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순

<<도라지》잡지사의 청탁으로 이 글을 쓰기 위해 그 취지를 처음 조남철교수에게 말했을 때 그는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남에게 크게 떠벌릴 일도 아닌데, 그런 일이 남에게 알려진다는것이 어색하다는것이였다. 그는 그런 사람이였다. 자신이 한 일을 남에게 별로 내세우려 하지 않고 남이 안보는 곳에서 묵묵히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을 해나가는 사람이였다.

 결국 우리 조선족에게 괜찮은 한국인을 소개하는 일이 조선족사회에도, 한국에도 도움이 될것이라는 필자의 끈질긴 설득에 동의를 표시해 이 글을 쓸수 있었다.

필자가 조남철교수를 처음 알게 된것은 1990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국제 고려학 학술대회에서이다. 첫 인상에도 그는 호방하고 소탈하고 열정적이고 남성적인 매력을 풍기는 학자였다. 무엇보다도 가식이 없고 틀이 없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진심으로 대해주며 항상 남을 존중하고 배려해주는 마음가짐과 인품, 그러면서도 학자로서의 품위를 지키는 인격이 더욱 돋보였다. 같은 문학전공이여서 조남철교수와 필자는 국제학술회의에서 자주 만날수 있었고 그사이 우리는 절친한 친구로, 지기로 오늘까지 우정을 키워왔다. 세월이 흐를수록 필자는 학자로서, 인격자로서 조남철교수를 존경하게 되였고 민족에 대한 그의 뜨거운 애정에 감동하지 않을수 없었다.  


중국 조선족에 대한 큰 사랑, 오랜 실천 - 장학금과 책보내기운동-


그는 한국의 연세대학교 국문학과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하였다. 그후 국립 강릉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거쳐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교수로 재직하고있다. 현재는 교수협의회의 회장으로 동료교수들의 권익을 위해 물심량면으로 힘쓰고있기도 하다. 한국현대문학을 연구하는 한국문학연구학회의 총무리사와 회장을 오래동안 력임했고 현재는 고문으로 봉사하고있다. 또한 한국의 대표적인 민간 봉사단체중의 하나인 《동북아 평화연대》의 리사로, 로씨야 연해주의 《우스리스크민족학교 추진위원회》실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있는데 이 모두가 우리 민족과 관련되는 일임을 생각해보면 그의 민족적 관심이 어떠한가를 짐작케 한다.

조남철교수는 한국사회의 명망 높은 유지도, 고위층인물도, 돈 많은 사장도 아니다. 그는 한국의 한 평범한 대학의 국어국문과 교수이다. 그런 그가 중국조선족사회에 몰부은 사랑은 그야말로 눈물겹도록 진지하다.

1990년대 초라면 한국의 적지 않은 학자들이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 거리감과 두려움으로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이제 막 만남을 시작한 조선족과 한국인들 사이의 오해와 갈등이 원한으로 이어지고있을 때였다. 이때부터 조남철교수는 기회만 있으면 중국을 드나들면서 조선족사회를 리해하려 했고 어떻게 하면 그들을 도와줄수 있을가 고민하면서 그것을 헌신적으로 실천해왔다.

《중국의 조선족, 그들은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고 삶의 터전인 땅을 빼앗겨 새로운 살길을 찾아 〈간도〉와 〈만주〉로 이주하여 뿌리내린 한민족의 후예들입니다. 이들은 해외 다른 어떤 지역의 한민족보다 훨씬 엄청난 고난과 고통을 받아온 안타까운 겨레이며 민족독립을 위해 〈만주〉땅에서 피흘리며 싸워온 독립투사와 그들의 후손들인것입니다. 때문에 반도에 있는 남북의 정부와 국민들은 중국의 조선족들에게 우리 력사가 남긴 빚을 갚아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중국의 조선족을 보는 조남철교수의 시각이다. 그리고 그는 시간만 있으면 이런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친구들에게, 그리고 가까운 주변사람들에게 강조한곤 했다.  

아마 이런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속죄의식이 조남철교수가 10여년간 조선족사회에 대해 관심과 사랑을 쏟을수 있는 힘이 아닌가싶다. 그래서 그는 작은 힘이나마 조선족사회를 위해 할수 있는 일을 찾아하려 했고 한국인과 조선족들의 오해와 갈등을 해소할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는 조선족과 한국인이 서로 리해하고 사랑하기를 간절히 바라왔다. 그는 늘 조선족의 불행을 가슴아파했고 그들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그 출로를 찾고저 고민해왔고 그들을 돕고저 피타는 노력을 경주해왔다.

1990년, 오사카 국제학술회의에서의 만남이 계기가 되여 그는 10여년전부터 연변대학 성인교육학부와 조문학부, 그리고 연변주변의 일부 소학교를 상대로 장학금을 설치하여 해마다 10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후원해주었고 지금도 연변대학, 동북사범대학, 중앙민족대학, 반석홍광중학교 등 십여개 학교의 어려운 학생을 상대로, 중학생은 일년에 2000원, 대학생은 3000원, 연구생은 4000원 표준으로, 졸업 때까지 책임지는것을 원칙으로 해마다 10여명의 학생들을 후원해주고있다.
  
조선족 중소학생들에게 필요한 교과서외에 과외독서를 할만한 조선말 서적이 열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가련하다는것은 조선족 지성인들은 다 알고있는 현실문제이다. 이를 알고 몹시 가슴아파하던 조남철교수는 시민단체 《동북아평화 연대》 리사로 있으면서 중국에 책보내기운동을 벌려, 동화책과 아동도서 등을 한번에 한콘테나씩 연변에 보내왔다. 이러한 도서보내기운동을 그는 벌써 10여년을 견지해왔다. 북경시에도 조선족소학교들이 세워지고있다는 소식을 듣고, 북경에는 우리 말 도서가 더욱 적을것을 걱정하여 수십상자의 아동책을 보내군 했지만 세관에 걸려 받아보지 못한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때로는 세관비가 비싸서 부쳐온 책을 찾지 못하고있을 때, 조남철교수는 자기 돈으로 중국측 세관비와 운수비까지 대여주면서 책보내기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한번은 필자가 조남철교수를 중앙민족대학 조문학부 자료실로 안내했다. 다른 학부의 자료실은 모두 학교도서관으로 편입되였지만 조문학부 자료실만은 그대로 보존되여있다는 자랑을 하면서. 그러나 처음에는 몹시 반가와하더니 자료실을 쭉 돌아보고는 얼굴이 어두워졌다. 응당 대학생들이 읽어야할 필요한 책은 적고 필요 없는 주변책들과 무게 없는 책이 많은데 학생들이 이런 책들을 보고 어떻게 한국을 옳바로 리해하며 어떻게 이런 책들을 참고로 학문연구를 할수 있겠는가고 몹시 가슴아파했다. 우리로서는 돈을 주고 살 형편은 못되고 한국의 일부 단체들에서 기증하는 책을 받아볼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변명했다. 그후 조남철교수는 한국에 돌아가서 학생들에게 우리 학부 자료실상황을 이야기했고 책보내기운동을 벌렸다. 그들에게 필요한건 새 책이 아니라 볼 가치가 있는 책이니, 새 책도 좋고 좀 낡은 책도 좋다고 하면서 학생들을 동원하였다. 그리하여 수십상자의 책들이 모아졌고 여러 경로를 거쳐 중앙민족대학 자료실로 전해졌다. 그후 조문학부 자료실에는 조남철교수의 정성이 담긴 책들이 여러차례 보내졌다. 앞으로도 여러 경로로 책보내기운동을 계속 이어나가 중앙민족대학교 조문학부의 자료실을 질과 량에서 일신하려는것이 조남철교수의 소망이고 계획이다.

그뿐이 아니다. 한해에 한번씩 조직되는 《연변문학기행》 연수때마다 조남철교수는 학생들을 동원하여 책들을 모았고 학생들은 그 무거운 책들을 손수 들고 들어와 조선족학교들에게 기증해주군 했다. 그 영향을 받아 어떤 학생들은 한국에 돌아가서 책들을 부쳐보내기도 했다. 성의가 없으면 도저히 해낼수 없는 번거로운 일들이다. 학생들을 동원하고 책을 모으고 수십 상자의 책들을, 그것도 자기 돈으로 부친다는것은 보통 정성과 열성으로는 도저히 해낼수 없는 일들이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고 해마다, 때로는 한해에 두세번씩 십여년을 견지한다는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대학강의는 물론, 대학에서뿐아니라 사회에서도 여러 요직을 맡고있는 조남철교수는 항상 눈코뜰새없이 분망하지만 중국의 조선족에 대한 관심은 한시도 늦춘적이 없으며 조선족을 위한 헌신적인 봉사는 조금도 게을리한적 없이 10여년을 꾸준히 이어왔다. 조선족에 대한 큰 사랑을 오랜 기간 실천하고있는것이다.


  작은 걸음, 큰 래일 - 조선족 정체성을 위한 노력              


조남철교수는 조선족교육에 도움을 주고자 피타는 노력를 경주해왔을뿐아니라 조선족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남다른 기여를 했다. 주지하다싶이 조선족문학연구는 해방후 중국의 극좌사조의 영향으로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개혁개방후에야 본격적으로 진행되였다. 1989년에 출판된 《중국조선족문학연구》 뒤를 이어 1990년에 《조선족문학사》가 출판되고 《중국조선족문학선집》(전10권), 《중국조선족문학대계》(전26권), 《중국조선족문학전집》(전50권), 《20세기 중국조선족문학선집》(전5권) 등이 계획, 출판되면서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조선족문단에서는 조선족문학발전의 발자취를 TV프로그램으로 화면화하는 작업은 생각도 못하고있은 상황이였다. 그런데 조남철교수가 이 일을 해낸것이다.

2003년 10월, 조남철교수는 《이주의 땅, 민족의 문학- 조선족 이민문학편》이란 주제를 가지고 중국 각지를 답사하면서 조선족문학의 발전사- 이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력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30분짜리 10부작 TV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냈고 그것을 한국에서 여러차례 방송하였다. 조선족문학사상 처음으로 되는 TV프로그램이다.

그는 방송통신대학의 연구팀을 이끌고 조선 한시의 최후를 장식한 대문호 김택영의 묘지를 찾아 절강성 남통으로, 상해 림시정부의 유적지를 찾아 상해로, 신채호가 생활했던 북경의 옛골목과 절간, 신채호의 시에 자주 떠올렸던 고구려영, 위만주국시기의 도읍 신경(오늘의 장춘), 윤동주의 고향 룡정과 그의 묘비, 심련수의 고향과 묘지, 리욱 묘비, 도문, 할빈 등 유적지와 민족문화의 중심지들을 하나하나 답사하며 TV에 담았다. 또한 조선족문화의 상징인 연변대학, 조선족 문학인재 양성의 요람인 중앙민족대학 조문학부와 연변대학 조문학부, 민족문학연구의 중심인 연변대학 언어문학연구소, 중앙민족대학 조선학연구소, 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연변문학예술연구소, 김학철연구소 등을 방문했고 조선족문단을 이끌어가는 연변작가협회, 조선족문단의 유명한 작가, 평론가, 리론연구가들을 일일이 방문하여 조선족문학의 현황과 문학적 공헌을 담기도 하고 《연변문학》, 《장백산》, 《도라지》등의 잡지사를 방문하여 그들의 어려움을 귀담아듣기도 했다. 지어는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연구생, 학생들이 꾸리는 간행물까지 빼놓지 않고 하나하나 취재하고 TV화면에 담았다. 물론 조남철교수의 독특한 시각의 생동하고 요점이 뚜렷한 해설이 프로그램의 무게를 한결 더해주었다.

《이주의 땅, 민족의 문학- 조선족 이민문학편》의 프로그램이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로고가 슴베여있다. 이 대형 프로그램을 완성하려면 우선 제작비를 따내야 했고 프로그램을 짜야 했다. 프로그램에 담을 내용, 범위를 확정해야 했고 거기에 따르는 해설문도 작성해야 했고 중국의 여러 관계부문과 미리 련계를 취해야 했다. 이런 사전의 준비도 준비려니와 중국에서의 답사도 쉬운 일이 아니였다. 미리 계획하고 련계를 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았고 빠른 일정속에 마무리하기 위해 하루일정을 꽉꽉 채워넣고 숨돌릴 사이도 없이 동분서주해야 했다. 결국 조남철교수는 피로가 쌓이고 쌓여 마지막에는 목이 잠겨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북경과 연변의 일부 일정에 동참했던 필자는 10부작 TV프로그램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력과 보이지 않은 노력과 로고가 깃들었는지 어느 정도 알게 되였다.

TV프로그램- 《이주의 땅, 민족의 문학- 조선족 이민문학편》은 조선족문학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우선, 북경의 신채호 유적지를 비롯한 조선족문화 내지 문학관련 유적지들이 조만간에 현대화건설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바로 이 관건적인 시각에 조선족문단도 미처 생각지 못했고 또 해내지 못했던 력사적인 사명을 한국의 조남철교수가 끝내 해내였다. 그리하여 많은 소중한 유적지들이 생동한 화면으로 보존될수 있게 되였다.

다음, 지금까지 서책으로는 《조선족문학사》(그것도 1986년까지)가 나왔지만 조선족문학의 발전력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TV프로그램으로 만든 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모종 의미에서 조선족문학의 한 공백을 메운 작업이라고 할수 있다. 이는 앞으로 중국조선족문학의 귀중한 력사적 문헌자료로 리용될것이며 조선족문학사의 중요한 한 페지가 될것이다. 또한, 조남철교수는 이 TV프로그램을 한국 TV에 여러차례 방송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중국의 조선족 내지 조선족문학을 광범위하게 홍보하고 그들의 관심과 리해를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역할을 하였다. 조남철교수 일행은 《조선족문학편》을 마친후 할빈을 거쳐 로씨야로 건너가 《재쏘 고려인 문학편》도 완성하였다.

항상 조선족사회에 깊은 관심을 돌리고있는 조남철교수는 조선족의 정체성과 민족문화를 보존하는데서 문학의 중요한 역할을 잘 알고있기때문에 조선족문단, 특히 문학잡지사들의 어려운 사정을 헤아려 도울수 있는 방도를 찾으려고 얼마나 고심했는지 모른다. 그런 노력으로 《문학과 예술》잡지사도 혜택을 받았었고 《도라지》잡지사도 지금 큰 도움을 받고있다. 우리 조선족 지성인들도 별로 신경쓰지 못하고있는 중요한 문제들을 조남철교수는 온 마음과 정성으로 하나하나 풀어나가고있다. 그는 조선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스스로를 잊지 않고 조선족으로 살아갈수 있는 첫째 조건이라는것을 늘 강조하곤 했으며 그를 위해 조선족문화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것인가를 강조하였던것이다.


애정은 관심입니다 - 따끔한 충고도 아끼지 않는


조남철교수는 어디까지나 교육자이고 학자이다. 중국을 방문할 때면 그 바쁜 와중에도 가끔 민족대학과 연변대학을 방문하여 학생들에게 특강을 해주군 한다. 그는 항상 해박한지식과 능란한 교수법으로, 어려운 내용을 리해하기 쉽게, 따분한 내용을 생동하게, 복잡한 내용을 조리정연하게 강의를 하여 학생들의 절찬을 받군 한다. 조교수의 강의를 들은 이곳 교수들도 그의 강의법이 독특하고 생동하다고 감탄해마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다. 조남철교수는 강의가 끝나면 꼭 학생들에게 맥주를 사주면서 허물없이 그들과 대화하고 사귀군 한다. 기회만 있으면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생각과 고민, 어려움을 묻고 그들의 학습과 생활을 료해하군 한다. 조선족학생들에 대한 조남철교수의 지극한 사랑과 관심에 필자는 늘 마음속으로 깊은 감동을 받군 한다.

그러나 그는 중국조선족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학생들과 자리를 같이 하는 경우에도 그는 자기가 느낀 문제점들을 진지하고 설득력 있게, 그래서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게 털어놓는다.

《지금 한국인과 조선족 관계의 가장 큰 문제는 좋은 경험보다는 나쁜 경험만을 공유하는 일입니다. 어느 사회, 어느 계층에나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는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조선족과 한국의 지도자라면 우리 민족이 앞으로 어떻게 만나야 할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것입니다. 상대방의 문제점을 알아 경계하는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상대방의 좋은 점을 알아 그것을 강조하여 서로의 관계를 보다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는 일 역시 중요합니다. 조선족이나 한국의 지도자라면 그런 큰 틀에서 부정적인 경험보다는 긍정적인 경험을 나누는것도 중요하지 않을가요?》 중국의 조선족과 한국인과의 갈등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가 던진 말이다.

또한 10여년전부터 《조선족의 위기요》, 《조선족의 렬근성이요》 하면서 줄곧 비판의 목소리만 높아지는 조선족사회를 바라보면서 조남철교수는 또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모른다.

《지금까지 조선족사회는 말로 비판만 하고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한 행동을 별로 하지 않고있습니다. 비판은 누구나 쉽게 할수 있지만, 그렇다면 그를 위해 어떻게 할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연변대학, 중앙민족대학 교수들을 비롯하여 조선족 지성인들이 앞장서서 이를 극복하고 바로잡기 위한 실천적인 행동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남철교수의 의미심장한 말에 필자는 얼굴이 뜨거워짐을 어쩔수 없었다.

조남철교수는, 조선족들 가운데도 상당한 기업가들이 있고 돈 많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조선족 살리기, 조선족교육 살리기 등 유익한 일에 나서는 사람이나 이를 실천에로 선동하는 사람이 많지 않는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너무 적절한 비판이다. 조선족 지성인들은 물론 조선족 성인들가운데 당면한 조선족 문제점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별로 하지 않은것이 가장 치명적인 문제라고 할수 있다. 바로 그런 마음가짐이였기에 조남철교수는 조선족문화를 살리고 교육을 살리기 위해 10여년을 꾸준히 실천적으로 행동해온것이다.

그래서 평범한 월급쟁이 교수인 조남철교수는 어려운 조선족학생들을 돕는 일이라면 선뜻 거금의 돈을 내놓지만 자신의 생활은 퍽 검소하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지난 2004년 5월에 조남철교수는 연변대학에 교환교수로 오게 되였는데, 중국의 조선족, 지어는 대학생들도 2-3천원짜리 핸드폰을 들고 다녔지만 조남철교수는 천원짜리 싸구려 핸드폰을 사서 썼다. 대학교수가 그런 핸드폰을 들고다니는가고 친구 학자들이 놀려주니, 이것도 충분히 편하게 쓸수 있다며 만족해했다.

조남철교수는 어렵게 공부하는 조선족학생들을 위해 자기의 주머니를 아낌없이 풀뿐아니라 방송통신대 제자들까지 동원하여 장학금을 마련하고있다. 더욱 많은 제자들과 친우들이 동참하여 더 많은 장학금을 마련하고, 그 와중에 조선족학생들과 결연관계를 맺어 같은 민족으로서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려는것이 그의 꿈이고 희망이다. 그래서 우리 조선족이 중국공민으로서 중국내에서 가장 능력있는 소수민족으로 자리잡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것이다.  


조선족사회의 꿈, 희망, 래일 - 연변, 연변대학교              


필자는 얼마전 연변대학 조선-한국학 학원 설립대회에 갔다가 조남철교수를 만나게 되였다. 중국의 조선족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는 언젠가 승용차로 장춘에 갔던 일을 떠올리면서 《현재의 조선족사회는 마치 연변에서 장춘으로 향한 오불고불한 길처럼 많은 우여곡절과 어려움속에 있다. 그런데 곧 도문에서 장춘으로 고속도로가 완공된다고 한다. 이제 도문에서 장춘으로 곧게 뻗을 고속도로처럼 중국의 조선족사회는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민족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중국내 여러 소수민족중의 하나로 분명한 제 노릇을 할것이다. 물론 그를 위해서 조선족사회의 지식인들의 더 많은 노력과 헌신, 봉사가 필요할것이다.》라고 의미심장하게 비유하였다. 그는 진심으로 조선족사회의 운명과 출로를 위해 고민하고 가슴아파하는 한국의 지성인이다.

중국 내지 조선족에 대한 리해가 깊어질수록 그는 연변대학교의 위치와 중요성을 깊이 깨닫고 연변대학교는 해외 한민족의 유일한 민족대학으로, 바로 우리 조선족의 미래임을 강조한다. 연변대학교가 살아나야 조선족사회가 살아나고 조선족문화가 보존된다고 강조하면서 연변대학교의 발전에 남다른 관심을 돌리고있다.

올 6월 연변대학교 조선-한국학 학원의 설립대회에서 겸직교수로 위촉받은 그가 답사에서 《연변대학은 200만 중국조선족의 뿌리입니다. 뿌리인 연변대학이 제대로 서야 중국의 우리 민족이, 아니 전 세계 해외동포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조선인으로 살아갈수 있을것입니다. 중국의 모든 지식인들이 연변대학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할 경우에만 조선족을 포함한 해외 거주 우리 민족의 미래가 있습니다. 연변대학이 우뚝 서지 않으면 우리 조선족사회의 미래는 없습니다.》라고 연변대학의 력사적 의의와 역할을 강조하여 우리 조선족 지성인 사회에 경종을 울린것도 조선족의 미래를 위한 그의 진지한 념려를 보여주는것이라 할수 있겠다. 그렇기때문에 조교수는 중국의 여러 대학을 둘러보고 그들의 현대화한 시설을 볼 때마다 연변대학의 어려운 현실을 가슴으로 느끼며 아파하기도 한다.  
    
조남철교수는 조선족의 정체성, 민족교육을 살리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노력하였을뿐아니라 중국의 조선족과 한국인들 사이의 갈등과 오해를 풀어주고 서로를 옳바로 리해하게 하기 위하여 남모른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조남철교수를 한국인과 조선족의 화합과 뉴대성을 이어주는 사절(使節)이라고 말한다. 한국인이 중국 혹은 연변에 와서 어찌어찌하였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조교수는 늘 민망해하고 안타까워했고 조선족에게 피해를 주는 일부 한국인을 대신해서 속죄한다는 마음으로 조선족들에게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몰부어왔다. 자신의 행동으로 조선족들의 오해와 갈등과 반감을 단 얼마라도 풀어주려는 조남철교수의 숨은 노력을 필자는 어느 정도 알고있다.

그러한 노력중의 하나가 방송대 학생들과 함께 하는 《연변문학기행》이다. 이는 중국조선족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리해를 깊이하고 민족심을 고양하기 위한 행사이다. 그는 늘 《연변은 살아있는 민족교육의 생동한 산실이다.》라고 비유했고 이역땅에서 민족문화를 그처럼 완벽하게 보존하면서 민족의 얼을 지켜온 연변은 민족의 얼과 혼을 교육시키는 좋은 장소가 되고있어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하군 한다. 연변은 한국에서는 체험할수 없는 많은것을 생동하게 느낄수 있어, 한국에서의 교육보다 훨씬 생동한 교육이 이루어지며, 학생들이 연변을 한번 답사하고나면 참말로 민족주의자가 되여 민족에 대해, 조선족동포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것이다.

언젠가 방송대 해외연수단이 연변을 거쳐 북경에 오게 되였다. 그중 한 학생은 필자의 손을 꼭 잡고 《이번 중국연수를 통해 많은것을 느끼고 갑니다. 중국의 조선족은 우리보다 민족심이 더 강한것 같습니다. 중국의 조선족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하고 감회깊게 말하였다. 그후 얼마 안되여 그 학생한테서 책 한 상자가 부쳐져왔다. 그밖에도 중국연수를 마치고 가서 가끔씩 메일로 자기들의 중국연수소감을 보내오는 학생들도 있다.

조남철교수의 말과 같이, 방송대 학생들은 연변연수를 한번씩 하고나면 중국조선족에 대한 리해가 깊어지고 민족심도 강해지고 조선족에 대한 사랑과 관심도 커진다. 그중 많은 학생들은 한국에 돌아가서 중국에 책보내기운동, 조선족의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장학금운동에 열심히 동참해 나선다.


민 족 - 같이 가는 길, 같이 가야 할 길                  


조남철교수는 늘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에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것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그 리유는 한국인은 조선족을 한국인의 립장에서, 조선족은 한국인을 조선족의 립장에서 생각하기때문이라며 서로가 항상 상대방의 립장에 서서 생각할것을 부탁한다. 서로 한 발자국 물러서서 생각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가짐으로 진정으로 대해준다면 갈등과 오해가 해소되고 리해와 화합이 이루어질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고 또 그렇게 행동해왔다. 조선족과의 만남과 교류에서 조남철교수도 때로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리해할수 없는 일에 부딪칠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때마다 조남철교수는 상대방의 립장에서 리해하려 하였고 그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한것이구나, 또는 그럴수 있겠구나, 그럴수밖에 없었겠구나 하고 바꿔 생각하군 했다. 때문에 조남철교수는 10여년간 중국을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한번도 불쾌하게 생각한적이 없었고 필자를 포함해서 조남철교수와 래왕하는 조선족 치고 조남철교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조선족에게 피해가 되는 일은 물론 부담이 되는 일을 절대 하지 않는다. 때문에 중국에 수십상자씩 책을 보내면서 중국측 세관비와 운수비까지 보내주고, 학생들에게 특강을 해주고는 밥을 사주고, 우리 조선족을 위해 일해주고는 자기가 식사초대를 하고…  그는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아마 이것은 그의 행동준칙일거라고 필자나름대로 생각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성격이 대범하고 소탈하지만 한번도 호언장담하거나 내노라 하거나 속된 말이나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정말 학자로서의 품위를 간직한 인격자였다.

조남철교수가 중국조선족사회를 위해 한 일은 이루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자랑한적이 없다. 조선족의 출로, 문제점, 운명, 한국과의 관계 등 문제들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다가도 조선족을 위해 한 업적에 대해 물으면 화제를 돌려버리군 하여 이 글도 필자가 알고 있는 범위에 한해서만 서술하게 되였다.

조남철교수의 포부는 중국 조선족에만 한정되여있는것이 아니다. 조남철교수가 몸담고있는 시민단체  《동북아평화 연대》는 거액으로 로씨야 우수리스크(해삼위)에 기념관을 건립하고 그곳에 민족학교를 세워 올 9월부터 우리 말을 가르칠 계획이라고 한다. 실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남철교수는 지금 그곳에 동포 고려인들을 돕기 위한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하나하나 추진해나가고있다.  

조남철교수는 어찌하여 중국의 조선족을 위하여 10여년을 꾸준히 자아희생적으로 봉사할수 있었을가? 일반 상식으로는 리해하기 힘들다.

필자 역시 조남철교수가 10여년간 중국의 조선족사회에 기울인 남다른 관심과 사랑과 헌신적인 배려를 지켜보면서 《그가 그렇게 할수 있은 비결은 무엇일가?》고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아마 한피줄, 한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때문일것이며, 민족의 력사와 운명에 대한 참 지성인의 책임감때문일것이다.

우리 모든 조선족과 한국인들이 조남철교수와 같이,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을 배려해주려 하고 상대방의 립장에서 문제를 보고 리해하려 하고 진정으로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양보하고 량해하는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오해와 갈등을 해소하고 화합을 이룰수 있을것이다. 또한 모든 조선족 지성인들이 조남철교수처럼 진정을 담아 조선족의 당면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면 조선족의 장래는 유망할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언젠가 그가 말한것처럼 민족이란 결국 같이 걸어갈수밖에 없는 숙명같은 길이기때문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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