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말레이시아독립광장

다음날(10월 4일) 우리는 말레이시아독립광장으로 갔다. 독립광장은 면적이 8헥타르이고 녹색진주초로 깔려 있으며 본래 경기장이었는데 말레이시아독립을 기념하여 웅위로운 독립광장으로 고치였다고 한다 1957년 8월 31일 말레이시아가 영제국주의 통치로부터 독립하면서 이곳에 말레이시아국기가 처음으로 게양되었다. 광장남단에 있는 국기게양대는 높이가 103미터로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게양대라고 한다.
광장 한켠에는 화란(네덜란드)식의 건축물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이슬람교풍격의 건축물들이 있었다.
매년 8월 31일이면 말레이시아국민들이 여기에 모여 국가의 독립을 경축한다고 한다.

국가영웅기념비

국가영웅기념비는 호빈공원 맞은 켠에 자리잡고 있다. 이 기념비는 높이는 15.54미터이고 황동으로 제조하였으며 기념비에는 “1914-1918、1939-1945、1948-1960”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1914-1918、1939-1945는 각각 제1, 2차 세계대전을 의미하고 1948-1960는 말레이시아의 내전을 의미하는데 말레이시아역사에서 “비상시기”라고 한다.

말레이시아는 16세기로부터 선후로 뽀루뚜갈, 화란(네덜란드), 영국의 침략을 받았고 1911년에 영국식민지로 전락되었으며 제2차세계대전때에는 일본의 침략을 받기도 하였다. 1957년 8월31일 영국식민지로부터 독립을 하였다.
독립 전후 말레이시아에는 여러 차례 내전이 발생하여 많은 용사들이 희생되었다. 나라에서는 그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기념비를 1966년에 세웠다.

국가영웅기념비(國家英雄紀念碑)

기념비 안쪽에는 또 대리석 기반위에 청동으로 주조한 나라를 위하여 싸우는 7명 군인들의 조각상이 있는데 용사들의 기백과 풍채를 보여주었다. 그 주위에는 분수못이 있고 못 옆에는 반달형의 주랑(柱廊)이 있다.

영웅조각상(英雄塑像)

국가이슬람교사원(國家淸眞寺)

말레이시아 국가이슬람교사원은 꾸알라룸뿌르시의 중심지구에 있으며 세계에서 이름있는 이슬람교사원이며 동남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교사원이고 이슬람건축예술의 걸출한 대표이다.

이 사원은 1957년에 말레이시아의 제1임 총리 툰쿠 압둘 라만의
창의하에 착공하였으며 1965년에 전부 중공하였다고 한다.
이 사원은 건축조형이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외관과 장식이 아랍이스람건축형식과 현대식을 서로 결합하였다. 사원의 주요 건축들로는 예배대전, 선례첨탑, 능묘와 사원 사무청사이다. 예배대전은 높고 넓으며 8,000명이 예배를 할 수 있어 중대한 종교행사는 여기에서 거행한다.

건물위에는 49개의 크고 작은 꽃봉오리 모양의 둥근 지붕이 얹혀져 있으며 매 지붕은 18개 쪼각으로 조성되였는데 18은 이슬람교의 “5공(五功: 認、禮、斋、课、朝)”과 말레이시아의 13개 주를 의미한다고 한다.

건물 우에는 또 뾰족한 탑들이 여러 개 있는데 이는 무슬림은 현대과학을 중시한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탑의 높이는 73미터이며 승강기와 계단으로 꼭대기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국가이슬람교사원(国家清真寺)

오후에는 지방특산물상점, 보석상점들을 돌아보았는데 화페는 싱가포르 화폐도 통용되었으며 환율은 인민폐 대 말레이시아화폐가 2.5:1이였다. 이로서 말레이시아 관광은 끝나고 다시 해관이 있는 신산시(新山市)로 향하였다.

이번 동남아여행에서 생각밖으로 인상 깊은 것이 말레이시아가 도시나 산과 들, 도로 등 어디라 할 것 없이 환경이 매우 깨끗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산이나 구릉지대에 비가 내려 물이 몰려내리는 곳이면 전부 가로세로 콩크리트로 물도랑을 만들어 아무리 비가 많이 내려도 수토류실이 없이 맑은 물이 흘러내렸다. 원래 나의 생각에는 말레이시아 인들이 갈색인이고 하니 환경도 그러리 하고 생각하였는데 이번 여행길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였다는 인상을 갖게 되였다. 이때 나는 피부색갈이 검다하여 환경도 어지러울거라는 너무 어리석은 생각을 한 자신에 대하여 자책감을 느끼었다.

호텔에 들어 행장을 풀고 텔레비전을 켜니 북경에 큰 눈이 내려 불도젤로 눈을 치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이곳은 35도의 무더운 날씨인데 북경에는 벌써 큰 눈이 내리다니? 11월 초에 북경에 큰 눈이 내리기는 역사상 보기 드문 일이지만 그래도 큰 눈이 내렸다는 것은 벌써 겨울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이라지만 세상은 넓고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쪽에서는 눈이 내리지만 한쪽에서는 꽃이 피고, 나는 이때 “장백산에 눈이 오고 오지산에 꽃이 피네”란 노래가 떠 올랐다. 그렇다 우리 나라를 놓고 보더라도 북방에서는 눈이 내리지만 남방에서는 꽃이 피고 있는데 전 지구적으로 놓고 볼때에 더 말할나위가 있겠는가? 이것도 이번 여행에서 나의 머리속에 추억으로 남아있을 하나의 자연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이튿날 (11월 5일)아침 우리는 일찍 해관을 건너야 했다. 가이드는 우리를 해관까지 바래다 주었으며 갈라질 때에 중국동포들에 대한 석별의 정이 듬쁙 담겨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세개 나라의 가이들은 모두 화인 후예들이었다. 그들을 비록 중국을 떠나 나른 나라에서 살지만 그래도 모두 중화민족의 피를 타고 난 민족이라 중국이 번영발전할 것 바랐고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하여 감정이 깊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바로 향항가수 장명민이 부른 “나의 중국마음(我的中國心)”노래에 담긴 그런 감정이 그들의 마음에도 다 담겨 있다는 것을 심심히 느낄수 있었다.

싱가포공항에서 8시반에 비행기가 리륙하여 12시 반에 심수에 착륙하였다. 심수에서 오후 2시에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6시에 심양에 도착하니 심양에도 눈이 많이 내려 활주로를 제외한 곳에는 모두 새하얗게 눈이 덮여 있었다.

이번의 려행길에 14일이란 시간이 그리 길다고는 말할수 없지만 그래도 그 동안 모두 정이 들어 이후 서로 련락을 하려고 전화번호를 교환하면서 아쉬운 심정으로 “안녕! 안녕!”하면서 갈라졌다.

2012년 12월 10일
[전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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