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연재 "바람의 아들" 62

11장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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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일주일이나 병원에서 지낸 정도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다. 항암치료가 진행되면서 미미는 구토와 두통 증세가 더욱 극심해졌다. 딸애가 고통 받는 모습을 보니 잠이 오지 않았다. 두 가지 약물치료만으로는 관해유도가 어려운 고위험군 환자로 분류되어 며칠 전부터는 부작용의 빈도가 높은 제4의 항암제 추가약물치료에 들어갔다. 의사의 말로는 관해유도치료가 효과를 보더라도 중추신경재발방지를 위한 pilot studya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cns두개방사선치료보다 후유증이 적지만 부작용 증세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미미가 고통을 잊게 하려고 늘 동화책을 읽어 주거나 함께 유희를 놀거나 장난을 해 주어야 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일주일이 지나면서부터는 과로가 겹치며 견디기가 힘들었다.
“엄만 왜 안 와? 엄만 미미가 아픈 걸 모르나?”
이렇게 질문을 던져 올 때면 정도는 말문이 막혀 순간 콧등에 진땀이 빠직빠직 돋아나곤 했다.
“아직 알리지 않았어.”
“인젠 절에서 그냥 살아? 안 내려와?”
“안 내려오는 게 아니고 못 내려오는 거야. 미미가 병이 완쾌되면 내려올 거야.”
“정말?”
“그럼. 그러니까 엄마 보고 싶거든 빨리 아프지 말아야 돼. 알았지.”
“응.”
자식이 생명이 위험한 불치의 병에 걸려 앓고 있는데 병원 문 앞에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는 아내가 야속하다 못해 미워졌다. 그러나 인젠 그 미움마저도 사라지고 아내에 대해서는 아예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 며칠은 하루건너 병원에 와서 아들을 교대해 주던 어머니 양진옥이마저 얼마 전부터 나타나지 않는다.
아버지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까?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 사연도 없이 손녀가 앓는데 모른 척 할 어머니가 아니었다. 올 수만 있다면 정도가 부르지 않아도 진작 달려왔을 분이다. 어머니도 아버지의 낙향 때문에 고뇌의 나날을 보내고 계신다. 아들로서 어머니의 괴로움을 위로해 주지는 못할망정 슬픔을 더 얹어줄 수는 없었다.
요즘 윤미경은 스튜디오를 비울 수 없는 형편이다. 오빠를 대신하여 사진관의 업무를 맡아하는 만큼 미경의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고객접수, 사진촬영, 필름현상……병원에 나오지 않더라도 사진관만 잘 맡아 주어도 오빠를 돕는 거나 진배없다.
오늘 아침에는 파랑이 세 번째로 병원을 방문했다. 김밥과 잣죽까지 끓여갖고 와서 정도더러 하루만이라도 집에 들어가 휴식하라고 권한다.
“전 선생님께서 무상으로 사진을 크게 확대하여 액자에 넣어 주셔도 죄다 아무 말 없이 받았어요.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거든요. 한번쯤 제 호의도 받아 주시면 안 되나요. 절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세요.”
오늘은 한사코 정도의 등을 떠밀어 집으로 들여 보냈다.
그러지 않아도 하루만 더 견지하면 쓰러질 것만 같은 탈진 상태였었다. 파랑이 아니었더라면 돈을 주고서라도 간병인을 구할 생각까지 했었다.
“그럼 오늘 하루만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절 멀리하고 싶으신 거죠?”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너무 고마워서요.”
“우리 친구잖아요. 제가 자격은 없지만……”
“무슨 말씀을. 결격사유가 있다면 제 쪽이 도리어……”
축 늘어진 육신을 간신히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이곳 상황 또한 엉망이다. 어머니 양진옥은 침대위에 누워 있었고 방안은 언제 청소했는지 지저분하고 먼지만 풀썩였다.
“어머니. 어디 편찮으세요?”
침대로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양진옥은 이마에 수건을 동인 채 알음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머리맡 탁자에는 신경통, 두통, 화병 따위에 두루 복용하는 약봉지들이 가득하다.
“정도냐.”
양진옥은 그제야 가까스로 침상에서 상반신을 일으킨다. 울었는지 눈 등이 퉁퉁 부어 있다.
정도는 20년을 어머니와 함께 한 솥 밥을 먹으면서 살아 왔지만 한번도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린 지저분하고 구겨진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구김살 하나, 티 한 점 없는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언제 빗었는지 푸시시한 머리카락들이 얼굴에 흘러내려 눈물에 엉겨 붙어 있다. 절도 있고 규모 있던 자세도 생활고에 찌들어 버린 시골아낙네처럼 펑퍼짐하고 너덜너덜 각이 물러나 보인다.
어쩌다가 귀티가 철철 흐르던, 기름이 동동 뜨던 어머니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보기가 안타깝고 민망하고 안쓰럽다.
“아버지한테서 무슨 안 좋은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안 좋은 소식이라도 소식만 있으면 내가 이러겠냐. 그런데 미미는 어쩌고 집에 온 거니. 내가 나가 봐야 하는데 머리가……”
“보살피는 사람이 있어요.”
“누군데?”
“어머닌 모르는 사람이에요.”
“다행이구나. 내가 나간다 나간다 하면서…… 현기증이 나고 두통이 극심해서……”
“미미는 걱정 마시고 편히 누워 몸조리나 하세요. 많이 아프시면 제가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니 됐다. 육신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파서 그런거니까 병원 같은데 가 보았자 소용이 없어.”
정도가 눕히는 대로 양진옥은 침대위에 상체를 눕혔다가 아들이 물러서자 다시 일어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하늘이 나에게 이토록 가혹한 징벌을 내리는지. 지극정성을 다해 시부님께 효도했고 돌아가신 다음에는 제사도 정성껏 지냈잖아. 네 아버지를 정성껏 공대하고 너희 남매를 대학까지 공부시켰고. 내가 못한 게 뭐니. 현처양모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딴눈한번 판적 없이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살아온 엄마가 아니냐. 그런데 왜 내 앞에 차례지는 건 패가망신뿐이란 말이냐. 생각할수록 억울하기만 하다. 왜 네 아버진 엄마를 버리고 싸리골로 내려갔냐 말이다.”
“어머니. 그만 진정하세오. 시간이 지나가면 돌아오실 날이 있을 겁니다.”
“그 날이 언젠데?”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 시골에서 그냥 사시지는 못할 거잖아요.”
정도는 눈꺼풀에 돌덩이라도 매달린 듯 자꾸만 닫기는 걸 들어 올리느라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방바닥에라도 그냥 푹 널부러져 열흘이고 한달이고 내처 자고만 싶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을 경청해야만 하는 자식의 본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아니야. 아버진 돌아오지 않아. 넌 몰라서 그래. 아버지는 그곳에서 사시려고 내려가신 거야.”
양진옥은 무슨 확실한 심증이라도 있는 듯 확신에 찬 어조로 잘라 말했다. 정도는 모르는, 두 분만이 알고 있는 과거의 비밀이 있음직한 눈치이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서 정도는 그것을 처음으로 느꼈었다. 아버지의 과거는 결코 정도가 생각했던 대로 그렇게 영광에 찬 행로만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과거는 그분에 대한 정도의 숭배심을 붕괴시킬 만큼 불결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폐허위에 피어난 한 떨기의 들꽃처럼 신성한 포장을 벗어버린 아버지는 우상이 아닌 새로운 인간적인 모습으로 아들의 가슴에 다가왔다.
결국 아버지는 하나의 평범한 인간이었고 인간이기 때문에 오점이 있다는 그런 결론은 기대상실감과 진실획득감이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었다. 결백하고 정직하고 정당하고 진실하다고만 믿었던 아버지의 인생에도 오물이 배출되는 하수구는 있었다.
그것이 정도를 절망시켰는지 달관을 주었는지는 아직도 미지수대로 남아 있다. 정직과 결백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온 그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독극물 같은 것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의 인생실수를 인정하는 건 곧바로 친구 석준범의 아내 김정실의 외도와 미경의 불륜과 더 나아가서는 파랑과 자신과의 비정상적인 관계발전을 정당화하려는 명분 같은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요. 아버지의 생활 신조가 정직, 결백, 진실이라는 걸 어머니께서 더 잘 알고 계시잖아요.”
지금까지 아버지에 대한 험담은 고사하고 비하하는 어떠한 표현의 사용도 거부해 온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표현이어서 정도는 충격이 컸다. 이 표현이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믿음이 깨어짐을 나타내는 시발점이 아니고 그냥 말실수이기를 바랐다.
“어머니.”
“넌 어려서 몰라. 아버지에겐 강원도 싸리골로 낙향하셔야만 했던 그분만의 이유가 있단다.”
저도 얼마간은 알고 있어요. 하고 말하려고 했지만 아버지와 아들만의 밀담이 어머니에게 소외감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까 우려되어 단념했다. 양진옥은 이 가정의 모든 사건들이 당신을 중심으로 또는 당신을 매개로 해서 시스템이 작동되고 소통된다는 긍지감을 인생의 유일한 낙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양진옥은 가족 내의 어느 성원보다도 더 많은 정보를 장악하고 배분하고 입수 정리하는 것이 당신의 당연한 직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자호감이야말로 양진옥이 일상의 번거로움과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양진옥은 탁자위의 약병을 집어 하얀 알약 네 개를 꺼내더니 입에 삼킨다.
정도는 눈치 빠르게 유리컵에 물을 따라 건넸다.
“내가 워낙 이 사실만은 죽을 때까지 속에 묻어 두고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약을 삼키느라 고개를 뒤로 젖히고 물을 마시고는 다시 말마디에 걸었던 제동을 푼다.
“너한테는 말해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아무래도 과거내막을 털어놓아야 할 것 같다.”
“무슨 말씀인지 제가 반드시 알 필요가 없는 일이라면 구태여 어머니께 심려를 끼쳐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속에 묻어 두는 쪽이 저나 어머니한테 좋으실……”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어. 아버지께서도 전번에 네가 싸리골에 갔을 때 대충 말씀을 하셨을 테고.”
양진옥은 언제나 귀신같은 감응과 육감적 선견지명으로 가족들을 일사분란하게 통솔하였었다. 아버지를 상좌에 모시고도 재능 있는 재상처럼 당신만의 특이한 경륜에서 얻는 예언과 추리력으로 실제적인 실권을 행사해왔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그런 토방법적인 수완에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았다. 얄팍하게만 보였을 어머니의 수완을 묵인해 주고 그런 아량과 관용을 베푸는 것이 또한 가정의 최고 권력자인 아버지의 선행이요 미덕이었다. 가족관계란 워낙 그렇고 그런 것이고 구렁이 담 넘어가 듯 두루뭉술한 것이다.
양진옥은 아주 오랜 과거를, 가슴속에 깊숙이 묻어 두었던 은밀한 사연을 털어놓으려는 듯 자세부터 바로 잡는다. 갑자기 분위기가 경건해진다. 알 수 없는 호기심이 거창한 신비감을 거느리고 어마어마한 체적과 스피드로 정도의 피로한 의식의 계곡으로 밀려들었다. 그 과거의 의미가 얼마만큼 충격적이라는 예감은 아버지의 실토를 통해서도 가히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그분들 사이에는 심상치 않은, 자식에게마저 숨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극비 사연이 감추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벌써 기울기 시작한 아버지의 마음속 동상이 어머니의 강타를 맞고 더욱 부서지고 전복되리라는 위기감이 정도를 불안하게 했다. 어머니의 이런 시도는 아버지의 절대적 권력을 전복하고 가정 내의 위계질서를 무너트리는 결정적인 쿠데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안감은 호기심을 제지하기는커녕 더욱 부채질할 따름이다.

채순희는 윤도율이 서울로 떠나간 뒤 꼭 열 달 만에 아들을 출산했다.
“이 미련퉁이 가시내야! 아비도 모르는 새끼를 내쏘고는 어떡하겠다는 거냐. 제 손으로 제 눈 을 찔러 소경이 되는 바보 가시내야! 시집도 못간 처녀가 새끼부터 내 싸고는 어쩌려고?”
어머니인 소경 박 씨는 딸의 고집을 꺾지는 못해 출산을 도와는 주면서도 입으로는 온갖 독설을 죄다 퍼부었다. 처녀가 아이를 낳는다는 건, 그것도 가다오다 만난 나그네의 아이를 낳는다는 건 장래를 망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박 씨는 딸의 고집을 꺾을 만큼 지독하지도 원칙적이지도 못했다. 눈물을 흘리고 원망하고 장황한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운명이 강요하는 모든 불행과 대우를 받아들이는 것이 이미 박 씨의 익숙한 삶의 처세술이었다.
“그 문둥이가 꼭 널 찾아올 거라고 믿고 있냐? 이 미친 가시내야.”
순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순희도 도회지 사람이, 더구나 대학원에 다니는 지식인이 흙구덩이 속에 뒹구는 감자덩이처럼 시골에 사는 자기를 찾아 오지는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자신을 찾아 오지 않더라도 아기는 낳고 싶었다. 그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었다. 초야의 먼지를 뒤집어쓴 풀잎 같이 초라한 자신의 처지로서는 감히 넘보지도 못할 그런 자랑스러운 남자였다. 그런 멋진 연인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순희는 행복했다. 아기의 얼굴에서 그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는 낙만으로도 기나긴 인생을 즐겁게 살 것 같았다.
“아랫동네 사람들한테는 뭐라고 할 거냐?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할거냐,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할거냐. 등신 같은 년! 제 무덤을 제 손으로 파는 미련퉁이 같은 년!”
박 씨는 입만 뻥끗하면 욕설만 퍼붓는다. 그래도 순희에게는 욕설로 들리지 않는다. 어머니가 알고 있는 말은 원래부터도 욕설이 전부이다. 그녀는 모든 의사표시를 욕설로 대신한다.
동네사람들 앞에 뭐라고 해명해야 하는가 하는 걱정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었다. 아랫동네라고 해보았자 세 호밖에 없다. 게다가 거리가 멀어서 서로 잘 다니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걱정하는 건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도덕적 결벽의 훼손으로 앞으로 결혼문제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할까 봐 두려워서일 것이다. 순희는 아예 결혼 같은 건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순결은 이미 윤도율에게 바쳤고 그 사건은 그녀에게는 곧 결혼이었다. 단 한 번만의 육체적 접촉만으로도 그녀를 무한한 행복과 흥분에 도취되게 만들었던 사랑하는 남자가 그녀에게는 남편인 셈이다.
그러나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소문은 날개라도 돋친 듯 동네방네에 전염병처럼 급속하게 전파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부산 쪽에 내려가 가정을 이루고 초등학교 교직에 근무하던 오빠 채상구가 예고도 없이 강원도 시골마을에 불쑥 나타났다.
비록 가난한 선비이긴 하지만 청빈, 결백, 정직함을 재산으로 삼고 살아온 오빠는 부정이나 패륜에는 남다른 증오심과 적의를 품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그랬을 경우에도 용서하지 않던 그는 여동생이 그런 얼굴 뜨거운 짓을 저질렀다는 추문을 듣고는 한달음에 강원도시골까지 달려 올라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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