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네 어머니 사이엔 약속은 있어도 부채관계는 없다. 신의를 지키는 것에도 순서가 있을 테고. 난 네 엄마와 먼저 약속을 어겼거든. 집에 계신 네 엄마에게는 그래도 얼마간의 신의는 지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네 생모에게는 아무것도 지켜준 것이 없지. 비록 참회가 늦긴 하지만 네 엄마가 상실한 행복을 조금이나마 보상해 주고 싶다. 난 그녀가 옥살이를 마칠 때까지 여기서 네 엄마를 기다리겠다. 네 외할머니를 모시며.”
사랑의 약속은 한 사람과만 하는 것이라는 걸 아버지는 잊으신 것이다. 같은 서약을 두 사람에게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양심을 저버리는 행위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과거의 허물을 교정하기 위하여 현실을 버린다는 건 다른 하나의 실수가 추가될 뿐이다.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법조항처럼 순서를 정하고 그 위계를 명분으로 삼아 해결하려고 하는데 습관이 되어 있다. 그러나 세상은 법조문처럼 그렇게 질서정연하게 순서나 위계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어쩌면 가장 정확한 것은 가장 정확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가장 완벽한 것은 가장 불완전할 것일 수도 있다. 완벽함은 폐쇄적이고 여백이 없고 그래서 한계적인 것이기도 하다. 완벽함은 자기 정체성의 집착 때문에 융통성을 상실하고 타자와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아버지는 접견이 종료되었다는 걸 암시라도 하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며 손에 장갑을 낀다. 돌탑 쌓으러 가실 모양이다. 저 돌탑들에는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을 것이고 그 소망은 아버지보다 먼저 돌탑을 쌓았던 한 여인의 소망의 연장일 것이다.
“너한테 한 가지 보여 줄 것이 있다.”
아버지는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뒤 색이 바래인 누런 흑백사진 한 장을 손에 들고 나왔다. 받아 보니 사진 속에는 굵은 머리가랑이를 땋아 늘인 시골처녀가 수줍은 표정을 지은 채 엉거주춤 서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진 속 여인의 모습이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낯익은 얼굴이라는 사실이었다.
누구더라?
“이 분이 네 엄마다. 아버지와 네 엄마의 불륜 사실과 우리 사이에 자식까지 있다는 결정적 정보를 입수하고 그 추문을 악용하여 위협공갈의 수단으로 거액을 사기 치려고 시도하던 남편을 살인하고 옥살이를 하는 네 엄마다. 네 엄마는 아버지와 너의 명예를 지켜 주기 위해 끝까지 자신의 모든 걸 희생했단다.”
정도는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은 그 분의 목소리가 울먹이더니 드디어 흐르는 눈물을 감추느라 얼굴을 외면한다. 오로지 정의와 정당성만 있고 눈물이나 사사로운 감정 같은 데는 추호도 동요되지 않던 아버지가 아니던가.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아버진 정의나 정당성이 법이 아닌 눈물과 감정 같은 데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걸까. 법만 정확한 것이 아니고 때로는 눈물이나 감정도 진실하다는 걸 인정한 것일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버지의 가치관과 인생관은 변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삶의 방식을 자신의 인생 신조로 삼았던 정도의 가치관과 인생관도 그에 따라 변해야 하는가?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눈길을 사진 가까이에 가져다 대고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어떤 여인인가를 똑똑히 기억 속에 담아두고 싶었다. 어머니 양진옥의 세련미나 교양미, 귀족적인 귀태라고는 확대경을 들고도 찾아볼 수 없는 수수한 시골 농부의 딸이다. 촌스럽고 어수룩하고 순박할 따름이다. 문명과는 인연이 없는, 먼 옛날 미개했던 시절의 조선시대 여인 같다. 아버지가, 당시만 해도 보기 드문 명문대 법대 대학원생이던 아버지가 이 여자의 어디에 혹해서 성관계까지 가졌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외모는 천박했다. 그냥 음욕의 충동에 떠밀린 감성적 결단이었다면 아버지의 인격이나 지적 판단력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지적판단력의 영향은 정욕의 자제에까지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버지를 유혹할만 했던 단 한 점의 매력이라도 찾으려고 이 잡 듯이 사진 속 여인의 모습을 깐깐히 살피던 정도는 전혀 예상과는 어긋나는 특징들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자그마하나 두툼한 입술, 동그스름하나 당돌해 보이는 이마, 순진한 눈매……
사진 속의 여인은 틀림없이 윤정이 계룡산으로 떠나기 전에 집에 두었던 가사도우미 아줌마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이게 무슨 기막힌 우연이고 운명의 짓궂은 장난이란 말인가!
다시 보아도 틀림없다.
“왜, 아는 사람이냐?”
아버지는 아들의 손에서 사진을 회수해 가며 정도의 놀란 표정을 흘깃 일별한다.
“아니요. 아닙니다.”
“그만 집으로 내려가거라.”
밥 한 그릇 먹고 가라는 말이 없다. 그냥 아들을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당신의 처지가 거북하고 민망한 모양이다. 망가지고 무너지고 실패한 인생을 아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의 존재가 아버지에게는 곧 고문이고 치욕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라면, 천륜이라면 하늘의 계시라도 있었을 것이고 하다못해 신체감응 같은 것이라도 있었으련만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으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와서야 가사도우미 아줌마가 자신과 딸애 미미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늘이 맺어준 모자간의 인연인데 자식이 부모한테 죄 짓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도는 잠시 선 자리에서 망설였다. 딸애 미미가 불치병에 걸린 사실과 아내의 느닷없는 출가소식을 아버지에게 말씀드려야 할지 말지가 선 듯 결단이 서지 않아서였다. 아버지는 지금 당신의 고뇌와 심적 고통만도 이겨내기 힘드실 것이다.
“어서 가.”
아버지는 한마디 남기고는 몸을 돌이켰다. 그것은 아마 작별인사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지금 내일의 삶의 설계보다는 과거의 삶을 정리하는데 더 열중하고 있다.
“아버지.”
정도는 거의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불렀다. 의지에서가 아니라 본능에서였다.
고개를 돌려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윤도율의 얼굴에는 벌써 동전만한 검정버섯이 돋아 있고 이끼가 낀 것처럼 초췌하기 그지없다. 사람은 몸이 늙어 늙는 게 아니라 마음이 늙어 몸이 늙는 것이다.
“미미가……”
정도는 망설이던 말을 끝내 입 밖에 떨어트렸다.
윤도율은 어서 말해 보라는 듯 눈만 슴벅거린다.
“미미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백혈병이라는 말에서는 언제나 죽음의 냄새가 풍겨 입에 담기가 꺼려진다.
“어디가 아픈데. 폐렴이더냐?”
손녀를 무척이나 예뻐하던 아버지였던지라 유다른 관심을 보인다.
“백혈병이랍니다.”
“뭐야! 무슨 병이라고?”
장갑을 끼다 말고 돌아선다. 유난히 기다란 눈썹이 구렁이처럼 꿈틀거린다.
“지금 항암제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아니. 왜? 우리 미미가 왜 백혈병에 걸렸어!”
“폐렴이 심해 병원에 갔더니 그렇게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래. 병원에서 뭐라던? 치료가 가능하대?”
“치료를 해 봐야 알겠답니다.”
“어느 병원에 입원했어?”
“□□□병원에요.”
“거긴 안돼. 이름도 없는 자그마한 병원이잖아. □□대부속병원에 가 봐. 거기 백혈병에 용한 김 교수가 있잖아. 아버지 이름을 대면 잘 봐줄거다. 내가 내려가 보았자 늙은 게 수발도 들지 못하고. 그래 애는 누가 돌보냐?”
“제가요.”
“사진관일은 누구한테 맡기고?”
아버지의 입에서 오랜만에 삶의 냄새가 풍기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경이한테 맡겼지요.”
“걔가 뭘 안다고. 미미엄마는 뭘 하고?”
“……”
정도는 고개를 떨어트리고 입을 다물었다. 이젠 아내 말만 나오면 저도 모르게 원망부터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아프냐?”
“아니요.”
“말해 봐. 우물쭈물하지 말고.”
“절에 들어간 지 오래됩니다.”
“절에! 거긴 뭘 하러?”
“출가한 거죠.”
“출가라고? 난 무슨 소리인지 듣고도 모르겠구나. 미미엄마가 왜 절에 들어 가냐? 처자 버리고 절엘 왜 가냐고?”
아버지는 옛날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듯 위엄을 부리며 언성을 버럭 높였다.
정도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긴장해졌다. 이제야 상명하복의 부자간의 위계질서가 회복되는 듯싶었다. 사실 정도는 이런 질서에 더 익숙해 있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뭐야. 자기 아내가 절에 들어갔는데 남편이 돼갖고 그 이유를 모른다고! 너 언제부터 이렇게 바보였냐?”
“……”
“갔으면 데려와야 할게 아니냐.”
“설득해 데려오려고 몇 번이나 절에 찾아갔지만……”
“미미가 아프다는데도 오지 않더냐?”
“네.”
“네라니. 그런 경우가 어디 있어. 자식이 아프다는데도 내려오지 않다니. 너들 사이에 무슨 문제가 없다면 그럴 리가 없잖니.”
“제가 알기로는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아무 문제도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짐을 싸들고 절에 들어갔단 말이냐.”
“집사람의 외조부님께서 타계하신 뒤로 충격이 컸던지 좀 이상한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그게 출가원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멍청한 자식아! 제 마누라 일을 남편이 모르면 누가 아느냐. 데려오고 못 데려오고도 다 네가 하기에 달린 거지. 아버지가 나설 일도 아니고. 스스로 알아서 처리해라.”
아버지는 잠간 동안 펼쳤던 삼엄한 위엄을 풀더니 다시 시골 할아버지로 돌아갔다. 터벅터벅 걸어서 뜰을 지나 뒤울안으로 들어가더니 돌탑에 돌을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워낙 그 돌들은 탑 위에 쌓기 전까지는 냇가나 산중턱에 아무렇게나 뒹굴던 돌덩이들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손을 거쳐 탑 위에 얹어지는 순간 신성한 의미를 획득하며 신비스러운 존재로 탈바꿈해갔다. 결국 의미라는 건 어떤 곳에 쓰이는 가에 따라 생겨나는 것인 듯싶다. 적재적소가 아닌 곳에서 도리어 의미는 탄생하는 것이다. 그때는 이미 의미의 한계를 초월하여 한 단계 높은 상징이 되는 것이고.
정도는 발길을 돌이켜 산을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금방 전까지 말쑥하게 개였던 하늘에 시커먼 비구름이 밀려들더니 당금이라도 소낙비를 퍼부을 듯 음산한 바람이 계곡으로 흘러들며 숲을 와스스 설레게 한다. 소낙비를 대비해 은신할 자리를 잡느라 새들이 우짖는 소리가 부산스러웠다.
“이거라도 갖고 가라.”
언제 나타났는지 아버지가 저만큼 뒤에서 밀짚모자를 손에 들고 흔들어 보인다.
정도는 저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 났다. 밀짚모자 하나로 소낙비야 그을 수 있으랴만 자식을 걱정하는 어버이의 사랑이 뜨겁게 가슴을 달궜다.
“괜찮습니다.”
“쓰고 가라면 가.”
다시 언덕으로 올라가 밀짚모자를 받아 썼다.
벌써 비바람에 실려 온 굵은 빗방울들이 숲을 때리며 후드득-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밀짚모자를 주실 거면 차라리 집에서 비를 그어가라고 만류하실거지.
하지만 그것은 어버이에 대한 자식의 응석일 따름이다. 어버이는 언제나 자식에게 당당하고 떳떳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한다. 될수록 무너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아버지와 갈라진지 10분도 안되어 소낙비가 억수로 퍼붓기 시작했다. 삽시에 온몸이 물자루가 되었지만 정도는 나무아래나 바위 밑 같은데 들어가 비를 긋지 않고 그냥 빗속을 헤치고 길을 걸었다.
소낙비가 아니라 광풍이 휘몰아치고 폭우가 퍼부었으면 싶었다.
아니, 하늘이라도 쿵-하고 통째로 무너져 내렸으면 싶다.
소낙비야. 제발 세차게 퍼부어라. 그래서 지상의 모든 것을 말끔히 밀어가 버려라. 모든 균형과 질서를 파괴해 버려라!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정신병환자처럼 마구 씨부렁거렸다. 구둣발로 질퍽거리는 땅바닥을 철벅철벅 구르기도 하고 휘잉- 휘잉- 손 삿대질로 허공을 휘젓기도 했다.
아아- 악! 아아- 악!
그래 나는 사생아다.
아내는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출가했다.
미미는 백혈병에 걸렸다.
불행이여. 달려들려면 죄다 달려들어라. 난 너희들이 두렵지 않다.
아아- 악! 아아- 악!
정도는 피가 터지도록 끝없이 펼쳐진 산줄기들과 계곡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고함소리는 메아리조차 되지 못하고 금방 소낙비에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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