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작가의 [문화산책]

앞줄 왼쪽 세번째 김우영 작가
[서울=동북아신문]“김 작가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장흥에 초청헝께 꼭 좀 와주어요이!”, “네, 그러지요.”, “이번에 오시어 징허게 맛난 장흥 삼합 한 번 들어보랑께요. 참말로 맛이 쥑여줘브러요!”

올해로 4번째 열리는 전남 장흥 제4회 한국문학특구포럼을 운영하는 김석중 상임집행위원의 초대 말이다. 장흥군은 지난 2008년 전국 지방자치단체중에 최초로 유일하게 문학관광 문학특구로 지정되어 매년 전국의 문인들을 초청해 문학축제 행사를 성대하고 열고 있다.

무거운 저울추가 기울듯 저물어가는 한 해의 만추 계절 2014년 11월 세밑. 대전 보문산의 안토시안 단풍이 찬 가을바람에 휘리릭 휘리릭 나뒹굴고 있다. 추위를 느끼며 외투 깃을 세우고 길을 나섰다. '길 떠나는 그대 모습 아름다워라!'는 말처럼 전남 장흥 문학기행 버스는 지혜로운 여행자를 태우고 대전 중구 문화동 한밭도서관을 뒤로 하고 가볍게 호남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푸르런 가을하늘 길따라 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 늦가을 서정이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산야의 단풍은 붉다못해 빠알간 물감으로 울긋불긋 색칠하고 있다. 가을걷이를 끝낸 들판은 파릇파릇 새싹이 구루터기 위로 가을 채치기를 하며 몸짓하고 있다

장흥은 붉은 철쭉의 제암산, 피톤치드 편백의 억불산, 천관문학관이 있는 천관산, 짙푸른 정남진 바다, 그리고 보림사 계곡물을 가득 안은 탐진강이 어우러진 문향(文鄕)관서별곡(關西別曲)의 고향이다. 관서별곡은 1555년 백광홍이 지은 기행가사이다. 백광홍이 평안도평사가 되었을 때 그 곳의 자연풍물을 두루 돌아보고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관서별곡은 우리나라 기행가사의 효시로서 작자의 문집 '기봉집'에 실려 있다.

흔히 하는 남도의 이야기다. 여수 가서는 돈 자랑 말고, 순천에선 인물 자랑 말고, 벌교 가선 주먹 자랑 하지 말고, 진도 가서는 '귀 명창' 소리 들을망정 제 소리 자랑일랑 아예 말라고 했다. 또한 장흥에선 함부로 글 자랑 하지 말라고 했다. 발 닿는 곳마다 시인 묵객들이 빼곡하기 때문이다. 장흥 출신 이동규 시인의 '정남진 장흥'이란 시 에서 장흥 문향(文鄕)에 대한 표현이 '장흥 삼합처럼 징허게' 풍겨 나오고 있다.

'시 아닌 것, 시인 아닌 사람이 없는 곳/ 소설 아닌 것, 소설 아닌 사람이 없는 곳/ 누가 여기에서 함부로 시인이라 자랑하랴/ 누가 여기에서 함부로 소설가라고 말할 수 있으랴!// 이청준의 서편제가 들리고/ 한승원의 아제아제 바라아제가 귓전을 때리는 곳/ 장흥 사람은 모두가 풍류꾼이다//

장흥에는 글 쓰는 이가 많다. 우리나라 최초 기행 가사 '관서별곡'의 백광홍을 시작으로 유명한 영화와 소설 '서편제' 이청준, '아제아제 바라아제(揭諦揭諦波羅揭諦)'의 한승원 작가, '녹두장군'의 송기숙 소설가 등의 문맥(文脈)으로 이어진다. 또 근대 작가군으로 꼽히는 김석중, 이승우 소설가와 충남대 명예교수 이동규 시인, 김정 시인이자 아동문학가 등 안팎이 문인들로 차고도 넘친다. 그러니 장흥 어디를 돌아봐도 문향(文香)과 맞닿아 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 장흥을 문향(文鄕)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까닭일 것이다.

이번 문학기행은 1박 2일에 걸쳐 전남 장흥군 일대를 비롯 인근의 강진, 영암을 탐방하면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꼭 위로 높아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옆으로 넓어지는 일도 좋을 것 같다. 마치 이번에 만나 남동향 정남진의 짙푸른 바다처럼 옆으로 수월찮게 넓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행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고 한다.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영역이 얼마나 작은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건강한 여행은 사람의 정신건강을 젊게 만들어 주었다. 이번에 만난 남도 인문학은 마치 색 바랜 고서(古書)나 낡은 학문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너무도 가깝게 우리의 삶 속에 함께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인문학이 바로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 참다운 인간으로 살아가는 도리와 근본, 교훈, 미래 등이 훌륭하게 담겨있는 보고(寶庫)가 바로 인문학(人文學)이다. 따라서 인문학은 사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기 전에는 싫든 좋든 우리들 곁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인간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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