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박사의 퓨전로드맵]

그런데 무슨 일을 하다 보면 반드시 장애물을 만나기 마련이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내게 큰 감동을 주었던 이시이 회장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한 말 중에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일본에서 유럽까지를 연결하는 대륙횡단루트를 제안했을 때 전혀 뜻밖의 문제로 이시이 회장이 우려를 나타냈다. 한반도를 거쳐 중국대륙으로 철도가 연결되려면 남북한 철도연결 사업이 필수적인데, 북한의 동의와 협조를 얻어 성사시켜야 할 이 일을 두고 의견이 달라진 것이다. 북한이 일본인들을 납치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 일본국민 전체가 용서하고 합의를 하지 않으면 북한과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납치사건이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과는 아무것도 협력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정부와 국민들의 태도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일본의 미래를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시이 회장 조차도 관점이 이렇게 폐쇄적인가? 특히 그가 말한 ‘전 국민의 합의’라는 표현 속에 내재돼있는 일본인 특유의 전근대적인 집단의식을 확인하는 순간 그것이 바로 일본인들의 전형적인 한계임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한 과거 때문에 북한과 미래를 도모할 수 없다면 일본으로부터 36년간이나 강제점령을 했던 한국은 영원히 일본과 미래를 도모할 수 없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또 중국과 다른 아시아국가들과는 어떻게 미래를 도모하려 그러는가.

일본에서는 내년 3월에 발표할 새 검정 역사교과서에도 일본의 아시아침탈이 아시아해방전쟁이라는 논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의 동아시아를 보는 시각이 결코 변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도도히 흐르는 평화공존의 물결 속에서도 전혀 방향선회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갈수록 더욱 극단적인 길로 치닫고 있는 일본의 보수 우경화 현상은 주변 국가들을 몹시 당황스럽게 한다.

사실 오늘날 아시아사회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역통합이 늦어지는 이유는 지난 세기 일본이 아시아지역에 자행한 역사적 만행의 후유증이 크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 스스로도 아시아인이면서 다른 아시아인들에게 무능하고 무력한 존재라고 세뇌시켰으며 결과적으론 서로를 불신하고 무시하는 반 아시아적 시각을 심어주었다.

일본이 아시아지역에 저지른 범죄는 단순한 물적, 인적 범주를 넘어 반아시아적인 씻을 수 없는 범죄였다. 그런 일본이 이제 와서 북한이 불과 몇 백명 되지 않은 일본인을 북송했다고 해서 북한과 공조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논리는 누구에게도 이해받기 어렵다. 아직도 일본은 맘속으로 탈아시아를 외치며 아시아를 자신의 점령지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게 한다.

 

“과거를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다.”

이 말은 지난해 EU 탄생 5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이스라엘을 방문했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Merkel) 총리가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을 관람하고 남긴 글이다.

용기있게 자신의 과오와 약점을 인정하고, 주변 국가와 함께 손잡고 화해의 길로 나선 독일 덕분에 지금 유럽은 국경도 허물고 각종 제도를 통일시켜 가면서 공동의 번영을 꾀하고 있다.

독일과 나란히 2차 대전의 전범 국가였던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금 유럽에는 독일이 “또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의심하는 눈초리도 없고, 또 메르켈 총리가 발 벗고 나서면 유럽과 세계평화를 위한 외교노력으로 크게 각광받는다.

반면에 일본이 힘을 과시할 조짐을 보이면 주변 국가들은 바짝 긴장하고 의심부터 하게 된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때도 그랬거니와, 아베 전 총리의 종군위안부 발언만 해도, 주변국가와 국제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킨 바가 있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아소 다로 총리 역시 한반도 관련 망언의 또 다른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런 인물들이 이끄는 일본이 과연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누가 인정하며 안심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일본사회 곳곳에는 고질적이고 전근대적인 집단의식이 잠재돼 있다. 언제 어떤 형태로 용출될 지 예측 불가능한 일본인 특유의 폐쇄적인 집단성! 그것 때문에 그들은 20세기 초 아시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것을 부인하려 한다면 일본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사회 속에서 결코 진정한 선진대국이 될 수 없다.

언젠가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의 전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일본인들이 일본사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경영인으로 서슴없이 손꼽는 인물이다. 그는 3가지 행운 때문에 사업에 성공했다고 흔히 말하곤 하는데 그가 말하는 3가지 행운이란 이런 것이다.

  첫째로 나는 11세에 조실부모했기 때문에, 철이 일찍 들었다. 두 번째로 나는 어려서부터 건강이 나빴기 때문에 늘 건강을 조심하여 95세까지 장수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중퇴한 뒤 학업을 계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늘 배우는 일에 겸손했고, 그 결과로 경영의 귀재가 됐다.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자신의 아픔과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이를 솔직히 인정했으며 더 나아가 그 것을 극복하기 위해 겸손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매진했던 것이다. 그는 그런 삶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가 스스로의 아픔과 약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만이, 자신의 인생을, 기업을, 국가를 오히려 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지혜를 일깨워준다.

나는 일본 지도자들이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의 일생과 독일의 경우를 교훈 삼아 자신과 국가의 이미지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일에 성공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과거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하며 이웃국가와 평화공존을 위해 발 벗고 나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그것이야말로 동북아시대로 가기 위한 선결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구는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일본과 마주 앉으면 거의 본능적으로 과거문제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고질병이다. 이 현상이 반복되는 한 우리는 그들에게 단 한발짝도 더 다가갈 수 없다. 일본과 해소할 일이 없다는 게 결코 아니다. 그 일이 결코 의미 없다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일본의 태도를 보면, 과거 그들의 자 잘못을 따져서 받을 거 받고 풀 것을 다 풀려면 앞으로 귀중한 시간을 얼마나 더 쏟아 부어야 할 지 모를 일이다.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일본과의 감정문제, 과거사문제를 청산하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는 지금도 여전히 감정에 휩쓸려 울컥 울컥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이여. 언제까지 그 감정싸움에 촌각을 다투며 소모전으로 우리의 역사를 낭비 할 것인가.

역사청산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을 그만 두자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일이 최우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앞으로의 관계에 집중해 양국의 관계를 풀어가다 보면, 과거의 일은 생각보다 쉽고 자연스럽게, 일본인들의 공감을 얻으며 풀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능력과 그들의 경계심 뒤에 일렁이는 인간미와 감성을 먼저 인정해주자. 그렇게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미래를 먼저 이야기 하자. 미래에는 하나가 되기 위해 내가 받은 상처일랑은 일단 묻어두고 모든 것을 양보하자. 과거 청산은 그 이후의 일이다. 그들이 마음을 열고 우리와 하나가 되면 그 과거사가 우리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 그리고 그 순간은 반드시 온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들과 마음을 열고 그들의 미래를 위해 손을 내민다면. 그것이 흥부식 포용이고 코리안 섬 게임을 창출하는 일이 될 것이며, 그렇게 해야만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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