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강복자

[서울=동북아신문] “미안해요, 사랑해요” 말 한마디 제대로 드리지 못 한 채 울 엄마 너무 쓸쓸히 총망히 하늘나라로 보냈습니다.

 아, 이 딸이 어쩜 이다지도 인색했을까요? 가슴을 쥐어뜯고 통곡해도 돌아 올 수 없는 엄마입니다.

 엄만 저를 잉태해서부터 많은걸 주시고주시고  또 주셔서 항상 넘쳤습니다. 가시는 날까지 연약한 이 딸 걱정에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셨습니다. 가신 뒤 그 상처 찢기고 찢겨 내 가슴이 시퍼렇게 피멍이 집니다.

 추억의 그물을 던져 봅니다. 198x년, 오랜 세월 홀로 사시던 엄만 살아 갈 길이 아득 하셔서 저를 큰집에 떼어 놓고 언니와 동생을 데리고 멀리로 재혼 하셨습니다.

 “엄마가 곁에 없으면 스스로를 돌볼 줄 알아야 한다. 공부에만 매달리지 말고 밥 잘 먹고 잠도 잘 자거라.”
 ‘흥, 혼자 잘 살 자고, 자식 버리고 떠나면서 고양이 쥐 생각.’

 그때 12살인 전, 엄마의 진심어린 말씀이 역겹게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오직 엄마만을 의지하며 꿋꿋이 공부에만 매달렸던 저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면서 심한 배신감에 엄마가 죽도록 미워졌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멀리멀리 떠나신대도 그이를 향해 눈길 한번 돌리지 않았습니다. 전 민들레 떠나 정처 없이 날아가는 민들레 씨처럼 자신이 가엾어 속으로 너무 너무 속상했습니다. 이런 저였기에 등을 돌리고 독하게 엄마를 떠나보냈습니다. 자식을 떼어놓고 멀리 떠나야만 하는 엄마 심정은 칼로 도려내듯 아팠을 겁니다. 그런데도 철부지인 전 엄마를 저주하고 원망하고 미워했습니다. 지금 저도 엄마가 되고 보니 그때 엄마 마음을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떠나신 뒤 가슴이 더욱 갈기갈기 찢깁니다.

 살아생전에  “엄마, 그때 나 너무 미안했어. 엄마의 피 흐르는 마음을 매 발톱으로 긁어 놨으니, 미안해 엄마.”이런 말 한마디 드리지 못 한 채 떠나보냈으니 제 심장이 아프게 조여 옵니다.

 인생에서 여린 풀과 같은 저에게 소나무가 되어 비바람 눈보라 막아 주시고, 태양이 되 주셔서 따뜻한 햇살을 비춰주셨으며, 밝은 달이 돼 주셔서 부드러움을 주신 엄마, 엄마가 가신 뒤 그대 빈자리가 너무 너무 커짐이 새록새록 느껴집니다. 그래서 자꾸 자꾸 설움의 눈물비가 터진 봇물처럼 쏟아집니다.

 엄마, 단 1년이라도 더 사셨다면 고급 화장품 사드려 엄마의 미인의 흔적이 살아 있던 그 백옥 같은 얼굴에 청춘을 되찾아 드리고, 고급보약 해 드려 엄마의 맥없는 다리에 힘을 넣어 드렸으련만.

 지금도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워 질 때면, 그대가 돌아가시기 2개월 전, 우리 함께 찾았던 서해안 작은 섬 가의 돌 바위를 찾습니다. 그곳에 외로이 앉아 제2의 고향을 그리던 한 백발 여인의 가냘픈 모습이 재현되면서 저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살아생전에 찾고 싶었던 조상님들의 탯줄이 묻힌 이곳, 하지만 엄만 이곳에서 60여년의 희로애락을 믹스 했던 만주 땅-그곳의 일초일목과 친구들을 그리워했습니다. 그곳에 앉아 초점 잃은 슬픈 눈으로 저 멀리 만주 땅을 하염없이 바라 보셨습니다. 그해, 이른 봄의 차디찬 바람이 엄마의 해쓱한 양 볼을 사정없이 부채질 했어도 엄만 望鄕石(망향석)이 되어 앉아 계셨습니다. 그때라도 엄마를 다시 중국으로, 당신의 제2고향으로 모셔 드렸으면 가슴이 이렇게 아프지 않았겠는데...

 엄마, 불효녀는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바다 향해 소리쳐 외쳐봅니다.
 “엄마, 미안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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