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문학 열린 공간 1>

▲ 구호준 소설가/수필가
[서울=동북아신문] 너에게 전화를 한다. “뭐해?”너에게 전화를 하는 것은 네가 뭘 하느냐가 궁금해서가 아니다. 넌 뭘 하던 아름답다. 일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네 자체가 아름답고 그래서 넌 뭘 하던지 그 일까지도 빛이 나는 것이다. 너에게 뭐하냐고 묻는 것은 네가 보이지 않을 때는 너의 목소리가 그리워서다.“쑥을 다듬고 있어.”-쑥?서울 사는 여자가 쑥을 다듬어? 잠이라도 덜 깼냐고 물으려는데 다음의 말이 달려온다.“인절미를 할 쑥을 다듬고 있어.”난 더 이상 뒷말을 잇지 못한다. 수많은 말을 한다고 해도 지금 인절미를 하려고 쑥을 다듬는 너의 마음에 대한 감동을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너의 목소리는 아직 잠이 취한 듯 낮고 따스했지만 그 목소리가 전해주는 여운은 우뢰가 되어 내 가슴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남자를 위해서 쑥을 다듬어 인절미를 만드는 여인, 그건 이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음식을 맛이 아닌 정으로 먹던 시절은 이젠 나에게는 아득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줄로 알았다. 시골에서 살면서 어머니가 만드는 음식은 맛을 떠난 정이었다. 밭으로 일 하러 나가셨다가 점심시간에 잠깐 뜯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뜯은 산나물을 묻히고 국을 끓이고 하던 일들은 내게는 추억으로만 남은 줄을 알았었다.“인절미는 쑥이 많이 들어가야 맛있어.”너의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거기에는 정이 넘쳐흐르고 있다. 그런 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너에게서 내 엄마 같은 따스함을 느낀다. 내 엄마도 늘 그랬었다. 시골에서 살면서 70키로 떨어진 곳에 있는 아들을 위해서 산나물을 철따라 따다가 주셨다. 자식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었겠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엄마가 버스타고 다녀가는 차비면 시장에서 편하게 사먹을 수 있는데 왜 힘들게 들고 오셨는지를.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었지만 도심에 묻혀 나는 시골의 정을 잊고 살았었다. 음식을 먹어도 정이 아닌 돈으로 계산하면서 맛을 음미하려고 했던 나 자신을 너를 보면서 반성하게 된다. -쑥을 다듬어.쑥을 다듬는 너에게 “그것 얼마나 한다고 마트에서 사지”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시골에서 나물을 뜯어온 엄마에게도 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쑥을 다듬는 너를 보면서 그때 유치한 생각을 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엄마가 갖다 준 산나물은 나물이 아닌 엄마의 사랑이었는데 나는 늘 그것을 정은 빼고 먹었었다. 허나 네가 만드는 음식에 넘치는 정은 한 점도 흘릴 수 없다. 지난날은 되돌릴 수 없어서 반성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면 꼭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삶은 반성도 불가능하다. 그러고.네가 다듬는 쑥에는 내 엄마 같은 정만이 아닌 사랑도 함께 담겨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 나를 위해서 휴일이면 시골에 가서 손수 쑥을 뜯어다가 다듬어서 인절미를 만들어줄 사람은 너 하나뿐이다. 그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미 내 존재의 이유를 찾았었다. “쑥을 다 다듬으면 가루와 함께 방앗간에 다녀와야 해.”너의 목소리는 여전히 일상처럼 평온하게 다가오지만 나는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한다. 그냥 쑥을 다듬고 있을 너의 손을 보고 있을 뿐이다. 아름다운 얼굴과 달리 궂은일에 거칠어진 것 같은 너의 손을 보면서 아파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있다. 어쩌면 너의 손은 봄이 오면 쑥을 뜯으면서 그 쑥에 빠져 아름다움을 잃었을 너의 손을 아파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내 엄마처럼 자식들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면서 조금은 거칠어도 지고 지금은 또 나를 위해서 쑥을 다듬으면서 또 다른 흔적을 만들고 있을 너의 손을 보면서 그 손의 흔적을 찾아 조금 더 아껴주고 보듬지 못하고 아파만 했던 내가 부끄럽기만 하다. 나를 위해서 인절미를 만들려고 쑥을 다듬는 너, 그런 너에게 나는 “힘들지 않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너의 손은 이젠 나를 위한 정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런 너에게 음식을 만드는 것이 힘들지 않은가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 같은 마음으로 정을 담고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마음을 담으면서 만드는 너의 음식은 그냥 음식만은 아니다. 사랑으로 빚고 만드는 너의 음식에는 너만의 정과 마음이 담겨져 있다. 그런 너에게 음식을 장만하느라고 힘들지 않는가는 말은 지나가는 나그네의 객 적은 한담일 뿐이다. 차라리 네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너의 사랑에 고마워하고 감사하리라. 너의 손끝에서 다듬어진 쑥으로 만든 인절미, 그건 내 생에서 처음으로 받는 인절미가 아닌 인정미로 남은 생을 간직하고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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