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실이 모자라 두 반이 합반된 교실은 매우 후덥지근했다. 뒷산 뻐꾸기 소리는 쉴 사이 없이 창을 넘어왔다.

명숙이가 울었다. 명숙이 울음은 좀체 그치지 않았다. 묘하게도 그 울음은 그칠 만하다가 뻐꾸기가 울면 다시 따라 울곤 했다. 새로 산 연필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부잣집 딸이었던 명숙이는 더러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하던 좋은 학용품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명숙이는 조금 칠칠맞았다. 열 살 3학년 초여름이었다.

선생님은 우리를 보고 눈을 감으라고 했다.

“새 연필을 교실 바닥에서 주었거나 장난으로 가지고 간 사람은 손을 듭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뒷산으로 갑니다.”

뻐꾸기가 저렇듯 울어대니 뒷산에 가서 뻐꾸기에 대한 동시 짓기를 하는 줄 알았다. 선생님은 때때로 우리를 뒷산에 오르게 했다. 한 눈에 보이는 마을 풍경을 그리기도 하고, 면사무소나 우체국 같은 관공서를 찾아보기도 하고, 장날이면 장에 오는 갓 쓴 노인들이나 소달구지 같은 것을 세어보도록 했다. 그러나 그날 선생님의 표정은 달랐다.

“솔잎을 하나씩 따가지고 옵니다.”

우리에게 깜짝 깜짝 놀라는 일들을 자주 보여 주는 선생님이었지만 ‘솔잎’은 너무 뜻밖이었다. 도무지 무엇에 쓸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여러분이 솔잎을 따오는 사이 선생님은 혹시나 교실바닥에 명숙이가 흘러버린 새 연필이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그때까지도 나는 솔잎과 잃어버린 연필과의 연관성을 눈치 채지 못했다. 굳이 연관성을 말하라면 명숙이 울음을 그치지 않게 하는 뻐꾸기를 쫓아버리는 속셈이라 여기는 정도였다. 아이들이 솔잎을 따러 한꺼번에 뒷산으로 몰려가면 뻐꾸기는 도망칠 수도 있으니깐.

선생님은 그때라도 연필을 훔친 사람이 잘못을 뉘우치길 바라고 있었다. 그것을 알 리 없는 우리들은 정말 뻐꾸기를 쫓아버리기라도 하 듯 와, 소리를 지르며 학교 뒷산으로 몰려갔다.

막상 산에 오르니 뻐꾸기 소리는 훨씬 멀리서 들려왔다. 나는 기왕이면 보다 싱싱한 솔잎을 따려고 다른 아이들보다 높이 올라갔다. 키가 낮고 빛깔이 좋은 소나무를 찾았다. 그런데, 솔잎파리를 따려는 순간 썩은 나무둥치 같은 것이 보였다. 발로 툭 찼다.

후다닥.

나는 비명을 질렀다. 놀란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아이들 소리에 잔뜩 겁을 먹은 토끼가 소나무 밑에 웅크리고 있다가 놀라 도망친 것이다.

토끼다!

내가 소리를 쳤다.

뭐, 웬 도기?

흩어져 솔잎을 따던 아이들이 놀란 닭처럼 모가지를 길게 빼고는 내 쪽을 봤다. 아이들은 오해했다. 내가 ‘연필을 훔친 것은 도기’라고 산에 와서 고자질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도기와 토끼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토끼를 봤다 말이다. 토끼를...”

가까이 있던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녀석들은 더 멀뚱히 나를 볼 뿐이었다. 토끼는 순식간에 산 위 쪽으로 사라져 버렸으니 아이들의 오해를 풀길이 없었다. 다만 토끼가 사라진 산꼭대기 뒤로 처량한 뻐꾸기 소리만 넘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교실로 돌아왔다. 선생님이 말했다.

“자, 솔잎을 입에 물고 눈을 감습니다. 내가 주문을 외우면 연필을 가지고 간 사람의 솔잎이 입에서 자라나게 됩니다.”

아, 그제야 솔잎이 선생님의 마술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행여 내 입 속의 솔잎이 길어질까 조심스럽게 물고 있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선생님은 마치 마법사처럼 엄숙한 목소리로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솔잎이 길어집니다. 점점.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의 솔잎은 길어집니다. 나쁜 솔잎은 길어집니다. 점점, 점점...”

나쁜 아이가 되지 않으려고 아이들은 숨을 죽였다. 숨죽이는 교실에는 여전히 죽지 않는 뻐꾸기 소리가 창을 넘어왔다. 뻐꾹, 뻐꾹... 그때 그 소리는 굿거리 무당의 징소리처럼 선생님의 주문을 고무시키고 있었다.

좋은 아이, 나쁜 아이... 나는 순간 헛갈렸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 봐도 나는 좋은 아이는 아닌 것 같았다. 솔잎 끝에 혀를 대 봤다. 싸-한 솔향기가 혀끝으로 느껴졌다. 쫄깃한 송기 맛도 묻어 있었다. 갑자기 배가 고팠다. 꼴 베러 갔다가 간혹 배가 고프면 송기를 벗겨 먹었다. 이상하게도 뻐꾸기철 산에 꼴을 베러 가면 허기가 겹쳐왔다. 그때마다 송기를 벗겨 먹었다. 그러나 그땐 송기 맛을 깊게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솔잎이 길어집니다. 점점, 점점...”

마법사의 소리는 뻐꾸기 소리처럼 높았다 낮았다 반복하며 우리들의 마음속을 들어왔다 나갔다 마음대로 휘젓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내 솔잎도 조금씩 길어진 것 같아 무척 초조했다. 망설임 끝에 나는 이빨로 끝을 조금 잘라냈다. 그날따라 지금껏 나쁜 짓 한 것들이 연이어서 꼬리를 물었다. 어머니에게 몇 개나 틀린 산수시험을 100점 맞았다고 한 거짓말도 생각났다. 선생님의 주문은 계속되었다. 대나무를 잡고 춤을 추는 무당처럼 나쁜 짓한 우리들의 이실직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추 끝이 지릿해지면서 오줌이 마려웠다. 얼마 전 오줌을 싼 일이 생각났다. 솔잎을 또 물었다.

“도기!”

선생님은 소리쳤다. 아, 나는 그 때 너무 긴장하고 있었으므로 선생님이 ‘토끼’라고 소리치는 줄 알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뒷산에서 부딪친 토끼 때문에 뜨끔 놀란 것이었다. 선생님은 분명 ‘김도기’라고 했지만 성씨보다 이름에 잔뜩 힘을 넣어 부르는 바람에 내게는 ‘토끼’로 들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놀란 것은 건너편에 앉아 있던 도기 본인이었다. 도기의 얼굴은 벌써 빨간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입을 벌려! 자, 아-”

선생님은 도기 입에서 솔잎을 끄집어냈다. 그러나 도기 입에서 나온 솔잎은 너무 뜻밖이었다. 한 뼘이나 길게 자라난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보다 이빨로 더 씹어 반토막진 짧은 솔잎이었다.

“고개 들어!”

선생님이 다시 소리치자 도기는 마지못해 고개를 들었다. 그 때 선생님은 도기 속옷 가슴팍 부분에 감추어진 명숙이의 새 연필을 끄집어냈다. 내가 산에서 ‘토끼’라고 소리친 것 때문에 괜스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 미안한 생각은 그해 겨울 첫눈이 올 때까지도 지속되었다.

 

 

2.

 

명숙이가 울었다. 뻐꾸기 소리가 없어도 명숙이 울음은 오래도록 그치지 않았다. 명숙이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울기도 잘 했다. 이번에는 돈을 잃어버렸다. 선생님은 우리를 보고 눈을 감으라 했다.

“돈을 주었거나 장난으로 가지고 간 사람은 손을 듭니다.”

역시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또 뒷산으로 가라고 했다. 뻐꾸기 우는 초여름에서 첫눈 오는 초겨울, 불과 몇 달 사이었지만 나는 솔잎을 잘라내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만큼 많이 성장해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솔잎이 아니었다. 싸리나무 회초리를 꺾어 오라고 했다.

“여러분이 회초리를 꺾어올 동안 선생님은 혹시나 교실 바닥에 흘러 있을지 모를 돈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야 이미 그것이 훔친 사람에게 뉘우칠 기회를 주는 선생님의 배려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해 처음 보는 눈발이 조금씩 흩뿌리는 쌀쌀한 날씨였다. 우리는 선생님이 또 어떤 마법으로 잃어버린 돈을 찾아낼지 궁금해 하며 뒷산으로 갔다.

나는 싸리나무 회초리를 꺾으면서 지난번처럼 토끼와 마주칠까 봐 긴장을 했다. 아니 도기를 생각했다. 도기가 명숙이 돈을 훔쳤다면 그 돈을 슬쩍 교실 바닥에 버리고 나오길 바랐다. 선생님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그것이 급작스럽게 토끼를 만나 놀라는 것보단 좋아 보였다. 하지만 그날은 토끼와 부딪치지 않았다. 아니 토끼를 보지 못했다.

-어른들이 카던데... 첫눈 오는 날 산에 올라가서 토끼를 잡지 못하면 피를 본다더라-

옆에 있던 도기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 그가 돈을 훔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졌다. 아니, 칠칠맞은 명숙이가 그냥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싸리나무 회초리를 하나씩 들고 교실로 돌아왔다. 선생님은 우릴 보고 다시 눈을 감으라 했다. 그러나 선생님이 회초리로 그 어떤 마법을 부린다 해도 나는 벌써 어른이 된 것처럼 자라 있었으므로 지난번처럼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회초리에서 벌어질 마법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여러분, 들고 있는 회초리로 분명히 도둑놈의 종아리를 때립니다.”

아, 선생님은 벌써 명숙이 돈을 훔쳐간 사람을 알고 있구나. 모두 숨을 죽이며 곧 불려 질 이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 회초리를 들고 운동장으로 나가서 둥그렇게 원형으로 서도록 합니다. 그동안 선생님은 명숙이와 다시 한 번 바닥에 흘렀을지도 모를 돈을 찾아보겠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한 번을 강조하며 돈을 훔친 누군가가 돈을 내놓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것 같았다.

우리는 운동장으로 나가서 둥그렇게 원을 만들었다. 잠시 뒤에 선생님은 회초리를 들고 조금은 굳은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때까지도 선생님이 소리칠 그 이름을 기다렸다.

“자, 모두 종아리를 걷습니다. 우리 가운데 분명 돈을 훔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가 맞아야 합니다. 때리는 것도 모두가 때려야 합니다. 선생님도 명숙이도 같이...”

귀를 의심했다. 어떤 마법의 비밀을 기대했던 나는 무척 실망했다. 어떻게 마법사 입에서 저런 무지하고 무서운 말이 나올까. 족집게처럼 도둑을 집어낼 선생님이 도둑을 찾지 못해 우리 스스로로 하여금 매질을 시키다니 정말 상상도 못할 노릇이었다.

아이들 모두에게 아이들 숫자만큼 종아리를 맞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아이들은 가늘게 비명을 질렀다. 마음씨 약한 여학생들은 훌쩍훌쩍 울기도 했다.

선생님은 반장인 나부터 매질을 시작하게 했다. 선생님이 먼저 맞겠다며 종아리를 걷었다. 마법을 벗고 내 앞에 선 선생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마법사가 아니라 흉악한 악마로 변해 있었다. 게다가 뒷집 수퇘지처럼 시커먼 털이 무성한 선생님의 종아리를 보는 순간 두려움이 확 덮쳐왔다.

선생님의 종아리를 때린다는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뭘 해, 선생님을 이렇게 오래 벌세울 거야?”

선생님은 아주 부드럽게 그러면서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나는 마지못해 때리는 시늉만 했다.

“씨이게! 씨게 치란 말이다!”

선생님은 화를 내며 억센 사투리로 소리를 질렀다. 하는 수 없이 제법 소리가 나도록 회초리를 내리쳤다. 어차피 그도 마법사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 여겼다.

“씨이게, 씨이게...”

선생님의 목소리는 다음 차례 아이들에게도 계속됐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원을 그린 모두에게 돌아가면서 종아리를 때리고 맞았다. 결국 범인은 끝끝내 나오지 않았다. 쌀쌀한 첫 눈발은 여전히 그 살벌했던 운동장에 흩날리고 있었다.

“니도 그렇게 생각하노?”

그날 집으로 오는 골목에서 도기는 자신의 종아리를 보여줬다. 아뿔싸, 결국 피를 본 것이었다. 여기저기 피멍이 든 도기의 종아리는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흉측했다. 회초리 자국만 남아 있는 우리들과는 너무 달랐다.

“어떻게 울지 않고 참았노...”

도기는 대답대신 눈물을 찔끔 흘렸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약하게 매질을 하다가도 도기에게만은 유독 진짜 매질을 한 것이다. 모두가 도기를 의심하고 있었다. 나는 도기의 눈물로 그의 결백을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예언과도 같았던 ‘토끼를 잡지 못하면 피를 본다’는 그 어떤 터부가 그의 종아리 피멍보다 더 무서웠다. 게다가 아이들의 오해이긴 하지만 연필 사건 때 산에서 그의 이름을 부른 것이 생각이 나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때 나는 도기에게 그걸 사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의심을 받았어도 아무런 변명을 하지 않은 그의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3.

첫눈이 오고 있었다. 두 해 지난 열두 살 겨울이었다.

첫눈 오는 날이면 누구나 마음이 들뜨지만 우리네 어린 시절은 그것이 유별났다. 사실 그날만큼 마음이 설렜던 첫눈은 없었던 같다. 낮게 깔린 잿빛 하늘에서 이윽고 눈이 쏟아져 내렸다. 함박눈이었다. 눈은 하늘 가득히 노래처럼, 선물처럼 내려왔다. 눈은 삽시간에 마을의 모든 지붕과 굴뚝, 마당과 골목들을 하얗게 덮어 버렸다. 아이들이 만세 부르듯 골목으로 쏟아져 나왔다. 강아지들과 함께 강아지처럼 골목골목을 소리치며 쏘다녔다.

아이들이 마을의 골목을 몇 바퀴씩 돌자 들뜬 마음은 더욱 고조되었고, 그 고조된 감정은 무슨 일이라도 저질러 버릴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몇의 손에는 이미 커다란 몽둥이가 쥐어져 있었다.

“토끼 잡으러 가자!”

누구의 입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소리는 눈이 삽시간에 마을의 집들과 골목을 덮어 버리듯이 모든 아이들에게 퍼져갔다.

곧 아이들은 자신들의 설렘을 과시하듯 자신의 키만 한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마을 앞 공터로 모여들었다.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꼬마들로부터 벌써 코밑이 가무스름한 중학생까지 마을의 모든 아이들이 참여했다. 눈이 오면 토끼 잡기가 훨씬 쉽다는 것은 옛날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내리는 눈에 잔뜩 고무되어 금방이라도 토끼를 잡을 듯하던 우리 앞에 이장네 큰 아들이 도기가 하던 말과 같은 말을 했다.

-첫눈 오는 날 산에 올라 토끼를 잡지 못하고 내려오면 너희 중 누군가의 피를 보게 된다.-

군대에서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장네 큰 아들은 다소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함박눈에 한층 들떠 있던 우리는 그가 괜히 우리에게 겁을 준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것이 설사 마을의 전통처럼 내려오는 터부와 같은 것이라 하여도 그때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은 오히려 우리의 용기를 북돋우고 있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당시 유행하던 ‘맹호부대, 청룡부대’ 노래를 부르면서 이장네 큰 아들보다 훨씬 용맹스런 파월장병이나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줄을 지어 뒷산을 올랐다.

뒷산은 우리들의 세계였다. 우리는 천하를 얻은 듯 마음껏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산 아래 마을까지 울려갔다. 하지만 토끼는 그런 마음만 가지고 잡을 수 있는 짐승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영리해서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았으며, 또한 매우 재빠르기 때문에 어른들도 여간해서는 잡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동네 아이들의 숫자가 많다 해도 무턱대고 몰아붙이다간 놓치기 십상이다.

토끼몰이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눈이 오면 토끼는 잘 뛰지 못한다.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가 길기 때문에 산 위에서 아래쪽으로 몰아야 한다. 지형지물을 잘 이용해야 한다. 몰이꾼들의 자리를 잘 배치해야 한다. 등등이었다.

우리는 마을의 뒷산이라면 얼핏 잘 보이지 않는 토끼길은 물론이요, 웬만한 나무나 바위가 어디 있는 것조차 빤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거의 매일이다시피 나무하러, 소 먹이러 다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토끼몰이의 안성맞춤인 골짜기도 알고 있었다.

그 날 역시도 그런 토끼몰이의 수칙을 잘 지키며 토끼를 찾아다녔다. 마침내 우리가 가장 기대하는 골짜기의 높은 곳에서 아래로, 아래로 소리를 지르며 토끼를 몰아갔다. 어디선가 우리들의 소리에 놀란 토끼가 튀어나오길 바라며 꼭, 자기 손으로 잡겠다는 듯이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그것은 상상만 해도 짜릿한 흥분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판인지 그날따라 토끼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내리는 눈 탓으로 토끼의 발자국조차도 찾지 못했다. 게다가 눈 오는 날이라 날마저 쉬 저물고 있었다. 결국 허탕치고 말았다.

-토끼를 잡지 못하고 산을 내려오면 너희 중 누군가의 피를 보게 된다-

모두가 그냥 산을 내려가기가 조금씩 망설여졌던 것은 그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잔뜩 부풀었던 마음들을 그냥 산에 남겨 놓고 내려가기에는 뭔가의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산을 내려오다 말고 눈에 덮이는 조용한 마을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대장부가 칼을 뽑았으면 무시(무)라도 짤라야지...

그래, 바로 그것이었다. 도기가 산 아래 외딴집을 가리켰다. 그 집은 늙은 부부 둘만 사는 집이었다. 우리는 그가 왜 그 집을 가리키는지 알고 있었다. 그 집에는 집토끼가 여러 마리 있었다.

그러나 고양이 꼬리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 아무리 노인네만 둘이 사는 집이라 해도 토끼를 몰래 훔치기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모두가 망설이고 있을 때 도기가 혼자서 외딴집 쪽으로 뛰어갔다.

아, 아... 아이들 중 한 둘의 소리 죽인 감탄사가 튀어 나왔다. 남의 것을 훔치는 짓에 대한 만류인지, 그의 용맹성에 대한 감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우리는 키 낮은 도토리나무 뒤에 숨어서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가는 도기의 뒷모습으로 성원을 보내고 있었다.

도기가 자랑스러웠다. 여학생의 연필을 훔쳐 솔잎이나 잘라내던 비겁한 모습이 아니었다. 눈은 도기의 뒤쪽에서 사나이다운 그를 고무하듯 내리고 있었다.

잠시 뒤 도기가 나타났다. 그는 우리의 성원을 저버리지 않았다. 손에는 하얀 집토끼 한 마리가 쥐어져 있었다. 아직 새끼티를 벗지 못한 복실한 털과 별나게 빨간 눈을 가진 아주 귀여운 토끼였다. 토끼는 벌써 겁을 먹었는지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산 아래는 연못 같은 작은 못이 있었다. 앞장 선 도기는 우리를 그 쪽으로 인도했다. 얼음이 얼어 하얀 눈이 덮이는 연못은 너무나 조용했고 평화로웠다. 하늘나라의 정원 같았다. 너무 아름다운 연못 풍경에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아, 저기에...

나는 그때 하얀 백지 같은 그 얼음판 위에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아니, 꿈이 있는 아이라면 누구라도 거기에 최소한 자신의 발자국이라도 남기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풍경은 도기가 잔뜩 겁을 먹은 그 집토끼를 던져 넣으면서 한 순간 사냥터로 바뀌고 말았다. 얼음판 위에 던져진 토끼는 얼음에 이리저리 미끄러지면서 쉬 도망치지 못했다. 아이들이 연못가에서 몽둥이로 얼음을 치면서 소리를 지르자 토끼는 이리 뛰고 저리 미끄러지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죽여라!

누군가가 소리쳤다. 아이들이 한순간 얼음판 위로 달려들었다. 안절부절 잘 뛰지 못하던 토끼는 우리가 막상 몽둥이를 들고 다가가자 이리저리 잘도 피했다. 아이들 역시도 미끄러운 얼음판 위에서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못해 이리저리 잘도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있었다. 토끼와 아이들, 그리고 몽둥이가 뒤섞였다. 멀리서 보면 토끼와 아이들이 서로 뒹굴며 놀고 있는 아주 평화로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끔직한 살육의 현장이 될 줄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연약한 토끼 한 마리가 스물 남짓한 아이들의 몽둥이를 피한다는 것은 아무리 미끄러운 얼음판 위라 하여도 불가능했다. 눈 내리는 작은 연못 위에서 얼마나 그렇게 뒹굴었을까. 마침내 토끼는 지쳤는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곧 토끼 주위를 에워쌌다. 토끼는 마치 형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우리의 처분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모든 것이 하얀 얼음판 위에 토끼의 두 눈만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불쌍했다. 그런 토끼에게 아무도 선 듯 몽둥이를 내밀지 못했다.

눈은 내리고 있었고,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역시 도기뿐이잖아... 아이들은 도기가 당연히 앞장을 설 줄 알았다. 아이들의 간절한 눈빛 때문에 앞으로 나선 도기는 몽둥이를 쉬 내려치지 못했다.

에이...

원망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기가 머리를 푹 숙인 채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 때 오히려 평소 겁 많고 잘 울던 기덕이의 몽둥이가 토끼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갔다.

찌-익. 토끼의 비명이 갈라지는 얼음소리처럼 연못을 가로질렀다. 뒤따라 비릿한 피 냄새가 내 코를 파고들었다. 소름이 확 끼쳐왔다. 아, 나는 그때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토끼는 몸을 비틀며 바르르 떨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한 걸음 물러서 있던 아이들의 몽둥이가 여기저기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날 첫눈이 올 때부터 가졌던 들뜬 마음의 보상을 받으려는 듯, 아니 어차피 보게 될 피의 저주를 벗어나려 듯 미친 듯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찌-익, 찌-익... 그 소름 돋는 소리가 작은 연못에서 소용돌이쳤다. 피범벅이 된 토끼의 모습은 참담했다. 하늘나라 정원처럼 그 평화롭던 연못은 어느 순간 피로 얼룩이진 참혹한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그것은 정말 끔직한 피의 축제였다. 저 순둥이 같은 아이들 속에 어떻게 그렇듯 잔인함이 있었을까.

 

 

4.

 

도기가 발작을 일으켰다. 이듬 해 여름 까치장이 서는 날이었다. 까치장은 가뭄이 극심하면 장터를 방천 뚝 너머 갱변으로 옮겨 서는 5일장이었다. 일종의 기우제였다. 개울가 자갈밭에는 단오절에도 그네를 타는 등 사람들이 모여들어 흥청대던 곳이었다. 까치장은 단오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장 풍경을 우리는 신기해하며 이리저리 다소 들뜬 마음으로 기웃거렸다. 뒤집어버린 다는 것, 삶의 형식을 뒤집는다는 것, 인근의 모든 동네 사람들의 삶의 형식이 그날 하루 뒤집어지는 것이다. 어린 우리야 신나는 일이었지만 혹시나 범했을지 모를 자연에 대한 잘못을 반성하며, 경건한 마음을 모아 비를 기원하는 집단 제의식이었다.

하필이면 도기는 그날 발작을 일으켰다. 처음 나는 도기의 발작이 비를 기원하는 제의식이 아니라 우리의 또 다른 성인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허연 액체 때문이었다. 도기가 까치장을 구경하다가 자갈밭에 갑자기 쓰러졌다. 나는 그를 일으켜 세우려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눈동자가 허옇게 뒤집혀지고 온 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마치 연탄불 위에 올려진 오징어처럼 온 몸이 뒤틀렸고, 입에서는 허연 거품이 뿜어져 나왔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간질병이네.

주위 사람들이 말했다. 그것은 우리에게 뭔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천형이었다. 아니 그것은 그때 연못 위에서 바르르 떨던 토끼의 모습이었다. 그때처럼 소름이 끼쳐왔다. 도기의 발작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곧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몸을 털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연필을 훔쳤을 때보다 얼굴이 더 홍당무가 되었다. 겸연쩍은 웃음을 짓더니 입을 쓱 닦고는 첨벙첨벙 개울을 건너 방천둑을 넘어가 버렸다. 도기는 자신의 병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도기가 왜 아이들의 욕을 얻어먹으면서까지 토끼에게 몽둥이를 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5.

 

도기가 죽었다. 이듬해 열네 살 봄. 나는 대구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했다. 도기는 집안이 가난해서 시골에 있는 중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했다. 두어 달 뒤 도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못자리에 코를 박고 죽었다 했다. 논두렁에서 꼴을 베다가 발작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그가 죽기 한 달 전 나는 뜻밖에 도기의 편지를 받았다. 그러니까 내가 대구로 와서 중학생이 된 지 한 달 만에 받은 편지였다. 그 편지는 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받아본 편지였다. 철자법이 엉망인데다가 글씨마저 비뚤비뚤해서 앞뒤 문맥을 맞춰보지 않고서는 아니, 상대방의 심성을 잘 알지 않고는 해독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편지에는 나에 대한 부러움과 친구로서의 자랑스러움이 베여 있었다. 아무튼 공부를 못하는 자신의 몫까지 다해서 성공해 주기를 바란다는 흙냄새 짙은 우정이 행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그 편지를 웃으면서 읽다가 끝내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도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던 날 공교롭게도 나는 또 다른 토끼몰이 현장에 있었다.

전교생이 인근 야산으로 송충이 잡으러 나섰다. 우리는 송충이잡이 집게와 누런 종이봉투 하나씩을 들고 시외 야산으로 갔다. 나는 비교적 높은 곳에서 송충이를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래 골짜기 부근이 소란스러워졌다. 토끼 한 마리가 그 많은 아이들 앞에 노출된 것이다. 징그러운 송충이를 잡기 싫어하던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놀이감이 생긴 것이었다. 그 순간 거의 모든 아이들이 송충이를 잡던 통이랑 집게를 내던져버리고 토끼몰이에 나선 것이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환호성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토끼 한 마리에 온 산이 난장판이 된 것이었다. 마치 포탄이 날라드는 전장처럼 토끼 한 마리의 움직임에 따라 아이들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몰렸다. 그것 역시 하나의 거대한 축제장 같았다.

멀리서 구경하던 나는 문득 가슴이 아릿하게 저려옴을 느꼈다. 지난겨울 얼음판 위에서 우리가 때려죽인 토끼가 생각이 났고 동시에 도기가 생각났다. 나도 그 때까지 잡았던 송충이와 송충이잡이 집게를 던져 버리고 토끼 쪽으로 달려갔다.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 없이 그냥 토끼가 있는 쪽으로 무작정 뛰어 내려갔다. 뛰어가면서 울었다. 한순간 슬픔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도기는 손버릇이 좀 나쁘긴 해도 내게는 참 좋은 친구였다. 그런 도기가 너무 불쌍했다. 뾰죡한 솔가지에 긁히고 솔가지에 붙어 있던 송충이가 부딪쳐 쏘아도 개의치 않고 달렸다.

그러나 내가 달려갔을 땐 이미 늦었다. 토끼의 모습은 처참했다. 토끼를 잡아 공을 세우려는 아이들이 서로 가지려 다툼을 벌이는 바람에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찢겨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꽤 오래 동안 나는 눈 내리는 장바닥에서 거품을 물고 발작을 일으키던 도기와 처참한 토끼 모습들이 자꾸만 겹쳐져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完)

(21세기 문학 2010년 겨울호)

      박명호 :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5년 부산작가상 수상
      장편 ‘가롯의 창세기’, 작품집 ‘우리 집에 왜 왔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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