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그는 순희의 멱살을 움켜쥐고 뺨을 연거푸 호되게 후려쳤다. 어찌나 아프게 때렸던지 순희의 눈에서 불꽃이 번쩍였다.
“야, 이 년아! 네 년이 우리 가문에 똥칠을 하려고 아주 작정을 한거니? 이게 무슨 짓이냐! 세상 사람들이 우리 집안을 가리켜 뭐라고 흉보겠니. 오랑캐집안이라고 침을 뱉을거 아니냐!”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해서 낳은 아인데 남들이 무슨 상관이에요.”
순희는 금방 코에서 피가 터져 흘러 내렸지만 굴복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굴종이 자신의 자존심문제에 그치는 것이라면 그녀는 입을 다물고 아픔을 참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굴복은 곧 사랑하는 윤도율의 부정을 인정하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저항은 필요한 것이었다.
아니, 그뿐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갓난아기의 명분과 인격적 존엄을 사수해야 할 엄마로서의 무거운 중임까지 짊어지고 있었다.
“이 놈아, 됐다. 그만 매질하고 인젠 말로 해라. 주둥이는 두었다가 어디에 쓰려고. 도깨비 같은 놈아! 그 주먹에 어디 부러지기나 하면 어떡하려고. 몸을 푼 지도 얼마 안 되는 년을……”
박 씨가 남매의 살벌한 전쟁판에 끼어들며 오누이를 갈라 놓는다.
“좋아요. 말로 할 테니까 순희 넌 오빠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상구는 매질을 멈추고 자리를 틀고 앉더니 정중하게 담판을 제기해 온다.
“나더러 어쩌라는 거예요. 오빠.”
“그래 저년더러 뒈지라고 윽박지르기라도 할거냐? 오라비라는 자식이.”
박 씨가 더 궁금한 듯 아들 곁에 바싹 다가 앉는다. 너무 무릎걸음을 쳐 바지 무릎은 진작 땟국이 올라 반들반들 윤기가 돌았다.
“걔를 왜 죽으라고 해요. 미우나 고우나 내 동생인데.”
“그럼 저 핏덩이를?!……아서라. 하늘이 내려다 본다. 마른 벼락을 맞으려거든 그따위 끔찍한 말을 혓바닥에 담지 말거라. 이 미친 놈아!”
“엄만 모르면 좀 잠자코 듣고만 계세요. 순희야. 저 앨 남에게 주던지 시설엘 보내던지 지금 당장 결단을 내려라.”
“그건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차라리 날 죽여요. 우리 둘 다 죽이라고요!”
다소곳이 고개를 떨어트리고 잠자코 듣고만 있던 순희는 갑자기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리고는 누가 빼앗아 가기라도 할 것처럼 잠자는 아기를 들어 품에 꼭 껴안았다. 두 눈에는 비장하기까지 한 경계의 빛이 역연했고 공포와 두려움의 표정이 짙게 어렸다.
“정말 오빠 말 안 들을거니. 좋아 네가 못하겠으면 내가 버려 주마. 우리 집 구석에 아무도 모르는 이런 애를 둘 수는 없어. 그 앨 이리 내라. 당장 밖에 내다 버릴거다. 짐승 밥이 되게.”
“이 놈아. 그 손목때길 놓지 못하겠냐! 도끼로 썩둑 잘라 버리기 전에. 고얀 놈! 벼락맞아죽을 놈!”
박 씨, 순희, 상구, 세 사람은 아기를 가운데 놓고 엎치락덮치락 결투를 벌였다. 그 바람에 잠들었던 아기가 놀라 깨어나며 바스러지게 울어댔다.
“아기가 숨 막혀 죽어요! 오빠. 제발 이 손을 놓아요. 이렇게 빌게요!”
순희는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했다. 얼굴은 진작 눈물, 콧물, 침방울과 땀방울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안 돼. 하루도 집에 둘 수 없어. 엄마도 저리 비켜요. 이건 우리 가문의 명예에 관계된 중대한 문제라고요. 우리 집안은 비록 가난하긴 해도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나쁜 짓은 한 적이 없는 깨끗한 가문이라고요.”
결국은 순희 쪽에서 아기가 숨 막혀 잘못될까 걱정되어 먼저 손을 뗐다.
상구는 아기를 안고는 밖으로 씽하니 달려 나갔다.
“이 개보다 못한 놈아! 퍼렇게 살아 있는 애새끼를 내버리려 하다니! 그럴 바엔 차라리 애 없는 집에 주던지. 죄 받지 않으려거든.”
“오빠. 잠시 만요. 오빠가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요.”
결국 순희가 백기를 들고 말았다. 상구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결백문제에서만큼 오빠를 설득시킬 사람은 없었다.
“진작 그럴 것이지. 누구네 집에 줄 건지 말해 봐. 시설이라도 좋아.”
상구는 그제야 아기를 안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왔다.
순희는 다급히 아기를 받아 안고 젖을 물려 우는 애를 달랜다.
“어차피 남에게 줄거면 아기아빠한테 주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아기아빠? 어디 있는 줄이나 아냐.”
“알아요. 저한테 전화번호가 있어요.”
“전화번호? 그 사람이 알려 준거냐?”
순희는 대답 대신 방에 들어가 장롱 속에 깊숙이 간수해 두었던 자그마한 나무함을 꺼냈다. 그 속에는 윤도율이 남기고 간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와 부서진 안경 그리고 피 묻은 마스크가 들어 있었다.
“여기로 전화하면 집주소를 알거에요. 언젠가 서울 갔을 때 알아 보았는데 평창동에 살고 있었어요.”
“알았어. 내가 내일 아기를 업고 서울로 올라갈 테니 넌 집에 가만히 있어.”
“오빠 나랑 같이……”
“어허!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상구가 무섭게 눈을 부라리며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순희는 그만 기겁을 하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오빠 말처럼 아기를 산중에 버려 짐승밥이 되게 할 수는 없었던 만큼 울며 겨자 먹기로 타협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 남편의 이런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결혼한 양진옥은 꿀 같은 신혼의 행복속에 도취되어 있었다. 옥 같은 딸애를 낳아 가정에는 행복이 하나 더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양진옥의 집에는 뜻밖의 불청객 한 사람이 찾아왔다. 점심때쯤 되는 낮 시간이었는데 남편은 직장에 나가고 집에는 양진옥과 딸애 미경이만 있었다. 불청객은 남자였는데 홀아비인양 등에는 어린애를 업고 있었다.
“이 집이 윤도율 씨 댁이 맞으시죠?”
“그렇습니다만 그쪽은 누구신지요?”
양진옥은 행색이 초라하고 남루한 낯선 손님의 도래에 경계심을 가지며 불쾌한 기색을 애써 감췄다.
“이 아기를 맡기려고 왔습니다.”
남자는 무작정 등에서 잠든 아기를 내리더니 담요와 함께 양진옥의 품에 덥석 안겨준다. 어딘지 모르게 첫눈에 양진옥은 잠든 사내애의 얼굴 모습이 낯익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굴 닮았지?
언뜻 떠오르지는 않는다.
“이 애를 왜 저한테?!……”
“윤도율선생님의 자식이라 하기에……”
“아니. 뭐라고요? 우리 남편의 아이라니……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혹시 정신이 좀……”
“제 여동생이 그렇다고 말하니까 그런 줄 알지요. 저도 잘 모릅니다.”
“댁의 여동생이 누군데요?”
“강원도 싸리골에서 사는데요. 언젠가 이 집 주인이 싸리골로 피신 왔다가 제 여동생과 만났던가 봅니다. 그 계집애가 낳지 말라고 했는데도 한사코 낳았다는 게 아닙니까.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사내는 인사를 굽실하고는 돌아서 나가려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낯선 애를 떠맡게 된 양진옥은 갑자기 당황해졌다.
“아니. 여보세요. 손님.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이 앨 데리고 가야죠.”
“댁의 아인데 내가 왜 데리고 갑니까. 주인한테 돌렸는데.”
“난 몰라요. 우리 집엔 이런 아이가 없으니까 도로 업고 가요.”
양진옥은 어린애를 사내의 잔등에 업히고는 무작정 밖으로 떠밀었다. 그리고는 부랴부랴 대문을 걸어 잠갔다.
“싫으면 별 수 없지. 시설에 맡기는 수밖에.”
사내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성큼성큼 골목길로 사라졌다.
“별 정신 나간 사람 다 봤어!”
돌아서 집으로 들어가던 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사내아이의 얼굴 모습을 닮은 사람이 떠올랐다.
남편이었다.
그럼 그 애가 정말?!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그날 남편이 퇴근하기를 기다리는 반나절 시간이 10년처럼 지루하게 느껴졌다. 남편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속이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남편의 결백과 사랑을 털끝만큼이라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그녀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분명 정신이 나간 사람일거야.
그러나 정작 남편이 퇴근한 후 낮에 있었던 일을 말했을 때 펄쩍 뛸 줄로만 알았던 윤도율의 반응이 예상외로 심상치 않았다. 도대체가 가타부타 태도표시를 안하고 침묵만 지켰다.
한식경이나 지나서야 한다는 말이 고작 어린애의 거취 확인이었다.
“그래 아긴 도로 업고 갔어?”
“시설에 맡기겠다던데요.”
“뭐라고? 시설에 보냈다고! 그건 안돼. 당장 가서 찾아와야겠어.”
다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갈 차비까지 했다.
“그럼 정말 그 애가 당신의 아이란 말이세요?”
그제야 윤도율은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듯 다시 자리에 주저앉더니 고개를 풀썩 꺾는다.
“여보, 미안해. 난 사실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어. 아이까지 낳을 줄은 꿈에도……”
남편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과거에 있었던 자초지종을 다 털어놓았다.
“이런 사실이니 어쩌겠어. 그것도 내 핏줄인데 시설에 내다 버릴 수는 없잖아. 아버지가 퍼렇게 살아 있는데. 한번만 용서해 줘.”
남편은 눈물까지 흘리며 사정했지만 양진옥은 그럴수록 배신감을 강하게 느꼈다.
“그걸 왜 여태 속였어요. 진작 말했어야죠. 전 당신이 미워요. 보기조차 싫어요.”
“여보, 한번만.”
양진옥은 팔소매를 잡고 매달리는 남편을 뿌리치고 침실로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갔다. 울화와 분통이 터져 오르며 눈물이 솟구쳤다. 그처럼 믿었던 남편이 자신을 감쪽같이 속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기에 그 절망감이 더 깊었다.
아내가 거부하자 윤도율도 별수가 없었다.
아침이 되자 남편은 조반상을 차려놓고 아내의 침실 문을 두드렸다.
“여보, 식사해. 나 포기했어. 다시는 그 말 꺼내지 않을게.”
그러자 양진옥은 금방 남편이 측은해진다. 결백과 정직으로 언제나 아내 앞에서 당당하던 남편이 저렇게 기가 죽어 못나니 구실을 하는 걸 보니 가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긴 젊은 한시절의 실수가 아닌가. 결혼한 다음에 그녀를 배반한 것도 아니다. 젊은 시절엔 누구라도 한번쯤은 실수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아내 앞에서마저 기를 펴지 못하는 남자가 밖에 나가서인들 기를 펴랴.
일단 못이기는 척 하고 침실에서 나왔다.
식탁에 마주앉으니 그 서툰 솜씨로 그녀가 좋아하는 닭도리탕까지 만들어 올렸다. 사과와 화해를 구하는 의미가 그들먹이 담겨 있었다. 한점 집어 먹어 보니 짜다 못해 소태처럼 쓰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성의를 무시하기 싫어 애써 맛있는 표정을 지었다.
“맛이 어때?”
“몰라요.”
남편은 끝내 아기에 대한 말을 다시는 화제에 올리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자 말없이 일어나 출근준비를 한다.
“다녀올게.”
한마디 남기고 출입문을 여는 순간 그녀는 입을 열었다.
“여보.”
“왜?”
“어린애는 데려오되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정말! 조건이 뭔데?”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해요. 그녀를 만나지 않을 거죠?”
“그래. 맹세할게. 혈서라도 쓰라면 내가 이 자리에서……”
“됐어요. 제가 오늘 시설에 가서 애를 데려올게요.”

“그때 데려온 애가 바로 정도 너란다.”
양진옥의 과거사 추억이 끝나자 정도는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커다란 충격으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럼 나의 어머니는 앞에 앉아 계신 분이 아니고 강원도 싸리골의 그 순희라는 시골여자라는 말인가? 남편을 살해하고 20년 징역형을 언도받은 살인범이 나의 생모라는 말인가!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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