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방하고 의리를 중히 여기며 허영심이 강한 다련사람

▲ 김범송 흑룡강신문 논설위원
[서울=동북아신문]중국 요녕반도 남단에 위치한 대련(大连)시는 동북지구의 대외개방 창구이자 최대의 항구도시이며 천혜의 아름다운 관광도시이다. 북온대 해양성 계절풍기후에 속하며 인구 669만(2014년)의 대련시는 성급 경제관리권한을 향유한 국가계획단열시(单列市)이다. 또한 ‘북방의 명주’, ‘낭만의 도시’로 불리고 있고 ‘국제화원도시’, ‘최고의 관광도시’, ‘세계환경 500톱’ 등 영예를 획득했다. 6000년의 유구한 역사가 있는 대련은 전통문화와 현대문명이 조화된 현대화 해변도시이며 광장문화가 매우 발달했다. 최근에는 대련-할빈 고속철도가 개통되어 동북3성이 ‘일일생활권’ 시대로 본격 진입했다.

항구도시 대련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천혜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혹한(酷寒)과 혹서(酷暑)가 없는 최상의 기후조건을 갖춘 아름다운 관광도시이며 유명한 피서지이다. 현재 ‘그린시티·클린시티’로 불리는 대련시의 녹지녹화율은 45%(2013년), 도시 전체에 아름다운 화원을 건설하고 있다. 2001년에는 중국 최초로 유엔의 ‘세계환경 500톱’상을 수여받았고, 일찍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100대 도시’로 선정되었다. 자기도시에 대한 애착심과 자긍심을 갖고 있는 대련인들이 초면부지의 사람에게 건네는 인사말은 “당신은 대련에 와 보셨습니까?”이다. 그 얍삽한 물음의 이면에는 대련이 살기 좋은 도시임을 은근히 자랑하는 은유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전형적 ‘동북 사나이’로서 협객기질이 강한 대련남자의 성격특징을 개괄하면, 호방하고 의리를 중히 여기며 의협심이 강하다는 것이다. 해방 전 일제의 핍박에 못이겨 황폐한 관동(关东, 동북지구)에 이주, 강인한 기질로 정착에 성공한 산동인의 후예답게 승벽심과 도전·개척정신이 무척 강하다. 우아하고 점잖은 성인군자 스타일과 면밀하고 계산적인 상인기질과는 거리가 멀다. 즉 동북 사나이의 호방한 성격과 산동사람의 신의를 공유한 대련남자들은 매사 일처리에서 책임심이 강하며 대인관계에서 친구로서의 의리와 우정을 소중하게 여긴다. 귀객이 오면 체면을 중시하는 대련사람들은 호화로운 술집에 손님을 초대하여 고급요리를 주문하고 명주를 마시면서 친분을 과시한다. 또한 평소 인맥쌓기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할애하며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영원한 친구’가 된다. 반면 허영심이 강한 대련인들은 칭찬을 듣기 좋아하지만 타인에 대한 칭찬은 매우 인색하다.

유구한 역사가 있는 대련의 21세기 독특한 생활문화와 대련 특유의 도시특성은 매우 복합적이며 다원적이다. 이는 20세기 파란만장한 대련의 근대사와 크게 관련된다.

작금의 대련 특유의 생활문화에는 세 가지 방면의 문화특성이 있다. 첫째, 현대문명과 동떨어진 원주민문화이다. 현재까지도 낙후한 구시대적 생활문화가 대련인들의 생활 속에 잔존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구저분하고 퇴폐한 장례문화이다. 둘째, 이주민문화이다. 오늘날 대련인 대다수가 일제시대 산동반도에서 이주해온 산동인들의 후예이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절대다수의 동북인들이 쓰는 중국어 표준어(普通话)와 거리가 먼 산동 특유의 방언을 사용하고 있다. 셋째, 외래문화이다. 1898년 대련은 러시아 조차지로 이양되었고,  중국의 ‘제 2 무역항’인 대련항은 러시아가 건설한 것이다. 1904년 러일전쟁 후 대련은 40년 동안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현재 대련시 중산구에는 일본·러시아거리가 있고 일본음식점이 많다. 한편 일본문화에 큰 ‘거부감이 없는’ 대련인들은 일제차를 선호하고 일본요리를 즐겨먹으며 한국손님을 일식집에 초대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현재 대련에는 10만여명의 조선족과 한국인들이 살고 있고, 대련시조선족기업가협회와 월드옥타 대련지회 및 대련한국인상회 등의 한인조직이 활약하고 있다. 대련 경제개발구 홍매(红梅)거리는 대표적인 코리안타운이며 한국상품 판매점과 한식점이 즐비하다. 현재 대련에는1천여개 한국기업이 있다. 한 때 진출기업수가 1천500개에 달했지만 인건비의 상승, 와자기업 규제 강화 등으로 많은 한국기업이 이전·퇴출했다. 대련인들은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 이웃나라 한국에 대한 관심이 크며 요즘은 제집 드나들듯이 한다. 또한 대련사람들은 한국드라마를 즐겨보며 매콤하고 단백한 한식을 선호한다. 대련 여순에는 한국관갱객들이 필히 찾는 곳, 안중근 의사가 갇혀 있던 여순감옥이 있다.

현재 대련도심 곳곳에서 그 견고성을 자랑하고 있는 유럽식의 원형건축물은 100년 전 대련을 통치한 러시아인들이 프랑스의 건축문화를 본받아 지은 것이다. 한편 ‘로터리의 도시’로 불리는 대련에는 80여개 광장이 있고, 광장을 중심으로 사면팔방으로 복사된 특징적인 대련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광장문화가 매우 풍부하고 다채로우며 아시아 최대의 성해광장은 유명 관광지이다. 대련에서는 택시행선지를 광장중심으로 이야기하면 택시기사가 곧바로 알아듣는다. 대련시내에는 일방통행이 많고 자가용이 많아 교통정체가 극심하며, 대련인들은 택시가 밀리는 것을 ‘야아처(压车)’라고 말한다. 또한 인민광장에는 중국에서 유일무이한 도시풍경, 광장을 순회하는 여자기병경찰대가 있다.

대련인들은 성격이 직설적이며 ‘동북삼성 표준어’와는 다른, 지방색채가 농후한 방언을 사용한다. 산동반도 이주민 후손인 대련인들의 생활언어는 산동 특유의 교동(胶东)방언과 흡사하며, 흔히 대련방언을 바다내음이 물씬 풍겨지는 ‘굴 냄새(海蛎子味儿)’에 비유한다. 이 또한 대련의 도시기질을 서양적이면서도 향토적이라고 자가당착적으로 평가하는 이유이다. 평소 대련인들은 자신을 동북인이 아닌 ‘대련인’이라고 말한다. 한편 대련에는 해산물요리가 없으면 주안상을 못 차린다라는 속설이 있다. 신선하고 싱싱한 해산물은 손님초대에 빠질 수 없는 명품요리이며, 외지의 관광객들이 반드시 맛보는 필수코스이다. 특히 여름철이면 대련시내의 거리마다 비릿하고 고소한 해산물냄새가 진동한다. 대다수의 중국인들은 생음식을 싫어하지만 대련인들은 신선한 생선회를 즐겨먹는다.

‘패션도시’ 대련에는 명품의류 매장이 부지기수다. 유행을 추구하고 시체멋을 따르는 대련여성들은 명품복장과 진한 화장을 선호한다. 젊은 여성들은 피부건강과 헤어스타일에 광장히 신경을 쓰며 한국화장품을 애용한다. 브랜드 설화수(雪花秀)는 대련여성들에게 인기만점인 고급선물이다. 한편 1950~60년대 유행된 옥수수떡을 먹어도 명품바지를 입는다(苞米面肚子, 料子裤子)는 시풍공속(市风公俗)은 먹는 것보다 입는 것에 치중하는 대련 특유의 생활특성과 장기간 외래문화의 영향을 받아온 대련여성들의 강한 허영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남자친구를 ‘뚜이썅(对象)’이라고 부르지만, 대련여성들은 자기남편을 소개할 때 ‘안뚜이썅(俺对象)’이라고 말한다.

대련은 북방의 ‘축구도시’로 유명하며 축구는 대련의 도시명함으로 손색없다. 대련시민 대다수가 축구마니아이며 축구는 대련인들의 일상화제이다. 1990년대 중국축구를 제패한 대련만달축구팀은 북경국안팀의 천적이었고, 북경축구팬들에게 ‘만년2등’ 콤플렉스를 심어주었다. 그것이 대련축구팬들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늘날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한편 몇 년 전 대련실덕팀에 이적하여 축구한류의 열풍을 일으켰던 ‘반지의 제왕’ 안정환은 대련축구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몸에 받은 바 있다. 현재 많은 대련사람들은 세계 500강 기업인 한국의 포스코는 잘 모르면서도 ‘포항제철 축구팀’은 기억하고 있다. 1997~98시즌 대련만달팀이 아시안클럽 챔피언십 결승에서 명문팀인 포항 스틸러스에게 패배한 ‘아픈 기억’을 대련축구팬들이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련의 국가급경제기술개발구에는 한국기업을 포함한 수많은 외자기업이 진출해 있다. 2000년대 이후 중앙정부의 동북진흥정책과 동북노공업기지 발전전략에 힙입어 대련의 경제발전은 줄곧 고속성장을 지속해 왔다. 한편 대련인들은 아름다운 도시환경과 21세기 현대문명에 위배되는 낮은 시민의식과 소시민적 기질, 지나친 허영심 등 문화적 후진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공무원사회의 부정부패와 나태한 관료기풍, 낮은 서비스의식은 최근 한국기업 등 외자기업의 퇴출을 야기한 직접적 원인이다. 요컨대 21세기 매력 넘치는 국제도시로 거듭나려면 개방적이고 포용력이 강한 도시기질, 높은 서비스의식과 선진적 문화소양을 겸비한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시민의식 전환이 필수 불가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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