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에서 군사암호를 연구해오면서 엄청난 기술을 발명하여 이름을 떨쳤던 남상호교수(73세), 군사암호연구라면 많은 사람들은 비밀전문을 만들고 상대의 비밀전문을 해독하는 기술이 아닌가 생각할수 있는데 남상호교수의 암호연구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 정보문명시기를 겪고있는 오늘 인터넷세상을 바꾸어가는 획기적인 전자암호연구에 이른것이다.

미래 인터넷세상이 안전하고 청결하며 고속도 무한대 용량을 실현하려면 철저한 보안조치가 따라가야 하는데 그 핵심기술이 바로 CPK(Combined Public Key)전자암호기술이다.

남상호교수는 다년간의 꾸준한 연구를 거쳐 철저한 정보보안과 정보진위 식별능력을 구비한 CPK전자암호 체계를 구축해놓았던것이다. CPK전자암호를 토대로 구축한 그의 정보 비밀키 작성과 인증, 확인 체계는 학계를 놀라게 했으며 국제비밀암호분야의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켜 바야흐로 인터넷 주소 보안암호의 국제표준으로 추진되고있다.
20여년간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연구실에서 군사비밀연구에만 몰두하였던 남상호 교수는 사실 줄곧 베일에 가리워져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많은 연구분야가 군사전략과 기술에 관계되기에 세상에 공개할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연구와 기술은 단순한 군사적 의미를 벗어나 정보화시대의 핵심인 인터넷보안과 새로운 인터넷세상을 구축하는데 이르고있다.

올해 73세인 남상호교수는 국가비밀국 기술고문, 국가정보안전 중점 연구실 기술위원회 부주임, 해방군 정보공정대학 겸직 교수, 북경대학 정보과학기술학원 겸직 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정보안전 연구와 교수에 수십년간 정진해왔다. 그는 중국의 첫 전자암호기를 연구, 제작하였으며 선후로 국가와 군 과학기술 진보 1등상, 2등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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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호교수는 30년대말 길림성 연길시에서 태어났다. 남상호교수는 일본학교인 국민우수학교를 다니면서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자주 다녔다고 한다. 거기에서 그는 서양인 신부, 수녀들에게서 영어자모를 배우기도 하고 조선인 신도들에게서 우리 말을 배웠다. 그후 고중에 입학한후 남상호교수는 다윈의 이론을 접하면서 점차 유물주의 인생관을 형성하기 시작하였고 과학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는 한국전쟁의 포화가 가셔진지 얼마 안된 1955년 여름에 연길을 떠나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에 뽑혀와 입대하게 되었다. 그는 우선 총참모부 산하의 정보공정대학에서 4년간 공부한 후 군 암호연구사업에 종사하였다.그때부터 그는 산서성의 깊은 산골에 위치한 군 정보기지에서 소리없이 20년이란 시간을 묵묵히 암호연구에만 몰두하였다.

당시 냉전체제하에서 국가군사비밀을 지키고 적대국의 비밀암호를 풀이하는 작업이 주 업무였다. 그리고 정치구호가 많았던 당시 그는 “우리가 땀 한방울을 더 흘리면 전선의 아군 전사들이 피 한방울 적게 흘린다!”는 구호밑에 끈질기게 일만 하였다. 지루하기만 하였던 수많은 암호들을 수집 정리하고 그것들을 다시 배열하면서 하나하나의 암호를 풀이해나갔던 것이다.

20년이란 시간을 그는 산서성의 심심산골에서 보내면서 일반 과원으로부터 조리연구원, 부연구원, 연구원으로 승진하였고 연구분야에서도 많은 성과를 따냈다. 이 시기의 연구는 어디까지나 정치임무였고 군의 대적사업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1959년, 군에서는 중국 최초로 컴퓨터를 실제에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기계에 접한 남상호교수는 신대륙이나 발견한것처럼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난해한 영문소개서를 부지런히 탐독하면서 컴퓨터 기술을 익혔고 자기가 익힌 기술을 다시 나머지 과원들에게 가르쳐주었다.

1970년 8월부터 중국이 국방 고속통신망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남상호 교수는 부대설비인 중국의 첫 전자암호기 설계사업에 참가하였다. 그는 4년의 노력을 들여 중국의 첫 전자암호기 견본 기계의 연구제작에 성공함으로써 당시 국무원 총리였던 주은래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78년부터 중국인민해방군에서는 전자암호기를 본격 사용하였으며, 중국의 암호사업은 수공작업으로부터 해방되어 일약 전자화를 실현하게 되였다. 그리고 세계 선진국과의 격차도 10여년 단축시키게 되었다.

1986년, 미국에서는 국방네트워크 안전비밀 규모화 시스템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듬해 중국에서도 국방네트워크 안전비밀 규모화 시스템 연구 임무를 남상호 교수에게 맡겼다. 예산 규모는 10만개 단위였다. 10만개 군 단위가 서로 통신을 자유롭게 할수 있지만 기타 제3자는 절대 통신망에 들어오지 못하게 차단하는 것이었다. 남상호 교수는 수많은 암호와 수치들과 밤낮없이 씨름하면서 장장 5년이란 시간을 들여 끝내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완성해냈다. 10만개 단위가 서로 안전한 통신키를 이용해 통신하지만 제3자는 암호키를 풀지 못해 정보를 도청할 수 없도록, 더블키 기술을 적용했던 것이다.

더블키 기술로 하여 남상호 교수는 미국이 일년 앞당겨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한 국방네트워크 안전비밀 규모화 시스템 연구를 5년만인 1991년에 완수했던 것이다. 이를 토대로 중국인민해방군은 전군지휘체계 자동화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고 지금은 자동화시스템 2기 공사를 마치고 3기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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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90년대 컴퓨터가 일반인에게까지 신속히 보급되면서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부대에서 뛰어난 기술발명과 성과로 제반 임무를 완수한 남상호교수는 행정직함 부군장급과 전직간부라는 기술직함을 가지고 영광스럽게 퇴직하였다. 퇴직한 후 그는 전자암호분야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최신기술을 가지고 신속히 발전하고 있는 인터넷 정보 보안분야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군부대의 연구가 아니기 때문에 더는 비밀적인 것이 없어졌고 연구도 많이 자유스러워졌다. 그는 국가의 차원을 넘어서 전반 인류문명의 새날을 기약하는 원대한 사업에 시선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퇴직 후 남상호 교수는 정보안전기술을 인터넷, 정보통신, 컴퓨터 인증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응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인터넷세상을 정화하고 보다 안전성이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인터넷세상을 만들어가는데 이용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인류에게 많은 편리를 가져다 주는 동시에 또 위해성도 조성하고있다. 오류정보, 정보유출, 음란물 범람, 인권침해, 각종 사기와 범죄가 비일비재할 뿐만아니라 심지어 인터넷을 이용해 국가핵심부문이거나 은행정보망까지 치고들어와 핵심정보를 도청하는 일까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위해성은 정보에 부착된 전자암호의 안전성이 강하지 못하고 정보출처가 불명확하여 인증할수 없으며 정보에 대한 식별이 되지 않기때문이다.

이러한 위해성을 처음부터 감안한 남상호교수는 전자암호기술을 인터넷에 적용하면서 거듭되는 연구를 거쳐 드디어 CPK전자암호기술을 만들어냈다. 이 기술은 새로운 조합방식으로 인터넷에서 정보인증의 무한대 용량과 간편성을 동시에 실현했으며 철저한 보안체계를 실현하였다. 그리고 이 기술로는 정보에 대해 사전에 식별할 수 있으며 진위를 판단할수 있다.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CPK전자암호기술은 전자암호키를 쌀알만큼 작은 소자에 설치하여 “전자신분비밀키”로 제작한 후 컴퓨터의 플래쉬 기억기에 끼워넣거나 은행카드에 장착할수 있다. 이 “전자신분비밀키”를 사용하면 인터넷의 지지와 제3자의 공증이 필요없으며 식별인증규모가 거의 무한대에 달한다. 그리고 이 “전자신분카드”는 암호를 장악한 본인이 분실하였을 경우에 타인이 사용할수 없다.

지금 많이 유행되고있는 미국의 PKI기술은 최고로 천만개 사용자의 인증만이 가능하고 인증 절차가 번잡하고 속도가 더딘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해 비밀통화할 때 그 인증과정은 10초 걸리지만 CPK기술을 운용하면 인증시간이 1초도 걸리지 않는다.

2008년부터 남상호교수의 CPK전자암호기술에 눈길을 돌린 국제비밀암호연차회의 집행위원회 주석인 제임스 휴스는 학계의 충분한 긍정을 받고 또 미래 비밀암호체계의 발전추세를 대변하는 이 기술을 보급할 것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그는 유럽과 미국의 학자,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CPK전자암호기술을 토대로 한 새로운 인터넷주소암호 국제표준화사업을 적극 추진하고있다.

남상호교수는 인터넷주소암호 국제표준화가 나오기까지 아직 애로점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과학의 발전은 무엇으로도 막을수 없는만큼 멀지 않아 꼭 실현될것이라고 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안정성이 높고 성능이 안정된 “전자비밀키”를 갖게 될것이다. 복제가 불가능한 “전자비밀키” 혹은 “전자신분증”의 출현은 인터넷세계의 일대 변혁으로 될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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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호교수는 그동안 7명의 박사생과 많은 석사연구생을 양성해냈다. 총참모부 정보공정대학 정보안전학과 박사생 5명은 이미 정보안전분야의 후비역량으로 성장하였으며 북경대학의 두명 박사생도 이미 졸업해 남상호 교수의 뒤를 계승하고있었다.

평생 군인과 과학자 이중신분을 지니고있는 남상호 교수는 하냥 제자들에게 “모든것은 자연의 섭리에 맞게 순리에 따라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고 나한테 주어진 기회앞에서는 모든것을 바칠 각오를 가지고 임하라”고 당부한다.

한국전쟁이 있었기에 중국에서는 한국 말과 글을 아는 대량의 인재가 필요했고 그런 기회와 운으로 조선족인 나도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 비밀암호사업에 참가하게 되었다. 사업에 참가한 후에는 이런 기회를 귀중이 여기고 만반의 준비로 모든 일에 임하였기에 전자암호보안 관련 기술을 장악하게 되었다고 담담이 이야기하는 남상호교수. 뛰어난 성과앞에서도 이 모든것이 응당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수십년 연구생애에는 얼마나 많은 피와 땀방울이 깃들어있는지 그의 오리오리 새하얀 백발이 잘 말해주고있었다.

새하얀 백발이 무색할 만큼 아직도 뛰어난 정력과 열정으로 CPK전자암호기술에 매진하고있는 남상호교수. 그는 CPK전자암호기술 출현으로 하여 인터넷 정보교류의 논리, 인증방법, 신뢰도를 비롯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며 인터넷세상의 대변혁을 시도한다.

남상호교수가 만들어낸 세계 최고수준의 CPK전자암호기술이 이제 곧 국제표준화기술로 확정되어 모든 네티즌들이 중국에서 만들어낸 “전자신분증”을 사용하게 될 날도 멀지 않을것이라고 확신한다. 수자와 암호와 씨름하며 인류문명에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우고 있는 그의 인생에 가장 뜨거운 갈채를 보내고싶다.

장연하기자/ 중앙인민방송국 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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