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지난 4월 30일 우리 부부는 연변문화국제여행사에서 조직한 대만관광을 떠났다. 이번 5.1절 연 휴일에 연변의 모 기업단위에서 27명이 관광을 떠나다니 우리 팀은 34명으로 구성되었다. 노선은 연길에서 비행기로 광주까지 가서 다시 광주에서 대만으로 가는 것이었다. 비행기가 오후 4시에 연길공항에서 이륙하여 저녁 10시에 광주에 도착하였다.

우리 연변에는 아직 복숭아꽃, 살구꽃도 피지 않았는데 버스에 앉아 호텔로 가면서 밖을 내다보니 빈랑나무, 바나나나무, 야자수 등 열대식물들과 이름 모를 상록교목으로 모든 것이 녹색세계였다.

대만개황

이튿날(5월 1일) 광주에서 12시에 비행기가 이륙하여 대만 도원(桃园)비행장에 착륙하였을 때에는 1시 반이었다. 입경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나오니 대만 평화여행사의 관광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40대 초반의 여성 안내원(가이드)이“热烈欢迎祖国大陆来的游客们(조국대륙에서 온 관광객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하면서 우리를 열정적으로 맞이 하였다. 나는 “조국대륙”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대만인민들이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분으로 간주하고 대륙을 그리고 조국의 품속을 그린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 후에도 안내원은 “대륙”이라는 말을 할 때에는 꼭 “대륙”앞에 “조국”이라는 규정어를 붙이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그들이 조국통일을 갈망하는 마음의 구체표현이라고 느껴졌다.

우리를 태운 차는 대북시로 향하였다. 버스에서 안내원은 대만의 개황과 대북시의 개황에 대하여 소개를 하였다.

대만은 동쪽으로는 태평양, 서쪽으로는 대만해협, 남쪽으로는 바시해협(대만과 필리핀의 바탄 제도 사이의 해협), 북쪽으로는 동해 사이에 있는 섬으로서 광주와 같이 북회귀선 우에 놓여 있으며 전체 대만도서(台湾岛屿)의 면적은 3만 6,200평방미터, 대만 본섬의 남북길이가 가장 긴 곳이 394킬로미터, 너비가 가장 넓은 곳이 144킬로미터이고, 면적은 3만 5천8백 평방 킬로미터로서 우리 연변(4만 2,700평방 킬로미터)작다. 대만의 전체 인구는 2,320만 명, 한족이 98%, 소수민족이 2%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소수민족은 대만의 원 토착민으로서 주로 산구에서 살며 대륙에서는 고산족이라 하지만 대만에서는 고산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고산족을 13개 족군(族群) 나눈다.

대만은 행정구역을 5개 직할시[대북(台北), 신북(新北), 대중(台中), 대남(台南), 고웅(高雄)], 3개 성할시[기룽(基隆), 신죽(新竹), 가의(嘉义)]로 나누었다.

 

사진(1): 대만지도
대만은 산이 많으며 고산지대와 구릉지대가 전체 면적의 2/3를 차지하며 동부는 산맥이 많고 중부는 구릉이 많고 서부는 평원이 많은 특징을 갖고 있다. 대만은 5대 산맥, 4대 평원, 3대 분지로 되여 있다. 5대 산맥으로는 중앙산맥(中央山脉), 설산산맥(雪山山脉), 옥산산맥(玉山山脉), 아리산산맥阿里山山脉), 대동산맥(台东山脉)이고, 4대 평원으로는 의란평원(宜兰平原), 가남평원(嘉南平原), 병동평원(屏东平原), 대동종곡평원(台东纵谷平原)이며, 3대 분지지로는 대북분지(台北盆地), 대중분지(台中盆地), 포리분지(埔里盆地)이다.

기후는 북부는 아열대기후이고 남부는 열대기후이며 산구를 제외한 년 평균기온은 22℃, 년 강수량은 2,000미리미터 이상이다.

대만의 농업은 경작지가 전체면적의 1/4이며 주로 벼를 생산하는데 일년에 2모작, 3모작을 하며 미질이 좋고 산량이 높다. 주요경제작물로는 사탕수수와 차이다. 이외에 채소와 과일도 종류가 많다.

대북시는 대만북부의 대북분지에 위치해 있으며 남북 길이 28킬로미터, 동서너비는 20.5킬로미터 면적은 272평방킬로미터. 인구는 267만 6천 명으로 대만의 정치, 경제, 문화, 상업 및 언론의 중심이다.

대북 고궁박물원

우리는 대북시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대북고궁박물원으로 갔다. 대북고궁박물원은 대북시 사림구외쌍계(士林区外双溪)에 자리잡고 있었다. 대북고궁박물원은 총 부지면적이 16헥타르로 산과 물을 끼고 기세가 웅위롭고 푸른 기와 황색벽은 중국 전통적인 궁전색채를 띠였는데 1962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965년에 준공하고 1966년에 개관하였다.

 

사진(2): 대북고궁박물원

고궁박물원의 주체건물은 4층으로 되였는데 남경국립중앙박물원, 북경고궁, 심양고궁과 열하행궁(热河行宫, 열하는 예전의 열하성을 말한다. 성소재지는 승덕시) 등 곳에서 가져온 문물과 해내외 각계 인사들이 기증한 문물 도합 67만 7,609건이 수장되어 있다.

1층은 사무실, 도서관, 강연청, 2층은 서화전람, 청동기, 도자기, 후가장(侯家庄)공원묘지모형 및 묘에서 출토한 문물, 3층에는 서화, 옥기(玉器), 법기(法器: 부처 공양에 쓰이는 기구), 조각, 도서, 문헌, 비첩(碑帖), 수놓이, 4층에는 여러 가지 특정주제전람(主题展览)이다. 문물은 서주시기의 상형문자로부터 시작하여 각개 시기의 문물들이 다 있었는데 옥으로 만든 명청시기의 공예품들이 많았다. 많은 문물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박물관의 규정에 의하여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하였다.

박물원 앞 광장에는 여섯 개의 흰 돌기둥에 푸른 오지기와를 얹고 “天下为公”이란 글을 새긴 커다란 패방이 있었다. “천하위공”은 천하는 여러 사람의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손중산선생은 “천하위공”으로 “민권주의”를 해석하였는데 국가는 응당 평민이 공동소유하여야 하는바 이것은 사람마다 평등한 정치적 리상이라고 하였다.

나는 손중산선생의 이 정치적 리념을 가슴에 안고 박물원과 이 패방을 배경으로 여러 장의 기념사진을 남기였다.

 

사진(3): “천하위공(天下为公)” 패방
[후일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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