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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양진옥의 느닷없는 내심 고백은 정도를 아연실색케 했다. 그 충격의 체적이 얼마나 거대했던지 불개미 떼처럼 바글바글 매달리며 졸음마저 소낙비를 맞은 듯 순식간에 말끔히 사라지고 말았다. 인생 중반에 생의 원초적 의문에로 되돌아 간 느낌이다. 자식까지 낳은 아버지가 되었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아직 모르고 있었다니 되기나 할 말인가.
어머니를 진정시켜 잠자리에 들게 한 뒤 정도는 밖으로 나왔다. 잠기가 확 달아난 자리에 폭풍우 같은 허탈감이 밀려들며 가슴을 짓누른다. 결백하다고만 믿어 왔던 자신의 인생이 그 출생부터가 오욕과 불륜으로 얼룩진 결과물이었다니 억이 막힐 뿐이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가? 아버지를!
그렇다. 아버지를 원망할 수밖에 없다. 나의 운명은 아버지가 미리 각본을 짜놓은 것이다. 비극의 각본을 짜놓은 대로 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작가이고 감독인 부친의 지시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움직여 왔을 뿐이다.
그렇다면 인생은 누군가 미리 짜놓은 극본에 따라 연기하는 드라마일 따름이란 말인가. 나 자신의 운명이지만 선택권은 다른 사람에게 귀속되어 있는.
슬펐다. 아버지를 만나서 모든 진상을 낱낱이 알아 보지 않고서는 수 많은 의문이 풀릴 것 같지 않았다.
길가의 떡볶이 집에서 어묵꼬치 하나로 시장기를 달래고는 곧장 강원도를 향해 떠났다. 차도 버리고 택시를 타고 청량리역으로 가 통일호열차를 탔다. 밀린 졸음은 열차에서 해결하려고 했지만 한번 숨어버린 졸음은 불러도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창밖으로는 삼복더위에 혀를 빼물고 우썩우썩 성장하는 논배미들과 녹음이 우거진 산줄기들이 파도 타는 돛배처럼 흔들거리며 지나갔다. 열차가 산악지대로 진입할수록 미군기지들이 자주 눈에 띈다. 당금이라도 각이 물러날 듯 덜컹거리는 통일호는 오노레 도미에의 명화 『3등 열차』처럼 차도 승객도 다 누추하다. 게으른 굼벵이처럼 속도마저 느린데다 간이역마다 정차해 한가한 승객들의 눈요깃거리로는 안성맞춤일지 몰라도 시간을 다투는 정도에게는 지루하기만 하다.
이번의 싸리골행차는 전번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어머니의 성화에 마지못해 아버지를 설득하러 떠난 걸음이 아니라 정도 자신의 선택이었다.
적어도 세 가지 목적이 있다. 어머니의 상실감에 대한 보상청구와 과거에로 회향한 아버지의 참회에 대한 원상 복구 설득들은 처음 행차 때의 목적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세 번째 원인인 부서진 자기 존재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과 긴급 복구는 이번 선택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자신을 낳아 준 생모도 모르고 30년을 살아 왔다는 건 불행을 넘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어머니의 실토만으로 이 엄청난 비극을 현실로 받아 들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입증이 없이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부모님들에게는 단순한 일상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정도에게는 엄연한 한 차례의 음모이고 범죄이고 능욕이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겨울이었다. 온 산과 골짜기가 백설을 뒤집어쓴 채 꽁꽁 얼어 붙어 있었다. 그 눈이 녹고 추위가 풀렸지만, 나무에는 잎이 무성하고 꽃도 피고 졌는데도 아버지는 이 산간초옥을 떠나지 않은 채 한사코 지키고 있다.
그냥 구경거리에 불과한 이 수수한 자연이 아버지에게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게 분명하다. 신선이나 도인이 아니고서는 이런 첩첩산중에 홀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온 계곡에 차고 넘치는 건 바위 틈으로 흘러내리는 냇물소리와 그윽한 숲의 향기뿐이다. 평온함과 심지어는 권태와 체념까지 불러 일으키는 아늑함은 정도처럼 인간세상의 다사다난함에 찌들고 더러워진 마음을 고요하고 투명하게 세척해 주는 여과기 같은 역할을 한다. 언제나 자연 속에 들어서는 순간 인간은 무거운 욕심을 버리고 고통까지 잠시 망각에 맡겨두게 된다. 그 대신 자연에게서 받게 되는 건 평화와 고요이다.
왕- 왕- 왕-
멀리 진돗개가 짓는 소리가 귀에 익다. 이놈은 낯선 불청객을 향해 비탈길을 쏜살같이 달려 내려오다가는 멈춰 서서 몇 마디 컹컹 짓다가는 다시 꽁무니를 빼면서 극성을 부린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놈의 재롱이나 극성이, 주인에게 충성하는 대견한 모습에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냥 어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내가 왜 아무 영문 없이 나 자신의 의지와 선택과는 무관하게 그냥 다른 사람의 의도와 실수와 선택과 기분의 결과물이 되어야만 하는지 억울하기만 했다.
왜 내 인생이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되어야 하는가?
초옥은 더구나 찌그러들어 인제는 무덤처럼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뜰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심어져 있고 지붕위에는 박 덩굴까지 무성하여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뜰 한 가운데에 깎다가 만 장승이 전번과 다를 바 없이 넘어져 있다. 실수를 하여 뒤로 벌렁 넘어져 뒤통수를 짓찧은 사람처럼 두 눈을 뚝 부릅뜨고 송곳 같은 이를 앙상하게 드러낸 채 흉상을 짓고 있다. 변한 것이 있다면 아버지의 손에서 깎여진 장승들의 모습에서 점점 웃음이 사라지고 흉악함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 뿐이었다. 아버지는 어쩌면 당신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진실한 모습을 장승에 담아내려고 한 것은 아닐까. 아버지의 지엄하고 중후한 외모와 내심의 모습은 전혀 다른 것은 아닐까.
집 주위의 돌탑들도 더 늘어났다. 늘어난 숫자만큼이나 탑신도 하나 하나 높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누구요? 밖에 온 사람이 누군가? 빌어먹을 개새끼 그만 좀 짖어라. 아가리를 확 찢어 놓기 전에. 병신 같은 놈!”
느닷없이 방안에서 늙은 노파의 거친 독설이 터져 나온다. 전번에 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던 것 같았는데. 하긴 그때는 집안에 들어가 보지도 않고 선 자리로 돌아갔으니까.
“네. 저 서울에서 온 사람인데요. 아버지를 만나 뵈려고……”
“서울서 왔다고. 그럼 혹시 저 윤 서방 아들놈인가?”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말소리만 들리는 걸 보아 할머닌 거동이 불편한 모양이다.
“네. 윤도율이 저의 아버님이십니다.”
응대가 없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대답 대신 갑자기 숨 가쁜 기침소리가 쿨룩쿨룩 들려왔다. 그 절주가 갈수록 급해지더니 나중에는 경운기 엔진이 작동하듯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연신 기침이 터져 나왔다. 금방 숨이 끊어질 것처럼 듣는 사람이 다 답답했다.
“장모님. 또 해수가 발작하셨어요.”
불현듯 뒤뜰에서 늙은 할아버지 한 분이 불쑥 나타났다. 돌탑을 쌓고 있었던 모양 노인의 손에는 흙이 묻은 장갑이 끼워져 있다.
서로의 눈길이 허공에서 마주치는 순간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그 자리에 굳어지고 말았다.
정도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아버지 윤도율이었다. 아니, 그 분은 아버지가 아니라 시골의 평범한 농부 할아버지였다. 언제나 윤기 나게 빗어 넘겼던 하이칼라, 구김살 하나 없이 반듯하고 정밀하고 준수하던 얼굴, 훤칠하고 미끈하던 체구, 매끈하던 손, 단정하면서도 위엄 있던 옷차림……그런 모습이야말로 정도의 부친이었다.
그러나 이 분의 모습은 어떤가? 머리카락은 바람에 흩날려 삼검불처럼 더부룩하고 먼지까지 올라 뿌옇다. 얼굴은 먼지와 햇볕에 그을어 흑인 같고 주름살마저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건너갔다. 구겨지고 때 오르고 헐렁한 양복 앞자락에는 흙과 풀즙이 희끄무레하게 묻어 있고 구두에도 진흙과 검불이 묻어 볼품이 없다.
“아버지!”
난생처음 정도는 이 칭호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아버지의 형상은 하나이고 영원히 변함없을 줄로만 알았었다. 그래서 그의 인상 속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아버지의 호칭을 부르는데 고뇌와 망설임이 동반되었으리라.
그밖에도 아버지라는 이 호칭에는 자식의 운명을 결정하는 절대권자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비로소 느끼게 되어 부르기가 쉽지 않았다.
“왔냐.”
한마디 뿐이다. 미소도 반김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다. 저기 앞뜰에 누워 있는 미완성 조각품인 장승의 모습을 너무나도 닮아 있어 정도는 놀랐다. 귀천이란 환경이 결정하는 것이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정의의 대변자, 신성함과 숭고함의 대명사였던 아버지가 천하고 구질구질한 농부가 되었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자식이 아니고는 누구라도 지금의 윤도율의 모습을 보고는 한때 화려한 부귀와 권세를 누렸던 법관이거나 변호사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둘 중 어느 것이 아버지의 진정한 모습일까? 청렴 결백하고 정직했던 아버지가, 아니면 시골 촌부로 변한 아버지가. 그도 아니면 그 옛날 이 시골에서 순진한 산골 처녀와 젊음의 혈기를 억제하지 못하고 화려한 정사를 벌였던 아버지가……
윤도율은 먼 길을 찾아온 아들은 마당에 세워 둔 채 부랴부랴 집안으로 들어갔다. 노파의 병 수발을 드는 일이 자식을 만나는 일보다 더 급한 것 같다. 허둥지둥 대는 아버지의 걸음걸이 또한 고역에 진이 빠져 하체의 맥이 풀린 시골 할아버지의 흐트러진 모습이다.
그런데 가만 있자. 방금 전 아버지가 노파를 뭐라고 불렀더라?
정도는 급기야 가물가물 사라지려는 기억의 회면을 재생시켰다.
그렇다. 장모, 분명 장모님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집안에 계시는 저 할머니는?!
자기를 낳아준 생모는 남편을 살해하고 20년 징역 언도를 받았다는 말을 이미 아버지한테 들어 알고 있다. 그리고 순희라는 처녀에게는 눈 먼 어머니가 한 분 계셨다고 한다.
이상하게 가슴이 떨렸다. 미지의 세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러나 인제야 비로소 진실한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는 흥분이 그를 전율시켰다. 두려우면서도 경건한 분위기였고 막연한 기대와 함께 절망감이 뒤엉긴다.
방안은 어두컴컴했다. 처마가 낮아서 햇빛이 잘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불길하고 고약한 냄새까지 물씬거린다. 파랑이 보살펴 주던 독거노인의 집에서 물씬거리던 냄새와 흡사하다.
아버지는 벽 쪽으로 돌아 누운 노파의 상체를 부축하고는 한 손으로는 노인의 입가에 담통을 들이대고 다른 한 손으로는 등을 가볍게 두드린다.
“가래를 뱉으세요. 목에 막혔잖습니까. 칵 떼서.”
표준말만 구사하던 아버지였다. 부득이한 경우에 법정에서 속어를 구술할 때에도 꼭 괄호라는 말을 첨부하고 표현하던 분이었다. 그러던 아버지의 입에서 시골 할아버지들의 입에서나 튕겨 나올법한 거친 표현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가래를 칵!』
시간이 지나며 점차 방안의 어둠에 익숙해진 시력이 할머니의 모습을 완벽하게 포착해냈다. 늙은 소나무껍질처럼 주름살이 주글주글한 면부에 두 눈은 우묵하게 구멍이 파였고 이가 빠진 입술은 닭의 무엇처럼 안으로 꼬깃꼬깃 오므라들어 갔다. 등은 완전히 ㄱ자로 굽은 곱사등이다. 은백색의 하얀 머리카락은 이상하리만치 숱이 많은데 얼굴을 가린 채 되는대로 헝클어져 있다.
저 분이 나의 외할머님이시란 말인가!
웬일인지 믿어지지 않는다. 전혀 생소한 얼굴이다. 꿈에서마저도 본적이 없다.
한동안 기침을 하며 목에 걸린 담을 토해 내고서야 할머니는 잠시 진정한다.
“이리 앉아라. 어디 보자. 우리 손자새끼. 어밀 꼭 닮았구나. 문둥이 년의 황소처럼 고집이 세던 눈두덩이며 한번 꼭 다물면 종시 열릴 줄을 모르던 주둥이며 어이구! 내 새끼……”
할머니는 어느새 두 볼을 눈물로 적시며 손으로 얼굴 부위들을 어루만지며 하나 하나 확인해 나갔다. 그런데 정도는 얼굴위로 송충이라도 기어 다니는 듯 할머니의 주글주글하고 갈고리처럼 구부러든 손가락이 징그러웠다.
“할머니. 전 아버지께 여쭐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정도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구실 한마디 떨어트리고는 그냥 밖으로 나와 버렸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영문도 없이 가슴이 찌르르 저려왔다.
정도는 뜰로 나와 아버지가 다듬다가 만 장승위에 걸터앉았다. 장승의 눈길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만 같아 괜히 기분이 언짢았다. 그놈의 낯짝을 깔아뭉개서라도 기염을 제압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한참 뒤에야 마당으로 나왔다.
“어머니가 보내시든?”
담배를 태우지 않던 아버지의 손이 익숙하게 권연 갑에서 담배 한 가치를 꺼낸다.
“아닙니다.”
고개를 숙이고 담뱃불을 붙이던 아버지는 아들의 대답이 생각 밖이라는 듯 고개를 쳐들고 정도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반듯하고 윤기 돌던 이마에 굵은 밭고랑이 파여 있고 골당마다엔 먼지까지 두툼하게 앉아 있다.
“그럼?”
“아버지께 한 가지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뭐냐?”
윤도율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담배연기만 뻐끔뻐끔 빨아들인다. 인젠 윤도율은 등까지 구부정하다. 품위 같은 건 집어 팽개친 지 오랜 것 같다. 눈길에도 위엄 대신 망연함만이 그득할 뿐이다.
“어머닌 정말 저를 낳아 주신 친어머니가 아니신가요?”
화들짝 놀라실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윤도율은 무표정한 얼굴로 담배만 뻐끔거린다. 그러더니 천천히 허리를 펴고 일어나서는 녹음이 흐드러진 집 뒤의 산 능선 숲에 시선을 던진다.
“하긴 너한테도 말해 줄 때가 되었다.”
“그럼 어머니 말씀이 정말이라는 겁니까?”
“이 아빌 원망해라. 할말이 없다. 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정직하고 결백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 왔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자는 바로 나더구나. 인간쓰레기였지. 징벌 받을 놈은 나였어. 난 세상 사람들을 기만한 죄인이란다. 법의 심판을 받을 놈은 나였는데……”
깊은 한숨소리에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짙은 담배연기가 아버지의 입과 코가 미어지도록 뿜겨 나왔다.
“그렇다고 가족을 버리시고 이곳에 와 계시면 어머니와 저희들은 뭐가 됩니까.”
노골적인 원망이었고 비난이었다. 아니, 정도의 원망은 아버지의 권위와 실수에 대한 성토였고 규탄이었고 도전이 없는 책임추궁이었다. 더 이상 아버지는 법관이 아니다. 이제 아버지의 권좌는 아들에게 양도된 것이다. 죄인에게는 피고석밖에 설 자리가 없지 않는가. 심판의 권리는 순희나 정도의 수중에로 넘어온 것이다. 찬탈이 아닌 포기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이미 현실이다.
“난 네 엄마에게 진 부채를 상환해야겠다. 아니, 나 자신의 양심에 진 빚을 갚아야겠다고. 비록 늦은 감은 없지 않지만……”
“이러시면 또 집에 계신 어머니한테 빚을 지는 겁니다. 어머니와의 결혼서약은 저버려도 되는 겁니까?”
정도는 무의식 중에 생모가 아닌, 인젠 양모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양진옥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지만 그 선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생모는 생모일 뿐 어머니는 아니었다. 어머니라는 말은 단순히 낳았다는 의미일 뿐일까? 모르긴 해도 그보다 훨씬 더 광의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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