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해맑은 초가을의 주말이 다가오고 있다. 안해는 연변에 살면서 유독 훈춘을 가보지못했다면서 은근히 한번 다녀오면 좋지않나하는 의사를 암시해오고있다. 훈춘시 한 건축회사 설계과에 취직한 딸애의 사업상황도 알아 볼겸 겸사겸사 훈춘으로 주말소풍을 약속하고 컴앞에 맞주 앉았다.

연변개황에 훈춘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중국,조선,로씨야 3국변계에 자리잡고있는 도시로서 면적이 5120평방킬로메터이고 인구는 25만명인바 그중 조선족 인구가 46.9%를 차지한다.

유엔개발계획서에서는 훈춘의 개발을 도문강하류지구 국제합작개발에 있어서 선차적으로 지지하는 대상으로 확정하였다. 국무원에서는 1992년 3월 훈춘시를 중국의 첫 변경개방도시범위에 넣었고 1992년 9월에는 훈춘시에 변경경제합작구를 설립하는것을 비준하였다. 강택민총서기는 1995년6월 훈춘을 두번째로 시찰할 때 <<훈춘을 개발하고 도문강류역을 개발하여 동북아 각국과의 친선관계를 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라는 제사를 써주시였다. 2000년 4월과 2001년 2월 국무원에서는 또 각기 합작구에 수출가공구,중로통상무역구를 설립하는것을 비준함으로써 훈춘경제합작국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경제개발구,수출가공구, 통상무역구를 일체화한 대외개방<<창구>>로 되게 하였다. 변경관광은 훈춘의 중요한 특색가운데의 한가지로서 조선, 로씨야를 관광할수 있어 아세아와 구라파 문화를 감수할수 있는 가장 편리한 통로로 되고있다. 최근에는 국제화도시를 꿈꾸며 도시건설를 다그친고하니 무척 호감이 갔다.

드디어 9월25일 안해와 함께 룡정---훈춘행 뻐스에 올라 탔다. 아침 7시에 룡정에서 발차하여 9시30분쯤에 훈춘에 도착하였다. 훈춘시중심거리에 나서니 시정건설의 활기찬 새로운 모습도 보기좋았지만 국제화도시를 꿈꾸는 시가지 도처에 금발벽안의 로씨야관광객들이 오구작작 상가들에 들락거리면서 물건을 구입하는 모습을 보는것이 너무 신귀하였다. 그와중에 승용차 한대가 스르륵 앞에 멈추어 서면서 딸애가 즐겁게 웃으면서 차에서 내리였다. 딸애가 동행을 인사시키면서 다시 차에 올랐다. 그것은 훈춘시 북산관광문화성 령보사를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우리 일행은 령보사의 련꽃늪, 수령동, 석림대불상 등을 흥미롭게 돌아보면서 기념사진도 남기고 수다를 떨면서도 령보사의 건축예술에 감탄을 금치못했다.

령보사를 돌아보노라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였다. 딸애가 안배한 음식점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딸애한테서 우리의 주말행차에 사장이 자기의 차까지 보내주면서 잘 접대하라는 부탁까지 하였다는 말을 전해듣고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딸애의 소속사동행들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딸애의 상황도 듣게 되여 즐거웠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훈춘에 왔으면 방천으로 가보아야한다면서 모셔드리겠다고 한다. 안해가 미안한 뜻을 보이니 사장의 분부란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는데 그리하자고 선뜻히 답하고 방천으로 떠났다.

방천도로에 들어서면서 훈춘에서 방천까지 거리가 어떻게 되냐는 물음에 사업상관계로 일년에 자주 방천에 다녀온다는 한족인기사는 훈춘에서 방천까지 62키로메터이고 1시간정도면 도착한단다. 자기가 오늘 가이드를 잘 해드리겠다면서 우스개소리도 하는것이였다. 그런데 벌써 경신벌에 들어섰다고 한다. 달리는 차에서 밖을 내다보면서 경신벌을 감상하는데 차가 멈추어섰다. 눈앞에는 두만강이 유유히 흐르고 그사이에 거대한 콩크리트다리가 두 나라를 이어놓고 있었다. 조선으로 통하는 해관의 이모저모를 어보고 다시 이윽히 달리여 련꽃늪기지를 지나 오대휘 동상앞에 머무러 섰다. 동상높이는 대략10여메테가 되여보였고 넓이는 6메터 정도 잘 되였다. 동상앞에 오대휘략력소개를 읽으면서 조국의 변강을 지키기 위하여 고심참담 하고 뛰여난 지혜로 외세에 휘훈을 떨친 위훈에 머리숙이게 된다.

다음은 모래언덕 놀이터였다. 모래바닥이 밭고랑처럼 이루어진 넓은 모래언덕에서는 말타기를 하면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류람객도 있고 네바퀴소형트럭을 달려보는 류람객들의 흥겨워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보기좋았고 즐거워 보였다. 딸애는 어느새 신발을 뻗어쥐고 모래언덕을 달리면서 상쾌하게 소리친다. 우리부부도 동년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신발을 뻗어 쥐고 모래밭을 달려본다. 발바닥이 뜨거워났고 뿌지직 소리를 내며 반달음을 치는 기분은 통쾌하기만 하였다. 잠시나마 동년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스트레스해소에 에너지 배출을 하고나니 온몸은 땀벌창이 되였다.

방천변방부대입구에 도착하여 입장수속을 밟고 (입장권 20원)입장하였다. 한족인기사의 소개를 들으면서 층계를 옳라 강택민주석의 친필제사 기념비 내용을 음미해 본다. 병방부대관망대에 올라 저멀리 아득히 하늘과 잇다인 동해바다를 굽어보면서 감탄을 토해내는 안해의 모습을 흐뭇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3국방향에 따라 기념사진을 찍었고 오래만에 중조두나라를 이어놓은 철교를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남기였다.

이렇게 우리부부의 주말소풍 하루일과를 마무리지으면서 방천관광구의 번영발전과 훈춘시의 국제화도시 도약을 지극히 기대해본다. 멀지않은 앞날에 세계인들의 각광을 받는 풍요롭고 선진적인 도시로 자랑을 떨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저작권자(c) 평화와 희망을 만들어가는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