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개혁개방과 한중 수교 후 조선족사회는 대규모적인 국내외 인구이동을 경험했고, 200만 중국조선족의 정체성 문제는 조선족학계와 한국학자들의 연구주제로 부상했다. 그동안 논의된 조선족사회의 정체성 담론을 요약하면 조선족학자들의 국민정체성을 강조한 ‘100% 조선족’과 디아스포라 성격을 강조한 ‘이중정체성’ 및 이중문화성격을 반영한 ‘변연(邊緣)문화론’ 등이 있는 반면, 한국학자들이 주장하는 조선족과 한반도의 상생관계를 반영한 ‘교포정체성’과 ‘제3의 정체성’ 및 중국의 국민정체성을 강조한 ‘100% 중국인’ 등이 있다.

기존 중국조선족의 정체성 담론 속에는 ‘과계민족’으로서 국민·민족의 이중정체성과 인구이동에 따른 정체성의 다변화가 공통분모로 나타난다. 2007년 방문취업제가 실시되면서 조선족의 본격적인 한국진출이 진행되었고, 현재 50만(국적 취득자 포함)에 가까운 중국동포가 고국인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현재 재한중국동포들은 국적 취득과 영주권 및 불·합법체류 등 체류자격에 따라 그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변화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중 가장 극명하게 정체성의 혼란과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이들은 방문취업(H-2) 자격으로 한국에 진출해 3D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29만여 명의 (합법체류)중국동포들이다.

한국정부의 재외동포정책 일환으로 추진된 방문취업제와 재외동포(F-4) 자격으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30여만 중국동포들에 대해 한국정부는 한민족이면서도 ‘중국인’이라는 “한국계-중국인(외국인등록증)”으로, 재한중국동포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 한편 이들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경제발전이 낙후한 중국의 변방에서 온 농민과 노동자출신으로 구성되었고, 자본주의사회의 냉혹한 경제사회 질서와 이념 및 생활문화 차이를 감지함에 따라 중국동포들의 고국에 대한 동경과 기대는 점차 사라지게 된다. 또한 중국동포들이 갖고 있는 ‘이중정체성’은 한국인의 단일정체성과 충돌되면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최근 한국정부가 재외동포정책으로 ‘재외국민 중심’의 참정권과 이중국적 문제를 취급하고 있고, 중국동포정책은 별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3D업종에 종사하는 중국동포들은 사회적 기시와 차별대상이 되고 있다. 그들은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서 받지 못한 설움과 차별을 한겨레·동포인 한국인에게서 받고 있다. 따라서 중국동포들은 서울 구로구 등지에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그들만의 특수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독자적 존재’로 생활하고 있다. 또한 대다수 중국동포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한민족 일원보다는 ‘중국인’이라는 자아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결국 한국에서 동포정책의 혜택을 크게 받지 못하고, 인권·사회보장에서 소외된 이들은 ‘경제적 부’를 이룬 후 ‘시장·정책이 있는’ 중국에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한편 2007년 이후 부각된 다문화사회 담론은 ‘한국계-중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중국동포들을 외면하고 있다. 최근 한국정부의 다문화정책은 국적을 취득한 결혼이주민과 자녀 및 귀한동포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재외동포 및 다문화정책에서 모두 배제되고 있는 대다수 중국동포들의 소외감을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결국 동포를 배제한 ‘다문화사회’ 논의와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 대상의 다문화정책으로, ‘동포’도 ‘외국인’도 아닌 중국동포들은 한국사회의 관심 속에서 갈수록 멀어져 가고 있다. 중국동포들은 이주 초기 중국에서의 ‘소수자 정체성’과 차별화를 고국인 한국에서 경험하고 있다. 또한 국적을 취득한 귀한동포 역시 ‘정체성 보존’과 동화지향성의 다문화정책 사이에서 심리적 갈등을 겪고 있다.

최근 일부 한국학자들은 재한중국동포의 ‘정체성’에 대해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즉 재한중국동포들은 한민족의 일원이지만, 중국 국적과 강한 국민정체성을 소유한 ‘100% 중국인’이라는 것이다. 현재 대다수의 재한중국동포들은 한민족으로 포용되기 보다는 불법체류자나 이주노동자로 여겨지고 있다. 즉 한국에서 3D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의 위상은 “돈 벌러 고국에 온 사람들”로, “영국에서 파키스탄·방글라데시와 같은 최하층 수준의 외국인노동자”와 비슷하다. 이러한 중국동포 위상과 부정적인 이미지 형성에는 재한중국동포에 대한 한국 매스컴의 ‘극단적 사례’ 중심의 부적절한 보도자세가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편 정책적 원인과 개인사정으로 불법체류를 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은 동포정책의 혜택과 사회보장 및 인권의 사각지대에 노정되어 있고, ‘소수자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국적과 민족을 모두 포기한 일부 중국동포들은 ‘민족허무주의자’로 낙인 받고 있다. 현재 많은 재한중국동포들이 교회신자들이라는 점에서, 교화(敎化)되고 있는 중국동포들이 향후 새로운 정체성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그 외, 갈수록 증가되는 재한동포유학생 및 동포지성인층은 변수가 가장 많은 존재이다. 즉 한국문화에 익숙한 그들은 한국에서 정주할 수도 있지만, 언제든지 중국에 돌아갈 수 있는 ‘유동적 존재’들이다. 또한 그들의 존재는 재한중국동포의 정체성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요컨대 재한중국동포의 정체성은 다변화 되고 있고, ‘중국인’ 국민정체성과 한국인 동화지향의 ‘소수자 정체성’이 강화되고 있다. 또한 ‘다문화사회’ 담론과 재외동포정책에서 배제·차별대상이 되고 있고, 3D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대다수 중국동포들은 단순 ‘외국인노동자’로 고착화되고 있다. 즉 동포정책 차별화와 ‘소수자 정체성’은 대다수 재한중국동포들에게 ‘중국인·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분열과 ‘동화의 비애’를 맛보게 할 것이다. 한중·남북관계에서 ‘유대적인 역할’의 사명감을 지닌 중국동포에게 미래지향적인 재외동포정책이 필요한 이유이다. (김범송 : 인구학 박사, 중국 흑룡강신문 논설위원, 한국 외국어대학교 초빙교수 )

[저작권자(c) 변화와 희망을 만들어가는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단]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