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극간의 작용과 반작용-

   洪元卓 (서울대 교수)

Barfield(1989: 12)는 몽골초원, 만주, 그리고 만리장성 이남의 중국대륙을 하나의 역사적 체계를 이루는 3개의 핵심 구성원으로 보고 분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동아시아 역사의 전개는, 동아시아의 3대 강역을 본거지로 하는 투르코-몽골족, 선비(鮮卑)-퉁구스족, 한족(漢族)들 상호관계의 부단한 변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3극-분석의 틀은, 유목민족 대 정주농경 한족이라는 단순한 양극 접근법과는 분명히 다르다. 양극-분석의 틀을 가지고 접근하는 역사가들은 흔히, 유목민족들이 정착농경민족인 한족들에게서 공물, 특혜적 국경무역, 혹은 왕실간 혼인을 통한 지참금의 형식으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곡물과 직물 등 생활필수품을 확보할 수 없을 경우에는 중국을 공격하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약탈해 갔으나, 한족들이 평화적으로 순순히 이 생필품들을 유목민족에게 제공하면 평화가 유지되었다는 식으로 얘기를 엮어 간다.1

중국대륙을 정복한 이민족 왕조가 5개가 있는데, 그 중에 원(元, 1206-1368)나라 하나만 몽골초원으로부터 왔고, 나머지 4개는 만주에서 왔다는 아주 간단한 역사적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다. 즉, 탁발(拓拔)북위(北魏, 386-534)와 거란의 요(遼, 916-1125)는 모두 서부 만주 초원지역 출신인 선비(鮮卑)족이 세운 나라들이고, 금(金, 1115-1234)과 청(淸, 1616-1912)은 모두 동부 만주 산림지역 출신인 여진-만주족이 세운 나라들이다. 북위와 요 왕조의 선비족 지배자들의 전통은 몽골 유목민족에 가까운데 반해, 금과 청의 여진-만주족 지배자들의 전통은 아주 퉁구스족의 전형이었다. 중국은 한번도 남쪽으로부터 정복된 적이 없다.

Barfield(1989)의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다 몽골 초원과 (만리장성 아래의) 중국대륙은 자연적, 문화적 환경이 아주 극단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농경-정주(定住)의 한족 왕조와 몽골 유목 왕조의 공존이 가능했고, 또 흥망성쇠를 같이 했다. 하지만 소위 만주의 동북평원(東北平原)과 중국의 화북-장강중하류평원(華北-長江中下流平原)을 들여다보면 만주와 중국대륙 사이에는 그렇게 극단적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부 만주는 상당히 유목민적이고 동부 만주는 삼림이 울창하지만, 그 사이에 위치한 송화강(松花江)-요하(遼河) 유역에서는 수 천년 전부터 수수와 밀을 재배해왔다. 따라서 만주의 소위 “야만인”들은 중국왕조와 몽골초원의 세력이 동시에 쇠약해질 때마다 중국대륙을 정복해 한족을 직접 지배하려 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책들을 보면, 대흥안령(大興安嶺) 동쪽의 소위 “야만인”들을 크게 둘로 나누어, 서부 만주 요서(遼西) 초원지역의 오환(烏丸)-선비족들을 동호(東胡)라 하였고, 중부와 동부 만주의 퉁구스족들을 모두 함께 동이(東夷)라 지칭하였다.2 동호의 선비족들은 연(燕)과 북위(北魏)를 세웠으며, 요를 세운 거란족도 선비족의 후예다.3 이들 언어는 알타이어의 몽골계통에 속한다. 동이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삼한 등을 세운 예맥(濊貊) 퉁구스와 숙신-읍루의 후예로서 핵심 만주족의 선조인 말갈-여진 퉁구스로 나뉘며, 이들 “동이족”의 언어는 알타이어의 범-퉁구스 계통에 속한다

만주 종족들 중, 현대 한국사람들의 원류인 예맥-퉁구스만이 중국대륙에 정복왕조를 세워보지 못했다. 지난 2천년을 되돌아 보면, 전반 천년 동안 만주 중부의 예맥-퉁구스족들은 서쪽의 호전적 유목민과 동쪽의 사나운 삼림족들에게 밀려 그들 세력권의 중심이 송화강 유역에서 훈강-압록강 계곡으로 이전되는 과정을 거쳐, 결국은 일찍부터 한반도에 내려와 정착한 옛 예맥 형제들과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하기는 결과론 적으로 보면, 이것도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애당초부터 한반도에 내려와 정착한, 혹은 후에 합류한 예맥족들은 21세기 현재 독립국가를 이루고 사는데 반해, 한때 중국대륙을 정복하고 지배했다는 선비-여진족들과 만주 땅에 남아 만주족에 동화된 예맥-퉁구스족들은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에 흡수되어 무수한 한족들 속에 파묻혀 고유의 알타이어 계통 언어를 잊고 티벳-중국어(漢藏語系)를 말하며 살게 된 것이다. 

언어학자 Janhunen(1996: vii, 15-6)은 “한국과 일본은, 단지 최근의 역사적 운명으로만이 아니라, 그들의 오래 전 과거와 민족적 원류라는 측면에서도 모두 만주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얀후넨은 동북아시아 민족과 언어에 관한 연구에서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만주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주요 구성원으로 간주한다. 얀후넨은, 한국인들은 중국 정복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반면, 일본인들은 만주족 노릇을 제법 수행해서 짧은 기간이나마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를 데려다 만주괴뢰국(滿洲國, 1932-45)을 세웠을 뿐 아니라 중국대륙 전체를 지배한다며 중일전쟁을 벌였다고 좀 냉소적으로 들리는 말을 했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하려면 풍신수길(豊臣秀吉, 1536-98)이 명나라를 치기 위해 조선에게 길을 빌려달라고 허풍을 떨었던 사실도 언급을 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분석의 기본 단위로 (1) 전통적으로 한족이 지배 해 왔다고 간주되는 만리장성 이남의 중국대륙, (2) 투르코-몽골 계통의 몽골고원, (3)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포함하는 선비-퉁구스 계통의 “범 만주권” 등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전통을 공유하는 3개의 핵심 역사공동체를 설정하고, 이들 3극간의 상호작용이 동아시아의 고유한 역사 체계를 형성한다는 “분석의 틀”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역사 강의: 1-4 (2005. 1 15)
정리: 강현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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