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어디 있어?”
다시 섬돌에서 내려와 암자 주위를 초조한 시선으로 둘러본다. 평소 점잖고 느긋하던 신사풍도가 아니어서 윤정의 마음도 긴장해졌다. 자꾸만 지난밤의 악몽과 연결된 어떤 불행이 발생했을 것만 같은 우려와 불안감이 그녀의 등을 뜰로 내밀었다.
암자 뒤에서 주춤주춤 앞뜰로 나오는 아내를 보자 정도는 이곳이 사찰이라는 사실마저 잊은 듯 갑자기 목청을 높이며 달려왔다.
“자기, 여기 있었네. 난 또 어디 간줄 알고……”
무슨 일로 왔는지 용건부터 듣고 싶었다. 그러나 윤정은 입을 열지 않았다. 말하기가 싫었다. 언어자체가 하나의 허상에 불과하다. 아니, 허상의 허상이다.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말은 허상으로 인간을 유혹하고 혼란에 빠트리고……
“빨리 집으로 내려가야겠어. 어서 준비해.”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 그것도 딸애 미미의 신상에 말이다. 지금 윤정의 앞에 서있는 정도의 건강은 멀쩡하기만 하다. 제발 미미에게만은 불행이 덮치지 말기를 속으로 빌었다. 부처님의 영험에 기도했다.
“갑자기 벙어리가 된거야? 왜 말이 없냐고. 집에 큰 일이 생겼단 말이야!”
“……”
“미미한테 일이 생겼다고! 지금 듣고 있는거야?”
윤정은 그제야 땅바닥에 깊숙이 심어 놓았던 시선을 뽑아 남편의 얼굴에 던졌다. 그녀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결국 미미의 신상에 불행이 덮쳐든 것이다.
“딸애가 잘못되었다는데 당신은 알고 싶지도 않아? 당신의 득도가 미미의 생명보다 더 중하냐고? 말 좀 해봐.”
“……”
정도는 그녀의 어깨를 부여잡고 마구 흔들었다. 하나의 인연이, 그녀가 그토록 잘라버리려고 피나는 수행을 통해 정진했던 인연이 또다시 그녀의 정신과 육신을 꽁꽁 얽매며 고통으로 다가왔다.
난 정말 세속의 인연을 끊어버리지 못하고 말 것인가. 외할아버지처럼 허깨비 육신만 살아남으려고 인연에 매어 버둥거리다가 죽어버리고 말 것인가.
“자기, 정신 좀 차려. 우리 미미가 백혈병에 걸렸단 말이야. 어제 진단이 나와서 병원에 입원시키고 새벽에 막 달려오는 길이야.”
백혈병!
그게 무슨 병이었지?
그래 불치병이라고들 했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병이다. 백혈병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미미가 왜 그런 몹쓸 병에 걸린거지?
그럼 미미도 외할아버지처럼 죽는단 말인가.
사람은 왜 죽어야 하는가. 늙어 죽고 병들어 죽고……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이별하고……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인연만 끊어버리면 이 모든 고통에서 해탈할 수 있다고 한다. 살아있는 것도 허깨비일 뿐이고 죽는 것도 허깨비일 뿐이다. 생사의 고통에서 해탈하려면 참선수행에……
“자기 정말 딸애가 죽는대도 눈 하나 깜빡 안 할거야? 불심이 뭐기에. 부처가 뭐기에 자식도 외면하고 이렇게 미쳐버렸어!”
할말이 없었다. 간다고 해도 그녀에게는 미미의 죽음을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임종하시는 걸 지켜보면서도 대처 방법은 눈물 하나 뿐이었던 윤정이었다. 미미 앞에서 윤정이 보여줄 수 있는 건 역시 눈물 뿐이리라. 그 눈물이 결정적인 그 무엇을 해결할 수라도 있단 말인가. 미미의 고통을 가중시킬 따름이겠지. 그리고 눈물마저도 헛것에 불과하다고 할 때……
“안 돼. 오늘은 안 돼! 당신을 강제로 끌고서라도 집으로 내려갈거야. 당신은 불자이기 전에 미미의 엄마야. 최소한 엄마의 책임은 져야 할거잖아.”
정도는 씽하니 암자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아마도 윤정의 소지품들을 정리하려는 심사 같다. 그러나 정작 암자 안에 들어선 정도는 방 한가운데 우뚝 못 박힌 채 한동안 꼼짝 않고 서있다. 그 무슨 소지품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리라. 벽에 걸린 승복 한 벌, 벽장 속의 이부자리 한 벌, 발우와 다기 몇 점, 그리고 목탁과 경전이 그녀의 전부의 가산이었다. 라디오며 TV며 전화며 외계와의 소통이 가능한 모든 인연줄을 차단하기 위해 방에 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이 이런 몇 가지 간단한 소지품만 갖고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정도로서는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남편에게 그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나 다름없으리라. 그러나 윤정에게 남편이 필요로 하는 가산은 단순히 헛것에 불과한 육신의 쾌락과 만족만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뭐야 이게! 이런데서 어떻게 6개월이나 지냈어. 이러니까 사람이 반쪽이 됐지. 여기다가 그냥 두었다간 당신을 죽이겠어. 당장 정리하고 떠나. 아까 법혜스님과도 말씀을 드렸어. 당신 의사에 맡긴다고 했어. 그러니……”
정도는 암자에서 나오고 윤정은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섬돌위에서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순간에 윤정은 인연이란 이런 것임을 문득 깨달았다. 인연이란 만남과 동시에 헤어지기 마련인 꿈 같은 한순간일 뿐이다. 바람 같이 스쳐가는 인연에 집착할 필요가 무엇인가. 나와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나와 딸애의 인연도 그런 것이겠지. 집착을 해도 그 헤어짐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만남을 막을 수는 있다. 만남을 막으려면 헤어짐부터 철저히 마무리해야 한다. 인연이란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집착하는데서 생기는 것이다.
윤정은 방석을 깔고 면벽하고 앉았다. 그리고는 두 눈을 사르르 감았다.
“당신 정말 잔인하다. 인젠 아주 피도 눈물도 없구나. 이래도 되는지 법혜스님한테 내려가 따질거야.”
화가 난 듯 정도는 바람처럼 휭하니 오던 길로 도로 달려 내려갔다.
벌써 첫 팀의 등산객들이 산행길에 올라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암자 밑으로 지나갔다. 잠을 깬 온갖 산새들이 숲이 들썩거리도록 서로 아침인사를 나눈다.
참선수행이 화두참선도 아니고 무념법인데 그녀의 의식은 거미줄처럼 남편을 따라 산 아래 법당에 가있다.
법혜스님께서 뭐라고 하실까?
남편의 주장에 손을 들어줄까?
병원에 앓아 누워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을 미미가 망막에 삼삼하다. 내가 딸애를 보고 싶은 만큼 미미도 엄마를 보고 싶을 것이다. 참선이고 뭐고 잠시 밀어 놓고 하산하여 미미가 입원한 병원으로 가 볼까. 언제 구할지도 모르는 깨달음을 기다리며 자식의 고통마저 외면한다는 건……
“참선수행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렇지 어찌 자식이 죽을 병에 걸렸는데도 모른 척 할 수가 있습니까. 최소한 엄마로서의 책임은 이행해야 되는 게 도리가 아닙니까.”
앞뜰에서 남편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법혜스님의 도움을 받으려고 암자까지 모시고 올라온 것이 틀림없다.
“물론이죠. 엄마의 책임도 이행하고 아내의 의무도 이행해야죠. 그게 중생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허나 생각을 한 번 깊이 가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겁니다. 죽음이라는 게 뭡니까? 죽음이라는 것이 중생들에게 중대한 사건일지 모르나 불자들에게는 단순한 사대의 흩어짐일 뿐입니다. 육신이라는 건 허깨비로 본래부터 있은 적도 없고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렇다지만 정성이 지극하면 병이 완쾌될 수도 있잖습니까. 지금은 의술도 발달해 그럴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의료기술이 죽음을 막아낼 수 있다고요? 설령 죽음을 막아낸다고 하더라도 그건 육신의 죽음 뿐이겠지요. 마음의 죽음을 막으려면 불교수행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병원치료는 주어진 생명을 한계적으로 보장할 뿐 죽음을 궁극적으로 막아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불자들은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면 죽음에서 영원히 해탈할 수 있습니다.”
“자기만 죽음에서 해탈하고 자식은 죽으라고 내버려 두고. 그게 무슨 양심입니까. 그건 이기주의이고 불교에서도 반대하는 욕망의 다른 한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왜 자신만을 위하는 겁니까. 깨달음을 얻으면 그 불심과 신통력으로 중생을 제도하여 고통에서 해탈하도록 유도하는 게 수행자의 신성한 보리심이지요.”
“스님. 그러지 마시고 절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단 하루만이라도 보고 오도록 아내를 설득시켜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다 가르쳐 주시리라 믿습니다. 워낙 불심이 깊으신 분이시라. 결정은 행자께서 하실 겁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법혜스님은 그냥 몸을 돌려 산 아래로 내려가시는 모양 잠시 뜰 안은 잠잠했다.
이윤정은 안도의 숨을 호- 내쉬었다.
잘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알 수 없다. 부처님께서 다 가르쳐 주신다고 했지만 머릿속엔 아무런 결단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당신 오래 살려고. 혼자만 죽지 않겠다고 여기서 수행이나 해. 미미야 죽든 말든. 그게 부처님의 자비고 깨달음이라면 난 다시는 이따위 사찰 같은데 발걸음을 돌리지 않을 거야. 간다, 가! 어서 도를 닦아 부처가 돼라.”
뚜벅-뚜벅-
구둣발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몇 걸음 못가서 다시 뚝 그친다.
“나도 인젠 몰라. 미미가 뭐 나 혼자 자식이야. 죽겠으면 죽고 다 몰라.”
뚜벅-뚜벅-
비탈길을 달려 내려가는 구둣발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이윤정은 저도 모르게 좌선을 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정원에는 누런 산모래만 깔려 있을 뿐 인적이 텅텅 비어 있다. 남편이 떠나고 나자 온 세상이 통째로 그녀의 곁에서 사라져 버린 듯 한 그런 허탈한 느낌이었다.
맨발 그대로 밖으로 달려 나왔다.
남편은 어느새 비탈을 내려가 냇물을 건너서 산 아래 주차장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여보. 기다려요. 저도 함께 가요. 미미를……”
다급히 남편을 불러 세웠다.
그러나 웬일인지 목이 꽉 메며 말이 나가지 않았다.
“여보……”
간신히 목에 걸린 말 한 토막을 토해냈을 때는 이미 남편은 차에 승차한 뒤였다. 승용차는 주차장 안에 커다란 반원형을 그리더니 서서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미미야.”
윤정의 눈에서 저도 모르게 두 줄기의 눈물이 빗줄기처럼 펑펑 쏟아져 내렸다.
“엄만 사람도 아니야. 우리 내세에서나 만나자.”
훌쩍훌쩍 흐느끼며 오래도록 남편이 사라진,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
문득 암자로 이어진 오솔길에 법혜스님이 나타났다.
윤정은 얼른 얼굴에 번진 눈물을 훔치고 돌아섰다. 정원을 지나 암자 안으로 들어오기 바쁘게 방석위에 좌선자세를 취하고 앉았다.
스님이 섬돌위에 와 섰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모른 척 눈을 감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하산하실 생각이 있으시면 제 차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
“언제라도 말씀하십시오.”
자꾸만 목구멍에 불덩이가 막히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스님의 고무신이 섬돌을 내려 뜰을 지나가며 자그락자그락 산모래를 밟는 소리를 내며 멀어져 갔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산 아래 산사에서 어느덧 낭랑한 아침예불소리가 들려왔다.

사리자여.
있는 것은 없는 것과 다르지 않고 없는 것은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있는 것은 곧 없는 것, 없는 것은 곧 있는 것이다. 느낌이나 생각 행위나 의식도 마찬가지이다.
사리자여.
모든 법은 텅 빈 모양이다. 불생, 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다. 텅 빈 가운데는 사물과 느낌이나 생각, 행위나 의식도 없다. 눈에 보이는 사물의 세계, 코가 맡는 냄새의 세계, 귀가 듣는 소리의 세계, 혀가 보는 맛의 세계, 피부가 느끼는 접촉의 세계, 의식이 자극하는 인식의 세계도 없다. 늙음과 죽음을 초월할 필요도 없다. 괴로움이 모이고 없어지는 길도 없다. 지혜도 없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없고 얻어진 것도 없다. 깨달음을 향해가는 사람들은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기 때문에 마음의 장애가 없다. 장애가 없기 때문에 공포가 있을 수 없다.
……

윤정은 속으로 반야심경을 따라 외웠다.
정말 마음의 장애가 없고 공포감이 없는가.
그녀는 자신이 딸애의 죽음에 대한 거대한 공포감에 휩싸여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부처님. 전 어쩌면 좋아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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