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나는 천년의 꿈

[서울=동북아신문]나는 더 깊이 묵상에 빠져들었다. 멀리 팔레스타인 광야에서 소생한 한 줄기 청량한 기운이 지중해를 건너 로마와 유럽으로 뻗어 나가는 환상이 보인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사도행전 16:9)"

원래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던 바울의 발걸음을 유럽쪽으로 바꾼 이 환상은 개인의 심중에 나타난 계시였지만, 장차 세계역사 흐름의 진로를 백팔십도 전환시킨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제3차 선교여행(AD53∼57년)을 마친 뒤 결국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 군선에 이끌려 지중해를 건넜던 바울의 로마행을 두고,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역사의 연구」에서 이 장면을 “세계역사를 싣고 가는 배”라는 극적인 표현을 썼다. 신세계를 향한 역사흐름의 새로운 진로는 결국 로마제국의 기독교 공인(AD313년)을 통해 유럽 전역으로 뻗어 나갔으며, 그 후 영국과 대서양을 건너 미국 신대륙에 정착함으로서 그 위대한 프로테스탄트의 부흥기를 맞게 되었다.

그 후 태평양 전쟁의 소용돌이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 온 복음의 물결은 일본을 지나 한반도에 머물면서 오랜 세월동안 일제 압박과 민족의 분열과 동족상잔의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한민족 백성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그 결과로 한국은 급기야 전후 최대 성장치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국가로 변신했으며, 지금은 제2 세계선교대국으로까지 발전하여 이웃나라 중국과 세계 여러지역을 섬기며 선린의 우정을 나누는 복된 국가가 됐다. 오늘날 중국에 전파된 한국기독교의 복음주의적 선교의 영향은 단순한 종교의식의 차원을 뛰어넘어 사회봉사와 구제를 통해 인간적인 신뢰를 증진시키고 또한 생활문화와 개인의 영적 정서를 윤택케하는 도덕과 신앙의 규범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 아름다운 헌신과 사랑의 능력이야 말로 중국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변화된 중국과 함께 천산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로, 또한 파미르 고원을 넘어 인도와 중동지역으로, 마침내 예루살렘 시온성에 까지 이르는 복음의 물결을 앞서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꿈꾸고 소망하는 세계역사의 흐름이다. 이것이 또한 한국기독교가 세계인류 앞에 내 놓아야 할 사명의 길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1930년대 미국 시카고에서 발원한 CBMC 사역의 행로가 마침내 태평양과 한국을 거쳐 중국에까지 이른 이 거대한 물결의 흐름이야말로 바로 이 시대의 세계정신을 예표하는 실증적인 한 사례로 인식된다.

이 모든 사역과 비전의 진원지가 되어 주었던 곳이 바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수도, 연길이다.
이곳 연길은 조선족 사회의 가장 중요한 핵심도시 일뿐만 아니라, 나의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도록 만들어준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한분의 크리스챤 지도자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된 연변과기대 사역은 내 인생의 후반전을 승리로 이끌어가는 단초가 되었으며, 이곳을 통해 첫걸음을 뗀 이후 중국 전역에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간 CBMC 사역은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치고 나가듯 시대의 흐름을 뒷받침하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또한 이곳을 근간으로 삼아「동북아시대와 조선족」이란 기념비적(?) 저서를 집필할 수 있었던 일도 큰 행운이며, 마침내 평양과기대를 창구로 하여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연합의 기초를 닦기 위해 설립한 (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를 통해 두만강유역개발사업(UNDP 프로젝트), 환동해·환황해 광역경제권개발계획, 남북한 경제공동체, 한·중·일 해저터널(T&T)을 포함하는 동북아교통기반시설 및 물류체계 개선을 위한 R&D 분야까지 섭렵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동안 18년이란 세월동안 이 땅에서 만나고 교제하고 협력하며 동고동락해 왔던 인재들이 그 얼마인가. 또한 CBMC 사역의 확장을 위해 중국 각 지역에 다니는 도중에 만났던 수많은 중국 기업인들과 청년들, 그리고 중앙민족대 학위를 통하여 교류했던 소수민족 엘리트들의 수는 또 얼마인가. 그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기초가 바로 이곳 연길에서부터 비롯되었으니, 이 땅은 곧 내 인생 후반전에 있어서 새로운 꿈과 소망을 잉태한 기회의 땅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해란강과 부르하통하(河)가 합수하는 이 소하룡(小河龍) 마을에 정착했던 선열들도 바로 이와 같이 국가경계를 초월하는 인간관계의 융화속에 그 꿈과 소망을 잉태했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시작도 끝도 없이 샘솟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온갖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천년송 고수 삼태송(古樹 三胎松)의 그루터기에 앉아 인류역사의 강이 어디로 흘러 갈 것인지를 묵상할 때, 내 마음의 밑바닥으로부터 솟아난 한줄기 청량한 기운은 차츰 나의 의식을 한 방향으로 집중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민박회’ 소수민족 엘리트들과 함께 어울려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가 소하룡이라면 그럼 대하룡(大河龍)은 어디에 있는가. 북경인가, 우루무치인가. 알마티인가. 아니면 이스탄불일까.

블현듯, 21세기 실크로드의 시발점이 어쩌면 이곳 연길을 중심으로 하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일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남북한이 단절되어 있어서 교통과 물류가 제대로 흐르지 않는 변방의 오지로 남아있지만, 만일 한반도의 양 진영이 서로 공존하거나 통일되는 시기가 온다면 이 지역은 ‘대 두만강 지역협력(GTI ; UNDP두만강유역개발계획 확대방안)’ 사업과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북진흥전략’이 맞물려 국제사회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폭발적인 시너지를 유발하는 지역으로 변모할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과 미래학자들이 예견했듯이 이 지역은 중국, 러시아. 북한이 직접 접경하고 있고, 그 주변에 주요 이해당사국인 한국, 일본, 미국이 둘러싸고 있는 퓨전지역(Fusion Area)이다. 아시아적 협조사회(Cooperative Society)의 테스트 베드(Test Bed)를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윈윈(Win-Win)패러다임의 현장이다. 다만 이러한 전망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단연코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고 체제가 개방되어야 하며, 또한 중국 정부가 한반도와 접속되어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를 한민족 경제교류협력지역으로 용인해 줄만한 도량을 보여야 가능 할 것이다.

1978년 개혁·개방이 시작될 때 등소평 주석이 심천을 창구로 삼아 홍콩과 동남아지역의 화교자본을 끌어들인 것이 성공적인 시발점이 되었듯이 북한과 러시아 접경지역인 연변조선족자치주를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 이민자들(Korean Diaspora)이 남북한 통일경제를 위한 배후기지로 이 지역을 중립적인 자유무역지대로 거리낌없이 투자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문호를 대폭 개방해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6자 회담을 통하여 북한 핵 문제가 풀리고, 그런다음 북한의 전면적인 경제개선조치와 더불어 두만강유역 일대에 중국식 시장경제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접경국가 다자간 자유무역경제특구를 건설하기 시작한다면, 환동해권 경제개발 및 동북아경제협력체 구상을 위한 주요 거점으로서 중국의 변방인 이곳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이제 세계역사 앞에 숨겨진 보물의 진가를 발휘하는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그 핵심부에 연길시(市)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곳 동쪽 어귀에 해란강과 부르하통하(河)가 합류하는 지점에 소하룡(小河龍)이 있다. 그리고 이제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과 문화를 공부했던 ‘민박회’회원들과 함께 이곳에 와서, 유서 깊은 천년송 고수 삼태송(古樹 三胎松) 그루터기에 앉아 미래를 관망하여 새벽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만일 이곳이 정녕 중국 동북지역의 발전과 남북한 통일경제를 아우르는 시범구역이 되고 나아가 동북아경제협력체 구상을 위한 환동해 초광역경제권의 GATE & HUB로서 자리매김 한다면, 이곳이야 말로 주강경제권, 장강경제권, 발해만경제권을 이어 중국의 미래를 선도할 제4섹트로서 ‘뉴 실크로드’ 역사의 강을 시작하는 관문지역이 되기에 합당하다. 백두산 천지(天池)에서 흘러내린 물이 동북3성(東北三省)을 지나고 북경을 거친 후 우루무치와 알마티를 통과하여 마침내 동서양을 연결하는 관문도시인 이스탄불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21세기 실크로드 문명의 대 부흥은 아시아의 차원을 넘어 유럽과 세계를 퓨전(Fusion)하는 새로운 역사의 흐름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 흐름은 어쩌면 「환단고기」에 수록되어 있는 ‘한국사의 원류’를 찾아가는 로드맵이자 또한 ‘단군은 아시아를 통일했다’고 주장하는 이 책의 부제(副題)를 실현하는 비밀스러운 첩경이 될지도 모르겠다.

대하룡(大河龍) 프로젝트라고 이름지어 불러도 좋을만한, 세계 역사의 흐름과 함께 한민족 천년의 꿈을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 ‘Future Vision'이 내 마음속에 감격스럽게 차올랐다. 나는 동터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하나님,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주십시오. 그리고 동역할만한 사람들을 붙여 주십시오. 흩어져 있는 변방 소수민족들이 이 시대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신 노마드운동의 일꾼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 일에 민박회가 쓰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또한 세계 도처에 있는 코리언 디아스포라들이 한마음으로 협력해서 이 흐름을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마침내 이 지구촌 사회가 한민족의 헌신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회복되는, 푸른 희망이 가득한 세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십시오.”

나는 그날 2시 30분 전세 비행기로 연길을 떠나야 했었다. ‘민박회’일행들은 저녁 비행기나 기차로 각자 임지로 돌아간다고 했다. 나는 식당으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마친 후 바쁘게 짐을 꾸렸다. 그동안 ‘민박회’팀들과 어울리느라 다른 볼 일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오전 중에 몇 가지 업무처리를 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었다.

친구들이 가끔, 넌 돈도 안 생기는 그런 일을 왜 하고 다니냐고 물을때가 있다. 연변과기대 운영과 평양과기대 설립, 그리고 CBMC 사역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이건 내 사명이야’ 라고 대답하고는 씩 웃는다. 그렇다. 나는 동북아공동체사역을 위한 일에 자부심과 함께 큰 사명감을 느낀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또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제 곧 평양과기대가 개교할 예정이다. 학교가 문을 열면 한·중·일 지식인들과 기업인들이 서로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는 한 마당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가 이를 위해서 기초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때 나는 ‘민박회’ 회원들이 통로가 되어 중국내 소수민족들이 중국뿐만 아니라 북한과 한국 그리고 일본을 폭넓게 교류하면서 이 시대, 동북아시대의 새로운 비전과 대안을 위해 협력하는 일이 있어지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드디어 일행들과 헤어질 시간이 왔다.나머지 뒷일을 전신자 교수께 맡긴다고 부탁을 드린 후, 손춘일 원장과 함께 두분의 손을 굳게 잡고 어제 ‘홍기촌’을 다녀온 이후 가졌던 내 생각을 전했다.“여기 소하룡 마을이 무척 마음에 들어요. 손 원장님께서 정년퇴직 후에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계신다는데, 내가 한가지 건의를 하겠소. 이 마을 앞에 해란강과 부르하통하(河)가 합류하는 강 어귀에 조선족 수전사(水田史) 박물관을 하나 세우도록 해봐요. 전 선생님이 박물관 일을 잘 알고 계시니까 많은 도움이 될 꺼예요. 만일 손 원장님께서 뜻을 정하시면 나도 이 일에 함께 동참하겠습니다. 이건 어쩌면 우리 민박회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꼭 한번 계획을 세워 보세요.”식당 주인되시는 박 사장님의 승용차에 짐을 실은 후, 나는 마당에 빙 둘러 모인 일행들을 둘러보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연변과기대 학생들과 함께 있을 때 늘 상 내가 잘하는 제스츄어가 있다.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운 다음 팔을 가슴 앞으로 쭉 뻗는다. 그리고는 상대방의 눈을 직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우리, 할 수 있어. 우린, 해 낼 거야. 그리고 널, 사랑해” 나는 ‘민박회’ 회원들에게도 팔을 뻗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라고 가르친 다음, 큰소리로 따라서 외치라고 주문했다.“민박회여, 우리, 할 수 있습니다. 우린, 해 낼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사랑해요. 진심으로, 사랑해요.”나는 그들을 한분 한분씩 내 가슴에 꼬옥 껴안아 주면서 다시한번 속삭였다.“사랑해요. 우린 친구입니다. 다시 만날때까지 잘 있어요.”눈에서 눈물이 난다.가슴속 깊은 심연에서부터 솟아나는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그런가 하면, 나는 이 순간 정말 너무나 행복했다.그들 한사람 한사람이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인격체요. 생명을 나눈 한 가족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하룡 마을을 떠나는 차안에서 나는 다시한번 이런 생각을 가졌다.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
이 물음에 대한 궁극적인 답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지만, 이미 내 마음속에는 하나의 길이 뚜렷이 보인다. 그것은 어쩌면 잃어버린 성지를 찾기 위해 떠나는 순례자의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고난과 역경을 동반하는 새로운 꿈과 희망의 길 ― 제3의 미래로 가는 Fusion의 행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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