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 회장 이승률

[서울=동북아신문]자라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내 모습이 생각나곤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야구를 잘하고, 야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하는 모습이 내 유년시절과 닮아 있어 더욱 그러하다. 나는 대구 중앙국민학교 5학년때 정식으로 야구부원이 되어 운동을 시작했다. 포지션은 캐처였다. 그 후 중학교에 들어가 야구를 계속 하고 싶었지만 야구선수 활동을 하려면 전문적으로 야구를 해야 한다고 학교측에서 요청했기 때문에 부모님의 반대로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열정만큼은 학교 대표선수 못지 않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야구부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경북고 2학년 때 동창회의 지원사업으로 신생 야구팀이 창단됐다. 2학년 재학생 가운데 야구를 좋아하고 잘하는 학생들 7-8명과 중학교에서 선수생활을 해온 전문인력들을 스카웃하여 창단했는데, 그 때 내가 주장을 맡아 1년 동안 선수생활을 하면서 배우고 터득한 관념이 지금까지도 내 인생에 있어서 큰 밑그림이 되고 있다.

▲ (우로부터) 이동엽 참포도나무병원장, 이승률 이사장, 이준혁, 이준혁의 친구

우리는 대학입시 때문에 2학년 한 해 밖에 선수생활을 못했지만, 경북고를 졸업하던 해인 1967년도 봄에 중앙일보 주최 제1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경북고가 우승을 한 이후 무려 5-6년 동안 한국고교야구대회를 석권하다시피 했다. 그 후로도 경북고는 프로무대를 주름잡았던 임신근, 조창수, 배대웅, 남우식 등 유명선수들을 배출해내는 야구 명문고로 도약했으며, 지금도 류중일 삼성 감독, 이승엽 선수와 같이 뛰어난 선수들이 현역에서 활동하며 경북고의 전통을 빛내고 있다. 이런 나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

                                                                             Ⅱ.

그런 내가 특히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구기운동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특별한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만 꼽자면 첫째로, ‘홈’에서 출발하여 여러 베이스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야구경기의 진행방식과 룰이 독특하다 (이것은 기독교적 시각에서 본다면 세속의 삶을 다 누리다가 하늘나라 본향으로 돌아온다는 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각 선수의 포지션마다 독특한 기능과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순도 높은 팀워크와 리더십 즉 감독의 싸인에 절대 복종하는 예의바른 운동경기라는 점에서 뛰어나다. 세 번째는 야구게임 자체가 갖고 있는 변화무쌍한 역전 가능성과 경기상황에 따라 선수 개인기를 다용도로 활용하는 작전개념이 특이하다는 점, 그리고 선수들과 관중 및 응원단의 교감도가 뛰어나며 이를 통해 양 진영의 감투정신과 대결의지가 게임의 묘미를 한껏 높여 준다는 점이다. 또한 아군이 잘해서 이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대팀의 실책으로 이기기도 하는 등 공수 교대의 기회가 15회까지 연장전으로 이어지며 경기의 결과를 끝까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독특하다고 할 만하다.

특히 최고로 꼽는 야구의 묘미는 무엇보다 ‘생각하는 스포츠’라는 점이다.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 감독이 선수진용을 잘 짜고 ‘이기는 게임’으로서의 작전을 염두에 두고 경기를 진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감독이나 선수뿐만 아니라 야구게임을 관전하는 관객들이 스스로 작전을 짜고 생각하면서 경기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현재 상황에 맞는 작전 1안, 2안, 3안의 대책을 스스로 만들어 내어 때로는 동의하고 칭찬하며 응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탄과 비난 섞인 조소를 보내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나는 야구를 관전하면서 언제나 다음 작전을 구상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어찌보면 야구뿐만 아니라 내 인생과 사업 및 사역에 대한 모든 상황을 접할 때도 여러 가지 대안을 미리 사전에 구체적으로 예상 또는 기획한 다음 그 가운데서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방안을 선택하여 전력투구해온 셈이다. 상황분석 후 스스로 작전명령을 내린 다음에는 뒤돌아보지 않고 모든 힘을 집중하여 실행에 옮기는 태도는 야구를 통해 습득하였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Ⅲ.

이러한 야구의 묘미들은 우리의 인생사와 닮아있다. 특히 야구의 특징 중 첫 번째로 꼽았던 점, 즉 ‘홈’에서 출발하여 각 베이스를 밟으며 한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규칙은 그동안 나의 선교사역 궤도와 비슷하다.

첫 번째는 스스로 ‘뉴 실크로드 사역’이라 이름 붙였던 기독실업인회(CBMC) 사역이다. 선교적 마인드를 갖고 아시아 각지에 기독실업인회를 창립한 일인데, 서울을 홈 베이스로 두고 1994년 연길(1루)에 중국 최초의 기독실업인회를 창립한 이후 대도시 위주로 심양-북경-천진-청도-상해-서안-우루무치를 지나 (이 과정에서 창립된 CBMC가 중국 전역에 100개 지회에 달한다) 2000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알마티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2루)를 지나 2001년 터키 이스탄불(3루)로 진루한 다음 마침내 서울(홈)로 되돌아오는 것으로 선교 사역을 확장했던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 준플레이오프 3차전 관전하는 이승률 이사장(우)과 손자 이준혁 

두 번째는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사역이다. 이것은 본인이 연변과기대(YUST)와 평양과기대(PUST) 사역에 동참한 결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궤도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궤도는 본 연구재단이 기조로 삼고 있는 공동체자유주의 사역의 범위와 규모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다시말해, 한국을 홈 베이스로 삼고 1st 베이스를 미국, 2nd 베이스를 중국, 유격수는 일본, 그리고 3rd 베이스는 러시아를 삼고 외야수로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유럽으로 확장하는 궤적을 그린 것이다. 여기서 타자(공격수)는 물론 북한이다. 한국의 수비진이 북한 타자를 어떻게 잘 방어한 다음, 후속 이닝에서 공격 기회가 왔을 때 상대 진영을 또 어떻게 잘 공략하여 점수를 많이 내느냐 하는 것이 남북한 대결 구도에서 내가 갖는 게임의 전략적 요체다. 이런 야구 경기의 관점에서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사역을 할 때 결과적으로 얻고 싶은 전적은 우리 모두가 함께 이기는 게임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이겠지만 그 게임에 참여한 모든 선수들이 상대방과 신사게임을 하면서 한마당의 공동번영과 평화공존을 누리는 win-win게임이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남북한 통합의 이상향이다. 결코 현실정치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우리 민족의 이름으로, 또한 동북아평화공동체를 지향하는 한 선량한 초국경 지식인으로서 바라고 싶은 21세기의 궁극적인 시대상이다.

                                                                         Ⅳ.

지난주 11일(금) 두산과 넥센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이 있었다. 두산 팬인 손자(이준혁, 방일초등학교 5학년)가 2패를 당하고 있는 두산팀을 응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도 조르기에 표를 구해온 아들(이동엽, 참포도나무병원 원장)과 손자 그리고 손자의 친구(최다현)와 함께 3대가 잠실 야구장으로 향했다.

그날 경기는 9회말까지 3대 3으로 비긴 상황에서 연장 14회 접전 끝에 결국 2개의 클린 히트(홍성흔, 이원석)를 기록하며 두산이 3차전을 따냈다. 비록 12시가 다되어 집에 들어오는 수고가 있었지만 손자 덕분에 오랜만에 야구경기 구경도 하고 응원한 팀(두산)이 승리하는 희열도 맛보았으며, 무엇보다 3대가 함께 응원하며 가족애를 만끽하는 시간이 되었다.

문득 손자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내 인생의 미래를 꿈꿔 본다. 나와 참 많이 닮은 내 손자는 나의 미래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손자는 나의 미래의 아바타와 다름없다. 손자를 잘 키우고 손자가 훗날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나의 미래지향적인 인생관이다. 그런 차원에서 남북통일의 미래상을 그려보고 있는 것이다. 각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힘과 슬기를 모아 통일을 이끌고, 나아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해 헌신하면서 이 지역(동북아 한중일 3국)이 세계를 이끌어 가는 핵심세력권이 되고 거기에 한국이 중심축(pivot state) 역할을 해내는 그런 사명감에 불타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싶은 것이 내 인생의 궁극적인 꿈이다. 이러한 역사흐름이 가능하다면, 여기서 쟁취할 수 있는 공의와 행복이 가득찬 제3의 길은 결국 손자세대가 잘 사는 길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노년기를 맞고 있는 우리 6.25 경험 세대들이 한민족 역사의 아픔을 딛고 북한을 동북아 평화와 한반도 부흥의 유익한 파트너로 삼아 그들과 함께 국가정상화, 국제화, 세계화의 고지에 올라서는 기쁨을 맛보아야 하겠다. 그 길에 우리 지식인들이 선구자적 사명감을 갖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손자세대를 위한 새시대의 지평을 열어주는 일이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런 차원에서 한반도 통일경제와 동아시아 다자안보협력의 기반조성을 위해 애쓰는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의 사역이야말로 다음 시대의 공의와 행복을 가꾸는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나아가 주변 국가들로부터 존경받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긍지를 가질만하다. 그런 신념과 자부심을 갖고 우리들 각자 인생의 (야구)게임을 한번 멋있게 즐겨보자.

                                                                     Ⅴ.

준PO에서 2패로 고전하던 두산이 3차전 승리의 여세를 몰아 4차전까지 거푸 승리로 이끌더니 14일 있었던 최종 5차전에서 마지막 혈투 끝에 넥센을 물리치고 8대5로 승리(최준석, 끝내기 홈런)함으로써 드디어 LG와 쟁투하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런 야구게임의 역전과 드라마틱한 스릴을 맛보면서 느끼는 바가 참 새삼스럽다.

5전3선승제인 게임에서 1,2차전을 잇달아 내주며 2패를 당한 것은 마치 벼랑 끝에 몰려있는 것과 같은 위기상황이었다. 그러한 순간이 마치 현재의 동북아 정세와 같아 보인다. 핵실험 등으로 점점 악화되어 가는 남북한 관계와 아시아 지역 패권을 놓고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 여기에 집단적 자위권을 추진하는 등 극단적인 우경화 경향을 보이는 일본과 동진정책을 통해 극동아시아지역에서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러시아의 야욕, 그리고 양자 혹은 다자로 얽혀 있는 과거사문제, 영토문제 등의 갈등과 대립으로 얼룩져 있는 암울한 상황이니 말이다.

그러나 끝까지 인내하면서 ‘혼연일체 최강두산’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끈질긴 뚝심으로 2연패 후 3경기 연속 승리의 벼랑 끝 탈출의 대역전극을 이뤄낸 곰(두산 베어스)의 성실함과 패기와 팀워크를 참고해볼 만하다. 한민족 정체성의 모체는 곰(웅녀)이 아닌가. 역내 국가들의 집단이기주의적 혼전으로 앞길이 심히 어두워 보이지만 ‘곰’의 뚝심으로 끝까지 인내하면서 과거사에 너무 얽매이지 않는 통큰 포용력과 진취성과 슬기로운 지혜로 갈등과 대립으로 얼룩진 냉전적 질서를 화해와 협력의 질서로 전환함으로써 공동번영이 가능한 창조적 미래를 전개해 나간다면 한국야구 2013 준플에이오프에서 ‘두산야구’가 보여준 것과 같은 대역전극을 한국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동아시아 그레이트 게임’을 펼칠 수 있지 않겠는가. 여기서 누구보다 특별한 리더십과 감투정신 및 시대적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 나라는 단연코 지정학적으로 홈 베이스(중심축 역할)를 감당하고 있는 우리한국이다.

그저께(15일) 류현진 선수가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 한국인 최초로 승리투수가 됐다. 이것은 훗날 한국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만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메이저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2연패를 당하며 위기에 빠졌던 LA다저스에게 첫 승을 안기며 월드 시리즈 진출의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아름답고도 눈물겨운 호투, 극적인 홈런과 안타, 안정적인 수비, 포지션에 맞는 역할이 잘 어우려져 일궈낸 두산의 2013년 준플레이오프와 류현진 선수의 포스트시즌 첫승리와 같은 반전의 역전승을 동북아 지역에서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하여 노려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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