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매일 아침 난 꿈에서 깬다. 드라마보다 더 생동하고 영화보다 더 스릴 넘치는 꿈들이다. 꿈속에서 나는 항상 달린다. 누군가에게 쫓긴다.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품고 달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서 달린다.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하다. 뒤를 돌아보면 어둠뿐이다. 더 이상 달릴 수 없어서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는 순간, 꿈에서 깬다. 살아있다는 안도감 뒤엔 무언가 찜찜한 느낌이다.

▲ 수상자 김초월

밝은 햇살이 커튼 사이로 웃음짓고 싱싱한 풀 내음이 섞인 상쾌한 아침공기와 기지개를 켜면서 커튼을 활짝 젖히는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주인공은 그냥 영화 속 아름다운 장면일 뿐이다. 이런 아침을 상상하는 것조차 나에겐 사치이고 욕심이다. 그냥 꿈이라도 꾸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이곳에 정착한지도 벌써 3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데 나의 아침은 항상 똑 같다. 놀란 가슴과 안도의 한숨, 그리고 장 밤의 이유 없는 도주에 지친 내 모습……

그렇게 나의 하루는 꿈속의 이야기들로 시작된다. 밥을 먹을 때도 학교 가는 길에서도 꿈속의 장면장면이 스쳐 지난다. 친구들과의 채팅에서도 남자친구와의 전화에서도 가끔씩 업데이트 되는 일기장에서도 중요한 이야깃거리다. 꿈을 꾸지 않았던 날이 언제적 이였던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난 항상 꿈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꿈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도 유난히 꿈이 많았던 아이였다. 하늘을 날고 벼랑에서 떨어지고 로봇과 친구 사귀고 울지도 웃지도 못 할 꿈들이 참 가지가지였다. 꿈도 나이를 먹는 걸까 중고등학교는 첫사랑의 설레임에 가슴 뛰던, 대학교 때는 매일 시험 치고 조마조마하게 성적발표를 기다리던 꿈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작정 도망 다니고 쫓기는 꿈이다. 누가 왜 쫓는지도 모른다. 그냥 달릴 뿐이다. 아무런 목표도 이유도 없이...

주위 사람들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한다. 누구보다도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했던 나였는데 그깟 스트레스 따윈 아무것도 아닐 거라 생각했던 나였는데 가족과 친구들의 걱정 어린 말투와 동정 어린 눈빛에 나 자신을 다시 되돌아 보게 된다.

서울에서 대학원생활을 갓 시작했을 때만 해도 참 당차고 밝은 아이였다. 수업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매일 운동도 꼬박꼬박 하는 누가 봐도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바른 아이였다. 그 때는 걱정도 고민도 없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는 듯싶었다. 그렇게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갑자기 나는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졸업하면 난 무엇을 해야 할까, 박사를 계속 해야 하나, 박사를 한다면 어느 교수님 제자가 되어야 하나, 그 교수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아니면 취직을 해야 하나, 취직을 한다면 어떤 업종을 선택해야 하나, 어떤 회사에 다녀야 하나, 월급은 어느 정도 받아야 하나...? 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이 날이 올 것이라고 예상을 했었건만 항상 그 때 가면 알겠지 하면서 미루고 회피했었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당황해서 어쩔 바를 몰라 하는 바보로 되어 버린 것이다.

여태껏 난 주어진 길대로만 살아왔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대학도 나오고 밝은 앞날이 예상되는 그런 모범생이었다. 이 사회에서 이만한 조건이면 먹고 살기는 충분하고 좀 더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도 있었다. 그런 미래를 그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이 시대 젊은이들의 대부분일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공부하면서도 등록금 걱정을 해야만 하는 회사에서도 남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결혼해서도 아이를 가져야 할지 고민해야만 하는...좋은 학교, 좋은 회사는 이미 순위가 정해져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달리...가식적인 웃음과 은밀한 비방이 난무하는 이 사회에서 난 그냥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했을 뿐이다.

하지만 더 이상 주어진 길은 없었다. 혼자서 길을 만들어 나가야만 했다. 아무런 가이드라인도 없이 어느 순간 갑자기 난 혼자서 삽을 들고 아무런 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길을 파헤쳐야만 했다.
성공한, 아니, 행복한 사람들은 이렇게 외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네가 원하는걸 하라고! 하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남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과감히 새로운 길을 도전하는 것도 웬만한 용기와 소탈함 없이는 힘든 선택이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모르고 꿈이 있어도 그 꿈을 추구하지 못하는 이상한 세상에서 우리는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마감이 임박하면 난 결정을 내려야 했고 그 기회를 놓치면 일년이라는 시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조급한 마음에 일단 취직은 미루고 박사과정 진학을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렇게 뒤늦게 시작한 연구실 생활, 정확히 일년 전이다. 그 때부터 나의 생활은 더 이상 규칙적이지 않았고 체력도 점점 바닥나고 정서적으로도 불안해졌다. 밤을 새는 건 기본이고 매일 꽉 찬 스케줄에 숨이 막혔다. 조금만 참으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고 위로를 해보았지만 나에겐 하루하루가 너무도 버거웠다. 쉴 틈 없이 바쁘면서도 무미건조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혼자서 멍 때리는 시간이 늘었다. 말도 웃음도 줄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났다. 무언가 잘못 된 게 분명했다. 가슴은 답답하고 말로는 표현이 안되었다. 하루를 밖에서 힘들게 보내면 저녁에 곯아떨어질게 분명한데 몸이 침대에 닿는 순간 잠은 온데간데 없이 달아난다. 그렇게 오만 가지 생각을 하면서 새벽까지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면 그 놈의 꿈속에서 난 또 달리고 달린다.

앞이 흐릿하다. 어둠이 모든 걸 감싸 안는다. 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낭떠러지는 아닌 걸까, 어디로 가면 난 행복해 질 수 있는 걸까? 언제쯤이면 나는 꿈속에서 저 멀리 앞에서 반짝이는 빛을 바라보며 힘차게 달릴 수 있는 걸까?...그날을 바라 나는 지금도 힘겹게 앞으로 달리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석사과정 김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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