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당선인이 17일 저녁 부평역서 유세를 하는 장면. 사진=이동렬 기자
[서울=동북아신문]2012년 12월19일은 대한민국역사에서 대서특필해야 할 날이다. ‘前대통령의 딸’ 박근혜가 대한민국 첫 여성대통령으로 당선 된 것이다.

그의 아버지 박정희는 대한민국 근대 산업화를 이뤄낸 ‘영웅’이자, 또 ‘독재자’로 지탄 받아왔다. 1974년에 그의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피살되고 1979년에는 아버지 박정희대통령마저 서거로 이어지던, 파란 많은 비운의 가족사를 딛고 그는, 33년의 고진감래 끝에 마침내 당당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비운의 가족사를 딛고 정치인으로

박근혜 당선인은 1952년 6.25전쟁 당시 대구 삼덕동에서 육군정보학교장이던 박정희 대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1961년 박근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5·16 군사정변을 일으킨 박정희는 1963년에 제5대 대통령에 취임을 했다. 성심여중 2학년 다니던 그는 청와대에 입성을 했다. 가족은 남동생 박지만과 여동생 박근령이가 있다.

23살 되던 해 어머니가 8.15 행사에서 재일동포 문세광에게 피살되자 당시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던 그는 유학생활을 접고 귀국하여 5년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행했다. 1979년에는 아버지마저 김재규에게 피살되자 청와대에서 나와서 신당동 자택으로 돌아가 18년간 은둔생활을 했다.

1988년 그는 박정희·육영수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박정희 일대기를 다룬 책과 영화를 제작하며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였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1998년 IMF 사태가 터지자 그는 사명감을 갖고 제15대 국회의원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 출마하여 마침내 정계에 입문을 하였다.

정계에서 ‘선거의 여왕’으로

박근혜 당선인은 대구 달성에서 내리 4선을 했다.

2002년에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으며, 2004년에는 한나라당 대표를 맡아 침몰 직전의 당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2006년에는 잠재적 대권주자로 지방선거 유세 도중 한 괴한이 휘두른 칼에 얼굴 부위를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그는 크고 작은 각종 보궐선거와 지자체 선거 등에서 당을 승리를 이끌며 ‘선거의 여왕’으로 거듭났다.

2007년 대선실패의 아픔 딛고 신화창조

2007년 한나라당 유력 대권주자였던 박근혜 당선자는 이명박 예비후보와의 경선 맞대결에서 패하는 아픔을 겪었다.

2011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당에 복귀한 그는 인적쇄신을 단행하며 당명을 ‘새누리당’으로바꾸었다. 2012년 4월11일 치러진 제19대 총선에서 의원석 152석을 획득하며 구원수 역할을 했다. 올해 7월 그는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압도적인 표 차이로 승리해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그리고 이번 12월19일 진행된 제18대 대선에서 그녀는 마침내 ‘관반수 넘는 특표율’로 대한민국 역사상 첫 여성대통령에 당선됐다.

[저작권자(c) 평화와 희망을 만들어가는 동북아신문,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