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피는 마르지 않는다

 1

박병술은 수도사단 수색대를 따라 북진하다가 홍천에서 북상하는 6사단을 만나 원대 복귀했다. 전우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한 편으로는 감개무량하고 한 편으로는 두려운 감도 없지 않았다.
민병기 소대장님은 건재하실까?
나의 거짓말을 믿어 주실지?
긴장감으로 속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러나 정작 그가 만난 소대의 장병들은 전부 생소한 얼굴들 뿐이어서 도리어 실망하기까지 했다. 사단은 미군부대의 105mm, 180mm곡사포며 3.5mm대전차로켓포며 지프, 군용트럭의 원조로 무장을 일신했으나 병력은 거의 보충병으로 채워져 신병들 뿐이었다.
아쉬움을 금하지 못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 친다.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던 박병술은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그의 앞에는 민병기 소대장이 서 있었던 것이다. 아니, 중위계급장을 단 중대장이었다. 원수라도 만난 듯 입술을 악물고 박병술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박병술은 그만 공포에 질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혹시 소대장님께서 나의 비굴한 배신 행위에 대해 무슨 정보라도 장악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럴 리가 없다. 민병기는 사람이 돼 먹기를 그렇게 돼 먹은 사내다. 좋다는 게, 대견하다는 게 고작 주먹으로 어깨를 내지르거나 독설을 퍼붓는다. 소대장님은 그렇게 밖에 호의를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소대장님……”
“이 똥 처먹은 개새끼 같은 놈아! 어디 가서 뒈져 까마귀밥이 됐나 했더니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었구나!”
박병술이 응대할 틈도 주지 않고 연신 주먹으로 가슴을 쥐어 박는다. 갑작스런 가격에 숨이 막혔으나 민병기는 주먹질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 뒈지지 말아야지. 뒈진 놈은 내 부하가 아니야. 봐. 뒈질 놈들은 다 뒈지고 남은 놈은 너랑 나 뿐이야. 사람은 똥 무지 위에 뒹굴어도 살아야 해. 이 자식! 등신, 바보 같은 놈!”
박병술은 민병기의 주먹질에 몸을 내맡긴 채 피하지 않았다.
소대장님. 차라리 뒈져 까마귀밥이 되는 게 나을 번 했습니다. 뵐 면목이 없습니다.
속으로만 울먹거렸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소대장의 환희에 들뜬 모습이 그에게는 도리어 혹독한 고문처럼 느껴졌다. 불로 지지고 사지를 찢는 것보다 더 괴로웠다.
살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이런 꼬락서니로 소대장님을 뵙자니……죽고 싶을 뿐입니다.
박병술은 속으로만 부르짖을 뿐 한마디도 입 밖에 토해낼 수 없어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놈아. 그래 여태까지 어디 엎드려 있었어? 두더지새끼처럼 땅 속에라도 숨어 있었던 거야. 도처에 빨갱이 새끼들이 욱실거렸을 텐데. 짜식!”
“그때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다리를 상했습니다.”
“난 그날 네놈이 그 벼랑에서 떨어져 뒈진 줄을 알았잖아.”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산 속에서 한 열흘 가까이 방황하다가 어느 산사의 스님의 구원을 받고 살아났지요. 절에서 화상 행세를 하며 숨어 지냈습니다.”
“중놈이라. 짜식. 못하는 지랄이 없네. 생긴 건 곰 새끼 같은데. 아무튼 살아있으니 됐다. 장하다 이놈아!”
민병기 소대장님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미워졌다. 그것은 소대장님을 우롱하고 능멸하는 무례한 짓거리와 다를 바 없다. 양심의 가책이라는 극심한 통증에 몸부림쳤다. 소대장님을 떳떳하게 대하지 못할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인민군을 따라 후퇴라도 했을 걸. 김성철 대대장동지와 생사를 같이 했던 걸. 그도 아니면 자살이라도 했을 걸.
후회가 막심했다. 이제는 살아도 죽은 목숨이라는 말의 뜻을 알 것 같다. 목숨만 붙어 있다고 해서 산 것이 아니다. 나는 벌써 큰스님 앞에서 죽었고 김성철 대대장 앞에서 죽었고 다시 한번 민병기 소대장님 앞에서 죽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역설에도 불구하고 박병술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 아닌가.
소대장님 아니, 중대장님. 절 죽여 주십시오. 군법으로 즉결처분을 하여 주십시오. 중대장님의 믿음을 저버린, 군인의 양심을 팔아 먹은, 신념을 배반한 변절자를 죽여 달라고요.
무릎을 꿇고 모든 진실을 사실대로 털어 놓고 애걸복걸하고 싶었다. 총 한 방에 죽는 고통이 지금 감내해야 하는 고통보다 덜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세상에서 죽음의 고통이 가장 큰 고통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인제는 죽음의 고통보다 더 지독한 고통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머릿속을 구름처럼 스쳐가는 파편들일 뿐 박병술은 겉으로는 천연덕스럽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고 거짓말을 술술 풀어내고 있는 자신의 뻔뻔스러운 행위를 제지할 수 없었다.
“네놈이 돌아 왔으니 우리 중대는 호랑이 한 마리를 얻은 셈이야. 그러잖아도 전우들은 다 뒈지고 총 한방 쏠 줄 모르는 신병들 뿐이어서 싸움을 어떻게 하나 걱정이었는데 잘 됐어. 우리 한번 손잡고 여태껏 당하기만 한 국군의 수모를, 창피와 굴욕을 만회하고 속 시원히 설욕전을 벌여 보자. 빨갱이 놈들을 소멸하고 멸공통일을 이룩하자고. 이놈아!”
또다시 떡메 같이 육중한 주먹이 가슴팍에 날아든다. 체구가 거창한 박병술이도 그 충격을 받아내지 못하고 비틀거릴 정도다.
호랑이라고요.
전 똥개입니다. 똥만 주면 주인도 가리지 않는 토종 똥개라고요!
민병기 중대장은 몇 안 남은 노 전우들을 중대부에 불러 들이더니 미국산 위스키까지 꺼내 놓고 귀대파티를 베풀었다. 미군통조림을 터트려 안주로 삼았다.
박병술은 전우들의 축배를 받으며 말을 잃고 감격의 눈물만 줄줄 흘렸다. 모두들 이 좋은 날에 웬 눈물이냐며 웃으라고 권유했지만 좀처럼 웃음이 나가지 않았다. 후회와 참회와 가책 뿐이었다.
난 전우들의 환영을 받을 자격이 없어. 차례질 건 마땅히 총 두 방뿐이야. 김성철 대대장의 총 한 방과 민병기 소대장님의 총 한 방. 그러나 나는 전우들을 기만한 대가로 축배의 잔을 받고 있다.
사단은 10월 6일 모진교를 도하하여 드디어 3.8선을 돌파했다. 적군의 저항 같은 건 없었다. 사단은 질풍 같은 속도로 국군의 선두에서 북진을 다그쳤다.
그처럼 강대하던, 천하무적의 기세로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인민군이 이처럼 허무하게 모래성처럼 붕괴되다니.
국군의 사기는 승리감에 도취된 데다 6사단은 더구나 선봉부대라는 자부심 때문에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사기충천한 군대의 앞길을 가로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사단의 군기는 10월의 가을바람에 화천, 김화, 금성, 회양, 신고산, 원산, 덕원, 양덕, 성천, 순천의 하늘에 휘날렸다. 행군 도중 가끔 인민군패잔병들과 산발적 교전이 있긴 했지만 소규모 전투 뿐이었고 결과는 언제나 국군의 승리로 끝났다. 포로들은 즉시로 후방 수용소로 압송되었다.
박병술의 중대가 금성 부근에 당도했을 때의 일이다.
산골짜기에 외딴 오막살이 한 채가 폭격에 폐허가 된 채 버려져 있었다. 빈 집이지만 혹시 쓸만한 물건이 없나 싶어 소피 보는 척하고 안으로 들어갔던 국군 병사 하나가 기겁한 소리를 지르며 혼비백산하여 밖으로 달려 나왔다.
“적이다! 북괴군……”
고함을 질렀으나 불과 문 밖으로 세 걸음도 못 나와서 마치 춤을 추듯 팔을 허공에 내젖더니 무너진 벽체위에 꼬꾸라진다.
따따땅땅-따따땅땅-
기관단총 연발사격소리가 갑자기 고요하던 골짜기의 정적을 깨뜨리며 귀청을 찢기 시작했다.
“엎드려!”
민병기 중대장의 명령이 벼락같이 떨어졌다.
박병술은 명령이 하달되기도 전에 이미 길가의 나뭇더미 뒤에 몸을 은폐했다. 그것은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사격하라! 개새끼들을 쏴 죽여!”
박병술은 민병기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M1소총을 들고 폐허를 향해 사격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국군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었다. 그런데 오늘은 자신이 속해 있던 인민군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저 폐허 안에 퇴각하던 김성철 대대장 일행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더러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떼게 했다.
대대장동지를 향해 총을 발사할 수는 없어! 안돼. 안 되고말고.
잠시 뒤 폐허 안의 대응사격소리가 뚝 그쳤다. 탄환이 소진된 게 틀림없다.
“사격 중지. 안에 처박혀 있는 빨갱이 놈들아! 투항하라. 투항하지 않으면 죽인다. 개새끼들 반항하면 모두 돼지새끼들처럼 쏴 죽여 버릴 테다!”
조금 지나자 흰 내의를 건 총 끝이 허물어진 벽체 밖으로 비주룩이 내밀렸다.
“총부터 밖으로 내던져!”
총이 하나, 둘 폐허 밖으로 던져졌다. 모두 네 자루다. 그중 권총 한 자루는 맨 나중에야 던져졌다. 그들 중 장교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모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밖으로 나와. 한 놈씩. 이마빡에 구멍이 뻥 뚫리기 전에 허튼수작 하지 말고.”
손을 치켜든 인민군전사들이 폐허 안에서 하나, 둘 걸어 나왔다. 모두들 남루한 군복차림에 수척한 얼굴들인데 수염까지 텁수룩하여 산적 같다.
“왜 한 놈은 안 나와? 개새끼! 다 알고 있으니 어서 나와.”
세 명의 병사만 나왔을 뿐 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박병술은 저도 모르게 긴장해졌다. 그 장교가 꼭 김성철 대대장일리는 없겠지만 웬일인지 가슴이 두근거리며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장관님. 우리 중대장동지가 저 안에서 죽으면 죽었지 투항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병사 한 명이 폐허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제발 저희들은 살려주십쇼. 싸우고 싶었던 게 아니라 저 군관동무가 싸우지 않으면 죽인다고 위협하기에 할 수 없이 총을 쏜 겁니다. 저 사람은 팔로군출신이고 노동당원입이다.”
“나오지 않으면 죽인다. 어서 나와. 빨갱이 놈아!”
민병기 중대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 안에서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중대원들이 일제히 포위망을 좁히며 폐허로 접근해 들어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근처까지 다가가자 갑자기 폐허 안에서 거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놈들아! 네놈들한테 내가 굴복할 줄 아냐. 죽으면 죽었지!”
타다 남은 창문틀을 손에 들고 마구 휘두르며 『군관』 한명이 폐허 속에서 무섭게 달려 나왔다. 그러나 한쪽 팔은 중상을 당한 듯 붕대로 목에 걸치고 있어 그의 반항은 금방 국군장병들에게 제압되었다.
“이 개새끼가 정말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그래. 죽으려고 환장을 했다. 네놈들을 죽이지 못할 바엔 차라리 날 죽여 달라.”
“항복하면 살려 준다는 제네바협정도 모르냐? 장교란 놈이.”
박병술은 감히 장교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행히도 장교는 김성철 대대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그의 강인한 군인정신에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좋아. 네놈이 죽는 게 소원이라면 죽여 주마. 이놈을 끌어내다 죽여 줘.”
중대장이 움켜잡았던 장교의 멱살을 놓고 뒤를 흘끔 돌아본다. 그의 눈길이 우연하게 멀리 서 있는 박병술에게로 날아들었다.
“포로를 죽이는 건……”
박병술은 저도 모르게 말마디가 부서졌다.
정작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인민군지휘관은 몸부림을 멈추고 제 발로 걸어서 마당으로 나간다. 고개를 번쩍 쳐들고 하늘을 쳐다보는 그의 모습은 조금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고 비장하기까지 했다. 가을바람에 그의 먼지 오른 텁수룩한 긴 머리카락이 펄럭펄럭 날렸다.
“저 새끼를 죽여 주는게 저 자식을 군인으로 우대해 주는거야. 치욕스럽게 포로수용소에 보내 곤욕을 치르게 하는 것보다 떳떳하게 죽게 하는 게 저놈 인격을 존중해 주는거라고. 비록 적군이긴 하지만 난 저 자식이 마음에 들어. 군인다운 군인이라고. 개자식! 빨갱이들 중에 저런 놈들이 다 있었군 그래. 그리고 이 개자식들은, 개보다 못한 비굴한 자식들은 구둣발로 묵사발이 되도록 짓밟아 줘. 그런 뒤에 포로수용소에 후송해. 이놈들은 군인의 망신을 시키는 개 같은 놈들이니까. 똥개, 돼지처럼 짓밟아대고 두들겨 패도 돼!”
땅!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인민군장교는 가슴을 움켜쥐고 한참 비틀거리더니 땅바닥에 쓰러졌다. 폐허에서 먼지가 풀썩 일어났다. 삽시에 그의 가슴에서 솟구쳐 오르는 피가 군복저고리를 붉게 물들였다.
인민군중대장의 시신을 민병기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산기슭에 눕히고 폐허의 흙덩이들을 날라다가 묻어주기까지 했다. 민병기 중대장은 새로 생긴 자그마한 봉분 앞에 군모를 벗더니 정중하게 고개까지 숙여 묵도를 했다.
“같은 군인의 이름으로 추모한다. 당신은 군인자격이 있는 놈이야. 나랑 싸울 자격이 있는 상대였어.”
골짜기에는 한동안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박병술은 누구보다 깊숙이 고개를 숙여 묵도했다. 어쩌면 자신은 고인의 무덤 앞에 설 자격조차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 자체가 고인의 신성한 명예를 더럽히는 모독 행위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에 괴로웠다.
지금부터라도, 비록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무덤 속의 군인처럼, 김성철 대대장처럼, 민병기 중대장님처럼 남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게 가능할까?
삶이 중요한거지 방법이 중요한걸까?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삶의 방법이 정당하지 않다면 어떤 방법이 정당한가.
그리고 정당함이란 무슨 의미인가.
명분이란 또 어떤 뜻이고?
인민군이 이처럼 물먹은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파죽지세처럼 남쪽으로 밀고 내려가던 기세는 어디가고 저마다 도망가기에만 급급하다. 산발적이고 소규모의 저항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정예부대의 군사작전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먼 수준의 반발이었을 뿐이다.

[저작권자(c)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단, 공익 목적 출처 명시시 복제 허용.]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