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칼럼

   사람들은 애들 이름짓기에서만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한번 지어지기만 하면 그애는 보통 그 이름과 운명을 같이하면서 한뉘를 살아야 하기에 그럴만도 하다.

   다른것과는 달리 무릇 이름에 관해서라면 새것만이 능사는 아닐것이다. 련속성이 없이 자주 변하는 이름은 우선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례컨대 만약 어느 부모분이 진득하지 못한 성미라서 귀한 아들의 이름을 똥돌이라고 지었다가, 크면서 돌석이라고 고쳐부르다가, 자라서는 범석이라고 부르는식으로 자꾸만 고치기를 거듭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름 당사자는 물론이요, 옆에서 불러줄 사람들조차도 괜히 당혹스럽고 짜증나고 혼란스러워질게 뻔하다. 이름 당사자는 자칫 사람들한테서 종잡을수 없는 어슴프레한  존재로 될지도 모른다.

   사람의 이름뿐이 아니다. 다리이름같은걸 망라해 지명따위도 신중을 기해야 하긴 마찬가지이다.

  내가 사는 도시의 대표적인 다리는 연길교이다. 1909년에 연평교라는 목조다리로 출발해 1934년 콩크리트구조로 바뀌면서부터 연길교라는 이름으로 불리였다고 한다.

  이번에 개축공사를 벌리면서 다리이름공모를 한다고 들었는데 다리건설에 눈길을 돌려주십사 하는 조처로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을지는 몰라도 나의 견지에서는 하등 필요도 없는 행사같아보인다. 100년의 수명을 가진 다리가 어디 그리 흔한가. 70여년의 력사를 간직한 그 이름 또한 얼마나 근사하고 값진건데 이제와서 무슨 이름공모라는것때문에 일조에 삭제되여 휴지통으로 들어가지나 않을지, 나는 은근히 조마조마한 심정을 금할수 없다.

  하기야 낡은것을 새것으로 만든다는건 장한 일이다. 격정에 부풀 법도 하다. 하지만 필히 알아둘것이 있다. 력사의 이끼가 두터운 그 옛이름자체가 더구나 장한것이고 그 어떤 이름으로도 대체할수 없는 력사감의 무게와 여러 세대 공통의 친화력을 갖는다.

   대표적인 다리는 물론이거니와 웃세대에게도 익숙하고 지금 세대에게도 친숙한 대표적인 거리, 대표적인 건축, 대표적인 지명은 한 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를 이어주며 공감대를 지켜준다. 이미 세상을 하직한 망자들에게도 미안하지 않은 이름, 외지에 나간 나그네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름, 오늘을 사는 시민들에게도 정겨운 이름, 도시를 다녀간 내외 관광객들에게도 추억을 남긴 이름, 그래서 앞으로 태여날 신세대들에게도 자랑스울 그런 오랜 이름이 좋은 이름이 아닐가?

   아쉽게도 얼마전 이 도시의 명물인 연변예술극장이 로동자문화궁으로 이름이 바뀌고말았다.

   유럽풍의 꽤 잘지은 극장으로 로동자문화궁이 따로 있었는데 50년이 될가말가한 력사(자료에 의하면 영국건축의 평균수명은 132년, 프랑스는 102년, 유럽 대부분 나라는 80년, 허다한 성곽은 수백년의 수명)를 마감하고 최근에 헐리였다. 문화궁건물이 사라지고 자치주공회가 예술극장을 관할하게 되면서 극장이름이 로동자문화궁으로 바뀐 모양이다.

   나는 예술극장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두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연길의 문화지리로 봐서도 그 이름이 빠지면 쓸쓸하다. 건물 소속관계의 변화야 일개 시민으로선 어쩔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해당부문에서 오래된 그 이름을 너그럽게 수용하고 현명하게 아끼는 아량을 보여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만은 숨길 길이 없다.

   이 도시에서 유일한 예술의 전당, 시민들 정감의 보금자리로 자리잡은 유명극장 이름을 철에 따라 의상 바꾸듯 하루아침에 갈아치웠으니 나로선 큰눈에 중동이 꺾인 다자란 나무를 바라보는듯 허전한 기분일수밖에 없는것이다.

   사람이나 사물의 존재를 나타내는 허다한 이름중에서도 력사감을 풍기며 사람들의 기억을 공유하는 오랜 이름이 매력이 있다. 이름의 력사가 유구하면 유구할수록 브랜드적가치도 높아질수 있다. 아무리 콩크리트빌딩을 쌓아놓아도 인간적인 기억과 추억거리가 빈약한 고장은 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루루 천년 만리장성은 중국을 상징하는 축조물로 세인의 뇌리에 각인되였다. 시도때도없이 무슨 금성철벽, 천년고성, 또는 만리요새따위 잡다한 이름으로 조령모개(朝令暮改)하지 않은것이 천만다행이다. 그게 아니고 시류에 따라, 조대에 따라 엉뚱한 이름으로 고쳐불렀더라면 그 이름이 지금처럼 쟁쟁하고 무게있게   만방에 전해졌을가?

  동방의 모스크바라고 불리는 할빈의 중앙대가를 보더라도 그렇다. 내 볼바에  중앙대가는 사실 넓은 거리는 아니여도 로씨야, 유럽풍의 건축문화가 살아있고  동서문화 접목의 이왕지사가 고여있는 그 거리는 고풍의 이름, 옛스런 모습 그대로 할빈의 명물로 남아 세인의 발목을 잡고있다.

   작게는 나의 사랑스러운 모교 중앙소학교도 비록 한때 수자로 된 무표정한 교명으로 바뀐 적은 있었어도 결과적으로 원이름으로 남아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꿈같은 동년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절절한 감회를 금할수 없다.

   우리 도시에서 이제 만리장성의 위용이나 로마 옛터의 장관을 재현시킬수는 없다. 네바강변이나 중앙대가의 우아함을 옮겨올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독점을 거부하고 개성의 존재를 인정해주어서 세상은 공평하다.

   우리에게도 분명 우리고유의 남다른 력사가 있다. 우리만의 영광, 우리만의 쓰라림, 우리식의 삶의 방식을 구현한 대표적인 이름들이 남아있다. 다루기에 따라서 그것들은 우리만의 명물로 살아남을수가 있는것이다.

   크든작든 그것은 괘념할바가 아니다. 남다른 그 무엇이면 족한것이다. 력사의 이끼가 두텁게 깔린 오랜 이름의 매력을 보아내고 세세대대로 알아주는것은 우리의 영광을 쌓아가고 우리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킬수 있는 지름길이다.

   이런 신념때문에 나는 이 참에 이런 역제안 하나를 내놓고싶다. 새이름짓기와는 별도로 오랜 이름 지키기 공모 또는 캠페인같은걸 벌리자는것이다. 우리들 마음 안방의 내밀한 풍경으로 남아있는 이름, 우리들 심령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이름, 우리들 내면의 금선에 닿아있는 이름들을 찾아내고 구해내고 살려내고 지켜내는 노력을 기울여보자는것이다. 도시의 존엄과 원견성있는 발전을 위해 오랜 이름 지키기에 공로가 있는 사람은 새로운 건설실적을 쌓은 사람에 못지 않는 공로자로 인정해주고 장려해주어야 마땅할것이다.

   지금 이곳에선 두만강지역개발의 훈풍이 불고있다. 연길을 중심으로 룡정, 도문과의 일체화도 가시화되고있다. 모두 이름난 도시이고 그 이름들을 살려야 할텐데 길림성 동부중심도시로 예상되는 통합도시명은 조심스럽지만 수부가 수부인만큼 연길(룡정과 도문은 옛날처럼 구로 남고)로 정해야 하지 않을가싶다. 력사의 숨결이 어려있는 소중한 이름이라면 어느것 하나 경솔하게 버리지 말고 그대로 살려쓰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장정일 :  문학평론가   zhengyi121@hanmail.net  
         중국 룡정시 출생.    연변작가협회회원. 중국작가협회회원.
      연변일보 부총편집,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력임.  주로 문학평론, 수필, 칼럼 창작에 종사.

    저서로 칼럼집 <사색의 즐거움>, 평론집 <변방ㅡ또 하나의 시작> 등

[저작권자(c)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단, 공익 목적 출처 명시시 복제 허용.]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