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속에 함몰된 ‘혁신’의 문제를 생각한다- 김병준(前참여정부 정책실장)

안철수, 새로운 변수

며칠간 대단했습니다. 안철수교수 말입니다. ‘서울시장에

   
 
출마할 수 있다’는 그의 말 한마디에 온 나라가 들썩거렸습니다. 일부 여론조사기관은 서울시장 후보로서의 지지율이 40%를 넘었고, 실제 출마하는 경우 한나라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를 큰 차이로 이길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어 놓기도 했습니다.

출마할 수 있다’는 그의 말 한마디에 온 나라가 들썩거렸습니다. 일부 여론조사기관은 서울시장 후보로서의 지지율이 40%를 넘었고, 실제 출마하는 경우 한나라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를 큰 차이로 이길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어 놓기도 했습니다.

 

출마할 수 있다’는 그의 말 한마디에 온 나라가 들썩거렸습니다. 일부 여론조사기관은 서울시장 후보로서의 지지율이 40%를 넘었고, 실제 출마하는 경우 한나라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를 큰 차이로 이길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어 놓기도 했습니다.

박원순 변호사 손을 들어주고 뒤로 빠진 지금에도 여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부터 시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운을 뗀 이상. 그의 지지자들은 그가 여기서 멈추는 것을 원치 않을 겁니다. 더 큰 행보와 역할을 요구할 수 있고, 그 요구가 거센 경우 그 역시 쉽게 빠져 나갈 수 없을 겁니다. 더 두고 볼 일입니다만 우리 정치에 작지 않은 변수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습니다.

무엇이 이렇게 높은 관심을 불렀을까요? 일차적인 배경은 역시 안교수 개인의 특성과 이력이겠죠? 안교수는 우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성공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컴퓨터 보안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큰 분야에서의 성공입니다. 미래지향적인 분야에서의 개척자로서의 성공이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지식 전달자와 계몽적 경영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재벌이 된 것 보다 더 멋있고 아름다운 성공이죠. 게다가 젊고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신선하고 도덕적인 것도 같고요. 국민의 눈에 말이죠.


정당, 그 시원찮음에 대한 경고

그러나 안교수에 대한 관심은 분명 이러한 개인적 특성이나 성공신화 이상의 것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습니까마는 우선, 시원찮은 우리의 정당 내지는 정당정치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의 정당들, 특히 주요 정당들은 사람과 조직, 그리고 운영체계와 공정이 모두 잘못된 공장과 같습니다. 국민적 신뢰를 얻을만한 당원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정책기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역주의는 여전히 강한 기반을 이루고 있고, 그로 인한 도덕적 해이는 하늘을 찌릅니다.

시원찮은 공장에서 어찌 좋은 ‘제품’이 생산되겠습니까? 좋은 정책도, 좋은 인물도 생산되지 않습니다. 어쩌다 좋은 정책 아이디어와 인물이 들어가도, 몇 공정 지나기도 전에 사망신고를 하거나 오염되고 비틀어집니다. 때로 ‘국민경선’과 같은 새로운 ‘공정’의 도입으로 의외의 ‘제품’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럴 가능성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물이나 지도력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으로서는 정말 짜증나는 일입니다. 투표만 해도 그렇습니다. 좋아서 찍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쪽이 있어 합니다. 그 반대편을 찍는 거죠. 흔히 말하는 ‘네거티브 보팅(negative voting)’입니다. 아니면 그저 보험 드는 기분으로 ‘고향 앞으로’ 찍습니다. 찍은 다음인들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찍은 사람이 당선되어 하고 다니는 일을 보면 마음이 더 불편해지죠.

안철수 교수도 출마를 고민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말했죠. ‘나라도 나가서.........’라고 말이죠. 한나라당은 마음에 들지 않고, 야당은 정부ㆍ여당에 대한 민심이 이렇게 사나운데도 불구하고 이길 수 있는 후보 한사람 제대로 내어 놓을 것 같지 않고....... 그래서 출마를 생각했었다는 뜻이죠. 오죽했으면 다른 일을 하는 편이 국가에 더 큰 이익이 되는 인물까지 정치를 생각하게 되었겠습니까? 또 국민이 이를 반기고요.

사실, 기존의 거대정당에 대한 국민적 경고는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낮은 투표율이나 낮은 정당 선호도가 바로 그 지표 아니겠습니까? 그 외에도 수 없이 많습니다. 2008년의 ‘촛불’만 해도 정당과 국회에 대한 심각한 경고였습니다. 정당과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국민들이 직접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죠. 반값등록금 집회를 포함한 수많은 집회들도 마찬가지이고요.

우리의 정당들이 이런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나 했을까요?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사안 자체에 대한 제대로 된 검토 한번 하지 않고 지내다가 일이 크게 번지면 그 때서야 나타나 지지발언을 하거나 눈물을 흘리고 분노하는 등의 ‘퍼포먼스’를 하죠. 행정부나 상대 정당에 삿대질이나 하면서 말이죠. 안교수에 대한 관심은 이렇게 경고를 경고로 읽지 못하는 데 대한 또 한 번의 경고입니다.


‘막가는 보수’와 ‘진보하지 않는 진보’의 문제

둘째, 우리 사회의 어설픈 이념대립에 대해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사회는 ‘막가는 보수’와 ‘진보하지 않는 진보’로 시끄럽습니다. ‘막가는 보수’는 시대착오적인 반공논리와 친미 내지는 숭미 논리에 갇혀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때 아닌 관치와 권위주의로 시장을 억압하고 다양성과 창의성이라는 시대정신을 짓밟고 있기도 하죠. 그런가 하면 ‘진보하지 않는 진보’ 또한 시대착오적인 이상주의에 빠져 글로벌 환경의 변화나 성장담론의 중요성을 도외시하고 있습니다. 적군과 아군도 구별하지 못한 채 난사를 하기도 하고, 그래서 아군이나 그 지도자를 죽음에 몰아넣기도 합니다.

국민으로서는 피곤한 일입니다. 도대체 진보는 왜 개방이나 정리해고에 대해 저렇게 반대하는 것인지? 보수는 왜 남북문제를 이렇게 험하게 가져가고, 복지 이야기만 나오면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개방도 하고 복지도 하고 하면 안 되는 것인지? 정리해고도 하고 노동자도 살고, 그래서 세상 좀 좋아지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다 못해 이제는 관심조차 두지 않습니다. 마냥 피곤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국민의 눈에 안 교수는 뭔가 달라 보입니다.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미래지향적 기업을 했고, 그래서 성공을 했습니다. 기업가적 정신도 있어 보이고 시장과 경제 질서가 어떠해야 되는 지에 대한 생각도 있어 보이는 거죠. 시민사회에 대한 이해도 기존의 틀을 뛰어 넘는 것 같고요. 뭔지 몰라도 기존의 이념이나 정책 패러다임으로는 쉽게 분류될 수 없는 새로운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거죠. 일종의 희망을 보는 겁니다.

안 교수가 손을 들어 준 박원순 변호사만 하더라도 그 동안 야권과 밀접한 연계를 가지고 성장해 왔습니다. 정치와 경제에 대한 생각도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쉽게 이해되고, 또 분류됩니다. 실상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이 점에 있어 박변호사에 대한 지지나 관심의 정도는 안교수의 경우와 차이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 걱정스러운 부분이죠. 이 두 사람이 이를 어떻게 극복해 갈 지 두고 볼 일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과제로서의 혁신과 변화

안 교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이렇게 두 가지 경고, 즉 기존 정당에 대한 경고와 어설픈 이념대립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면, 정치권이나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해집니다. 바로 개혁과 혁신입니다. 그리고 변화입니다. 즉 정당이 정당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제대로 기능하게 하고, ‘막가는 보수’와 ‘진보하지 않는 진보’를 넘어 다 같이 사람답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이야기들이 제대로 돌아다닐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 점은 안교수나 박변호사 자신들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적 행보를 하고, 정치권 주변의 인사들과 접촉하는 일이 많아지게 되면 쉽게 승패의 문제에 집착할 수 있습니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을 제1의 목적으로 하는 정치권 인사들로부터 물이 드는 것이죠.

이들이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 둔 야권만 해도 그렇습니다. 다양한 움직임이 있습니다만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야권 단일화’와 ‘통합’입니다. 개혁과 혁신, 변화가 제1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다보니 늘 누가 이기고 지느냐의 문제에 천착을 하죠. 순식간에 승패의 문제에만 집착하게 될 수 있습니다.

단일화나 통합, 또는 연대를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기지 말라는 뜻은 더욱 아니고요. 이길 수 있으면 이겨야죠. 또 이길 수 있도록 해야 하고요. 역사의식이 없는 불합리한 세력을 이기는 것 자체가 개혁이고 혁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에 대한 우리 국민의 요구나 기대는 그 이상입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을 정당답게 만들고, 제대로 된 담론이 형성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 점을 절대로.......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야권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겠습니다만 정당을 정당답게 만들지 못한 채, 또 제대로 된 미래담론이나 대충의 가치합의도 없이 단일화와 통합을 한들, 그래서 이겨 집권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시 분열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민주당 하나만 하더라도 정책능력은 저렇게 떨어지고, 정책적 스팩트럼은 저렇게 넓습니다. 분파주의는 더 없이 극성이고요. 이런 상황에 야권 전체의 정책적 합의는 어떻게 이루고, 국가는 어떻게 경영하죠? 불화와 갈등으로 결정의 속도가 조금만 떨어져도 국민은 이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바로 지지도가 떨어지죠. 그 순간 내부 분열은 가속화되고, 또 다른 불행은 잉태 됩니다.

입에 담기 힘든 이야기입니다만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불러 온 것이 정당답지 못한 정당의 문제나 어설픈 이념대립의 문제와 관계가 없을까요? 정치권 전체의 문제에 대해 대통령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적이 벌써 몇 번이죠? 집권당이 임기말년의 대통령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워 이런저런 방법으로 쫓아내며 선긋기 한 것이 벌써 몇 번이죠?

대통령선거만 해도 그렇습니다. 통합하고 단일화하고, 그래서 이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권을 심판대 위에 올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개혁과 혁신, 그리고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의 집권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국정 혼란과 실패........ 곧 다음의 심판대에 올라간다는 의미입니다.

국민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야말로 안교수에 대한 관심을 통해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혁하고 혁신하고, 변화 하라고 말이죠. 그래서 걱정입니다. 최근 정치권 주변이나 야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을 보십시오. ‘통합’이나 단일화의 문제가 앞서는 가운데 개혁과 혁신 그리고 변화의 문제가 묻히고 있습니다. 말로는 ‘혁신’을 이야기하죠. 그러나 관심은 거의 통합과 단일화에 가 있습니다. 이를 경계해야 할 시민사회 인사들이나 언론까지 이러한 경향에 함몰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런 이야기 할 때냐 되물으실 수 있습니다. 네. 압니다. 배고파 죽을 지경인 사람에게 다이어트를 권하는 심정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할 것 같아 한마디 드리는 겁니다. 제1야당의 개혁안이라고 들리는 것이 호남지역 국회의원들을 수도권에 출마하도록 한다는 등의 한심한 이야기들뿐이라 더욱 그러합니다. 통합과 단일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아니면 최소한 동시에라도 이러한 도덕적 해이에 대해 각성과 반성을 촉구해야 합니다.

시중에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권통합을 위한 각종의 노력들이 결국은 내년 총선에서의 지분 나눠먹기로 끝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겨야 한다는 명분 하나로, 또 한나라당을 이롭게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 하나로, 온갖 잘못되고 불합리한 관행을 그대로 정당화할 것이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 또한 국민적 심판의 대상이 되겠죠. 안교수에 대한 높은 관심은 바로 이 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제1야당인 민주당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이대로 가다간 대통령 후보를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실, 불가능한 일이 아니죠. ‘정치혐오’를 바탕으로 당 밖의 비정치권 인사가 강세를 띠게 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바로 이번의 서울시장 선거가 그렇죠.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안교수가 출마한 경우라면 거의 100% 그렇게 되었을 것이고요. 물론 당 안으로 영입을 하는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든 서울시장 선거든 말이죠. 그러나 어느 국민이 그렇게 끌어들인 후보를 민주당 후보라 여기겠습니까?

이대로 가다간 대통령 후보를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실, 불가능한 일이 아니죠. ‘정치혐오’를 바탕으로 당 밖의 비정치권 인사가 강세를 띠게 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바로 이번의 서울시장 선거가 그렇죠.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안교수가 출마한 경우라면 거의 100% 그렇게 되었을 것이고요. 물론 당 안으로 영입을 하는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든 서울시장 선거든 말이죠. 그러나 어느 국민이 그렇게 끌어들인 후보를 민주당 후보라 여기겠습니까?

 

이대로 가다간 대통령 후보를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실, 불가능한 일이 아니죠. ‘정치혐오’를 바탕으로 당 밖의 비정치권 인사가 강세를 띠게 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바로 이번의 서울시장 선거가 그렇죠.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안교수가 출마한 경우라면 거의 100% 그렇게 되었을 것이고요. 물론 당 안으로 영입을 하는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든 서울시장 선거든 말이죠. 그러나 어느 국민이 그렇게 끌어들인 후보를 민주당 후보라 여기겠습니까?

 

얼마나 잘못되었기에 형편이 여기에 이르고 있겠습니까? 이 상태에서도 통합과 단일화만 이야기해서야 되겠습니까? 사실, 제1야당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제대로 기능을 했다면 통합논의 자체가 필요치 않았을 겁니다. 국민참여당이 분리되어 나갈 명분도 없었을 것이고, 정당체제 밖의 인사들이 ‘나라도 나가서........’ 하며 뛰어들지도 않았을 겁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도 있습니다만 투표과정에서 사실상의 단일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유권자들의 사표방지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 지금 당장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뒤인지 개념적으로나마 알고 움직여 달라는 뜻입니다. 며칠간 많은 사람들이 신선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우리 정치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발 이 희망의 씨앗을 기존 정치권이 먼저 받아 키워줬으면 합니다. (사회디자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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