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장혜영

13장 관세음보살

관음전 안에는 촛불만 새벽 찬 기류를 타고 그물거릴 뿐 고요하다. 전당 밖 섬돌 어딘가에 숨은 풀벌레소리만 냇물 소리와 더불어 화음을 조율하고 있을 뿐.
만 팔배로 절하자면 아직도 천 사백배가 남아 있다. 그런데 벌써 자정이 넘으면서부터 관음보살상이 돛배처럼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새벽이 가까워 오면서부터는 법당 안 전체가 기우뚱거렸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땀이 물처럼 흘러내려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간혹 눈을 떴다고 해도 어지럼증 때문에 다시 감아버리곤 했다. 육신이 돌처럼 굳어지며 극심한 경련이 발작했다. 무릎과 팔꿈치 그리고 이마는 터져서 피가 흥건했지만 이윤정은 만 팔 배를 향해 악착스럽게 불공을 드렸다.

저 관음의 힘을 생각하면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아니하며
혹은 원적이 에워싸고 각각 칼을 들고 해하려 할지라도
저 관음의 힘을 생각하면 모두가 곧 자비심을 일으켜
……
저주하고 모든 폭약으로 몸을 해치고자 하는 자가 있을지라도
저 관음의 힘을 생각하면 도리어 본인에게로 돌아가며
혹은 나찰과 독한 용龍과 모든 귀신들을 만났을지라도
저 관음의 힘을 생각하면 감히 모든 것을 해치지 못하며
……
관음의 묘한 지혜의 힘이 능히 세간의 고통을 건지리라
신통력을 구족具足하고 널리 지혜와 방편을 닦아서
세상 모든 국토에 몸을 나타내지 않는 곳이 없느니라.
가지가지 모든 악도 지옥 악귀 축생의
생로병사의 고통을 점차로 다 멸하게 함이니라.
……
지혜는 해와 같이 모든 어둠을 깨뜨리고
능히 재앙의 바람과 불을 조복하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큰소리로 관음경을 독경하며 관세음보살 호명염불을 했다. 대자대비하시고 신통력을 갖추신 관세음보살께서 딸애 미미를 재앙에서 구원해 주십사 기도했다.
미미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뒤 윤정은 참선을 포기했다. 딸애를 위해 만 팔 배 불공을 드리기로 작심한 것이다. 그때까지도 윤정은 승복은 입었지만 차마 삭발 만은 용단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딸애가 아프다는 걸 알고는 서슴없이 삭발을 했다.
“3천 8배도 보통 불자들은 쉽지 않은 예불입니다. 만 팔 배는 아직 시도해 본 신도도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너무 무리하시다가……”
법혜스님은 그녀의 결단에 우려를 나타낸다.
“티벧의 불자들은 십만 팔천배도 드린다는 말을 들었어요.”
“불심이 중요하지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죠. 불심이란 반드시 양으로만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하지만 이번 만큼은 스님의 권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고 싶었다.
스님의 말씀대로 정작 만 팔 배 예배에 들어가니 첫날부터 힘들었다. 워낙 윤정은 번뇌와 스트레스, 영양실조로 몸이 허약하여 무리한 시도를 받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처님 앞에 한번 부복하는 시간이 5초라고 해도 쉬지 않고 연속하면 종일 걸려야 한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기운은 쇠진해가고 운신도 굼떠지면서 요즘은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지속해야 만 숫자를 채울 수 있었다.
정신이 그네를 타는 것처럼 흔들거린다. 그녀는 가끔씩 몸의 균형을 잃고 선 자리에서 비틀거렸다. 그러나 다시 의식을 가다듬고 예불을 계속했다.
“불자의 기도가 기복祈福을 목적으로 하고 부처님의 신통력이 액막이에 이용된다면 그것 진정한 견성성불에 의한 해탈이 아닙니다. 그런 불공은 여전히 일종의 욕망이고 세속에 대한 인연일 뿐이지요. 예배를 드리는 목적은 구복이나 액막이에 있는 게 아니라 무명에 가려진 자신의 청정한 본심을 발견하는 겁니다. 예란 진성을 공경하는 것이고 배란 무명을 극복하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예배의 본래의 의미입니다.”
자정이 넘었을 때 스님이 관음전 앞 섬돌에 나타나 남기신 말씀이다. 그러나 이것이 설령 욕망이고 인연이라고 할지라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단지 딸애 미미의 병만 완쾌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 구복의 예배를 중단하고 참선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죄다 딸애 미미의 모습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 불심이 깊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윤정은 인연을 끊고 해탈한다는 불법의 이치가 의심스럽기만 했다. 인연이라는 건 죽기 전에는 끊어버릴 수 없는 그래서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숙명적인 건지도 모른다. 그것은 윤정이 참선을 포기하면서 느낀 것이었다.
마룻바닥에 부복했다가 일어서려던 윤정은 어느 순간엔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머릿속에서 천둥번개가 치듯 꽈르릉- 하는 굉음이 들렸고 이어 먹물 같은 어둠 속에 섬광이 번쩍였다. 전신이 허공에 붕- 떠오르는 환각이 들며 그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넘어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육신은 걷잡을 수 없이, 줄기가 잘린 고목처럼 맥없이 쿵- 하고 무너져 내렸다. 가물거리던 의식의 등불도 다 타버린 촛불처럼 서서히 꺼져 갔다.
내가 왜 이러지?
아직도 403배나 남았는데……예배숫자를 채우지 못하면 미미가……
의식의 돛배는 여기까지 간신이 노를 저어 오고는 운행을 멈춘 채 바닥없는 물 속으로 깊숙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의식이 마지막으로 입수한 청각의 정보는 새벽 기침起枕을 알리는 목탁소리와 천수경 염송소리였다.
윤정이 혼수상태에서 의식을 회복했을 때는 자신의 몸이 법혜스님의 승용차 뒷좌석에 실려 있었다.
“정신을 차리셨네요. 탈진 상태에서 관음전 마룻바닥에 쓰러졌었습니다. 괜찮습니까?”
큰스님이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넘겨다 보며 관심 어린 어조로 묻는다.
“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차창 밖으로 언뜻언뜻 스쳐가는 도시의 거리 풍경이 그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병원에요.”
“병원에는 왜 가요. 사찰로 다시 돌아가요.”
예배를 끝마쳐야 한다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정은 지금 길게 말할 기운조차 없었다.
“이왕 시내로 내려온 김에 따님이 입원했다는 병원에 들렀다 가야죠.”
스님의 느닷없는 제의에 윤정은 갑자기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승용차는 벌써 서울로 진입하여 도심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산사에 있을 때도 딸애한테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자제하고 있었다. 이렇게 도심까지 내려오고 보니 그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미에게 엄마의 이런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이미 출가한 자신이 병원에 간들 미미를 위해 무엇을 해주랴. 이만큼 인연을 끊는데도 피를 말리고 뼈를 깎는 진통을 감내해야 만 했었다. 그런데 또다시 정을 붙이고는 이번에는 어떻게 뗄 것인가.
“차 돌리세요.”
윤정은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였다. 말 못하는 짐승들도 제 새끼를 사랑한다. 인간인 내가 이 무슨 잔인한 짓인가 싶었다.
“그러지 마시고 한번 들러 보세요. 마침 나도 시내에 볼 일도 좀 있고 해서요. □□□병원이라고 하시는 것 같던데.”
“큰스님.”
불렀으나 큰스님은 더 이상 응대가 없다. 언제나 평온하고 자상하던 큰스님의 표정에 그늘이 커튼처럼 드리우며 눈시울에 이슬이 반짝인다. 깨달음을 얻고 해탈을 했다는 스님도 결국은 세속의 정에 우는 보통 인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일 보고 2시 쯤에 모시러 올 테니까.”
법혜스님은 윤정을 억지로 병원 안으로 떠밀어 놓고는 차를 운전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사바세계에서 스님이 사찰 말고 또 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윤정은 잠시 병원 로비에 엉거주춤 굳어져 있었다. 아직도 의식이 시계추처럼 휘청거린다. 사람들의 의아한 눈길이 일시에 그녀의 신변에 집중되는 바람에 윤정은 당황해졌다. 거의가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피하는 눈치다. 세속인이 아니라서 거부감이 드는 걸까.
그녀 역시 화려하고 사치한 이곳 사람들이 낯설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까지도 이 사람들 속의 일원이었는데 불과 1년도 못되어 딴 세상 사람이 되다니.
“누굴 찾으세요?”
마침 한 간호사가 나타나더니 윤정을 향해 상냥한 미소를 짓는다. 윤정의 귀에는 아가씨의 친절한 말이 '볼 일이 없으면 여기서 나가주세요' 하는 뜻으로 들린다. 소외는 다른 사람의 강요보다는 스스로가 조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기 혹시 윤미미라는 어린애 환자가……”
현기증 발작 때문에 금방이라도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윤미미라고요. 무슨 환자인데요?”
“백혈병……”
“아, 네. 307호 병실입니다. 그 환자와는 어떤 관계신지?”
“엄마……”
“네! 어머님이시라고요?”
비구니가 환자의 어머니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솔직히 윤정도 그 말이 입 밖으로 쉽게 나가지는 않았다. 웬일인지 목구멍에 걸렸었다. 행색이 화상이고 보니 세속과의 인연이 도리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난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구나.
간호사가 알려 주는 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갑자기 발작하는 구토 때문에 눈물이 찔끔 솟아나도록 한참이나 마른 구역질을 해야 했다. 다행이도 연 며칠 속에 쌀알이 들어가지 않아 토할 음식물이 없었다.
307호병실 안은 병상 몇 개가 놓여 있고 침상마다 환자들이 누워 있거나 앉아 있다. 어떤 환자는 링거주사를 맞고 어떤 환자는 병문안 온 친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환자는 책을 보거니 잠을 잔다. 그들 환자들을 일일이 확인하던 윤정의 눈길이 창문가의 한 환자에게서 멎었다.
딸애 미미였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다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강력한 어떤 흡인력에 이끌리기라도 하듯 한걸음, 한걸음 미미에게로 다가갔다.
미미의 얼굴은 뜻밖에도 수척하거나 창백하지도 초췌하거나 파리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살이 더 오른 듯싶다. 미미는 흰 바탕에 푸른 줄무늬가 간 환자복을 입고 있었는데 머리에는 이상한 헝겊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병상에 일어나 앉은 채, 등을 돌리고 앉은 어떤 아가씨가 읽어 주는 동화책 이야기를 경청하느라 여념이 없다. 감동적인 장면인 듯 그 애의 두 눈에 이슬 같은 눈물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윤정이 병상가까이에 다가갔으나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미미야!”
목이 꽉 메어 완전한 음성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인기척을 느낀 듯 동화책을 읽던 아가씨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얼굴이 낯설다. 언뜻 영화배우 심은하를 연상시키는 굉장한 미모의 소유자이다. 아니, 심은하보다도 더 완벽하여 눈부시기까지 했다.
누구지?
그러나 그 의문도 잠시 윤정의 시선은 다시 딸애에게로 향했다.
“미미야. 많이 아파?”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며 시야가 뽀얗게 흐려왔다. 팔을 벌려 딸애를 얼싸안으려고 허리를 굽혔다. 그 순간 현기증이 발작하여 하마터면 땅바닥에 넘어질 번했다. 다행이도 낯선 여자가 비틀거리는 윤정의 팔을 부축해 주었다.
“미미야. 이리 와. 안아 보자.”
그러나 미미는 엄마를 알아 보지 못하는 듯 했다. 비실비실 무릎걸음을 치며 뒤로 몸을 움츠린다. 그 애의 눈길에 두려움과 공포의 빛이 역력했다.
내가 네 엄마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막힌 목이 도저히 풀려 주질 않는다. 미미는 낯선 여자의 등 뒤에 아예 얼굴마저 묻어 버린다.
쿵!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미미가 엄마를 몰라 보다니?!
갈라진지 1년도 채 안되지 않는가.
파도 같은 허탈감이 가슴의 방파제를 무너트렸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자식이 부모를 알아보지 못하다니. 정말이지 모녀의 인연이 이렇게 허무하게 끊어지고만 것인가.
이게 도대체 누구의 탓인가.
윤정은 터져 나오는 오열을 참을 수 없어 그만 병실에서 뛰어나오고 말았다. 화장실에 들어온 그녀는 불결한 공기를 마시자 또다시 토하기 시작했다. 엉엉 울면서 콧물 눈물을 흘리면서 몇 방울의 위액만 가까스로 짜냈다.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나서야 그녀는 울음을 그치고 세면기에서 얼굴을 씻었다. 고개를 쳐들자 거울 속에 아까 심은하를 닮은 낯선 아가씨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참선을 시작하고는 한번도 거울을 본 적이 없으니 수 개월 만에 처음 보는 자신의 모습이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자신의 모습이라고 인정할 수 없을 만큼 수척하고 파리했다. 여위다 못해 뼈에 가죽만 붙은 얼굴은 문자 그대로 해골 그 자체였다. 두 눈은 방아확처럼 움푹 꺼지고 관자놀이는 고구마덩이처럼 불뚝 삐어지고 입은 유난히 컸다. 불면증과 고뇌, 스트레스와 영양실조, 화장품에 의한 습윤 공급과 피부 관리 중단에 의한 각질, 선창 그리고 기미, 피부발진, 색소침작증, 두드러기 등 피부염까지 발생한 거친 살갗은 파파 늙은 시골할머니를 연상시켰다. 이제야 엄마를 알아보지 못한 미미가 이해된다. 그 애에게는 윤정의 모습이 사람의 몰골이 아니라 물귀신이나 괴물처럼 보였을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그녀는 삭발한 중머리에 푸른 승복을 입고 어깨에는 베천가방을 메고 손에는 염주를 들고 있다.
내가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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