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나는 운좋게도 중국과 평양과 서울을 내 집처럼 다닌다. 아니 내 집 '처럼'이란 표현을 쓰고 보니 마음이 이상하다. 셋 다 내 집이고 또 아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집이 많아서 오히려 어느 곳에도 안유할 수 없는 것이 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마음은 세 곳에 심어져 있다. 중국인들 속에서는 조선인이나 한국인 대접을 받고 한국에 오면 중국인으로 취급받고 조선에서는 “중국동포”라 불리운다. 하지만 나는 세 가지 역할을 가볍게 소화해내고 화사하고 밝은 얼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애쓴다.

압록강에 흉하게 한쪽 다리로만 서있는 철교를 내 기억에서 지우고 싶고 판문점에 가지 않는 내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싶고 수많은 꽃들 중에 진달래만 유난히 머리에 각인이 되는 피폐한 시선을 다스리고 싶다. 사업 관계로 나는 가끔 한국 분들과 압록강을 찾을 때도 있고 중국인들과 함께 판문점을 관광코스로 정할 때도 있다. 압록강에는 중국과 조선을 잇는 철교가 두개 있다. 하나는 한쪽이 끊긴 상태로 하나는 새로 만든 다리로 현재 중국과 조선인들이 그 위로 서로 오간다.

유독 동족인 한국인들만이 다리 위를 건너지 못하고 다리 밑으로 중국인이 운전하는 똑딱선이나 유람선을 이용하여 지척에 두고도 잡을 수 없는 형제의 손, 마주잡을 수 없는 손을 흔들어 스치며 만나는 인사와 작별의 눈물을 쏟는다. 또한 강 건너 '우리'땅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보려고 비싼 댓가를 치른다.

그 비싼 댓가 덕분에 윤택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중국인들의 유람선이나 똑딱선의 모습은 날로 번창하고 있다. 반면 무표정하고 어수선한 신의주 보통 시민들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마음 한끝에서 솟구치는 오열을 참지 못하게 한다. 언젠가 한국에서 오신 어느 분이 나에게 “압록강에는 철조망이 없네요”라고 하셔서 휴전이라는 명사의 위력에서 자유로운 중국 조선족의 처지에 자부심을 잠깐 가진 적이 있다. 한국에서 월미도공원이나, 통일전망대, 판문점은 관광코스의 하나로 지정이 되어있지만 나는 관광객들과 함께 어울리기 싫다, 더구나 중국의 바이어나 관광객들과는 판문점에 더더구나 가기가 싫어진다.

분단된 우리민족의 아픔이 다른 민족들에게는 한 낮 여행지나 휴가를 보내는 코스로만 보여지는 것에 비참함이 묻어났고 우리 가치는 피눈물의 댓가로 일부는 부를 누리고 있다니~?

평양관광시에도 마찬가지다. 개성판문점에서 동행한 관강객 일행과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한국헌병과 조선 인민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어쩔 수가 없었다.

나의 렌즈에 휴전선 한가운데서 앙상한 나뭇가지에 나마 화사하게 꽃을 피우는 진달래가 비껴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나무들은 단풍을 불태워 낙엽으로 지는 계절에 진달래는 못다 핀 사연이 있어서 8월말 가을 해볕에 한 번 더 꽃을 피우고 있었다.

중국 압록강에서 철조망을 보지 못하고 사는 중국인들이 한국여행 시 정해져 있는 판문점 관광코스 때에 나는 핑계를 대고 가질 않았다. 판문점 3.8선을 보고 중국에 돌아가면 그들은 나에게 고향이 조선이냐 한국이냐 하고 물을 것이다. 나는 대답을 피할 것이다. 중국 사람이라고 대답해도 그들은 중국 땅에서도 분명히 자기의 말을 하고 김치와 찰떡을 선호하는 나를 중국인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핵문제로 시끄러울 때도 중국인들 속에서 늘 질문을 받는 상대가 되어야 하고 한국국회에서 시끌벅적할 때도 많은 질문을 받아왔다. 별 볼일 없는 일개 시민이지만 중국한족과 다른 민족은 나에게 늘 북핵문제나 한국국회 일에 대하여 궁금증을 풀어보려고 한다. 그들의 시각으로는 나는 분명히 조선인이나 한국인이기 때문이리라.

그들이 판문점에 가고 없을 때 나는 홀로 인천상륙작전 공원을 찾았다. 높다란 계단을 올라보니 인천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한가운데에 그 유명한 맥아더 장군이 지휘했던 미국 참전 군인이 총칼을 부여잡고 있는 동상이 보이고 그 커다란 군화 밑에서는 인공으로 만들어놓은 봉화가 타오르고 있었다.

인천의 또 다른 공원에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우뚝 솟아있는 것을 보면서 조금 더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중국에서 태어나서 역사공부는 당연히 중국입장에서 배웠기에 맥아더는 분명히 나에게는 아군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다. 더 아이러니한 일은 한국은 동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아군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나의 시각에서 볼 때는 아군과 적군이 한가마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목격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의 충격을 잘 소화하여서인지는 몰라도 한국 땅에서 활보하는 미군병사들을 보아도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북조선의 동족들이 미군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월미도' 영화를 보면서 미국놈들이라 미웠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생각에 허구픈 웃음으로 자신을 무마한다.

미국군인은 같은 우리민족에게서 영웅의 칭호도 받고 철전지 원쑤로도 간주되는 이중생활을 하고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공원의 정중앙에는 미군군화 밑에서 아직도 아롱이며 피어오르는 인공 봉화가 타오르고 있다. 나는 저 인공봉화가 언제쯤이면 꺼질 수 있을까, 하는 천진한 생각을 하면서 산책로를 따라 이동한다.

미군이 사용하던 장갑차와 비행기가 널직하고 높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귀퉁이를 굽이도는 어구에 한국 역대의 유물과 애국지사들의 흔적이 초라하게 작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옆에 앙상하게 말라있는 가지에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삼월의 진달래 모습이 유난히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판문점 휴전선에서 가을에 보았던 진달래 모습 그대로였다.

삼삼오오 희희낙락 진달래꽃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인다. 활짝 웃고 있는 내 동족의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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