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제30회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수상작 심사평 [김관웅 교수]

     이 번 심사는 늦여름 더위를 식히면서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오는 연길시 팔도향 구수하(九水河) 기슭의 대우산장(大禹山莊)에서 열렸다.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5명의 중견문인들은 사전에 22편의 후보작에 대해 각기 읽어보았고 한자리에 모여앉아 충분하게 논의한 후 최종적으로 아래와 같은 작품을 수상작으로 뽑는데 합의를 보았다.

    소설부분 본상에 홍천룡씨의 《호박골의 떡호박》, 신인상에 조룡기씨의《포장마차 달린다》, 시부분 본상에 김철 선생의《휴전선은 말이 없다》, 신인상에 박룡길씨의 《유리창》, 수필부분 본상에 리태근 선생의 《깨여진 고향의 반쪽 얼굴》, 신인상에 주향숙씨의 《내가 내곁에 서서》, 평론부분 본상에 우상렬씨의《현대적인 소설서정》, 그리고 신인상은 공석(空席)으로 남겼다.

    모두어 수상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모두가 관심을 가진 작품은 리태근 선생의 수필 《깨여진 고향의 반쪽 얼굴》이다. 이 작품은 30년 만에 고향을 찾은 작가의 견문과 감수를 적고있는데 외지로 돈벌이를 간 마을을 한족인 채령감네 삼형제가 지키면서 일약 부자로 된 이야기를 통해 우리 농촌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있다. 고향마을의 과거와 현실, 마을을 지키면서 근실하게 일하는 한족 농민 채령감네 삼형제와 마을을 버리고 산지사방으로 흩어진 조선족농민들과의 대비를 통해 일확천금의 꿈에 뜰 떠 자기의 생존기반과 뿌리마저 잃은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 우리 농촌사회의 실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있다. 특히 채령감네 삼형제의 성실하고 근면하고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통해 재래의 편협한 민족의식을 극복하고 다문화주의시각을 보여주고있다.

 

    홍천룡씨는 대학시절 약관(弱冠)의 나이에 단편소설《구촌조카》로 화려하게 등단한 작가인데 아침이슬처럼 반짝하다가 사라지는듯 싶었다. 하지만 최근 긴 “동면”에서 깨어나 수기, 수필, 소설을 무더기로 쏟아내더니 마침내 《구촌조카》의 자매편이라 할만한 중편소설《호박골의 떡호박》을 펴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종덕은 “아버지 없이 자란 과부의 아들”이다. 마을에서 찬밥에 도토리 신세로 왕따를 당하던 종덕이 우연하게 촌장으로 되여 두 쪽으로 갈라진 마을 사람들을 단합시켜 새로운 농촌건설의 설계도를 펼친다는 이야기인데, 종덕의 남다른 향토애와 헌신성 및 후덕한 인심을 잘 그려냈다. 이 작품은 종덕의 성격창조를 통해 오늘날 농촌사회의 부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본 요인을 순후한 농민대중의 자각과 헌신성에서 찾고있어 주목된다. 농촌사회의 소외되고 비틀리고 우울한 인물들이 아니라 “바보온달”과 같은 인물을 창조하고 있어 한결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김철 선생의 시정시 《휴전선은 말이 없다》는 서사적인 요소가 부족하고 편폭이 짧아 서정서사시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조선반도의 통일을 지향한 작품으로는 근년에 보기 드문 수작이다. 이 작품은 “휴전선은 말이 없다”는 역설적인 구조속에 감정이입, 정경융합의 수법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창조함으로써 시인의 감정을 육화(肉化)하는데 성공하고있다. 이를테면 “멀리 바라보면/ 푸른 장삼을 걸친 준령들이/ 더위 먹은 로승마냥 늘어져있고/ 초록의 강물들은 지친 혈맥인양/ 설백한 강토에 맥없이 꿈틀거릴 제…”와 같은 시련들은 감정이입을 통한 의인화의 수법으로 오랜 분단의 침울한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하고있다.

 

    우상렬씨는 폭넓은 독서와 부지런한 필경(筆耕)으로 최근 년간 우리 문단의 중견평론가로 떠올랐는데, 그의 《중국소수민족문학으로서의 조선족문학연구》라는 비교문학적인 글도 좋지만 특히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다룬 《현대적인 소설서정》도 일품이다. 이 글에서는 한영남, 구호준, 주계화 등 제씨(諸氏)의 소설을 치밀하게 분석하고나서 “세 작품의 공통된 특징은 우리의 감상심리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는 슈제트의 희석화(稀釋化) 및 심리적경향의 강화 등 현대소설적인 수법으로 거창한 시대주류담론보다는 세속의 세말사로 대변되는 현대적인 내용을 잘 보여주었다”고 지적한다. 문예심리학과 현대소설기법에 대한 탄탄한 리론적 소양, 간결하면서도 질감이 있고 유머러스하면서도 톡톡 튀는 새로운 관점들을 선보인 그의 만담식의 문체가 일가(一家)를 이루었다고 하겠다.

 

    조룡기씨의《포장마차 달린다》는 올해 《연변문학》지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은 작품이라 하겠다. 대학을 졸업한 준성은 항주에서 포장마차를 경영하는데 소희라는 한국류학생이 동참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들 둘의 관계를 준성의 미혼처 춘매가 시기, 질투하고 소희의 미혼부 영민이 괘씸하게 생각하고 온갖 작간을 부리건만 준성의 의지를 꺾을 수 없고 소희 역시 요지부동으로 준성을 따른다. 새로운 도시문명의 소재, 생동하는 장면의 교차와 조합에 의한 몬따쥬식 구성과 새로운 타입의 인물형상을 통해 신세대젊은이들의 새로운 가치관과 인생관을 보여준 재치있는 청춘소설이라 하겠다.

 

    박룡길씨의 서정시 《유리창》은 정지용의 유명한 서정시《유리창》의 기법을 배운것 같은데, 주제는 서로 다르다고 하겠다. 정지용의 《유리창》은 자식을 잃은 슬픔을 형상화하였고 동시에 차가운 유리창을 통해 그것을 극복하는 삶의 자세를 보여주었다면, 박룡길씨의 《유리창》은 김관웅 선생이 지적한 바와 같이 “유리창에 빙자하여 시적화자의 절절한 짝사랑을 노래한 애정시”이다. 말하자면 유리창이란 이미지를 통해 “나”는 “너”를 그토록 갈망하지만 “너”는 여전히 보이지 않고 차가운 느낌만 준다고 하면서 실련의 아픔을 애타게 호소하고있다.

 

    주향숙씨의 수필 《내가 내곁에 서서》는 자신을 대상화해서 보는 제2의 시각을 통해 대인관계가 원활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비밀을 안고 남들과 벽을 쌓고  사는 자신을 반성한다. “내 곁에 내가 서면 내가 알립니다. 그래서 내가 다시 태여나고싶어집니다. 우선 내가 내곁에 잘 설수 있도록 나를 다듬고싶습니다. 결코 얼음처럼 섬찍하지도 않은 그런 온기를 지니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또 해빛처럼 강렬하여 부담스럽지도 않은 사람의 온기를 지니고 싶습니다.” 수필은 고백과 성찰의 문학이라 할 때 참으로 자신을 성찰, 반성할 있는 시선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의 성숙을 의미하는 것이요, 그래서 이 수필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과 철리를 선물하고있다고 하겠다.

 

    거듭 수상을 축하한다.

 


                                           2010년 9월 7일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심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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