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공동체연구회 이승률 회장 비망록

[서울=동북아신문]1. 장성택 부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정세

지난 8월 13일 북한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겸 노동당 행정부장은 김영일 당 국제부장, 리광근 합영투자위원장 등 50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5박6일간의 중국 방문 일정을 마무리하고 18일 귀국했다.

이번 대규모 방중단은 후진타오 주석, 원자바오 총리 등 중국 최고위층을 만나 북한이 추진중인 경제개혁 및 신경제관리조치(6.28방침)를 상세히 소개하고 양국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동시에 이에 대한 중국의 원조 지원 방안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4일 천더밍 중국 상무부장이 이끄는 중국 대표단과 만나 나선, 황금평 경제특구 개발을 위한 양국 공동지도위원회 3차회의를 개최하여 북중경협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합의하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낸 것으로 보여진다.

먼저 양국 대표단은 “양국 정부 개발 인도, 기업에 개발 일임, 시장경제 도입, 양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개발하자”는 4가지 원칙에 합의하였고, 이 원칙에 따라 나선지역 전력 공급, 통신망 확충, 통관편의, 경제개발구에 적합한 법률 및 규정 마련, 인재 확충, 새로운 관리위원회 출범, 경제 및 농업분야 기술 포괄적 협력 강화 등의 합의를 이끌어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면담 자리에서 양국이 새로운 협력 방향을 찾자고 제안했는데, 이와 같은 경제협력을 위한 과제로 실무진들과 북한 평양~신의도 도로 건설 계획을 논의하고, 훈춘~나진간 철도의 연내 착공을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이번 장성택 부위원장의 방중을 통해 나선, 황금평 특구 등 북중경협이 본격적인 실행단계에 진입하게 되었고, 변함없는 북중관계를 재확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것은 단순 경제사절단 차원을 넘어 김정은 체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도모하고 제한적 시장경제 도입을 위한 개혁개방의 초보단계로 나아가는 대외정책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그 토대를 구축했다고 풀이해 볼 수 있겠다.

2.지난 7개월간 김정은의 행보, 태도, 정책 변화

지난 7월 16일 김정은 체제의 군부 후견인으로 급부상했던 리영호 군총참모장이 해임되고, 그 다음날 17일에 김정은이 원수 칭호를 부여 받은 일은 북한 선군정치의 변화 움직임과 권력 내부 세대교체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 조심스레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번 리영호 해임은 김정일 체제에서 과대성장한 군부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숙청사건으로 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해석과 더불어 주목해 볼 것은, 리영호 해임의 배경이 북한 내각이 군부로부터 경제 관련 권한을 가져오려 하는 과정에서 리영호 총참모장이 반발하자 숙청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인데, 이것은 리영호 해임이 단순히 김정은 제1비서의 권력 기반 강화뿐만 아니라 중대한 경제개혁 의지를 보인 것이라 풀이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리영호 해임은 그동안 북한의 변화에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해 온 군부의 힘이 약화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김정은의 새로운 경제발전 및 개방 구상이 실현되는데 탄력을 줄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김정일 위원장 사망이후 지난 7개월간 김정은 제1비서가 파격적으로 보여왔던 개혁 개방의 징후들을 간추려 볼 필요가 있다.

먼저 개혁적 경제 실험을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영림 내각 총리가 2012년 상반기에만 총 47회에 걸쳐 경제시찰을 감행했고, 당 간부들에게 화시촌 등 중국의 대표적 농촌 개혁 현장을 시찰토록 해왔으며, 북한의 특구담당관리 100명을 중국 대학에서 5차례에 걸쳐 연수를 받게 하였다. 또한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등이 동남아시아를 순방하며 싱가포르와 베트남의 경제개혁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노력을 보이는 등 북한 관료들을 중국 및 서방 국가로 파견해 자본주의를 배우게 하고 현장을 체험케 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 투자유치에도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 사망 4일만에 7개 외국인 투자법을 개정하고, 이후 30개국 38개 도시에 무역 대표부를 신설하였으며, 합영투자위 자료에 사무실 임대료 액수를 제시하는 등 외국인 투자유치 환경 조성에 힘을 기울이는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경제 관련하여 김정은 제1비서의 공개 발언을 통해서도 경제개혁 의지를 찾아 볼 수 있다. 지난 4월 노동당 중앙위 간부와의 담화에서 “우리는 인민 생활 향상과 경제 강국 건설에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켜야 한다”며 “경제를 살리기 위해 경제사업의 모든 문제를 내각이 지휘할 것”을 주문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같은 달 15일 첫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당의 확고한 결심이다. 이제 우리는 경제강국을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길에 들어서야 한다”고 밝힌바 있다.

더불어 김정은 제1비서의 파격적인 대외활동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자본주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미키마우스가 등장하는 공연 관람 장면을 관영TV를 통해 공개해 북한 주민이 미국의 대중문화를 접하도록 했으며, 만경대 유희장(놀이공원)과 평양 산원(산부인과) 등 인민생활과 밀접한 장소뿐만 아니라 군부대 시찰 때에도 부인을 대동하여 방문하는 등 이전 김정일 체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외활동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장성택 부위원장 방중에서 확실히 알려진 것과 같이 김정은 제1비서가 ‘우리 식의 새로운 경제관리 체제 확립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경제방침(“6.28방침”)을 제시했다고 전해지며, 이르면 10월경에 북한식 개혁개방으로 볼 수 있는 신경제정책을 시행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북한에서 보이고 있는 이러한 일련의 행보를 살펴볼 때 김정은식 개혁 개방을 위한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3. 북한의 새로운 미래를 바라보며

전문가들은 리영호의 전격 해임 등 김정은 체제의 지난 7개월간의 행보와 이번 장성택 부위원장 방중을 통해 김정은 제1비서가 구상하고 있는 정책이 보다 유연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남북관계에도 긍정적인 신호로 풀이해 볼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반면에 이러한 김정은의 파격행보만을 두고 북한의 변화와 개혁 의지를 속단하는 과잉해석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여러 차례에 걸쳐 사회주의 노선 수호를 다짐한 바 있는 김정은 체제가 추진할 수 있는 변화의 폭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또한 단기적으로 대폭적인 개혁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김정은 제1비서가 여러 경로를 통해 내비친 변화의 의지가 확실하고 이것이 의미 있는 발전으로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남북간에 새로운 물꼬를 트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김정은 체제가 인민경제를 활성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외국의 원조가 필수조건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대외개방, 핵문제, 미국과 남한 등 주변국과의 문제에서도 전향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김정은 내각에서는 “베트남의 경제 발전 경험을 배우고 싶다”는 메시지를 계속 던지고 있고, 중국에도 경제협력 뿐만 아니라 국토 개발에 필수적인 기술교육, 장비 공급, 인프라 건설 등 다방면에 걸친 도움을 계속 요청하면서 선군(先軍)보다 선경(先經)정치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긍정적인 개방신호를 보이고 있다.

북한 지도자가 이러한 자세를 취할 때 우리 뿐만 아니라 주변국은 지혜를 모아 그 액션이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견해는 후진타오 주석의 원칙론적인 메시지에서도 보는 바이지만, 특히 원자바오 총리가 북한 지도부에 대해 좀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경협조건을 요구한 점을 보아 이러한 선경(先經)정치적 협상은 사실 북중간의 미래가 어떻게 진전될 것인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볼때, 의도적이든 아니든 중국은 나선, 황금평 특구 등 양국의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북중간 거래가 시장경제 논리를 따라 진행되고, 대외협상파 및 기술관료들(Technocrats)이 앞장서는 형태로 국가개발정책이 수정되어 간다고 본다면, 이는 곧 경제분야를 기초로 하여 북한의 국제화를 이끄는 물꼬를 트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 입장에서도 폐쇄적인 강제조치(비핵.개방.3000정책)의 한계를 벗어나 북한의 새로운 미래에 대비하는 유연한 자세와 전략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개성공단 확대 및 금강산 재개 방안, 남북교류협력 제고 방안, 한중 FTA에 남북경협을 연동시키는 방안, 그동안 막혀 있던 철도, 도로 등의 인프라를 건설하여 물류의 통로를 여는 방안, 북중 경협 프로젝트에 중국내 한국 기업 및 세계 재외동포 기업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방안, 북한에 기술교육·경영지원·국제무역연계 및 국제교류협력 업무를 직·간접적으로 어시스트하는 방안 등을 제시해 볼 수 있다.

여기에 더 나아가 한국국민과 재외동포들이 힘을 합쳐 설립한 평양과기대(공동운영총장 김진경 박사)를 기술관료(Technocrat) 및 북한경제 발전에 필요한 차세대 지도자를 육성하는 국제화의 창구로 활용하고, 이와 함께 두만강 유역개발 등의 UNDP 프로젝트와 환황해·환동해 초국경 경제권 형성에 남북한이 공히 참여하는 등 한국 및 주변 국가들이 공동체적 접근방법을 통하여 공존과 상생의 로드맵을 일구어 간다면 북한의 변화발전에 새로운 모멘텀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한반도 주변국가의 2013년을 통해 새롭게 등장하는 차기정부들이 북한의 경제개선조치와 리더십 변화를 눈여겨 보고 제한적이나마 점진적인 개혁개방의지(Regime Evolution)를 기대하면서 보다 창의적이고 생산성 있는 지역공동체적 대북 정책을 수립하게 된다면, 그 전망은 상당히 밝다고 여겨진다.

북한의 미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시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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