 차라리 죽이는 게 낫지.”
 “죽여 달라면 죽여줄 겁니다.”
 “그러지 말고 한 번만 기회를 줘봐. 다시 이런 일이 재발한다면 그 땐 나도 상관하지 않겠어. 죽이든지 말든지.”
 정도는 미경이를 안아다가 침대에 눕히고 손톱으로 인중을 눌렀다.
 미경은 그제야 의식을 회복하고 눈을 떴다. 그녀는 옆에 있는 광혁의 얼굴을 보자 혼비백산하여 벌떡 일어나 그 자리에서 멀리 달아나려고 했다.
 “인젠 됐어. 됐으니까 너도 광혁이한테 진심으로 사과해. 다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다짐해!”
 정도의 말에 설득된 것인지 광혁이도 광란을 중지하고 묵묵히 담배를 붙여 문다.
 그제야 정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갔다.
 “오빠.”
 미경의 간절한 눈길에는 오빠를 신변에 붙들어두려는 애원이 절절하게 담겨있었다.
 “괜찮아. 두려워하지 마.”
 정도가 나가자 광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보다는 낮은 톤이다.
 “가까이 와. 내 곁으로 바싹.”
 미경은 화들화들 떨며 광혁이 잡아당기는 대로 끌려갔다. 남편의 걸레짝 같은 후줄근한 하체가 침대 아래로 길게 너부러져 있었다.
 광혁은 갑자기 담뱃불을 꼬나물고 그녀의 젖가슴에 가져다 댔다.
 미경은 바스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담뱃불을 손으로 탁 쳐 던졌다. 담배꽁초는 방바닥에 나가떨어졌다. 젖무덤위에 까만 흔적이 찍히며 금방 물집이 생겼다. 화상을 입은 것이다.
 광혁이는 이번에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녀의 등을 쫙쫙 아프게 허비기 시작했다.
 “그 새끼의 땀이 묻었을 테지. 더러운 좆 물이 발렸을 테지. 모두 태워버리고 박박 긁어버려야 해!”
 “다시는 안 그럴 테니까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미경은 남편의 마른 나뭇가지 같은 상체를 부둥켜안고 동동 매달렸다. 벌써 1년 가까이 침상위에 누워 있은 데다 밤새 술에 곤죽이 된 광혁은 기운이 빠질 대로 빠져있었다.
 “이걸 놓지 못해. 팔을 풀어.”
 그러나 미경은 더욱 더 필사적으로 광혁의 허리를 껴안았다.
 “좋아. 오늘은 내가 맥이 진했으니까 여기까지다. 일단 먹을 걸 좀 끓여라. 배가 부르고 잠을 자야 기운이 날 것 아니냐. 기운이 나야 네년과 또 싸울 것이고.”
 다행이도 미경이 주방에 나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지쳐버린 광혁은 그대로 침대위에 너부러져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냥 마른 미역줄기 하나를 침대위에 던져놓은 것 같다. 저렇게 진이 다 빠져버린 사람한테서 그런 광기가 어디서 터져 나올까?
 죽은 사람의 광기!
 생각할수록 눈물이 시야를 가린다.
 가끔씩은 저렇게 맥을 탁 버리고 너부러진 남편을 그대로 이불을 확 뒤집어씌워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불쑥불쑥 머리를 쳐든다. 
 그러나 그것은 불륜을 넘어 살인이고 범죄이다.
 갑자기 죽고 싶어진다.
 이런 것이 삶의 내용의 전부라면 살아야 할 의미가 무엇인가. 죽기보다 나을 것이 없다. 내 뜻대로 살지 못할 바에야 구태여 이 구질구질한 목숨을 연장할 이유가 무엇일까 싶었다.
 미경은 허둥지둥 옥상으로 달려 올라갔다. 비탈인데다 집터를 돋운 것까지 합치면 고도가 16m는 족히 되는 높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득하다 못해 발바닥까지 찡찡 저려난다. 눈 딱 감고 저기 콘크리트바닥에 풍덩 뛰어내리기만 하면……
 “자기야. 전화 받아.”
 불현듯 휴대폰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미경은 감았던 눈을 떴다. 화살촉 같은 날카로운 바람에 독이 오른 추위가 발려있었다.
 누구지?
 액정화면에 찍힌 착신번호를 확인해보니 최진남이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때 아무 일 없어?”
 “진남 씨!”
 “왜. 무슨 일이 있어? 오빠가 야단쳐? 아니면 그 뒈지지도 않고 남만 고생시키는 망할 놈의 병신새끼가 미경일 못살게 굴었어. 그 송장새끼를 내가 그냥 확……”
 “아무 일도 없었어요. 죄 없는 사람 욕하지 말아요.”
 “그래.”
 도리어 이상해하는 어조다.
 “그럼 다행이다. 우리 언제 또 만나지?”
 “글쎄요……”
 “글쎄요라니. 난 미경일 하루만 못 봐도 못사는 걸 알잖아. 내일 또 봐.”
 “……”
 미경은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이실직고할 수도 없고 속일 수도 없고.
 “저 오늘 피곤해요.”
 “그럼 오늘은 집에서 푹 자. 나도 좀 자야겠어.”
 “네.”
 모든 것이 꿈 같았다. 진남이와의 그 황홀했던 정사 장면도, 천년 지옥의 터널을 뚫고 나온 듯 지긋지긋했던 남편의 폭행도 그저 한 두 차례의 길몽이나 악몽 같을 뿐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인생인가?
 인생이란 그저 이런 것인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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