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호손

10년전에 아빠트 베란다에서 몸을 던져 삶을 마감함으로써 세인들을 경악케 했던 프랑스의 철학가 질 들뢰즈는 《천의 고원》에서 만남의 기술을 이야기한다. 가령 독은 사람을 죽이기때문에 《사람》과 《독》의 만남은 나쁜 만남이지만, 독사는 독을 필수로 하기때문에 그들의 만남은 좋은 만남이라는것이다.
그렇다면 술과 문학의 만남은 어떤 만남일가? 중국에서 시성(詩聖)으로 불리우는 두보(杜甫)는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라는 시에서 《리백두주시백편(李白斗酒詩百篇)》이라고 하여 시선(詩仙) 리태백과 술의 만남은 좋은 만남임을 시사했다. 그리고 우리 문학지들에 발표되는 조선족 시인이나 소설가들에 대한 문단회고록 같은 글에는 거개 술이 빠질수 없다. 그래서 나는 술과 시인, 술과 소설가의 만남은 좋은 만남일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리태백이 술을 마시면서 시를 썼듯이, 술을 마시면서 수필쓰기를 시도한 사람이 있어 나의 주목을 끌었다. 《서재에서 술을 마시며》(《연변문학》2004년 9월호)라는 제목의 수필은 글쓴이가 《급한 회의재료를 쓰다가 자정이 넘어》서재에서 《사색을 안주로 삼아》,《반컵정도 흰 술을》마시면서 쓴것이다.
《한잔의 술을 마시면 취기를 빌미로 사유는 더욱 활발해지고 사색은 마치도 날개를 단듯 동서남북의 넓디넓은 상공으로 빙빙 선회하군 하여 매우 흐뭇하다》라고 하면서 글쓴이는 첫모금을 마시고 《서재의 책들을 생각》하게 되였고 그중에서 《로사의 <참회록>》과 《한 지도자》가 《그의 슬하에서 일》한적이 있는 《나》에게 준 《헤겔사전》의 입수과정을 소상하게 밝히였다. 그리고 두번째 모금을 마시고 《옛사람은 <만권의 책을 읽으면 만리길을 간다>라고 했다》면서 자신의 독서경력을 소개했다.
마지막으로《컵에 남은 술을 다 마시자 나의 사유는 굴레를 벗은 말처럼 광활한 상공을 질주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의 철학가 디카르는 <내 사색은 나에게 있다>라고 했다.》…《하여 나는 아무 생각이나 하기 시작하였다.》그리고 《나는 필을 들고 내 사상의 기록의 쪼각들을 적기 시작하였다.》…《이튿날 다시 이런 문장을 읽어볼 때 나는 실소하지 않을수 없다. 어떤것은 의미가 똑똑했고 내용도 괜찮았고 어떤것은 조금도 련관되지 않고 자유산만하다. 그러나 내가 참답게 자세히 전날 저녁의 사유를 돌이켜보면 그런 주요한 사로와 관점은 점점 똑똑히 도드라지게 되여 나는 기쁘고 흥분한다. 이렇게 나는 한편의 문장을 얻게 되는것이다.》수필은 《서재에서 술을 마시면 락이 무한하다!》라는 말로 끝난다.
글쓴이는 마시고싶은 술도 마셨고 《취기를 빌미로》글도 쓰고 했으니 《락이 무한》하겠지만, 그렇게 씌여진 글을 읽는 나로서는 괜히 먹지도 않은 술에 취해버린것처럼 오락가락하여 좀처럼 갈피를 잡을수가 없다.
우선 《로사의 <참회록>》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다. 북경의 향토작가중에 로사라는 유명작가가 있었지만 그는 《참회록》을 쓴적이 없다. 아니면 중국에서《루숴(盧梭)》로 번역하고있는 프랑스의 계몽사상가인 루소(Rousseau)와 그의 《고백록》(Confessions)을 말하는것인가? 루소를 한어식번역어에서 다시 우리식 한자어발음으로 《로사》라고 한다면 뒤에 나오는 《헤겔》도 《흑격이(黑格爾)》라고 해야  할것 아닌가? 그다음《헤겔사전》을 준 사람도 알쏭달쏭하다. 《슬하》라는 말은 우리 말이나 한어에서나 다 부모의 곁을 뜻한다. 그렇다면 《헤겔사전》을 준 《지도자》는 글쓴이의 아버지나 어머니란 말인지? 그럴 경우 아버지나 어머님이 주셨다고 하면 더 쉽게 리해할수 있지 않을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현재 중국의 사회풍토에서는 전혀 리해할수 없는 말이 되여버린다.
두번째 모금을 마시고 인용한 옛사람의 《만권의 책을 읽으면 만리길을 간다》라는 말도 그렇다. 왜 《책을 읽으면》 꼭 《길을 갬게 되는가? 《읽는다》와《간다》라는 두개의 개념사이에는 절대적인 련관성이 있는것이 아니다. 《만권의 책을 읽고》《만리길을》갈수도 있고 가지 않을수도 있다. 가고 안가고는 책을 읽은 사람이 결정할 일이다. 그래서 《옛사람》은《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길을 가라》고 권유했을 따름이다.
술을 다 마시고 사유가 《굴레벗은 말처럼 광활한 상공을 질주》할 때, 글쓴이가 인용한 《프랑스의 철학가 디카르는 <나의 사색은 나에게 있다>》라는 말은 나를 더욱 당혹케 한다.  프랑스에는 《디카르》라는 철학가가 없다. 글쓴이가 말하는 《디카르》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는 프랑스 철학가이자 과학자, 수학가인 데카르트(Descartes)가 아닌가싶다. 그리고 《내 사색은 나에게 있다》는 말도 도무지 리해되지 않는다. 데카르트는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지극히 상식적인 말을 명제로 내세울 철학가가 이 세상에 있겠는지도 의심이 간다. 한사람의 머리는 그 사람의 몸을 떠나(참수당했을 때) 잠시 존재할수도 있겠지만 한사람의 사색(思索) 은 그 사람을 떠나 잠시도 존재할수 없다는 사실을 철학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 알수 있는 리치일것이다. 글쓴이가 인용하려 했던 데카르트의 명언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가 아닌가싶다. 1637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방법론서설》제4부에 나오는 말이다. 《생각하는 자아》만을 철학의 기반으로 삼은 데카르트는 관념론(유심론)철학의 선구자이다.
사실 《술》과 《문학》의 만남은 들뢰즈가 지적한 《독》과 《사람》그리고 《독》과 《독사》와의 만남과 같은 그런 절대적관계가 아니다. 술을 즐길줄 아는 시인, 소설가나 수필가가 있듯이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시인, 소설가나 수필가도 있다. 그리고 리백(李白)과 같이 주선(酒仙)이 시선(詩仙)으로 된 경우도 있고 영국의 월터 스코트 (Walter scott)처럼 술을 혐오한 유명시인도 있듯이 술은 한 문학인이 문단에서 차지하는 위상과는 전혀 무관하다 할수 있다.
《서재에서 술을 마시며》라는 수필이 나의 관심사로 될수 있은것은 그 글이 《술을 마시면서 시를 쓸수 있다면 같은 상황에서 수필도 쓸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풀어줄수 있는 키워드로 될수 있기때문이다. 물론 그 글은 사회학학자들이 말하는 보편성을 확보할수 있는 선택된 샘플이 아니다. 다만 내가 볼수 있었던 술을 마시고 《취기를 빌미》로 쓴 유일한 수필이였다. 그런데 그 수필은 나를 《수필은 술을 마시고 흥분된 상태에서 쓸수 있는 글이 아니다》라는 결론으로 인도했다. 가령 글쓴이가 술을 마시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수필을 썼다면, 수십편의 《철학론문》을 발표한적이 있는 지성인이 과연 그 많은 론리적 오류와 철학상식적 우를 범할수 있겠는가?
수필은 가슴에서 생겨나고 머리에서 정리된 글이라고 한다. 한편의 좋은 수필에서는 정서와 지성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일것이다. 시는 단적인 정서의 발로이기때문에 술을 마시고 흥분된 상태에서도 쓸수 있겠으나, 수필은 정서와 지성의 융합으로 구성되는 글이기때문에 아무리 뜨거운 가슴에서 생긴 뜨거운 열정이라 할지라도 랭정을 잃지 않은 머리에서 차분하게 정리되여야 한다.
자신에 대한 성찰이나 주변세계에 대한 관찰 그리고 사색은 흥분된 상태의 정서보다는 세련된 지성에서 기대될수 있을것이다. 한사람의 생각이 《취기를 빌미》로 《넓디넓은 상공으로 빙빙 선회》하거나 《굴레를 벗은 말처럼 광활한 상공을 질주》하는이상, 그것이 다시 인간들이 살고있는 지상으로 돌아와 차분한 상태로 전환되기전까지, 독자들에게는 그 《사유》를 따라다닐수 있는 재간이 없다.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주당(酒黨)이라 하더라도 술에 취해버린 수필을 읽으려는 사람이 있겠는지 의심이 간다. 《열》이 가슴에서 머리로 옮겨져 식어버린 가슴과 달아오른 머리에서는 좋은 수필이 씌여질수 없다.
《아무것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평정한 마음으로 마치 먼 곳의 그리운 동무에게 심정을 말하듯이… 한가로운 기분을 지니면서도 진실된 마음으로 한편의 문장을 쓸 때, 그것은 곧 수필이 될것이다.》(김광섭: <수필문학 소고>) 그렇게 씌여진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는것이다.》(피천득: <수필>) 그래서 《시가 말을 놓을 자리에 놓는 글이며, 소설이 인물을 놓을 자리에 놓는 글이라면 수필은 마음을 놓는 자리에 놓는 글이다.》라는 말이 생겼을것이다.
수필은 술로 흥분된 상태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씌여지는 따스한 사랑의 마음이 담긴 지적인 글일것이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