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재외동포문학상 / 김은련(미국)

“제 애비 밀어내고 나온 녀석…….”

이제 막 1살이 된 훈이가 거실 바닥을 기어와 살며시 무릎에 기대자 외할머니는 훈이를 바라보시며 한숨을 내쉬셨다. 영문도 모른 채 웃기만하는 훈이를 바라보시던 외할머니는 주름진 손을 내밀어 훈이의 얼굴을 안쓰러운 듯 쓰다듬으셨다. 어머니의 산후 조리 때문에 오신 외할머니께서 서울의 용하다는 점집에서 훈이의 사주를 보고 오신 후 항상입에 달고 계신 말씀이셨다. 훈이의 사주에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다.

훈이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집을 나간 것이 그것 때문이라고 믿고 있으셨다. 정말 외할머니의 말씀처럼 훈이가 아버지를 쫓아내는 사주를 타고 난 것이 사실일까. 왜냐하면 훈이가 태어나고 바로 집을 나가신 아버지가 1년이 다 되도록 집으로 돌아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훈이는 하루하루 건강하고 밝게 잘 자랐지만 외할머니는 팔이 아프시다는 핑계로 훈이를 한 번도 안아주시지 않으셨다. 혹시나 아버지가 오시지 않을까 기대했던 훈이의 첫 돌에도 아버지는 오시지 않으셨다. 돌이라고 해봤자 나와 소희 때와 달리 케이크 하나와 장식 풍선 서 너 개가다였다. 우리 삼남매 중 가장 초라하고 쓸쓸한 첫 번째 생일날을 맞이

한 훈이를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한 사람은 어머니 뿐이었다.

훈이에게 냉랭하시던 외할머니께서는 첫 손주인 나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셨다 내가 태어났을 . 때부터 해마다 한국에서 오셔서 키워주신 외할머니에게 나는 특별한 존재였다. 거의 8년 후 동생 소희가 태어나기전까지 하나 밖에 없는 손자인 나 혼자 집안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다. 매일 아침 시리얼을 먹거나 굶고 학교에 가던 나에게 외할머니는 계란 하나라도 구워 아침 밥상을 꼭 차려 먹여주셨다. 또 저녁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들과 국이나 찌개를 끓여 따뜻한 밥을 해주셨다. 그동안 내가 혼자 해 먹던 냉장고 가득한 인스턴트 음식들은 외할머니께서 오신 이후 먹을 일이 없어졌다. 하지만 집안 가득 구수한 음식 냄새가 흘러넘치고 외할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아도 내 마음에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한 무언가가 있었다.

매일 새벽 일찍 일터나 학교에 가야하는 어머니가 한국에서 오신 두 노인네에게 해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케이블 방송을 신청해 드린 것뿐이었다. 나와 소희가 없는 낮에는 훈이를 돌보시며 지나간 한국 드라마나 뉴스, 쉴 새 없이 나오는 광고뿐인 텔레비전만이 유일한 낙이되었다. 매번 미국에 오시면서 변변하게 관광 한번 못하시고 집에만 계시다 가시면서 항상 오실 때마다 쌈지돈을 털어 우리들의 선물들을 사오셨다. 그것도 모자라 쉬시지도 않고 계속 집안 일만 하시다 가셨다.

몇 해 전 외삼촌네도 미국으로 유학을 와 두 분이 외롭게 한국에서 사시다가 이렇게 모두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하셨지만 하루 종일 집안에서 갇혀 지내는 일상이 반복되자 곧 바쁘게 사시던 한국 생활을 그리워하기 시작하셨다.

외할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정년 퇴직하셨는데 한평생 나라를 위해 일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정년퇴직 후 70이 넘은 연세에도 한국에서 활발하게 사회활동 하시던 외할아버지께서 특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미국에 계시는 것을 갑갑해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 없이 하루도 생활 할 수 없으셨기 때문에 어디를 가시더라도 항상 꼭 같이 다니셨다. 미국에 오셔서도 세 끼니를 국과 밥으로 외할머니가 차려 드려야만 식사를 하셨다. 할 일이 없으신 외할아버지는 생각다 못해 한인록을 뒤져 동문회에 연락 했다. 외할아버지는 바로 동문회 모임에 초대를 받으셨다. 한국 최고 대학의 동문회 모임에서 선배를 모시러 집 앞으로 차까지 와 외할아버지를 흐믓하게 했다. 그날 저녁외할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서 오셔서는 누군가가 자기를 소개해줘서 연

단에 서서 인사도 했다고 자랑했다.

“아, 글쎄 갑자기 누가 고위 공직에서 정년퇴직하고 얼마 전에 한국에서 오신 대선배님을 소개하겠다고 하잖아? 그래서 얼떨결에 나가 한마디했지.”

하지만 그날 이후 동문회에서 외할아버지에게 더 이상 연락은 없었다.

“남들은 속도 모르고 내가 미국을 밥 먹듯 드나든다고 부러워만하지…….”

한국의 외할아버지 친구분들은 외할아버지께서 미국에서 이렇게 지

내는 줄 모르고 편안히 자식 집에 놀러나 다닌다고 하신다는 것이다.

오시던 날부터 집안의 손주들 뒤치다꺼리나 하고 바람난 딸, 집 나간

사위 불안한 아들 , 직장 걱정이나 하고 있을 줄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는 게임에만 빠져 있고, 소희는 고집불통에다 제멋대로, 못마땅하게

태어난 늦둥이 훈이까지 어느 것 하나 우리 사는 모습이 외할아버지

보시기에 만족스러운 것이 없으셨을 것이다.

“너희 아버지가 집에 없으니 너희들이 엉망이구나… 이 어린 것들을

놔두고 집에 안 들어오다니 괘씸한 애비일세.”

외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탓을 했다. 더구

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미국에서 외할아버지와 말 상대 해주던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외할아버지 자신에게도 지내기 힘드신 일이셨

다. 어머니, 외삼촌 가족 모두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얼굴 보기도 힘들

었고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와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으셨

다. 두 분의 관심사와 의견이 너무 틀리기 때문이었다.

외할아버지는 호기심을 가지고 미국 방송을 보시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나 나를 부르셨다. 서툰 한국말로 내가 통역해 드리면 혼

자말로 그래, 그렇지, 아니면 아이고 그래서? 하시며 내가 대견스러우

신지 더 오래 붙잡고 이것저것 말씀하시고 싶어 했다.

“미국이 참 좋아졌구나. 오바마 같은 사람도 대통령에 당선되고…이

것 좀 봐라.”

외할아버지께서 매일 이메일을 열어 보시고 나서 인터넷에서 뉴스나

기사를 찾아내게 보여주시면서 이런 저런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평생

을 공직에만 계시고 돈이나 집안 일 돌아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셨던

외할아버지는 사회나 정치적인 화제에 더 관심을 가지신 분이셨다. 특

히 외할머니께서 적은 공무원 월급으로 집안 살림을 하시면서도 한 번

도 외할아버지에게 돈 걱정을 시키지 않으신 덕분에 더욱 현실에 무감

각 해지셨다고 했다 . 식구들은 그런 외할아버지를 비현실주의자 같다

고 뒤에서 불평하곤 했었다. 그 중에서도 그런 외할아버지에 대한 어머

니의 반감이 가장 심했다.

“그런데, 김 서방은 왜 이리 집에 안 들어오는 거야?”

오후 해질 무렵이 되어 집안에 어두운 적막이 흐르면 외할아버지는

뜬금없이 아버지가 왜 집에 안 들어 오냐고 역정을 내시며 성화를 부리

시곤 하셨다. 그때마다 외할머니는 입을 다무시고 방으로 들어가 자리

에 누우셨고 외할아버지 거실에서 혼자 성질을 부리셨다. 성격이 불같

이 급하고 보수적이신 외할아버지에게 누구도 우리 집 이야기를 꺼내

고 싶어하지 않아 유일하게 살갑게 대하시는 며느리인 외숙모가 우리

집안 사정을 자세히 말씀 드렸다고 했다. 외숙모는 외할아버지께서 사

위가 집을 나가 왜 안 들어오는지 잘 아시면서 저렇게 모른 척하시는

것은 지금의 이 상황을 못 받아 들이시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존

심 강한 외할아버지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가 매일 바쁘다는 핑계로 두 노인네와 대화를 피하는 이유는 더

이상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겠다는 무언의 표현이었다. 그것을 잘 아

시는 외할머니는 어머니를 그냥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하지만 성화를

부리시는 외할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며 우리들 챙기느라 심신이 지치신

외할머니께서 드디어 몸져누우셨다. 그제야 한국으로 돌아갈 이유를

찾은 듯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에게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재촉하

시기 시작했다. 이곳에 더 있어봐야 상황이 나아질 희망도 없고 마음만

아프고 몸만 상한다고 판단하신 것이다. 병원비가 비싼 미국에서 보험

도 없는 노인네가 병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라고 하시며 어머니와 외삼

촌 내외가 붙잡아도 서둘러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하셨다. 아마도 딸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더 이상 보기 싫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다행히 예전에 우리를 봐 주시던 아주머니가 외할머니 대신 우리를

봐 주러 오시기로 했지만 외할머니는 이국땅에 아이 셋과 홀로 살아갈

딸의 앞날 걱정 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하셨다. 한국으로 떠나시기 전날

밤 어머니도 그동안 외할머니에게 데면데면하게 대했던 것이 미안한지

외할머니와 내가 자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셨다.

“아버지가 저렇게 한국 들어가자고 난리시니 나도 어쩔 수 없구나.

사실 내 몸도 성치가 않고…….”

“그래도 난 밖에 있는 동안 엄마만 믿고 안심 했었는데 이렇게 일찍

한국에 돌아가실 줄 몰랐어. 좀 있다 시간나면 맨해튼이라도 구경 시켜

드리려고 했는데…….”

잠결에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에 나는 깨어났지만 그냥 자는 척하며

계속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대화를 들었다.

“구경은 무슨… 지금 이 경황에… 그런 것 안 해도 된다. 너희 아버

지하고 내놓고 이야기는 못하고 있다만 대충 혜나 어미한테 듣고 다

아시는데도 그 성격에 지금까지 잘 참고 계시네. 내가 그 양반 때문에

도 여기 더 못 있겠다.”

“올케가 다 말 했다니까 잘 됐네.”

“못된 것, 들어와 같이 살면서 힘들게 사는 시누이 좀 도와주면 안

되나.”

외할머니는 이웃에 사는 외삼촌 내외가 우리 집에 들어와 살면서 집

안을 돌보고 우리들도 좀 보살펴 주기 바랬지만 외숙모가 거절한 것에

매우 서운해 하셨다.

외삼촌 내외는 미국에 몇 년 전 유학을 와 우리 집에서 한동안 같이

살며 우리를 돌봐주었지만 외삼촌이 졸업하고 취직이 되면서 따로 나

가 살기 시작했다. 외삼촌댁에도 2살짜리 딸아이가 있어 우리와 같이

살았을 때는 집이 아이들 넷으로 아수라장이었다. 외삼촌이 외할머니

께서 부치시는 돈으로 공부할 동안에 힘든 내색없이 우리를 잘 돌봐주

던 외숙모는 외삼촌이 돈을 벌기 시작하자 우리들을 돌보는 것이 힘들

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 매일 바쁜 어머니

를 대신 해 우리를 고스란히 맡게 된 외숙모가 가장 힘들어한 것은 소

희가 외숙모의 딸 혜나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소희가 1살 어린 외숙모

의 딸 혜나를 괴롭히는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자기는 아빠가 없는데

외숙모 딸 혜나는 아빠에다 매일 엄마도 집에 있다는 이유로 장난감을

혜나에게 던지고 때리며 못살게 굴었다. 순한 성격의 혜나는 매일 소희

에게 얻어맞기만 하고 울었다. 그러다 소희는 저녁에 퇴근하는 어머니

에게도 소리를 지르고 투정을 부리며 히스테리를 부렸다. 무엇이든 제

마음대로 해야만 했고 그것이 안 되면 바닥에 드러누워 울며 소리를

질렀다. 소희는 어렸지만 자기도 모르게 받은 아버지에 대한 스트레스

를 이렇게 난폭하게 표출했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엄마, 아빠 없이 있

도록 한 것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소희를 혼내지 않자 소희는 더욱더

제멋대로 굴었다 외숙모도 . 소희가 말을 안 들어도 자기 아이가 아니어

선뜻 나서서 혼내지 못했다. 그렇게 참던 외숙모가 한번은 내가 할로윈

데이 전날 저녁 학교에서 할로윈 파티에 입을 옷을 사야 된다고 말했더

니 갑자기 화를 냈다.

“도대체 너희 엄마는 뭐하는 거니? 너는 그걸 이제 와서 나한테 이야

기하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외숙모는 먹던 저녁 밥상을 서둘러 대충 치우고 우리 모두를 차에

싣고 쇼핑몰로 향했다. 3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나까지 데

리고 움직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날 나는 외

숙모의 뜻밖의 태도에 놀랐다. 외숙모를 어머니처럼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들이 가게 안을 정신없이 뛰어 다니자 나는 입고

싶었던 스타워즈 분장 찾기를 포기하고 드라큘라 분장 옷이 눈에 띄자

대충 집어 들고 빨리 계산대로 나왔다.

“이런 것까지 맨날 내가 다 사줘야 하나? 뭐야 이게…….”

계산을 마친 외숙모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있

던 동생들을 쫓아갔다.

“이왕 이혼 할 것이면 이 어린것들이나 잘 키우고 그냥 혼자 살거라.

애들 아범이 아이들 양육비도 보내고 너도 버니까 먹고 사는 걱정이야

없잖아.”

외할머니의 말씀을 가만히 듣고 있던 어머니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애들이나 키우고 혼자 살려고 했으면 먼저 이혼 하자고 하지

도 않았어 애들 . 아빠 말대로 그냥 지금처럼 살지. 그 사람이 왜 집을

나간 줄 알아? 내가 먼저 애들 놔두고 나갈까봐 미리 선수 친 거야.

머리 하나는 정말 좋아. 모든 일을 계획적으로 하는 사람이니까. 그 사

람하고의 미래는 생각하기도 싫어. 난 애들 아빠와 빨리 깨끗이 끝내고

새로운 내 인생을 찾고 싶어.”

외할머니는 자신의 힘으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느낀 것

같았다.

“그러면 이것아, 아이들은 애들 아빠에게 보내고 새 인생을 찾던가.

바보 같이 이 아이들을 다 맡아서 어쩌겠다는 거냐. 그리고 그 전부터

둘이 갈라서려고 마음먹었으면 막내는 왜 또 낳아가지고서… 쯔쯔

쯔…….”

“지우려고 병원까지 갔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서 그냥 돌아왔

어. 그때도 애들 아빠는 내게 멍청하게 애를 그냥 낳으려고 한다고 난

리를 피우는 걸 내가 우겨서 낳은 거야. 엄마도 마음 풀고 훈이 좀 예쁘

게 봐줘. 제 아빠랑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불쌍한 아이잖아.

그 아이 인생을 이렇게 만든 건 다 우린 걸… 애들 아빠는 자기만 알고

아이들에게 관심도 없는 사람이야. 그 동안 살면서 아이들하고 나한테

한 번도 따뜻하게 대해 준 적이 없었어. 오히려 애도 없는 잭이 우리

애들을 더 좋아 해. 나만 애를 셋이나 데리고 가서 좀 미안한데 양육비

도 내고 나도 생활비는 낼 거니까… 이 아이들도 자기만 아는 무책임한

제 친아버지 보다 잭이 훨씬 아버지로써 낫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잭은

애들 아빠하고 달라.”

한 때는 이 집안의 기쁨이고 희망이었던 나의 존재가 이제는 쓸모없

는 짐짝처럼 부모님 인생의 걸림돌 신세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슬퍼

졌다.

“이 바보 같은 것아! 그렇게 살고도 아직 남자를 믿느냐? 다 그 놈이

그 놈이야!”

외할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지르셨다.

잭은 강한 러시안 악센트를 쓰는 러시안 이민자로 잘생긴 미남이었

다.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키가 아주 큰 전형적인 유럽 스타일의

남자였다. 조용한 목소리에 차분한 동작은 내가 봐도 매력적이었다. 함

께 일하는 직장에서 인기 많은 그가 애가 둘에 임신해서 배가 부른 유

부녀인 어머니를 좋아하자 모두 놀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잭이 임산부

인 어머니가 힘들게 일하는 것을 옆에서 도와주다 차츰 정이 들고 가까

워졌다. 일과 공부 그리고 육아와 살림까지 하느라 심신이 황폐해진 어

머니에게 무심한 아버지와 반대인 자상하고 핸섬한 남자가 나타나 위

로를 해주니 어머니는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잭도 가정

이 있는 유부남으로 아내 메리의 불임 때문에 남모를 고민을 안고 있었

다. 대학에서 만난 잭의 아내는 잭과 결혼하면서 그에게 영주권을 해

주고 병원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 여자였다. 그래서 잭은 어머니를

만나자 아내에게 빚진 기분과 배신에 대해 미안함을 가졌다. 아버지는

잭이 신분을 위해 여자를 이용해 결혼해 놓고 이제와 바람이 난 아주

비열한 인간이라고 어머니도 언젠가는 또 다시 버릴 것이라는 악담을

해댔다.

“엄마도 알잖아 ? 내 인생은 처음부터가 내 것이 아니었어. 아버지는

자신만 중요했지 나 따윈 관심도 없었잖아? 내가 대학 입학시험 칠 때

뒤늦게 박사 공부 시작한 아버지가 오빠 공부에 나까지 의과 대학 보내

는 것은 힘들다고 의대 떨어진 나를 데리고 간 곳이 어디였어? 그래,

집 앞에 있는 간호 전문학교더라고 아버지는 처음부터 내가 재수 할까

봐 겁이 났던 거야. 그때 아버지가 내게 뭐라고 한 줄 알어? 여기 나오

면 취직도 잘 되고 시집도 잘 간다고. 고맙게도 미국 와서 그나마 그걸

로 밥벌이는 하니 맞는 말씀이네. 하지만 가고 싶은 대학에 못간 것 때

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어? 그래서 모두 다시 시작하려고 미

국 온 건데… 나 이제라도 처음부터 전부 다시 시작 할거야.”

어머니는 자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그래, 이것아 공부 더 하겠다고 미국에 왔으면 공부나 더 할 것이

지… 왜 남자는 만나 가지고 네가 원하던 공부도 못하고 이날까지 똥,

오줌 받아내는 고생만 하고 있냐.”

외할머니께서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결혼이고 내가 사서 한 고생이야. 그

사람 공부 더 하라고 한 것도 나야. 난 내가 살아 온 거 후회 없어. 이제

라도 잭이랑 정말 새롭게 잘 살 자신 있어.”

어머니는 외할머니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그 사람도 처가 있다며. 네가 남의 가정까지 깨가며 이렇게 살아야

겠니? 막말로 김 서방이 널 때렸냐. 노름을 하냐. 단지 자기 일에 미쳐

산다는 것과 너한테 따뜻하게 대해 주지 못했다는 건데 그런 걸로 이혼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너희 아버지 성질 너도 잘 알지? 너 그 외국

사람하고 살면 너희 아버지하고 너하고 인연 끝이다. 아직 아버지가 그

건 모르시니까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김 서방에게 빌고 합치자고해

라. 이제 조금만 더 고생하면 모두 편안히 잘 살 수 있을 텐데… 그걸

못 참고…이 바보야… 이제라도 애들 애비가 이번 일 그냥 넘어가 준

다면 제발 그냥 같이 살아라, 응? 이 어미를 봐서도 안 되겠니? 아버지

그러는 것 평생 보고 살았는데 사위라고도 그런 인간이 들어와 내가

너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만… 에휴, 나도 모르겠다. 네 팔자나 늘

그막에 이런 꼴 보는 내 팔자가 왜이런지…….”

두 모녀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아련히 멀리서 들려오면서 우리 가족

이 가장 행복했던 텍사스에서 살던 때가 떠올랐다. 회사에서 보내준 어

학연수를 하기 위해 미국에 오신 아버지와 공부를 하러 오신 어머니가

같은 대학의 한 영어 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한국 학생이 드물던 시절

아버지는 어머니와 금세 가까워졌고 서로 의지하게 되었다. 1년의 짧

은 영어 연수가 끝나고 다시 한국의 회사로 돌아 갈 계획이셨던 아버지

는 어머니를 만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시게 되었다. 한국에서 간호

사로 일하셨던 어머니가 미국 간호사 라이선스를 받아 돈을 벌어 아버

지를 계속 공부 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머니는 자신

의 학업을 포기하거나 아버지에게서 대리 충족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

다. 그저 누군가 한 사람은 돈을 벌어야 했으므로 직장을 먼저 구하기

쉬운 어머니가 돈을 벌기로 하고 아버지 공부가 끝나면 아버지가 직장

을 구해 어머니를 공부시키기로 약속한 것이다. 아버지는 예전부터 학

업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바로 직장을 다녀

야만 했었다 생각지 . 않게 미국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마

치 오랫동안 준비 해 온 사람처럼 학교에서 금세 두각을 드러냈다. 자

신의 꿈을 미루고 낯선 땅에서 아버지 뒷바라지를 위해 돈을 벌기로

한 결정은 사랑이나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더구나

어머니는 영주권을 얻기 위해 힘든 널싱 홈에서 매일 환자나 노인들의

대소변을 치우는 일을 해야만 했다. 매일 절인 파김치처럼 피곤하게 일

하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꼼짝하지 않고 시체처럼 잠만 잤

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희망이 있었고 어머니의 꿈

도 머지않아 이룰 수 있다는 기대에 차 있었기 때문에 힘든 줄 모르고

열심히 일했다. 우리도 한 때 소박하지만 평화롭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

다는 것이 이젠 꿈만 같이 느껴진다.

다행히 학위를 받기도 전에 대학에 강의를 나갈 수 있게 되어 꽤 많

은 돈을 벌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점점 커가는 우리를 위해서라도 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좁고 낡은 학생 아파트를 전전하던 우리 식구

들은 번듯한 우리 집을 가진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집을 사자 아버지는

아메리칸 드림이 이루어진 것 같이 좋아했지만 앞으로 은행에 융자한

집값을 내기 위해 계속 일 해야만 하는 어머니의 얼굴빛은 밝지만 않았

다. 아버지의 공부가 끝나고 자신이 공부할 차례가 되기만 기다리던 어

머니가 일을 계속 해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머니의 꿈과는 멀어

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아버지도 대학에서 살아남기 위해 학생

때 보다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여유가 없어졌다. 완전하게 자유롭지

못한 영어로 미국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해야 하는 부담과 남들보다

더 좋은 논문을 써서 유명 학회지에 내고 싶은 욕망으로 스스로를 채찍

질했다 이런 아버지의 .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는 차츰 아버지

가 자신의 출세에만 관심 있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되기 시작했

다. 어머니는 교직원 가족에게 학비가 면제 되는 아버지가 근무하는 대

학에 몇 학점 등록했다. 학생들과 교수들 사이에 어머니가 공부하러 오

는 것을 봤다는 소문이 나자 아버지는 학교에서 어머니와 부딪치는 것

조차 싫어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여동생 소희를 가져 어머니가 휴

학을 하자 아버지도 뉴욕의 한 사립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뉴

욕으로 일자리를 옮기게 된 아버지는 기뻐했지만 모든 생활 터전을 옮

겨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머니는 내켜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산지 얼마되지 않은 집을 다시 내놓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켓에 내놓은 텍사스의 집이 생각보다 오랫동안 팔리지 않

고 어머니의 텍사스 간호사 라이선스가 뉴욕 간호사 라이선스로 바꾸

는데도 시간이 걸려 일을 하지 못하자 순식간에 빚이 크게 불어났다.

“집을 사놓고 이렇게 금방 뉴욕에다 일자리를 구하면 어떻게 해?”

“이렇게 될 줄 그땐 몰랐지. 할 수 없잖아.”

“이 학교에서도 테뉴어 못 받으면 어떻게 할 거야? 또 이사 가야

해?”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다그치듯 물었다.

“열심히 해서 받도록 해야지. 교수라는 직업이 그런 걸 어떻게 해.

그러니까 내가 안정 될 때까지 당분간 당신의 도움이 계속 더 필요하다

는 거야.”

끝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불투명한 미래는 어머니에게 암담한 현

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뉴욕으로 이사와서부터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다툼하는 날이 잦아졌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잊고 학업에만 열중하

도록 어머니가 도와주었으면 했지만 어머니는 기다림에 지쳐가고 있었

다.

“당신, 내가 지금 몇 살인지 알아? 내가 언제까지 똥, 오줌이나 시체

를 치우며 살아야 하는 거야? 솔직하게 말해 봐. 이제 와서 당신 공부

끝나니까 마음 바뀐 것 아니야? 처음부터 나를 이용하려고 결혼한 거

였지?”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매일 죽어 나가는 시체를 치우거나

뇌사 상태에 있는 환자들만 다루어 항상 우울 할 때가 많았고 일에 흥

미가 없었다. 돈이 아니라면 하루 빨리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이 간절했다. 그런 어머니가 일에서 돌아오면 아버지는 재수없는 기운

을 집에 가져 온다고 말해 한 번 더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었다.

“내가 당신을 이용했다고? 그까짓 돈 좀 벌어 왔다고 지금 나한테

생색내는 거야?”

“뭐라고? 그까짓 돈?”

“그래, 나도 그동안 장학금 타고 조교도 하면서 공부했어. 당신 일하

는 동안 내가 애도 보고 집안 일도 했다고. 서로 이제 와서 이런 것

다 따지겠다는 거야?”

“흥, 당신 그 동안 우리가 쓴 돈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 그리고 한국

우리 집에서 보내 준 돈도 얼만 줄이나 알아? 당신 집에서는 뭐 해줬는

데?”

“우리 집에서 뭐 해줬냐고? 대학원 학비도 한번 내줬잖아. 그리고

당신은 우리 집안 맏며느리라는 것 잊지 마. 그동안 명절이나 제사 한

국에 있는 제수씨가 다 당신 대신 해 온 것 잊었어? 미국에 있다는 핑

계로 아무 것도 안하고 편하게 잘 지내놓고는…….”

“뭐라고? 내가 미국에서 편하게 잘 지냈다고?”

아버지의 공부가 끝나면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될 것이라고 믿었던 아

버지와 어머니는 빗나간 현실에 크게 실망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다시 학교에 등록하자 어머니

는 또 아기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다. 학교를 등록 할 때마다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은 어머니는 아버지가 계획적으로 임신을 시킨

것이 아닐까 의심 했다. 지난번 소희를 임신했을 때처럼 어머니가 학교

다니는 것을 포기할 것이라 생각했던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아이도 포

기할 수 없고 공부도 포기 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시던 아버지는 설거지를 하고 있는 어머니

에게 후식으로 과일을 가져오라고 시키셨다. 잠시 후 무거운 배를 앞으

로 내밀며 사과를 깎아 들고 온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 말대로 지금 그 나이에 공부 시작해서 그깟 학부 졸업장 따서

뭐할 건데? 그걸로 어디 다른데 취직이라도 하려고? 당신 아버지도 쓸

데없이 박사 학위 딴다고 온 식구 고생 시킨 것 보면 집안 내력인가보

지? 당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당신이 하는 짓이

꼭… 괜한데 시간 낭비, 돈 낭비하지 말고 아이들이나 잘 키우고 나

내조나 잘 해. 공부는 아무나 하는 줄 아나…….”

평소에도 한국에서 명문 대학을 나온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무시하는

말투로 말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자신의 오랜 희생으

로 공부를 마친 아버지가 고마워하기는커녕 더욱 비아냥거리자 어머니

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결혼할 때 했던 약속은 어떻게 할 거야?”

부엌으로 돌아가 다시 씻던 설거지 그릇을 쾅 소리가 나게 던지고

어머니는 거실로 걸어 나오며 아버지에게 따지듯 물었다.

“아니, 결혼할 때 약속한 걸 다 지키는 사람도 있나? 그 때는 하늘의

별도 따다 준다고 할 때라고. 정신 차리고 지금의 당신을 좀 보라고.

이젠 조금 있으면 애도 셋이나 되. 그때랑 지금은 상황이 많이 틀리잖

아. 생각 좀 하고 살아. 우리에겐 적지 않은 빚도 있다고, 아이들 키우

고 빚 갚기도 머리가 아픈데 뭐라고? 그리고 앞으로 교수 사모님으로

편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아버지는 사과를 씹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어머니를 쳐다보며 말

했다.

“교수 사모님? 누가 그런거 하고 싶대? 그리고 그 빚 누구 때문에

생긴 거야?”

“내가 나만 좋다고 이러는 거야? 다 우리를 위해서 그러다 이렇게

된 거지. 가장인 내가 자리를 잡아야 우리 식구 모두가 편해진다는 걸

모르겠어? 정말 답답한 여자군.”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내 꿈을 포기해본 적 없었어. 그리고 당신의

성공이 왜 나의 성공이야?”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서고서야 두 사람의 다툼이

끝났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와 숙제를 거의 끝낼 때쯤 제일 친한 친구인

챈에게서 전화가 왔다.

챈은 내가 뉴욕에 오고 처음으로 사귄 한 동네 친구로 우리 집에서

몇 블록 안 떨어진 곳에 사는 중국 아이였다. 낮에 외할머니와 둘만 집

에 있는 챈은 심심하면 내게 전화를 해 자기 집으로 불렀다. 우리는 낮

에 부모님이 없다는 것과 형제 없이 혼자뿐인 그 아이와 동생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 혼자 놀던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아 쉽게 친해졌다. 같이

살던 외숙모에게 그 날도 놀다 오겠다고 이야기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

온 나는 학교에서 퇴근하신 아버지에게 혼이 났다. 챈의 어머니가 우리

집에 왔었다는 것이다. 챈이 자기 외할머니에게 말도 없이 사라져 일에

서 돌아온 챈의 어머니가 화가 나 우리 집으로 아들을 찾아 온 것이었

다. 그날 챈과 나는 챈의 집에서 만나 이웃에 있는 다른 친구의 집에

가 놀았다. 외숙모는 내가 어디를 돌아다니다 왔는지 궁금해 하기보다

챈의 엄마와 함께 온 백인 남자가 누군지 더 궁금해 했다.

“너, 챈의 어머니랑 같이 온 남자가 누군지 아니?”

“몰라요. 왜요?”

“걔는 완전 중국 아인데, 아빠 같이 보이던 그 사람은 백인이던데?”

나는 그 남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지만 왠지 외숙모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대답하기 싫었다. 하지만 며칠 후 아버지가 내게 다시 물었을

때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챈 엄마는 챈 아버지하고 이혼하고 지금 그 백인 남자 친구랑 같이

살아요.”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내게 이제 챈이랑 어울리지 말라고만 하

셨다.

어머니의 배가 제법 많이 불러오자 헐렁한 병원 유니폼으로도 가려

지지 않았다 항상 푸르스름한 . 색이나 회색의 유니폼만 입고 다니던 어

머니가 어느 날부턴가 사복을 따로 챙겨 일하러 나가기 시작했다. 어머

니의 입가에 반짝거리는 립스틱만큼 얼굴이 밝아지고 생기 있어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쯤이었던 것 같다.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유난히 요란하게 집안에 울렸다. 누가 걸어 온 전화인

지 아버지는 영어로 한참을 통화 한 뒤 표정이 점점 굳어져갔다. 키가

크고 목소리도 크신 아버지는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시는 성격

이셨다. 전형적인 경상도 사람이신 아버지는 어머니나 우리들에게도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사랑을 잘 표현 하실 줄 모르시는 분이셨다. 멍

하니 한참을 해가 떨어지는 거실 창가에서 서성이시던 아버지는 옆에

서 징징거리는 소희의 울음소리에 정신이 드시는지 소희를 번쩍 안아

올려 꼭 껴안으셨다. 아버지의 거친 수염이 소희의 볼에라도 닿았는지

소희는 더 큰 소리로 울어대었다.

잭의 아내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한 그 날 저녁 이후 아버지는 더 이

상 안방에서 주무시지 않았다. 낮에 항상 혼자 지내던 지하 방에 아예

잠자리까지 가지고 가셨다. 집안에는 차가운 공기가 흘렀고 아버지는

하루 종일 지하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안 그래도 모두 말하려고 했었어.”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담담하게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순순히 인정하

자 아버지는 더 기가 막힌 표정이었다.

“이혼해.”

아버지는 그저 모든 것을 참고 희생만 하는 여자로만 알았던 어머니

에게 이런 면이 있으리라고 짐작도 못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마음을

돌려보기 위해 온갖 제안을 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의 제안을 아무 것

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아버지는 잭까지 만나 사정을 해

보았지만 어머니는 계속 아버지에게 오로지 이혼만 요구했다.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한국의 외할머니께 연락해 도움을 청했다.

“장모님, 어미가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닌 줄 아십니까?”

아버지는 외할머니라도 딸의 잘못을 빌어주길 바라는 당당한 표정

으로 말했다.

“그래. 그래서?”

외할머니의 기죽지 않은 뜻밖의 대답에 아버지는 눈이 둥그레지

셨다.

“네?”

“자네는 어미가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외할머니께서 어머니를 이렇게 만든 원인을 아버지의 탓으로 돌리자

상황은 오히려 거꾸로 되었다.

단편소설 부문 59

“만약 이 사람과 헤어져도 애들은 못 줍니다.”

아버지는 마지막 카드로 우리를 내밀었다.

“당연하지 김 씨 . 아이들인데 당연히 자네가 데리고 가야지. 왜 얘가

데리고 가나? 자네가 다 데리고 가게나.”

작은 짐 가방 2개를 달랑 들고 아버지께서 집을 나가시던 날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항상 당당하시고 자신만만하시던

아버지의 눈물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나는 그제야 내게 닥쳐온 불행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을 나가신지 정확히 1년이 되던 날 아예 잭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셨다. 어머니가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린 것

인지 안돌아오기를 바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잭과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신 것 같았다. 잭이 우리 집에 와 살기 전날 스페니쉬 청소 도우미

들이 와 집을 대청소하고 안방에 있던 훈이의 작은 침대를 소희의 방으

로 옮겼다. 이제 소희와 훈이는 더 이상 안방에서 어머니와 잠을 잘 수

없게 되었다. 갑자기 안방에서 다른 방으로 옮기자 소희는 잠을 못 이

루고 밤마다 안방 문을 두들기고 울었지만 어머니는 예전처럼 소희를

데리고 같이 잠을 자지 않았다. 잭을 집으로 데리고 온 뒤 어머니는 법

으로 별거 1년이면 이혼이 성립 된다는 설명을 외삼촌과 나에게 하였

지만 외삼촌은 아버지와 이혼도 하기 전에 어떻게 잭을 집으로 데리고

오느냐고 어머니를 나무랐다. 사실 내심 모두 아버지와 다시 합치기를

기대했던 식구들의 희망을 깨버린 것이다. 어머니의 행동에 크게 실망

한 외삼촌 가족들은 얼마 뒤 외삼촌이 미국 회사에서 감원 해고되자

바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같이 살게 된 잭의 새빨간 차가 아침저녁 드나들기 시작하자

옆집이나 앞집 이웃들이 우리 집을 어떻게 생각할까 부끄러웠다. 처음

우리가 이사 오던 날 아버지에게 웰컴 인사하러 왔던 옆집 백인 죠지

아저씨도 잭과 다니는 어머니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아침

마다 학교 버스 정류장에 동네 아이들과 부모들이 모이면 우리 집 이야

기를 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어머니는 전혀 사람

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으며 이웃들과 웃으며 인사하고 떠들었다. 어머

니는 아주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버지와 살 때 볼 수 없었던 애교

도 잭에게 부려 꼭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우리끼리 잭

이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잭에게 실례라고하

며 우리에게 더 이상 한국말을 쓰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이젠 자기에게도 영어로만 이야기 한다고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는 잭이 우리와 모습이 다른 서양 사람인 것이 싫다고 했다.

그건 잭이 우리의 새아버지가 되면 챈처럼 우리들이 이혼 가정의 아이

라는 걸 남들이 색안경 끼고 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인

챈이 백인 남자와 사는 것을 이상하게 보던 외숙모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고방식이 고리타분하다면서 입양도 많이 하는 미

국에서 별걸 다 따진다고 코웃음을 쳤다. 아직 철없는 소희는 아버지의

사랑에 굶주린 듯 잭에게 금세 아빠라고 부르며 계집아이답게 온갖 애

단편소설 부문 61

교를 다 떨었다. 이제 말하기 시작한 훈이도 소희를 따라 대디하고 매

달렸다. 하지만 내가 그냥 잭의 이름을 부르자 어머니 보다 한참 연하

인 잭이 나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어색해서 그런 거라고 어머

니는 잭에게 말했다. 잭은 그런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동생들처럼 대디라고 부르기는 힘들었

다. 어머니는 잭이 아버지 보다 우리에게 얼마나 잘 해주는지, 잭이 얼

마나 자상한 사람인지 끝없이 말하면서 이제야 우리도 완벽한 가정을

가졌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잭의 아내가 집을 구해 이사를 나가자 우리는 잭의 집이 있는 뉴저지

로 이사를 했다. 자기 집을 가지고 있던 잭이 집을 팔고 우리와 사는

것 보다 렌트를 사는 우리가 잭의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 훨씬 간단했

기 때문이었다. 잭의 집은 깔끔하게 다듬어진 정원들이 펼쳐진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머니는 잭의 집 동네 학군이 좋아 내가

옮길 학교도 아주 좋은 학교여서라고 다행이라고 했다. 2층으로 된 집

의 지하에는 우리들을 위해 놀이방을 설치해 놓았고 1층에는 내 방을,

그리고 2층에는 동생들 방과 안방을 꾸며 놓았다. 한 점 흐트러진 것

없이 제자리에 정리 정돈된 집안 분위기는 잭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잭의 집에서는 예전의 우리 집에서처럼 우리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도 눈치로 깨달을 수 있었다. 잭은 우리가

이사 오기 전에 이미 많은 준비를 해둔 듯 집안의 규칙들을 세워 놓았

다. 가령 지하 놀이방에 있는 장난감이나, 색연필 등 우리들의 물건이

지하 이외의 1층이나 2층에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 음식이나 과

자는 부엌 의자에 앉아서 꼭 먹을 것, 텔레비전에 비밀 번호를 만들어

정해진 시간과 채널을 설정 해두는 장치를 한 것 등등 세세한 것들까지

있었다. 잭이 우리 집에서 사는 동안 아무 말 없이 두고 보고 있다가

고쳐야 될 것들을 이렇게 치밀하게 짜 놓고 있었다. 잭은 조용하고 친

절한 표정을 항상 짓고 있었지만 자기가 정해 놓은 룰에 대해서는 단호

하고 엄격하게 행동해 막무가내인 소희도 꼼짝 없이 순한 양처럼 따랐

다. 어머니조차 몰랐던 잭의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은 그동안 우리가 살

아오던 것과 너무나 달라 모두 힘들어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원했던 한국사람 내니를 구하지 않고 잭이 구해

온 러시안 내니를 고용했다. 그루지야 출신인 내니의 이름은 마리아였

다. 그녀는 잭에게는 러시아어를 쓰며 우리에게는 영어로 대화를 했다.

미국에서 돈을 벌어 자기 나라에 있는 식구들에게 돈을 부친다는 마리

아는 나이가 40이 넘어보였고 아주 뚱뚱했다. 한국 아주머니에게 우리

가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 했던 아버

지는 잭이 자기 방식대로 우리를 키우려고 하자 어머니에게 맡긴 것이

지 잭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며 아이들 교육에 아무 생각이 없다고 어머

니에게 화를 냈다. 우리가 미국에서도 한국 사람인 것을 잊지 않기 바

랐던 아버지는 외국인 새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것을 제일 걱정하셨다. 잭과 사는 것이 한국 사람에게 보이기 창피해서

그러냐고 하자 어머니는 애를 셋씩이나 데리고 온 자기를 애도 없는

잭이 같이 데리고 사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라며 아버지가 집안일에 간

섭하는 것이 불쾌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이제 우리에게 그저 양육비만

의무적으로 보내야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는 또 한 달에 한 번씩

우리들이 아버지를 만나는 것도 없애자고 했다. 소희가 아버지를 만나

고 돌아오면 너무나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채식주의자인 잭이 우리에게도 고기를 먹이지 않는다는 것을 안 아

버지는 우리가 갈 때마다 불고기와 갈비를 잔뜩 해놓으셨다. 아버지 혼

자 사는 집은 대학가 근처의 여러 집이 세들어 사는 낡고 허름한 1층에

있었다. 수입의 절반 가까이를 우리에게 양육비로 부치고 나머지는 빚

갚느라 이렇게 초라하게 살고 계셨다. 좁은 부엌에 어질러진 냄비와 그

릇들을 보자 어머니와 살 때 부엌에 한 번도 들어서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났다. 방에는 침대와 작은 옷장 하나가 전부였고 거실에 구

형 텔레비전과 식탁과 낡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이 가구들도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그냥 얻은 것들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사는 모

습을 보자 마음이 조금 아팠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잭의 집 보다 훨씬

편안했다. 집안의 음식 냄새 걱정이나 소희와 훈이가 쫓아다니며 음식

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녀도 아무렇지 않다는 게 제일 기뻤다.

잭이 그렇게 채식주의자로 식이 조절을 하는 것은 덩치와 키가 큰데

다 코카사스인으로 살이 쉽게 잘 찌고 살이 찌면 관절에 무리가 오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동양인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을 뿐더

러 한참 자랄 아이들인 우리들이 채식만 먹거나 저지방 식단으로 먹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걱정했다.

“그럼, 엄마는 어떻게 먹고 지내냐?”

밥 위에 노릇하게 잘 구워진 고기 한 점을 올리시며 아버지께서 내게

물으셨다. 유난히 고기를 좋아하던 어머니가 궁금하신 것이다.

“엄마는 잭이 만들어 주는 음식 다 잘 먹어요. 샐러드나 뭐 그런 거.

그런데 김치는 지하실 냉장고에 넣어두고 혼자 먹어요. 잭이 김치 냄새

난다고 싫어하거든요.”

“잭이 요리해?”

어머니와 살 때 물 한잔도 어머니에게 시키던 아버지였다.

“네, 만날 이것저것 잘 만들어줘요. 엄마는 잭이 만든 거 다 맛있다고

잘 먹어요. 난 별로던데…….”

“그래…….”

갑자기 아버지가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아버지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예요?”

“뭘?”

“그냥요. 엄마는 잭이 있는데 아빠는 혼자니까.”

“글쎄…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 누가 이렇게 사는 아빠를 좋다고

하겠냐.”

“아빠도 엄마처럼 꼭 한국사람 중에 안 찾아도 되잖아요?”

“뭐? 아버지는 김치찌개 매일 같이 먹을 사람이 좋거든.”

“하하, 그럼 할 수 없네.”

학교에서 서양 여자들은 동양 남자들을 투명 인간 취급한다며 아버

지는 웃으며 말했다. 그날 저녁 아버지와 나는 모처럼 농담도 하고 낄

낄거리며 장난을 쳤다. 옛날에 아버지가 이렇게 자상하고 우리와 화목

하게 지냈더라면 우리 가족이 지금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씁쓸했다. 아버지는 내게 어머니에게 갖다 주라고 하시며

남은 갈비를 도시락에 싸주셨다.

신나게 뛰어놀던 막내 훈이와 소희가 배가 부르자 졸려 할 즈음 어머

니는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잠깐

잠든 소희는 깨어나자마자 왜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느냐고 어

머니에게 물었다.

“그건 아빠랑 잭이 서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지.”

어머니가 궁색한 대답을 하자 소희는 졸리운 듯 눈을 부비며,

“난 둘 다 좋은데. 왜 서로 안 좋아하지?… 아함.”

잠꼬대를 하는 것처럼 중얼거리던 소희가 다시 잠이 들자 나는 창

밖으로 뉴저지로 넘어 가는 불빛에 반짝이는 조지 워싱턴 브리지와 허

드슨 강을 바라보았다. 아까 낮에 아버지가 하신 말이 생각났다.

“소희야, 소희는 이 아빠랑만 뽀뽀해야 하고 다른 사람하고는 뽀뽀

하면 안 된다. 알았지?”

아버지 등에 올라 타 장난치는 소희에게 아버지는 사뭇 진지한 목소

리로 말씀하셨지만 소희는 듣는 둥 마는 둥 알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셨고 나는 아버지의 그 눈빛이 무

엇을 걱정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나는 잭이 소희의 목욕을

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내니가 돌아간 저녁이나 잭이

혼자 우리를 돌보는 주말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학교 수업과 시험공부, 그리고 일 때문에 바빠 우리가 어떻게 지내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걱정하는 것까지 미쳐 신경

쓰지 못했다.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온 후 며칠 동안 소희는 또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마다 자기 . 방에서 나와 어머니와 잭이 자는 안방 앞에서 울

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한동안 안정을 찾은 소희가 예전처럼 행동하자

아버지를 만나고 와 그러는 것이라 생각했다. 몇 주가 지나도 밤에 우

는 소희의 버릇이 없어지지 않자 잭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허니, 재 좀 어떻게 좀 해봐. 매일 밤마다 우는 소리 때문에 죽겠다

고.”

어머니는 잭의 눈치를 보며 우는 소희의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어머

니와 같이 자야만 잠이 드는 소희는 자다가도 어머니가 곁에 없으면

울며 어머니를 찾았다. 참다못한 잭이 소희에게 수면제라도 먹이라고

했을 때 어머니는 처음으로 잭에게 화를 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

고 공부하느라 지친 어머니에게 소희까지 밤에 괴롭히자 갑자기 배에

통증을 느꼈다. 고통스러운 통증이 계속되자 어머니는 응급실을 다녀

오고 나서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지시대로 병원에 휴직 신청을 하고

소희를 데리고 여기저기 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여러 가지 테스트와 상

담 결과 소희는 부모와 기본적인 신뢰 관계 형성에 문제가 있다는 판정

을 받았다. 2살 때 집을 나간 아버지와 집에 늘 없다시피 한 어머니에

게 받지 못한 사랑과 신뢰를 떼를 써서라도 애정을 받고 인정받고 싶은

심리적 불안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잭과 어머니가 충분

히 잘 돌봐 줬다고 여기고 있다가 이런 결과가 나오자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내 방에 평소에 잘 들어오지 않던 어머니가 무슨 일인지 무거운 얼굴

로 들어왔다. 컴퓨터 게임을 하던 나는 어머니의 눈치를 보았지만 어머

니는 내가 게임을 하던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르게 무

슨 말을 할 듯 머뭇거리다가 서 있기 힘든 듯 침대 한쪽 끝에 걸쳐 앉았

다. 내가 어머니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피자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너도 눈치 챘겠지만 얼마 안 있으면 네 동생이 태어날 거야.”

나는 어머니의 눈길을 외면하며 고개를 돌려 자판을 마구 두들겨 적

들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래서 너희 아버지가 너를 데리고 가고 싶다고 하는구나. 그래도

네가 이제 다 컸다고 네 아버지가 키울 수 있겠다고 하네. 애들 다 두고

나갈 땐 언제고 하지만 아버지가 걱정하는 것처럼 잭의 아기가 태어나

도 너희들은 달라지는 것 하나도 없을 거야. 잭도 자기 아이 태어났다

고 변할 사람이 아니고 엄마는 너를 못 보낸다고 네 아버지에게 일단

이야기 했지만 네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단다. 네가 정말 누구와 살고

싶은지 잘 생각 해 보고 말해줘.”

어머니의 말이 끝나자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나, 아버지랑 같이 살래.”

처음 아버지가 집을 나갔을 때 나도 어머니의 말대로 아버지가 우리

를 책임지기 부담스러워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가겠

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아버지와 살겠다고 하자 그동안 잭이

나에게 얼마나 잘 해주었는데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며 잭이 얼마나 실

망할까 걱정했다.

68 재외동포 문학의 창

내가 잭의 집에서 나온 후 아버지는 더 이상 동생들을 아버지 집으로

부르지 않으셨다 . 소희가 불안 증세를 보인 것 같이 아버지도 우울한

감정 때문에 힘들었기 때문이다. 동생들이 보고 싶었지만 당분간 서로

를 위해 참기로 했다.

“새 학교는 다닐만하니?”

뉴욕으로 다시 온 나는 아버지 집 근처의 작은 교회 사립학교로 전학

했다. 내 학비며 생활비가 들어 어머니에게 보내던 양육비를 줄이자 어

머니는 돈이 적다고 아버지에게 매일 같이 연락했다.

“네, 성경 공부만 빼고요.”

“서양은 성경을 빼면 이야기가 안 된다. 꼭 종교라고만 생각하지 말

고 열심히 배워.”

“네.”

“왜 엄마 전화 안 받고, 이메일 답장도 안 보내냐?”

아버지는 늘 한 주가 끝나는 금요일 저녁에 식사를 하며 드시는 소주

를 한 병 부엌 찬장에서 꺼내오셨다.

“그냥 전화기 충전하는 걸 깜빡했어요. 이메일은 그냥 답 쓰기 귀찮

아서…….”

다 차려진 식탁으로 다가가 앉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나는

사실 어머니와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전화는 받어.”

“알았어요.”

아버지는 내가 더 이상 엄마를 찾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다행

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나에게 인정머리 없는 녀석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소희랑 훈이 안보고 싶어요?”

“보고 싶지만 어쩌겠니 . 걔네들이 잘 지내리라 믿는 수밖에. 소희도

이제 안정을 찾았는데…….”

아버지는 유난히 딸인 소희를 끔찍이 생각하졌었다. 딸이 귀한 집안

에 태어난 소희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유난히 많이 받았었

다. 그래서 아버지가 집을 나가던 날도 그렇게 소희를 안고 우셨다.

“우리 한국에 한번 다녀올까?”

갑자기 아버지가 지나가듯 물었다.

“한국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한번 찾아뵙고… 사실은…….”

그때 밖에서 인기척 소리가 났다. 아버지가 현관문을 열자 배가 남산

만큼 부른 어머니가 내일이 아버지의 생일이라며 케이크를 들고 서 있

었다. 아버지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케이크을 받아들고 들어오라고 했

지만 어머니는 문밖에서 나에게 잠깐 나오라고 했다. 차에 타고 있던

어머니의 옆 자리에 앉자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엄마가 뭐라던?”

어머니가 돌아가고 난 뒤 집 안으로 들어오니 아버지는 새 소주병

뚜껑을 열고 있었다.

“그냥 보고 싶었다고요.”

“내가 네 엄마와 10년이 넘게 살았는데도 내 생일이 언젠지 모르는

구나. 하긴 그동안 그나마 양력 생일도 모르고 그냥 지나갔었는데. 무

70 재외동포 문학의 창

슨 이제 와서 챙기겠다고 , . 허, 참네. 음력으로 생일 지내는 것을 어째

해마다 잊을 수가 있지?”

거실 입구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케이크를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으셨다. 어머니는 무슨 마음으로 안 챙기던 아버지의 생일 케이크를

사들고 이 밤에 온 걸까?

“오늘 엄마가 아빠 학교에도 찾아왔었어. 곧 아기를 낳는다는구나.”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가득 담긴 소주잔을 비웠다.

“아이를 낳으면 잭에게 주고 자기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오면 안 되

겠냐고 하더구나.”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럴 것 없다고 했다. 이젠 끝난 거야 모든 게. 너는 아직도

엄마가 돌아오길 바라니?”

아버지가 풀린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묻자 나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 엄마 말 믿지 마라. 괜히 하는 소리야. 잭의 아이를 가지려고 오

래 전 부터 준비해 온 여자가 뭐, 임신하니까 나더러 내가 낳지 말라면

안 낳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했지. 모든

책임을 나한테 돌릴려는 수작이지. 결국에는 제멋대로 할 거면서…….”

아버지는 술기운이 올랐는지 횡설수설 하시며 침대로 가 쓰러져 누

우셨다.

비행기가 케네디 공항을 이륙하자 옆 자리에 앉은 아버지는 두 눈을

감으셨다. 어머니가 잭의 아이를 낳았다고 전화가 왔을 때 아버지께서

내게 물었다.

“엄마가 아기 낳았다고 너 보러 한번 오라고 하는데 가 볼래?”

“싫어요.”

잭의 집에서 나온 이후 한 번도 다시 가 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특히

잭의 아이를 동생이라고 부르는 것도 듣기 싫었다. 어머니는 아기를 낳

고 바쁜지 늘 걸어오던 전화도 뜸해졌다. 소희는 아기가 생겼다고 좋아

하겠지…처음부터 아기 생긴다고 멋도 모르고 좋아했었는데.

“이번 겨울 방학 때 한국에 좀 다녀오자.”

아버지는 책상에 앉아 읽던 책을 덮어 책장에 꽂으시며 옆에 앉아서

컴퓨터를 보던 내게 갑자기 말했다.

“한국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국에 가게 된다니 놀라웠다. 해마다 한국에

가시던 아버지를 늘 불만스럽게 여기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아버지 어

머니가 태어난 곳, 일가 친인척들이 모두 사는 그곳에 처음으로 간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한국에 간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그래. 한국의 대학에 지원 했더니 인터뷰 오라고 연락이 왔구나…

사실 그동안 갈 기회가 많았는데 너희들이 걸려서 계속 여기 있었던

거야. 이제 너라도 내가 데리고 있으니 미국을 떠나도 될 것 같아서.”

“그럼, 앞으로 한국에서 사는 거예요?”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구나. 그런데 네가…….”

아버지는 미국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떠날 결심을 하자 내가 걱정이 되었다.

“만약 알아보니 , 네가 한국에 가 살게 되더라도 요즘은 국제 학교가

많아져 여기서처럼 계속 공부 할 수 있겠더라만, 그래도 미국에 남고

싶다면…….”

말끝을 흐리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싫어요. 나도 한국에 갈래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은 스튜어디스가 다가와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 해 본 뒤 없다고 말하고 의자 깊숙이 몸을 누웠

다. 내 짧은 인생 동안 있었던 수많은 일들과 얼굴들이 구름처럼 머릿

속에서 떠올랐다 흩어지자 하얀 새 한마리가 하늘 위로 훨훨 날아올라

가는 것이 보였다. 남의 둥지로 알을 낳으러 날아가는 새가 멀리 사라

지자 나도 아버지처럼 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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