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백년빙곡氷谷

 붉은 홍수
 

1
팔이 저려 뒤로 돌아눕던 덕구는 옆자리가 풀썩 무너져 있음을 느끼고 눈을 부스스 떴다. 곱단이가 누워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있었다.
“또 어딜 나간 겨.”
덕구는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이 밝는 모양인지 더위를 식히느라 열어 놓은 지게문 밖은 희붐하다. 덕구는 부엌으로 통한 사잇문을 열어보았다. 아버지의 권고대로 단칸방 가운데 간이 벽을 막고 곱단이를 집으로 맞아들인 지 꼭 열 달이 되었다. 그동안 곱단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이 시댁식구들을 들볶아대고 있다.
아버지는 언제 일어났는지 이부자리를 개켜 시렁위에 얹어놓고는 비좁은 정주간구들에 쭈크리고 앉아 곰방대를 뻑뻑 빨고 있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은 아버지의 꼬부장한 체구는 나이가 들수록 오그라들며 인제는 어린애처럼 왜소해 보였다.
“압씨, 곱단이 어이 개겠는디 몰라랍디여?”
“뒷간 나갔나 쟆어라.”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심드렁한 표정이다.
덕구는 손등으로 눈을 비벼 졸음을 털어내며 고무신을 끌고 뒷간으로 나가 보았다.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인분이 삼복더위에 부글부글 괴며 구린내만 역하게 풍길 뿐 텅 비어 있다.
“뒷간에두 없어라우.”
대답이 없다.
“은지쯤 집서 나갔답디여?”
“담배 한대 필 시간이 됐을라나 고마.”
“압씨두, 사램이 나가는디 붙잡도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단 말입디여?”
“어이 하로 이틀 일이당가.”
덕구는 베저고리를 걸치고 삽짝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분만 날자가 오늘 낼인데 막달 잡은 배를 부둥켜안고 어딜 간 걸까? 복중에 태아를 임신한 뒤부터 곱단은 이상하게 돌변해 버렸다. 무슨 속셈인지는 딱히 몰라도 그녀가 복중태아를 지워 버리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는 바람에 덕구는 진땀을 빼야 했다. 어느 날 밤에는 마당에서 쿵덕거리는 소리가 나기에 나가 보았더니 곱단이가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는 마당 아래로 풀쩍풀쩍 뛰어내리곤 하는 것이었다. 뛰어 내렸다간 또 사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가곤 했다.
“으매, 지비가 지끔 미쳐부링긴가? 머달라꼬 아 밴 몸으로다 오밤중에 지방 위에서 뛰어 내림시로! 아가 떨어지면 어떠칼락꼬.”
곱단은 어깨를 들먹으며 흑흑 울었다.
“세 식기도 먹고 살기가 에레분데 아까정 낳으면 어드렇게 기름까. 일찌가이 떨궈버리능게 상책입지비.”
“허튼소리 그만 혀! 이 덕구가 있응께 그란 걱정언 하들 말구 지비는 몸간수나 잘 혀란 말이야.”
꺼져가는 초가지붕이라 낮았기에 망정이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러나 곱단은 그 뒤로도 덕구의 당부를 어긴 채 한사코 낙태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썼다. 한 달 동안은 밤만 되면 날마다 멀리 물레방앗간까지 뛰어 갔다 오곤 했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다. 덕구가 잠만 들면 방 안에서 가만히 빠져나가곤 했던 것이다. 그것도 별 효험이 없었던지 한동안은 또 강변의 방죽으로 나가 가파른 경사면에서 무작정 아래로 뒹굴기도 했었다. 어디서 누가 알려준 비방인지 식구들 몰래 첩약을 달여 마시기도 했고 무슨 액막이 비법이라며 미신놀음을 하기도 했다.
한 번은 밤중에 극심한 복통으로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기에 저고리를 벗겨보았더니 아랫배에 덕구의 종아리에 치는 각반을 열 겹, 스무 겹으로 꼭꼭 동여매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먼 짓거리야?”
“아를 낳으면 안 됨다. 멕에 살리지도 못할 건데 낳아서 죽이느니 차라리 뱃속에서 주게버리는게 가슴이 덜 아플검다.”
한사코 태아를 지워 버리려는 아내의 고집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곱단이가 말하는 그 이유 말고는 달리 의심될 만한 근거가 없는지라 덕구는 그녀를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 워낙 불같은 성미였지만 유독 곱단이한테만은 온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해지는 덕구인지라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는 아내의 그런 배신행위에도 성을 내지 않고 인내성 있게 달래기만 했다.
동쪽 하늘이 희붐히 밝아왔다. 삼라만상이 지루한 어둠의 장막을 벗어 내치고 그 웅장한 모습을 어렴풋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덕구는 모내기를 끝낸 벼들이 하루가 다르게 우썩우썩 키 돋음 하는 논벌을 지나 강변으로 나왔다. 또 방죽에서 뒹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헐레벌떡 달음박질쳤다. 막달 잡은 배를 안고 걷기도 힘들 텐데 방죽에서 뒹굴기까지 한다면……
은파강은 수면 위로 비단 필처럼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우윳빛 새벽안개 속으로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고요한 새벽의 정적 속에서 쏴아, 하는 물결소리는 유난히 맑고 거창했다.
숨을 헐떡거리며 방죽 위에 올라선 덕구는 강의 중심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 검은 물체를 발견하고 놀랐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도 덕구는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이 분명 아내 곱단임을 알아보았다.
아니, 저 사램이 지끔 머달락꼬?!
그는 한동안 억이 막혀 입을 딱 벌린 채 우두커니 방죽 위에 심어졌다. 그러나 임신한 곱단의 부피가 큰 체구가 물살에 휘우뚱거리다가 넘어지며 물결을 타고 아래로 떠내려가는 걸 보고서는 화들짝 놀라며 방죽 아래로 쏜살같이 달려 내려갔다.
“여보.”
은파강에서 나서 자란 덕구는 물 헤엄에 너무나 익숙했다. 서슴없이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잠깐 새에 떠내려가는 곱단을 구출해 강기슭으로 나왔다.
“니 지끔 역서 머해쌌노? 환장했어라. 먼 고집이야! 내가 묵여 살린다느디두.”
곱단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울기만 했다.
덕구는 곱단을 등에 업고 방죽을 올라왔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둠이 말쑥하게 걷히고 태양이 떠오를 준비를 다그치느라 동천에 붉은 아침노을이 부챗살처럼 펼쳐졌다.
삽짝문 안에 들어서는데 마침 마당에서 집을 나서려던 아버지와 마주쳤다.
최복만은 아들을 보자 주춤하고 발길을 멈췄다.
“먼 일은 없었드노?”
“없긴유. 이 사램이 갠에 빠뜨려 죽을락꼬 하는 걸 보도시 건졌구만이라우.”
“쩌런…… 다해이구나.”
그런데 최복만은 무슨 나쁜 짓을 하려다 발각된 사람처럼 아들의 시선을 외면하며 우물쭈물한다.
“근디 압씬 이라게 일근아적부텀 어일 개겠닥꼬 집얼 나선거랍디여?”
“고마 머시냐 갑갑하더랑께 논에나 쬐깨 나가볼려구……”
최복만의 행동은 어쩐지 당황스러워 보였고 말도 더듬었기에 더구나 의혹이 커졌다.
“누 모를가봐유. 또 그 한지주네 집에 개겔락고 나선거제라우?”
“앙그다. 내가 거그는 멋땜시 개겐다냐.”
“해이나 그 집엘 개기먼 안 돼유. 이젠 그넘덜의 시상언 끝장나 버렸심다. 즈그 집구석이 누 땜시 망혀비렛습디여. 성은 누 땜시 억울허게 죽었답디여. 향란이 고 가이난 누 땜시 집얼 나갔습디여? 몬타 그 한주지넘 집구석 때미 앙깁디여.”
“안 개긴닥허는디두 그라는구나.”
최복만은 앞길을 막아선 아들의 옆을 에돌아 슬그머니 삽짝문 밖으로 사라졌다.
“가먼 안 되어라우.”
덕구는 아버지가 사라진 골목을 향해 다시 한 번 큰소리로 다짐을 받고서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최복만은 논으로 향한 골목길에 들어섰다가 집이 보이지 않자 서둘러 한지주네 집이 있는 골목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세상이 변했다고 사람의 정까지 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해방이 되자 한상권이네 집에서 일을 하던 머슴들은 죄다 뿔뿔이 흩어져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고 종수와 종철 두 도련님마저 행방불명이 되어 한상권이네 집은 요즘 초상집 같았다. 게다가 평소 그 댁에 길 잘들인 발바리처럼 굽실거리며 드나들던 아첨꾼들도 시국이 변하자 언제 그랬더냐 싶게 발길들을 딱 끊어버려 흥성거리던 집안이 갑자기 쑥대밭이 된 듯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최복만은 한상권과 맺은 오랫동안의 두터운 정분을 버릴 수 없어 아들 덕구가 눈을 부라리며 막아 나섰지만 이 구실, 저 핑계 골라대며 지금까지 하루도 발길을 끊은 적이 없었다. 몰래 가서는 장작도 쪼개주고 우물도 길어서 물독에 가득 채워주고 불도 지펴주고 소여물도 썰어주고 마당도 쓸어주었다.
요즘은 한상권이 즐겨 마시는 술을 빚어 주느라 발걸음이 더 잦아졌다. 보름 전에는 누룩을 잡아 놓았었다. 보리 몇 되와 밀가루 두 되에 녹두 즙이며 여뀌를 섞어 골고루 반죽하여 발로 꽁꽁 밟아 덩이를 만든 다음 연잎과 도꼬마리 잎으로 사서 마룻방에 매달아 놓았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썩을 우려가 있었기에 하루 한 차례씩 뒤적여 놓고 날씨가 서늘하면 짚방석을 깔고 널어 넣고 또 여러 날을 두고 밤낮으로 이슬을 맞혀야 했으므로 손이 많이 가야 했다. 오늘은 가서 물에 담근 백미를 건져 석임도 만들고 술독도 씻어 청솔가지를 넣고 솥에 쪄내야 했기에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대문 안에 들어서니 정원 가운데 우두커니 섰있던 한상권이 그를 보고 반색했다.
“오 최 서방 자넨가? 어여 오시게.”
“네 나리님. 밤새 편히 주무셨습디여?”
“그랴. 최 서방, 이 험악한 난세에 날 잊들 않고 찾아중께 고맙기 이를디 없시.”
“고마, 먼 말씀이다요. 지가 나리헌티 진 신세에다 비할랍디여.”
“그래두 시국이 시국인 만큼 지비도 더는 내 집에 발질얼 돌리들 마이소. 지비헌티 누럴 지칠까봐 두려우이.”
“나리. 천하가 빈헉닥고 나리에 대헌 지의 맴이사 어이 빈헌답디여.”
“최 서방.”
한상권은 목이 메는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최복만의 솔 껍질 같이 거친 손을 덥석 잡아 쥐였다.
최복만은 너무나 황감한 나머지 어쩔 바를 몰랐다. 허리를 굽실하고 인사를 드리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리, 지는 그만 석임얼 맹글어사 쓰것구먼유.”
“바쁜 디 먼 술까장 빚어 준닥꼬.”
“나리께서 속이 답답허실 틴디 즐기시던 술 한 잔 드시먼 그래두 속이 쬐깨 핀허실 것 같아서유.”
3일간 물에 담가 놓았던 흰쌀을 조리로 건져냈다. 쌀알들이 살진 개암벌레들처럼 물에 잘 불어있었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고 부른 쌀을 건져 단솥에 쪄냈다. 커다란 솥에서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자 구수한 밥 냄새가 주방에 가득 서렸다. 골고루 주물러준 다음 항아리에 담아놓고 뚜껑을 단단히 봉합하여 서늘한 곳에 짚을 깔고 보관했다. 석임이 익기를 기다려 술을 빚기만 하면 되었다.
인젠 술독을 씻어야 했다. 노란 독을 골라 안팎을 몇 번 씻은 다음 독안에 청솔가지를 듬뿍 집어넣었다. 아궁이를 맞춰 단솥에 거꾸로 엎어서 얹은 다음 장작불을 지펴 찌기 시작했다. 술독을 찌는 동안 그는 멍하니 앉아 있자니 심심하여 우물을 길어 물독에 채웠다. 그리고는 또 땀을 들일 사이도 없이 장작을 쪼갰다. 한상권이 잡아주던 그 뜨겁던 손길이, 두 눈에 글썽하던 눈물이 최복만을 감동시켰던 것이다. 나리를 위한 일이라면 하나라도 더 해 주고 싶었다. 머슴들이 죄다 도망쳤으니 살아가기 얼마나 불편하랴. 그가 날마다 한 번씩 와서 거들어준다고는 하지만 그 번다한 가사를 죄다 맡아줄 수도 없으니 별 수 없이 한상권의 손이 가야 했던 것이다.
며칠 동안은 걱정 없을 만큼 장작 한 무더기를 쪼개놓고는 겨우 담배 한 대 피우고 또 일어나 소여물을 썰었다. 어제 그가 논에 수레를 몰고 나가서 베어 온 꼴단들이 소가 먹기 좋게 시들어 있었다. 내일쯤 또 베어 와야 될 것 같았다.
한창 땀을 흘리며 선들선들한 작두날에 꼴단을 먹이며 신나게 여물을 썰고 있는데 느닷없이 등 뒤에서 벽력같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최복만은 깜짝 놀라 작두질을 멈추고 고개를 쳐들었다.
“압씨, 역서 지끔 머학고 지게라우? 압씨가 머시냐 이 집 종이락도 됩디여? 어여 일어나이다.”
아들 덕구였다. 녀석의 얼굴에 노기가 번져 험상궂게 일그러져 있었다.
“썰던 여물이나 몬타 썰고 개껬다. 니 먼첨 개게라.”
“안 돼라우. 싸게 개게라우. 집에 미느리가 몸을 풀란가라우. 배가 아프닥꼬 궁굴러댕기기먼유. 시방 산파럴 집다 딜따 놓코 왔심다.”
“미느리가 몸푸는 디 시아베가 멀 헐 일이 있닥꼬.”
부자간에 왁작 떠드는 소리를 듣고 뒤란 화단에 물을 주던 한상권이 웬일인가 싶어 우사로 나왔다.
“최 서방, 먼 일이 생겼능가?”
“앙급네다. 일언 먼 일유.”
“일이 있으먼 집에 가보시.”
“앙그랑께 그라지라 나리님.”
“나리님은 먼 썩어비린 나리님이랍디여. 이봐유, 지비가 머땜시 즈그압씰 기양 지비네 하인맹키로 부리는가이다. 하들 말제라. 지주넘 시상은 몬타 망혔어라.”
“덕구야. 너 나리님 허고 그게 먼 말본새냐.”
좀해서 성낼 줄 모르는 최복만이 벌떡 일어나며 아들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괜찮으이. 괘념치 않응께 어여 덕구를 델꼬 집으로 가보소. 급헌 일이 있는 데끼 쟆응께.”
“나리, 이넘 아직 철이 없어 나리께 불손헌 지꺼릴 혔응께 용서허이다.”
최복만은 연신 허리를 굽실거렸고 덕구는 한사코 아버지의 팔목을 밖으로 잡아당겼다.
“압씨. 그넘허구 성의 죄값언 못받어낼 석시 굽실거림시로 종질얼 허다니유.”
덕구는 아버지의 등을 떠밀고 집으로 오는 동안 내내 가슴속에 끓어 번지는 분노를 삭이지 못해 불만을 토로했다. 최복만은 최복만이 대로 신세타령, 은혜타령만 곱씹었다.
“그 어른이 앙그었다먼, 나리께서 느그엄니럴 아베한티 시집보내들 않았더라면 니도 어짜면 시상기겅얼 못혔얼끼다.”
“울 엄니는 머시냐 한지주의 딸이당가유, 되넘 지주의 종이락 함시로!”
부자간이 골목길에서 법석을 떨며 집에 당도하니 방 안엔 산파도 없고 갓난아기도 없이 산모 혼자만 달랑 방구들에 누워서 홀짝홀짝 울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그는?!”
덕구는 산방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신생아부터 찾았다.
“죽었슴다. 몸 풀다가 난산으로……”
“머락꼬? 죽었닥꼬? 그럴 리가 없어야. 압씨, 쬐깨 집에 지게이다. 지가 어이 쬐깐 댕기올팅께유.”
덕구는 짚이는 데가 있어 부리나케 집을 뛰쳐나왔다. 그가 찾아간 사람은 산파였다. 마침 산파는 아직 은파강나루터에 있었다. 강기슭에 서서 맞은편의 나룻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 아그 난산 땜시 죽었당기 증말이란가우?”
“아니, 죽다니요. 내 손으로 살아 있는 아기를 받아주고 왔는데. 신체도 튼튼하고 울음소리도 우렁찬 머시마였는데. 산모가 그러던가?”
“예.”
“응 글쎄 나도 좀 이상하다 했다니까. 나더러 아기를 버려 달라고 애걸하더라니까. 강변 버들방천에다 말이지. 에끼. 하늘도 무섭지 않냐, 제 속으로 낳은 새끼를 버리다니 하구 욕을 하고 나왔네만……”
덕구는 산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례를 굽실하고는 강변 버드나무숲으로 허둥지둥 달려갔다.
버드나무숲 근처에 이르자 아니나 다를까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숲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풀 더미 속에 강보에 싸인 아기가 손발을 가동거리며 죽어라고 울고 있었다. 벌써 개미떼가 몸에 매달려 살을 물어뜯고 있었다.
덕구는 아기를 번쩍 들어 품에 안았다.
“오냐, 고마 울들 마라. 우리 머시마야. 느그압씨가 여그 있다.”
덕구는 아기를 허공중에 번쩍 쳐들고 빙글빙글 돌며 껄껄 웃어댔다.

7월말에 접어들면서 연일 쏟아지던 폭염을 식히며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찔끔찔끔 내리던 어느 날 늦은 저녁 덕구네 집에 뜻밖의 불청객 한 사람이 찾아들었다. 온몸이 비에 후줄근히 젖은 채 머리에 커다란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다리엔 나무꾼처럼 각반을 두르고 있었다. 몸에 걸친 양복은 낡았지만 단정하고 세련돼 보였고 목에 두른 흰 수건은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과 흡사했다. 40대의 중년인데 자그마한 몸집에 얼굴은 수척했지만 눈빛은 강렬했다. 짐이라고는 달랑 등에 멘 바랑 하나뿐이었다.
“떠돌이 야장장인데 이 댁에서 하룻밤 묵어갈 수 없을까요?”
“집구석언 디럽소만 질손이 꺼리들 않는다먼 미칠 밤이락도 묵어가지라우.”
최복만은 배낭까지 받아서 말코지에 걸어주었다.
덕구는 수상한 듯 한 쪽에 앉아 길손의 행동만을 묵묵히 지켜본다.
“북쪽에 화적 떼가 끓어서 피난 나오는 길입니다. 여긴 좀 안전한 것 같아 일자리나 구해 볼가 해서 들렀습니다. 이 마을엔 혹시 대장간 같은 건 없는지요?”
“한나 있긴 있었는디 대장장이가 해방이 됨시로 고향인 조선으로 나가고 지끔은 빈 집만 남었제라.”
“아, 그렇습니까. 마침 잘 됐습니다. 제가 그 집을 수리해서 동네사람들에게 농기구들을 벼려 드리면 되겠네요. 그러자면 아무래도 이 댁 신세를 며칠 더 져야겠습니다. 집을 장만하여 나갈 때까지만……”
“지비가 맘 핀대루 하이다. 불핀허들 않다먼……”
밀짚모자를 벗자 하이칼라 머리가 드러났다. 시골사람 같지는 않고 이목구비가 반듯하게 생긴 걸 봐서도 먹물깨나 먹은 사람 같아 보이는 데 대장장이라니. 하지만 초면에 꼬치꼬치 캐고 더 물어볼 수도 없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자리에 눕자마자 초저녁잠이 많은 최복만이네 식구들은 모두 꿈나라에 빠져들었다.
밤중에 소변이 마려워 자리에서 일어난 최복만은 손님이 그때까지도 등불을 켜고 무슨 책인가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는 걸 발견하고 더구나 이상하게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이튿날 그는 덕구 몰래 한상권이네 집으로 가 소꼴을 베어다주면서 낯선 불청객의 도래에 대해 소상하게 알려주었다.
“글매 머다는 사램이랑가?”
한상권도 그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암튼 뒤럴 똑때이 살피시. 요상헌 사램이 틸림없당께.”
이튿날 날이 밝자 손님은 비어 있는 대장간으로 나갔다. 진종일 허물어진 화덕도 다시 쌓고 고장 난 풀무도 수리했다. 날이 어두워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배낭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늘 등에 지고 다녔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손님은 할 말이 있다며 최복만과 덕구를 불렀다. 뜻밖에도 그는 동네의 사정에 대해 자세히 물으며 수첩에 일일이 기록하기 시작했다. 머슴살일 했던 가구는 몇 호나 되며 이름은 무엇인가, 소작농은 몇 세대나 되며 이름은 뭔가, 자작농과 부자는…… 꼬치꼬치 캐물었다.
“지주와 순사, 친일을 한 놈들은 없습니까?”
그 말에 호기심을 느낀 듯 이제껏 말없이 지켜만 보고 있던 덕구가 드디어 한걸음 앞으로 나앉았다.
“거기는 공산당간부지라. 맞지라우?”
“동무가 보기엔 어떤가?”
“말끝마다 동무, 동무 하는 걸 봉께 틸림없이 공산당간부가 옳은 것 같어유. 동무락카는 말언 공산당만 쓰는 호칭이 앙그라우.”
“잘 보았습니다. 이 집은 소작농이니라니까 내 신분을 비밀에 부칠 이유가 없겠군요. 난 공산당간부지요. 당에서 이 마을에 파견한 토지개혁공작대입니다. 그러니 혁명군중인 머슴이나 소작농인 동무들이 나를 도와주어야겠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덕구 대신 최복만이 입을 다물고 벙어리로 변했고 벙어리 행세를 하던 덕구가 아버지 대신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 강촌마슬또 지주, 부자, 순사와 왜놈앞잡이들이 있어라우. 한상권이락꼬 있는디 큰지주제라우. 만헌 땡얼 흐끈히 가진 대지주랑께요. 그 집 땡얼 부친 소작농이 얼만디유. 머슴만 혀도 일곱이나 된당께요. 그라고 그 아덜언 읍내서 순사질얼 함시로 악한 지껄이란 지꺼린 몬타 혔고유.”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으나 최복만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한상권의 가정에 불행이 덮쳐들고 있음을 예감하고 저도 모르게 온몸이 떨렸다. 더구나 오늘 새벽녘에 김 공작대가 잠이 든 틈에 열어본 배낭 안에 순사 종수가 옆구리에 차고 다니던 그런 권총이 들어 있는 걸 보고 혼비백산했다. 어쩌면 그 총으로 한상권을 죽이러 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각이 급했다. 어서 달려가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옆자리에 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김 공작대가 벌떡 일어나 덜미라도 잡을 것 같은 공포감에 사지가 화들화들 떨렸다. 그러나 잠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최복만은 김 공작대가 깊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가만히 집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골목으로 나오자 재빨리 한지주네 집으로 달려가 보고들은 대로 죄다 일러주었다.
한상권은 한동안 말없이 자리에 정좌해 있었다.
“이라고 있을 때가 앙기구먼유. 나리님, 어여 방법얼 대어 이곳얼 떠나가이다.”
“떠나긴 어이루 떠난단 말이노. 어일 가도 시상이 몬타 공산당천하가 되었을 틴디. 지집 셋에 머슴아까장 델꼬 떠난닥카는 게 말맹키로 쉬운 일언 앙긴 걸시. 기러타꼬 처자럴 냅두고 혼자 도망칠 시도 없고…… 그라고 난 정이 든 이 고장얼 떠나고 쟆잖어. 운명에 맡기고 쟆으이.”
“나리님, 지발.”
최복만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방바닥에 이마를 조아렸다.
“고마 그치시. 다만 내 토지대장만언 최 서방이 쬐깨 보관혀 줄 시 있겄나? 누가 미칠까 두려우먼 거절혀도 최 서방얼 머시락꼬 허든 않겠시.”
“예예. 맡겨만 주시먼사 어련히 똑때이 간수혀디릴 건디유. 소인얼 믿어주셔서 감지덕지헐 뿐이어라우.”
김 공작대의 주관 하에 덕구와 몇몇 마을소작농 젊은이들을 선발하여 ‘적극분자훈련반’을 조직했다. 김 공작대는 최복만을 비롯한 몇몇 소작농들을 개별적으로 방문하여 수십 차례에 걸친 반복적인 설득을 통해 토지개혁의 의의와 당의 정책교육을 시켰으나 모두들 이름부터 생소한 ‘적극분자훈련반’에 참가하기를 거부했다. 복만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회의에도 자주 나가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계급적으로 각성한 혁명적 군중으로 되는 것」이 뒷날의 불행을 불러올까봐 두려워했다. 아직 지주도 그대로 살아있고 또 세상이 뒤바뀌지 않는다는 담보도 없는지라 물러설 자리부터 염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덕구 아버지 같은 소작농 동무들이 앞장서줘야 우리 프로레타리아혁명이 보다 빨리, 보다 훌륭하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토지를 지주 놈들에게서 무상 몰수하여 밭갈이하는 농민들에게 돌려주는 당의 정책은 당전의 혁명과업이므로 한시도 미룰 수 없습니다. 그런데 혁명의 주력군인 소작농들이 강 건너 불난 집 구경하 듯 팔짱을 끼고 수수방관해서야 되겠습니까? 솔선수범하여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토지개혁의 역사적 과업을 완수해야지요. 혁명은 최복만 동무 같은 사람들을 수요하고 있습니다.”
김 공작대는 기회만 있으면 최복만을 농회에 가입시키려고 선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어서는 새벽닭이 울 때까지 혁명의 도리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최복만은 그저 한마디 응대도 없이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아니, 사실은 한마디도 듣지 않았다. 전혀 생소한 말들이어서 귀를 기울여도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자기 생각만 하다가 어느 순간엔가는 잠이 들어 태평스럽게 코를 드렁드렁 골곤 했다.
“압씨, 오늘밤 회의에는 꼭 참가해야겠습니다.”
덕구가 아버지에게라기보다는 수하 일꾼에게 명령하듯 회의참가를 강요하면 최복만은 얼굴부터 잔뜩 찌푸렸다.
“느그압씬 암래두 참가헐 것 같디 모텨. 머리빡도 아프고 배도 아프고……”
“압씨, 증말 이럴 겁니까? 압씬 한상권의 소작농이 아니라 무산계급혁명의 주력군의 한 성원입니다.”
“글매 난 고만 뒷간에 나가 봐사 쓰것다.”
그렇게 집에서 슬쩍 빠져나와서는 골목길을 빙빙 돌아 한상권이네 집으로 가곤 했다.
내가 언제 무산계급혁명의 주력군이었단 말인가. 토지개혁의 역사적 과업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남의 땅을 강제로 빼앗는 것이 혁명이라면 난 그런 나쁜 일에는 결코 가담하지 않을 거야.
최복만은 동네사람들이 죄다 김 공작대의 편이 되어 한상권을 반대하더라도 자신 만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찌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있단 말인가. 삶은 김 공작대가 말하는 그 아리송한 단어들 즉 혁명이요, 계급투쟁이요, 토지개혁이요, 사상이요 하는 말들이 아니라 인정으로 사는 것이다. 인정마저 모른다고 외면하면 그건 사람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아들의 권유에도, 거의 강박에 가까운 독촉에도 끝끝내 농민협회에 가입하지 않았던 것이다.
농회는 결성된 지 얼마 안 되어 지주와 부자들더러 잉여곡물을 바치도록 강요하기로 결정지었다. 그러자 회의정보를 미리 입수한 최복만은 한달음에 한상권에게로 달려가 이 사실을 귀띔해주었다.
“최 서방, 쬐깨 알아서 우리 집 곡물을 숭겨주게. 나야 먼 방법이 있겄나. 집에 갇혀 있는 몸이나 다름없잖은가.”
한상권은 복만의 손을 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복만은 한밤중에 한지주네 곡식창고의 쌀섬을 수레에 싣고 물방앗간으로 옮기여 쥐도 새도 모르게 늪 옆의 억새 숲에 구덩이를 깊숙이 파고 묻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덕구는 농회 성원들을 인솔하고 한지주네 집으로 밀고 들어갔다. 집안이며 정원이며 심지어는 우물 안까지 샅샅이 수색했으나 쌀 한 섬 찾아내지 못했다.
“이 악질 지주 놈아! 그 많던 양곡을 몬타 어디다 숭긴겨? 바른 대로 대라. 우리 소작농들이 피땀 흘려 가꾼 곡식인디 니놈이 머간디 독차지헌단 말이냐! 바른 대로 탄백하들 않으먼 농민들이 니놈을 가만 두들 않을 거다!”
“죽인닥캐도 나는 모르는 일입네다. 머슴들이 고향으로 돌아감시로 어떻게 처리혔는디?”
한상권은 한마디로 딱 잘라버렸다. 최복만은 혹시 한상권이 농회의 위협이 두려워 자신의 이름을 누설할까봐 속이 조마조마했으나 끝까지 비밀을 고수하는 걸 보고 다시 한 번 감동을 받았다.
농회에서는 하는 수 없이 부엌간에 있던 쌀 한 섬과 잡곡 몇 말을 몰수하여 끼니 잇기가 어려운 농민들에 분배해주었다.
덕구와 김 공작대가 분배받은 쌀 몇 되와 잡곡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자 최복만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돌아앉았다.
“싸게 싸게 그 쌀얼 나리 댁에 돌려 주거라.”
“머땜시 이 쌀얼 그넘헌티 돌려 주간디. 즈그들이 피땀 흘려 번건디.”
“덕구 동무의 말이 맞습니다. 지주 놈들은 우리 불쌍한 농민들의 피땀을 착취한 겁니다.”
“그땡이 누 땡인디유. 나리 댁 땡이당께유. 그렁께 그 땡서 난 알곡도 그집 거지라우.”
“그게 어떻게 한지주 땅이 됩니까. 인민의 땅이지요.”
“나리님의 부친께서 조선서 토지캉 집캉 폴어 보낸 돈으로 산 땡인디 머땜시 인민의 땡이라능거라우. 지눈으로다 봤구먼유. 글매 더러는 장지주가 준 땡이긴 허디만……”
김 공작대가 최복만을 붙들어 앉히고 알아도 듣지 못할 수많은 혁명의 도리들을 말해주었지만 최복만은 죄다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댁은 이 고장 사람도 아닌데 토착민보다 알면 뭘 더 안다고 그러냐며 속으로는 비웃기까지 했다.
“압씬 그넘들헌테 핑생 동안 착취 받고 억울한 일들을 당허고도 아직도 그놈 핀얼 듭디여.”
최복만은 끝내 농회에서 분배한 쌀로 지은 밥에 숟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
“압씨도 반동으로 몰려 투쟁 받고 쟆어 그럽디여? 혁명의 적이 되고 쟆응가 말입디여?”
김 공작대가 밖으로 나간 틈을 타 덕구는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아버지를 위협하기까지 했다. 덕구는 어느새 어린 나이에 강촌마을 민병연장(중대장)이요 농민협회부회장이라는 어마어마한 벼슬자리에 있었다. 그의 앞에서 복만은 가정에서는 비록 부친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그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수하 사람에 불과했다.
“먼 비슬깨나 한닥고 느그압씨까장 투쟁헐 작정이데노?”
“압씨부텀 아케 서줘야 아덜이 밲에 나가 사회활동얼 맘 핀대로 할 수 있을 게 아닙디여. 지발 한지주놈헌티서 쬐깨 미련 떼비리이다. 기양 고집 쓰다간 길코 존 일이 없을 낑끼 그때 가서 지를 불효자락꼬 원망하들 말구 미리 알아서 처신하이다. 이게 아들로서 압씨께 디리는 마지막 부탁인 걸 아이다.”
“너 동네 사램들캉 인정얼 내비리더니 인잔 부자지정까장 끊을락꼬 허노?”
“그게 어디 인정입디여. 계급의 적이지라. 계급의 적은 무자비하게 쌔레비레사 하능기라우. 압씬 농민협회나 야학, 회의에 나가 싸게 싸게 낡은 사상얼 개조학꼬 계급각성얼 할 생각은 안 허구.”
부자지간은 마주앉기만 하면 언쟁이 벌어졌고 언쟁 끝엔 꼭 얼굴을 붉히고 목청을 높이곤 했다. 그렇게 유순하고 어련무던하기만 하던 최복만이 그처럼 고집이 세고 강인할 줄은 미처 몰랐던 덕구는 아연실색했다.
“압씬 누 땜시 성이 죽었는디 폴쌔 잊었습디여? 빠롯 그 한지주의 아들 땜시 죽었잖여유. 공산당얼 도바 주었다는 억울한 죄를 쓰고 그넘의 몽둥이에 매맞아 죽은 걸 폴쌔 잊었습디여. 향란이를 임신시켜 마슬서 머리를 처들도 못허게 맹길어 가출허게 헌 넘이 눈디유. 빠롯 그 한지주 둘째 아들넘이 아닙디여. 근디 어찌 한지주넘의 역성얼 드는거지라우.”
“나리가 없었다면 느그압씨는 폴쌔 죽어뿌렜얼기다. 조선서 만주로 건너올 때 산중서 전염빙에 걸린 걸 구해준 게 눈지 아냐. 빠롯 나리 그분이었제.”
“그넘이 조선서 압씰 델꼬 만주 땡으로 오들 않았다면 압씨가 머땜시 전염빙에 걸린답디여.”
“오랑캐를 반대혀서 3․1운동에 참가현 것두 죄드냐? 족발이덜헌티 쫓겨온 거제.”
“그란 넘의 자슥은 왜놈 앞잡이 순사가 돼서 공산당얼 잡습디여.”
결국은 말주변이 모자라고 성미가 온순한 최복만이 입을 다물어서야 언쟁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최복만이 입을 다물었다고 해서 결코 아들에게 투항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덕구는 워낙 성미가 가파르고 입이 드셌는데 김 공작대의 중점발탁을 받아 적극분자훈련반과 농회, 야학에 다니면서 최복만이로선 알아들을 수 없는 온갖 낯선 단어들로 그 구변이 더욱 유창해졌다. 전라도 사투리도 점차 그런 혁명적 단어들로 대체되어갔다. 그러니 일자무식인 최복만이로선 말로 당해내기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의 최후의 무기는 침묵이었다. 침묵으로 아들의 기세를 꺾어버리곤 했다. 일단 침묵만 하면 자신의 설득이 무시당한다는 자존심 때문에 덕구는 길길이 뛰다가는 제풀에 주저앉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 겨울의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눈보라를 타고 은파벌에 불어치는 한밤중에 꽁꽁 얼어붙은 은파강가에서 느닷없는 총소리가 울리며 고요히 잠든 강촌마을 사람들을 깊은 단잠에서 깨웠다.
하도 뒤숭숭한 세월이라 무슨 난리라도 생겼나 싶어 동네사람들은 대문부터 꽁꽁 닫아걸고 이불 속에 들어박힌 채 공포와 불안에 떨며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의 중임을 떠멘 덕구는 집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걸쳤다.
“어디 감꺄? 위험한데 밖에 나갔다가 무슨 사고라도 생기뭉 어쩜까?”
아내 곱단이가 자다 말고 일어나 덕구의 옷자락을 잡고 막아섰다.
“이걸 놔. 내가 나가 보들 않으면 누가 나가 봐. 반동분자들이 난동을 부리는 것 같으니 꼭 나가봐야 돼.”
최복만은 벽 쪽으로 돌아앉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곰방대만 뻑뻑 빨았다. 밖으로 나온 덕구는 위험을 무릎 쓰고 무장한 민병 몇 명을 거느리고는 곧바로 총소리가 난 은파강나루터 쪽으로 달려갔다. 웬일인지 초저녁에 구당위에 회의하러 간 김 공작대의 신변이 걱정되어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루터에는 적설이 쌓여 있고 배는 강물과 함께 기슭에 얼어붙어 있었다. 두텁고 투명한 빙 면으로 바람에 불려온 눈가루가 안개처럼 흘러가다가도 바람이 잦으면 먼지처럼 살포시 가라앉곤 했다.
바로 그 강 복판의 얼음 위에 한 사람이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얼음 위에 엎드려 있었다. 가슴과 다리의 총상에서 흘러내린 피가 어느새 얼어붙어 꼬장꼬장 했다. 얼음판에서 간신히 육신을 뜯어내어 얼굴을 살펴보니 그 사람은 아니나 다를까 김 공작대였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어느 놈이 김 공작대를? 김 동무, 정신 차리시오.”
김 공작대는 과다출혈 때문인지 혼수상태에 빠진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멋들 하고 서 있는 게냐! 어서 김 공작대를 내 등에 업혀줘.”
덕구는 김 공작대를 등에 업고는 읍내를 향해 달음박질했다. 얼음이 미끄러워 몇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다시 기어 일어나 앞으로 달려갔다.
“어느 놈이 감히 이런 만행을 저지른 거야. 보나마나 한상권이란 놈이 한 짓이 틀림없어. 제 땅을 무상몰수 했다고 보복을 한거야. 개자식! 악질 반동새끼! 김 동무만 죽어보라지. 네놈도 결코 무사하진 못할 거야. 이 덕구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김 공작대는 초저녁에 구당위원회에서 소집된 토지개혁공작간부회의 참가 차 다녀오던 길이었다. 밤중에 강촌으로 돌아오다가 은파강 나루터에서 웬 정체불명의 자객의 흉탄을 맞고 참변을 당한 게 분명했다.
“저희들로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생명이 위급하니 급히 은파시인민병원으로 옮겨야겠습니다.”
의료시설이 미비한 읍내병원에서는 지혈구급만 하고는 김 공작대를 앰뷸런스에 실어 은파시인민병원으로 후송시켰다.
그러나 김 공작대는 후송 도중 말 한마디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김 동무, 김 동무에게 총을 쏜 놈이 누굽니까? 한상권이란 놈이지요? 어디 말 좀 해봐요!”
덕구가 그의 식어가는 상체를 마구 흔들며 애타게 물었지만 죽은 사람이 말을 할 리가 만무하다. 그는 벌써 꼬장꼬장하게 굳어지는 김 공작대의 시신을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그의 두 눈에서는 분노의 불꽃이 번뜩였다.
“어디 보자 이놈들!”
이 문제는 청산당한 지주계급이 토지개혁과 청산운동에 앙심을 품고 혁명 간부를 살해한 중대한 반혁명사건으로 인정되어 즉시 상급당위에 보고되었다.
마을로 돌아온 덕구는 다짜고짜 한상권을 학교마당으로 끌어내어 대중투쟁을 전개했다. 구당위에서도 발 빠르게 이튿날로 새로운 공작대를 파견해왔다.
“악질 지주놈은 바른 대로 탄백하라! 혁명 간부를 살해한 죄를 승인하라!”
군중은 분노했다.
한상권의 식구들은 고대광실 자택에서 쫓겨나 곱단이네가 살던, 다 허물어진 오막살이 빈 집으로 옮겨왔다. 그 집 재산은 재떨이 하나 부지깽이 하나까지도 죄다 빈고농단에 몰수되어 가난한 농호들에 분배되었다.
최복만의 집에도 작두와 술 한 독과 수레가 분여되었다. 그것들은 전부 최복만의 손때가 오른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물건들을 하나도 다치지 않고 그날 밤으로 고스란히 한상권이네 집에 되돌려주었다.
구정부에서는 강촌마을토지개혁과 군중투쟁에 앞장선 덕구의 적극성을 높이 평가하여 한지주네 저택에서 가장 큰 사랑채를 분여했다. 그러나 최복만과 곱단이가 완강히 거부하는 바람에 덕구도 하는 수 없이 이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진 도대체 머땜시 이사하지 않겠다는 겁니까?”
“지주가 잘 산닥고 쌔레비리고는 우리가 또 지주가 될 거냐?”
“집 한 채 가졌다고 지주가 됩니까. 땅도 없는디.”
“머시냐 땡얼 분배한담시로?”
“그건 인구에 따른 공평한 분배랍니다.”
“암튼 땡얼 가졌으면 지주가 될 수 있는 거잖여.”
“아버진 그렇다 치고 당신언 머땜시 또 싫다는 거요?”
“난 기와집을 보기만 해도 무섭슴다.”
“그래그래 알았다고요. 모두들 반대라면 나 혼자 갈 수도 없잖아요.”
곱단은 아기를 출산한 뒤로는 아무 말썽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종일 아들 영식을 품에 안고 무릎 위에서 내려놓을 줄을 몰랐다.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할 걸 왜 당초엔 지우려고 한거지. 덕구는 아기에게 반해버린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씨무룩이 웃곤 했다.
“이젠 당과 정부에서 농민들에게 땅도 주고 나라의 주인이 될 권리도 주었으니 아기 키울 걱정일랑 하지 마. 두셋을 더 낳아도 먹여 기를 수 있을 팅께.”
오랫동안 웃음이 말라 있던 곱단의 얼굴에도 화기가 애애하게 피어났다.
그러나 아버지의 얼굴에만은 먹장구름이 낀 채 종시 가셔질 줄 모른다. 일년 사이 십년은 더 늙어보였다. 허리도 더 구부정해졌고 얼굴의 주름살도 더 깊어졌다. 말없이 우두커니 앉아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덕구는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아버지의 어두운 얼굴에 웃음이 피어날 날이 있을 거라 ale고 있었다. 땅을 재는 일이 끝나고 인구 당 면적계산이 나오는 대로 덕구네도 자신의 땅을 가지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때면 평생 남의 땅에 목숨을 걸고 살아온 소작농인 아버지도 당신의 땅을 가지게 되었다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고 결국은 웃고야 말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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