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장혜영


그러나 박병술은 사단의 추격전에 참가하지 못하고 부상을 당해 후방병원으로 호송되어야 만 했다. 적이 던진 수류탄파편에 왼쪽 대퇴골이 부서졌던 것이다. 다리는 가죽만 남겨 둔 채 간신히 몸뚱이에 붙어 있었다. 위생병이 응급처치를 하여 붕대로 허벅지 위를 조여 지혈을 시켰지만 피는 여전히 흘렀다. 들것에 실릴 때도 몸 따로 다리 따로 들려 올려지는 걸 보고 박병술은 정신이 아찔해남을 느꼈다. 전혀 자신의 다리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지혈로 인한 마비 때문에 더구나 감각을 잃어버렸다.
“난 안 가. 병원으로 안 갈거야. 차라리 여기서 싸우다가 죽을테다!”
몸부림치고 울부짖었지만 막무가내였다. 모두들 눈물을 흘리며 그를 들것에 담아 고지 아래로 내려갔다.
병신이 되어서, 절름발이가 되어서 살아서 뭐 해. 절름발이가 될 바엔 차라리 죽어버리고 말지. 왜 전우들은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까.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을 때까지 박병술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전우들의 강제후송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그가 의식을 회복했을 때는 이미 병원의 야전병상에 누워 있었다. 몸에는 핏자국이 얼룩덜룩한 낡은 이불 한 채가 덮여 있었고 손등에는 링거주사바늘이 꽂혀 있었다. 머리위에 거꾸로 매달린 링거병에서는 투명한 액체가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진다.
박병술은 상한다리가 있는 하체 쪽을 보기가 무서워졌다. 그쪽에 눈길을 주었다가 풀썩 꺼진 이불을 발견했을 때 받게 될 충격이 너무나 두려웠던 것이다.
벌써 수술이 끝난 것일까?
설마 내 다리가 절단된 건 아니겠지!
불안하고 초조했다.
먼저 오른다리의 근육을 살그머니 움직여 보았다. 힘줄을 통해 다리의 감각이 발끝까지 일사불란하게 전달되었다.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똑같은 동작을 왼쪽다리에 시험해 보았다. 감각은 근육과 힘줄을 통해 허벅지의 3분의 1정도 되는 부위에까지만 내려가다가 갑자기 신경시스템이 절단된다. 여태껏 체험해 보지 못했던 육신의 정체성이 깨어진 부조화한 느낌이다.
그럼 내 다리가 정말?!
거대한 공포가 폭풍우를 머금은 비구름처럼, 시커멓게 가슴속으로 밀려 들었다. 마음의 하늘을 버티고 있던 기둥이 부러지고 천장이 꽈르릉-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은 절망이 덮쳐들었다.
박병술은 허둥지둥 두 손을 들어 왼편 다리를 더듬어 보았다.
풀썩 꺼져 있다. 속이 골아빠진 오이처럼 이불 안이 텅텅 비어 있다.
“야. 이 새끼들아! 쌍년들아! 다 어디 갔어? 이리 와 봐.”
그는 갑자기 선불 맞은 호랑이처럼 으르렁-으르렁- 포효하기 시작했다. 손등에 꽂힌 링거주사바늘도 뽑아버렸고 침대위에 걸린 링거병도 와락 잡아당겨 방바닥에 내던져 박살냈다.
간호사는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여유 있는 걸음걸이로 병실로 들어왔다.
“내 다리 어디 있어. 당장 내놔.”
“소대장님.”
간호사는 별의별 환자를 다 대해 본 듯 그의 갑작스러운 난동에도 당황해 하지 않고 차분한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다독여 침상에 눕히려고 시도했다.
“이 손 치워. 내 다리 어쨌냐고 묻고 있잖아. 내 다리 내놓으라니까.”
“진정하시고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듣기 싫어. 내 다리 내놓으란 말이야. 내 다리 내놓지 않으면 이 안의 연놈들을 죄다 총으로 죽여 버릴 거야!”
광란이 계속되자 급기야는 군의가 나타났다. 군의의 계급장이 중령인지라 박병술은 어쩔 수 없이 군례를 붙일 수밖에 없었다.
“군인의 천직은 명령에 복종하는거라는 걸 장교인 당신도 잘 알거다. 절단하지 않으면 살이 썩어 들어가 생명에까지 위험이 있었다는 걸 꼭 설명해 주어야 알겠는가. 살아난 것 만으로도 하느님께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군의의 태도가 어찌나 냉담한지 피 한 방울, 인정 한 토막 없어 보인다.
살아 남았다는 것 만으로도 하느님께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그래 난 다리 하나를 잃어버렸어도 분명히 살아 있다. 전사한 중대장님에 비하면 난 행운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름발이가, 병신이 행운아라니!
운명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 앞에서 저항은 무의미한 것일까.
상처가 완쾌되자 박병술은 제대하여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번 전쟁에서 그에게 차례진 것이라고는 지팡이 한 쌍뿐이었다.
물론 전쟁에서 세운 공훈으로 을지무공훈장과 충무무공훈장에 이어 화랑무공훈장까지 수여받았다. 그것이 전쟁에서 얻은 전부였다.
그러나 솔직히 화랑무공훈장을 받아들었을 때 박병술은 저도 모르게 손이 떨렸었다. 얼굴마저 붉어졌었다.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자신에게 차례질 대가는 당연히 전우를 기만하고 조국을 배반한 죄과에 대한 징벌이어야 할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그 죄를 사면하고 정당화시키는 명분이 될 수라도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생존을 위한 어떠한 선택과 수단도 정당화 될 것이다.
그렇다고 생존을 포기하는 것 만이 정당성과 명분의 근거로 된다면 생존은 누가 지켜주며 본능과 욕망의 생존 연장의 가능성은 무엇에 의해 보장 될 것인가.
그래도 박병술은 훈장수여를 거절하지 못했으며 국민 앞에 진실을 토로하지 못했다. 진실을 자백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농부의 딸 복금이와의 약속도 그녀와의 재회가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까 두려워 지키지 않았다. 농가 뒤 밤나무 숲 속에서 미자와 쌓았던 만리장성, 언제까지라도 기다릴게요. 꼭 살아서 돌아오세요. 하고 신신당부하며 동구 밖까지 따라 나와 옷고름으로 눈물을 훔치던 모습……그녀에게는 미안했지만 사경에서 목숨을 구해준 농부에게도 죄송했지만 양심의 가책보다는 목숨을 보존하는 게 그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다리가 부러진 남루한 생명일망정.
양심과 생존욕구와의 사이에서 박병술은 지독한 정신적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그의 하루하루는 괴로움과 불안으로 충만된 불행의 나날들이었다. 마을사람들이 그를 영웅으로 떠받들수록 박병술에게 가해지는 형벌의 중압은 그만큼 더 가혹한 것이었다. 괴로운 마음을 그 누구에게 하소연할 사람도 없었다. 때로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술을 과음하고는 술김을 빌어서라도 진실을 탁 털어놓고 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로 인해 감수해야 할 사회적 비난이나 박대가 지금의 고통보다 더할 것 같았다. 그러나 양심은 결국 생존욕구에 의해 갈등의 저편으로 밀려나곤 했다. 다행이도 복금이나 그녀의 부모인 농부 내외는 그의 앞에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전쟁 중에 온 가족이 폭사당했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훨씬 뒤에야 알게 된 일이었다. 인민군과 북한정권에 동조했던 사람들은 모두 처형되거나 병태처럼 월북했다는 사실도 뒷날에야 알았다.
박병술은 민병기 중대장의 유언대로 유물을 전하려고 그의 여동생 미자를 찾아 충청도로 내려갔다.
미자는 자그마한 시골동네에서 늙은 모친과 둘이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오빠의 전사소식은 이미 부대통지를 받고 알고 있었기에 그의 부담이 그만큼 줄어들었다. 시골처녀인 미자는 박병술이보다 두 살 연상이었다. 예쁘지도 않았고 복스럽지도 않았고 그냥 마음씨 착하고 무던해 보였다. 부담스럽지 않고 누나처럼 친근감이 들었다.
“그러잖아도 내 아들편지에 자네 자랑이 많았네. 여동생신랑감을 점찍어 놓았으니 다른 사람한테 시집 보내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네.”
여인은 죽은 아들이 살아서 귀가하기라도 한 듯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박병술은 미자어머니의 각별한 친절을 대하고서야 민병기 중대장이 그더러 뒈지지 말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어머니 전 사실……”
무작정, 어떤 사람인지 알아도 보기 전에 사위대접을 하는 여인의 환대에 박병술은 민망해졌다. 폭격으로 부모마저 잃은 고아, 다리마저 없는 절름발이 병신, 가진 거라고는 허름한 군복 한 벌 밖에 없는 백수거지를 사위로 삼겠다니 당황하고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
미자는 인물은 수수해도 시골에서 농사 짓고 살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아가씨이다. 건강하고 젊고 마음씨 착하고 일 잘하고……그만한 조건이면 얼마든지 박병술이보다 훌륭한 신랑을 얻어 시집갈 수 있을 것이다. 박병술이라는 존재는 그녀에게 짐이 되고 불행이 될 뿐 어떤 기쁨도 가져다 줄 수 없다. 그런 혼사는 오로지 미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불공평한 운명이 될 뿐이다.
두 사람이 기운다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중대장님과의 인연을 밑천으로 다른 사람에게 불행을 강요한다는 건 양심에 거리끼는 짓이 아닐 수 없다.
“아무 말도 하지 말게. 우리 병기 말이면 난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네.”
여인은 자신의 과거를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어 더듬거리는 박병술의 손을 잡고 진정시켰다.
“미자도 오빠 말이라면 믿을 거야. 그렇지?”
미자는 아미를 다소곳이 숙일 뿐 대답이 없다. 수줍음을 타는 건 복금이와 너무나 닮아 있다.
박병술은 쉽게 대답이 나가지 않았다.
복금이와의 약속도 아직 유효중이 아닌가. 언제까지라도 그녀는 박병술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게다가 그녀와의 사이에는 부부사이에만 가능한 정사까지 있었다. 어쩌면 지금 쯤은 아이까지 있을 지도 모른다.
이렇듯 복금이와의 관계를 정리하지도 않은 채 미자와의 혼사를 수락한다는 건 두 여인에게, 고인이 된 민병기 중대장님에게도 죄가 될 일이다.
“어머님. 보다시피 전 다리도 없는 병신……”
“병신이 어때서? 나라를 위해 전쟁판에서 다친 건데. 도리어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야지.”
“그건 그렇지만……생활하기가 불편할 텐데요……”
‘그건 그렇지만’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박병술은 이 다리의 상처로 자신의 떳떳하지 못한 군대생활의 오점을 세척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죽어도 그 오점은 씻지 못할 것이다.
“괜찮네. 정부에서도 죽으라고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테니까. 나도 아직은 20년은 농사일 할 기력이 충분하다네.”
“전 돈 한 푼 없는 백숩니다……”
“걱정 말고 빈 몸만 오게. 돈이란 건 벌면 생기는 걸세.”
그들의 혼사는 거의 장모의 고집에 의해 결정되었다.
미자는 자신의 인생대사결정권을 오빠와 어머니에게 완전히 일임한 듯 모든 것을 모친의 의사에 따랐다.
박병술이도 고아였지만 미자네도 재산이랄 것도 없이 결혼식은 형식뿐이었다. 막걸리 몇 병에 닭 몇 마리 잡아 안주하고 떡을 빚어 동네 남녀로소를 응접했을 뿐이다. 세간을 가를 필요조차 없이 그냥 장모의 말대로 박병술이 빈 몸 하나만 달랑 가지고 미자네 집으로 처가살이를 들어왔다.
그러나 박병술은 아내에게 늘 마음에 걸리는 두 가지 일 때문에 괴로움을 앓아야 했다. 하나는 복금이와의 신의를 저버린 양심의 가책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비굴했던 과거를 속인 기만행위에 대한 자책감이었다.
그래도 생활은 이상하리만치 순조롭게 흘렀고 집 안에 찾아드는 건 행운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부부에겐 아이가 생겼고 2년 뒤에는 전쟁도 끝나고 평화가 도래했다.
정부보조금으로 읍내에 자그마한 도장방을 차렸는데 세금면제혜택까지 받아 그 수입이 짭짤했다. 농사도 그 몇 해간은 연이어 풍작을 이루어 살림은 갈수록 풍족해졌다.
복금이와 그 식구들이 전쟁 당시 폭격으로 온 가족이 몰살되었다는 건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설악산관광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슬그머니 마을에 들러 보았지만 복금이네 집은 집터마저 없어진지가 오래 되었다.
병태는 후퇴하는 인민군을 따라 월북했고 남아 있던 좌익분자들은 처단되었다고 했다. 누구도 박병술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 자신도 이미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돼버린 터라 당년의 안면 있는 몇몇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필경 이 마을에 머물렀던 시간은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으니 40년 세월의 물결에 그 인상이 깨끗이 씻겨버릴 만도 했다. 게다가 박병술은 끝끝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그냥 관광객행세를 하며 지나가는 말 삼아 이것저것 물어 보았을 따름이다.
병태도 없고 복금이도 없고 그 가족도 없어진 마당에 그를 알아볼만한 몇 안 되는 동네노인들까지 그가 노동당에 입당했고 의용군에 입대했던 박병술임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이때 박병술은 안도감 대신 도리어 허탈감과 양심의 가책을 더 깊이 느꼈다. 자신만 입을 열지 않으면 과거의 과실은 영원히 신비 속에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그는 조국을 위해 용감하게 싸운 영웅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은 왜 도리어 불안하고 괴로울까.
진실이 시간의 망각 앞에서 매몰되고 기만과 허위가 진실행세를 한다면 진실은 영원히 그 가치와 의미를 기만에게 양탈당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또 진실이란 무엇인가?
공과 과는 서로를 보완하고 미봉할 수 있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떤 인생이 참된 인생인가?
인생에는 지정된 올바른 길이 있는가?
이런 문제들은 진실이 명백하게 밝혀질 때에만 사람들은 그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의 옳고 그름은 또 무엇을 표준으로 삼는가? 정말이지 인생을 단지 옳고 그름의 이분법으로 단순하게 평가하는 게 맞는가.
그것을 판단하기가 여간 쉽지 않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적어도 자신에게 만은 솔직하고 싶어졌다. 자신의 살아 온 길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질실하게 세상 앞에 과거를 털어놓고 싶었다.
살아남는다는 건 어쩌면 최고의 진실이 아닐지?
살아남은 사람의 인생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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