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미국 뉴욕시내 대표적 한인타운인 플러싱. 전철역에서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한국말 안내방송이 나올 정도로 한인 밀집지역이다. 한인들은 중국인들과 함께 이 지역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거리마다 한국말과 중국어 간판이 즐비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겼다. 곳곳에서 중국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쓴 간판이 늘어난 것. 조선족들이 급증하면서 생긴 일이다. 24일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에도 ‘일복식당’ ‘연길풍무꼬치구이’ ‘요녕반젼 ‘연변짜피짜피’ 등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과 맥줏집들이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전미조선족동포협회(회장 원종운)와 뉴욕조선족동포회(회장 주광일)에 따르면 뉴욕 일대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2만 명으로 추산된다. 1990년대 초 산업연수로 시작됐던 조선족들의 미국행이 2000년을 기점으로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많은 플러싱은 중국어와 한국말을 동시에 구사하는 조선족들이 선호하는 곳. 지난해부터 생기기 시작한 조선족 식당이 벌써 10여 개에 이른다.

지난해 일복식당을 개업한 옥영자 씨는 “한국에서 10년간 일하다가 3년 전에 미국에 왔다”며 “조선족들이 많아지면서 연변식 음식을 찾는 사람이 많아 식당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선족들은 중국인 업소에서 일하기도 하지만 전체의 80%가량이 한국인 업소에서 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뉴욕 시와 인근 뉴저지 주의 네일 업소, 슈퍼마켓, 식당 등에서 일을 많이 한다. 남자들은 건축 현장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돈을 모은 뒤에는 자신이 직접 네일 업소를 차리는 등 자영업을 통해 미국 생활에서 성공한 조선족들도 많다. 실제로 플러싱에서도 한국인들이 운영하던 업소를 중국 동포들이 인수한 사례가 많다.

일부는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에 오기도 한다. 중국 옌지(延吉)시장 비서실장을 지낸 김창묵 씨는 미국 대학에 다니는 딸의 학비 때문에 2000년 미국행을 택했다. 지금은 생활정보지인 교차로에서 영업담당 부장으로 일한다.

성공 사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한국보다 미국비자 받기가 어려워 상당수 조선족 동포들은 브로커에게 거액의 돈을 주고 멕시코 같은 제3국을 통해 온다. 그 액수가 3만5000달러(약 3500만 원) 안팎으로 중국 기준으론 천문학적인 액수다.

뉴욕에서 조선족교포들을 위한 인터넷 사이트(www.chosuntoday.com)를 운영하고 있는 최동춘 씨는 “대부분의 조선족들은 가족과 떨어져 혼자 오기 때문에 이민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고 병에 걸려 도중에 돌아가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