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장혜영

스스로도 억이 막힌다. 해탈이 뭐고 성불이 뭔데……
“저 혹시 미미어머님 되시는 분이 아니신지요?”
심은하를 닮은 낯선 아가씨가 먼저 말을 건넨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또박또박한 어조다.
“그러는 아가시는요?”
“윤선생님과 아는 사이에요.”
“미미아빠는 어딜 가고 아가씨가……”
“선생님께서 일주일이나 혼자서 병 수발 들기에 제가 돌봐줄테니 좀 휴식하라고 집에 들여보냈어요. 아마 오늘쯤은 나오실 거예요. 미미어머님 맞으시죠?”
“아, 아니, 아니에요. 그냥 아는 애라……”
윤정은 어물어물 넘겨버리며 다급히 화장실을 빠져 나왔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선생님께서 나오실 텐데. 제가 전화 드릴까요?”
아가씨가 복도까지 쫓아 나왔지만 윤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망히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미미야. 미안해! 날 엄마라고 부르지 마!
눈물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병원 회전문을 나서는데 마침 밖에서 들어오는 남자의 눈길이 그녀를 유심히 훑어본다. 윤정은 벌써 그 남자가 남편 윤정도라는 걸 알아보았다. 그러나 고개를 숙인 채 재빨리 회전문을 빠져나가 마침 광장에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불렀다.
“저기요……잠시만요……”
정도가 그녀를 부르며 밖으로 달려 나왔다.
윤정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냥 택시에 승차했다. 운전기사는 급히 차에 오르는 비구니와 달려오는 남자를 번갈아 보며 결단을 망설인다.
“상관 말고 출발하세요.”
“알겠습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용천사요.”
“절인가요.”
“네.”
택시가 출발했으나 정도는 추격을 포기하지 않고 택시 뒤를 따라 한참이나 허둥지둥 달려왔다. 손을 휘휘 흔들며 뭐라고 연신 소리를 질렀지만 들리지는 않았다.
윤정은 백미러로 택시를 따라 달려오는 남편을 바라보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당신도 절 아내라고 부르지 마세요. 잊어버리시라고요.
무명의 마음에는 8만 4천 가지의 번뇌가 있다고 한다. 그 모든 번뇌의 근본 원인은 삼독 즉 탐진치라고 불법은 가르치고 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 중에서 나의 번뇌는 어느 것에 속하는가?
자식의 행운을 비는 것도 탐욕일까?
자식을 죽음에서 구해내려는 기도도 어리석음일까?
법혜스님께서는 늘 4대 자체는 생겨남도 죽음도 없다고 하셨다. 즉 육신자체는 삼계 속에서 살아있으나 죽으나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육신은 헛것이요 허상일 뿐 영원한 것은 오로지 하나 청정한 마음 즉 불심뿐이다.
삼계 속의 4대에 집착했던 나의 행동은 그래서 어리석음이요 탐욕일 수도 있다.
스님께서는 벌써 산사에 와 계셨다. 신통력으로 그녀가 돌아올 걸 예측이라도 하고 있은 듯 미리 일주문 밖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
윤정이 택시에서 내리자 대신 요금을 지불하고는 말없이 그녀를 암자까지 동반한다.
암자에 올라와 섬돌위에 서자 문득 걸음을 멈췄다.
“몸이 너무 허약한 것 같아 공양주더러 잣죽을 끓이라고 일렀습니다.”
“큰스님!”
윤정은 오늘은 웬일인지 마음이 약해지며 쩍하면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 스스로도 민망했다.
“예배는 건강이 회복된 뒤에 다시 하기로 하고 며칠 휴식하세요.”
“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미미를 위해서라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스님은 염주를 든 손을 합장하고 허리를 굽혔다. 그 표정은 그녀의 집착이 불심이 아니라 삼계의 인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탐욕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보조법사님의 무념공부방법대로 좌선을 해보시는 건 어떠실지요? 목욕재계를 하시고 말입니다.”
달마조사는 목욕재계를 하면 능히 삼독, 무명의 더러운 때를 없앨 수 있다고 가르친 바 있다. 보조법사의 열 가지 무념수행에 대해서는 큰스님의 불법강론을 여러 번 경청했었다. 모든 생각을 끊고 깨달음마저도 버리는 것, 선도 악도 생각하지 말고 마음이 일어나거나 인연을 만나면 곧 쉬는 것, 바깥경계를 돌아보지 않는 것, 바깥경계뿐만 아니라 안팎의 모든 상相을 비우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 대상뿐만 아니라 고요한 마음마저도 비우는 것, 마음은 마음대로 두고 대상은 대상대로 두고 접근하지 않는 것……
대략 이런 내용들이다. 그 요점은 마음과 대상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그 대상 속에는 딸 미미도 있을 것이고 남편 정도도 있을 것이 틀림없다. 딸애를 위해서 불심을 닦지 말고 그 애와의 인연을 분리시키는 불도를 닦으라는 말이다.
그게 과연 가능할까?
아무튼 자신의 예배와 기도가 딸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인연을 끊고 마음속에서 비워내는 쪽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스스로 자신의 살점을 도려내고 자결하는 행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튿날 이윤정은 암자에서 나와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산마루의 고지대로 올라갔다. 영마루에 올라서니 사방으로 줄기차게 뻗은 산발들의 기상이 도도하다. 계곡은 깊고 산악들은 거창하다.
그중 전망이 가장 좋은 청석을 골라 자리를 잡고 좌선했다. 이제 큰스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무념참선을 다시 시작하기로 작심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인연을 끊지 못하면 이 바위에서 그대로 굳어 돌이 되리라!
그러나 눈을 감자마자 기억의 스크린에는 딸애 미미의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엄마도 몰라보고 귀신이라도 만난 듯 공포에 질려 피해 달아나던 미미……
눈을 떴다. 산천은 수려하고 거창한 장관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나무 한 대, 바위 하나마저도 이제는 미미로 보인다. 어린 애솔은 미미로 보이고 늙은 노송은 남편으로 보인다.
맙소사!
부처님. 저를 도와주세요. 제 힘 만으로는 인연을 끊기가 힘들어요. 힘을 보태 주고 지혜를 주세요.
피가 터지도록 부르짖었지만 메아리만 돌아올 뿐 부처님의 응대는 없다. 쏟아지는 폭염은 정수리를 불덩이처럼 뜨겁게 지진다. 삽시에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어버렸다.
느닷없이 바위아래로 떨어져 이대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죽는 쪽이 덜 고통스러울 것 같다. 먼저 죽어 저승에 가서 딸 미미를 기다리는 게 어떨까.
그런데 어제 그 병원의 아가씨는 누구지?
이제는 온갖 망념들이 죄다 쓸어 나와 불개미 떼처럼 바글바글 의식의 살진 몸뚱이에 매달린다. 무념수행은 망상의 집요한 공격에 아예 진지를 버리고 패주하고 만다.
남편의 친구라고 했었지? 전에는 본적이 없는 낯선 얼굴이었다. 내가 산사에 올라온 뒤에 사귄 친굴까? 남편을 대신해 미미의 병 수발까지 드는 걸 보면 각별한 사이 같은데.
혹시?!
아니야. 그녀가 알고 있는 남편 정도는 정직한 남자였다. 외도 같은 건 하지 않을 만큼 도덕적 결백을 갖고 있음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가씨의 미모가 마음에 걸리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윤정 자신은 산사로 올라올 때 벌써 사랑 같은 건 포기했었다. 아가씨의 존재에 신경 쓰인다는 건 아직도 그녀의 마음속에 남편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는 걸 의미한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거지.
남편의 선택은 이미 나와는 상관이 없잖아. 다른 여자를 얻어 재혼을 하든 눈이 맞는 여자와 동거를 하든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남편이 재혼을 하겠다면 이혼까지도 허락해 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가씨가 남편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선생님이라는 경칭을 쓰는 걸 보면 두 사람 사이엔 아직 간벽이 있는 듯 싶기도 하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런 경칭은 부담이나 거추장스러운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주위에서 스르륵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왔다. 얼핏 눈길을 던져 보니 독사 한 마리가 바위틈으로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와 네댓 보 사이를 둔 거리에서 이동을 멈추더니 대가리를 빳빳이 쳐들고 윤정을 노려본다. 독사의 눈에서 새파란 독기가 가시처럼 예리하게 번뜩였다.
윤정은 홀연 전신이 압착된 스펀지처럼 꼬깃꼬깃 오그라들었다. 등골에 소름이 오싹 끼치며 발바닥이 찡찡 저려났다. 물러설 자리도 시간도 없었다. 꽁꽁 얼어붙은 채 그녀도 독사의 날카로운 눈길을 맞받아 노려보았다.
그렇게 약 20분가량 눈과 눈을 통한 신경전이 전개되었다.
움직이기만 하면, 기 싸움에서 지기만 하면 독사에게 당한다는 생각 하나 뿐이었다. 그 우려는 윤정을 불안과 공포의 미궁 속에 몰아넣었다.
독사는 지금 뭘 생각하고 있을까?
굶주림을 달래려고 기습 기회를 노리고 있을까? 그런데 인간은 독사의 먹이가 아니다.
아니면 그 놈도 윤정의 존재에 놀란 것일까?
독사는 윤정이 까딱하지 않자 위험이 사라졌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다시 구불구불 몸뚱이를 움직이며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윤정은 극도의 두려움과 공포에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그러나 끝내 인내력을 발휘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놈은 윤정을 바위나 나무그루터기로 착각했던지 그냥 그녀의 무릎위로 스륵스륵 기어오른다. 윤정은 살갗에 좁쌀알 만 한 소름이 돋아남을 느꼈다. 당금이라도 심장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미끌미끌하고 윤택이 번들거리는 독사의 살갗이 햇빛을 반사하며 눈부시게 번뜩였다. 까칠까칠한 비닐조각들이 승복자락을 스치는 소리가 싸르륵- 싸르륵- 부드럽게 들렸다.
그러나 윤정은 그 소리에 전율했다. 삭신이 녹아 내린다.
독사는 그녀의 무릎위에 반신을 올려 놓은 채 잠시 이동을 멈췄다가 아무 반응이 없자 다시 가슴을 타고 어깨 위를 천천히 기어 오른다. 독사가 스쳐가는 부위의 근육들은 고도의 긴장으로 석고처럼 응고된다.
윤정은 독사가 어깨를 넘고 잔등을 지나 등 뒤의 청석바닥에 내려앉을 때까지 까딱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독사의 꼬리가 엉덩이에서 떨어지는 순간 윤정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후- 내쉬었다. 1m도 넘는 큰 뱀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등 위에서 누군가의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윤정은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독사다!”
그제야 벌떡 일어나 고개를 들고 보니 등산객 서너 명이 돌멩이를 집어 들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달아난다. 때려잡아라!”
“살려 주……”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위틈으로 황급히 도주하려던 독사는 등산객의 손에서 던져진 돌멩이에 직격탄을 맞고 목 부위가 묵사발이 되었다. 그래도 몸뚱이는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잇달아 몽둥이며 돌멩이들이 우박처럼 날아들었고 독사는 삽시에 만신창이 되어 죽어버렸다.
“되게 큰 놈이네!”
한 등산객이 독사의 꼬리를 높직이 쳐들고 혀를 내두른다.
“그런데 스님은 달아날 궁리는 하지 않고. 그러다가 물리면 어쩌려고.”
40대의 중년 남자가 윤정을 나무라며 혀를 찬다.
“독사는 사람이 달아나면 더 문다고. 가만있는 게 상책이지.”
“독사도 중은 물지 않나 봐.”
“이놈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끔찍한 독사로 환생했지?”
등산객 일행은 횡설수설하며 산을 내려갔다.
“방금 저 여자 비구니도 아마 놀랐을 거야. 모르긴 해도 바지가랑이에 오줌을 쌌을 거야. 히히히.”
“그게 어디 여자냐. 남자지. 뱀이 더 놀랐겠다. 뱀보다 더 흉하게 생겼더라.”
남자니 여자니 저들끼리 목청을 낮춰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윤정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내가 독사보다 더 무섭다니?
내가 남자로 보이다니?!
그래서 아마 독사도 내 앞에서 꼼짝 못하고 굳어 있었던 걸까.
웬일인지 슬퍼졌다.
예쁘다는 말을 노랫소리처럼 들으며 살아 온 그녀다. 그러나 그처럼 출중하던 미모도 한 순간, 결국 그녀는 늙은 노파가 될 것이고 징그럽고 흉물스런 괴물로 변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한 순간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한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청정한 마음뿐이라는 걸 저들은 왜 모를까.
아름다움 그것은 곧 헛것이다.
현혹되어야 할 아무런 가치도 없다.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인간의 본심뿐이다.
그것이 곧 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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