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곡이 모두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완전히 어두워져있었다. 지금까지 같은 장소안에서 함께 열광했던 모두가 서로를 전혀 모른다는듯한 얼굴로 씩씩하게 라이브하우스를 떠나간다.
    《나, 저 올리짱이라는 사람 몰랐었지만 꽤 지밌었어.》
    키누요는 잔머리가 다 빠져나온 포니테일을 고쳐 묶으며 올리짱이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나 나는 방금전까지 계속해서 울려퍼지던 수많은 곡들을 하나도 떠올릴수 없다.
    《사람들이 전부 역으로 가고있네. 우리도 이 행렬을 따라 가자. 축제때 같아서 재미있잖아.》
    키누요가 그렇게 말한 순간 역으로 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라이브하우스 뒤편을 행해 달려가는 무리가 우리들 앞을 우르르 지나쳐갔다. 한무리도 아니고 몇개의 그룹이 꺅깍 소리를 지르며 뒤쪽으로 몰려간다.
    《저 사람들은 뭐지? 잃어버린거라도 있나?》
    방심하고있던 나는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그저 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냐. 뭘 잃어버린게 아니야. 저 사람들, 대기실로 가는거야. 대기실에 가서 올리짱이 나오기를 기다리려는거야.》
    니나가와가 중얼거리는가싶더니 그 사람들을 따라 엄청난 속도로 뛰여가기 시작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내 몸도 멋대로 그의 뒤를 쫓았다. 키누요가 소리쳐 불렀지만 발이 멈추지 않는다. 라이브하우스의 코너를 돌자 바닥이 아스팔트에서 비포장으로 바뀌는가싶더니 주차장같은 뒤뜰이 나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떼지어 몰려있었다.
    나나가와와 둘이서 발굼치를 들고 사람들 머리사이를 넘겨다보았다. 작은 뒤문이 닫혀있는걸 보니 올리짱은 아직 나오지 않은 모양이였다. 문량쪽에 경비원들이 배치되여있는데 분위기가 제법 살벌하다. 대기실 몇메터앞에는 차창을 가려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차가 한대 정차되여있고 그 차까지 팬들의 줄이 길게 이어져있었다. 팬들을 가로막고있는 로프안쪽에는 콘서트 스태프 몇명이 대기하고있다.
    니나가와는 충혈된 눈으로 라이브하우스의 닫힌 뒤문만 노려보고있다. 그에게 존재하는것은 눈뿐, 나에게 존재는것도 눈뿐. 오직 바라보는것뿐인 이 행위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가.
    나는 올리짱을 바라보고있는 니나가와가 좋다.
    《빨리 안 돌아가면 뻐스 끊길지도 몰라.》
    뒤쫓아 온 키누요가 숨을 헐떡거리며 말한다. 그 순간 문이 열리고 경비원들이 한발짝 앞으로 전진했다. 주위의 팬들이 일제히 카메라를 준비한다. 일순 정적.
    드디여 건문안에서 올리짱이 모습을 드러냈다. 콘서트때와 같은, 아니 그 이상의 열광적인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무지에서 보았을 때하고는 전혀 다른 눈부심으로 충만한 올리짱. 티셔츠에 청바지차림으로 머리를 바람에 나부끼면서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녀는 역시나 키가 크다. 보고있으면 웬지 안심이 되는 시원스런 미소에서는 갓 구운 빵처럼 향긋한 냄새가 날것만 같다.
    녀자팬들이 환성을 지르며 로프 저쪽에서부터 걸어오는 올리짱에게 꽃다발을 던지듯이 건넸다. 올리짱은 그 큰 꽃다발을 마치 아기를 감싸안듯 량팔로 안고 상냥한 미소로 들여다본다. 그때 옆에 있던 니나가와가 올리짱에게 이끌리기라도 한듯 휘청휘청 걸음을 내딛었다. 이윽고 올리짱을 둘러싼 사람들 뒤편에 다다르자 량손으로 인파를 밀쳐낸다. 하지만 팬들은 올리짱에 정신이 팔려 비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니나가와는 그의 앞을 가로막고있던 녀자를 거세게 밀어젖혔다. 녀자는 비틀거리며 흘러내린 나시의 끈을 고쳐 올리는 동시에 《뭐하는거예욧!》하고 세되게 소리쳤다.
    《니나가와, 그만둬!》
    키누요가 옷깃을 잡고 말렸지만 확 뿌리친 그는 점점 더 란폭한 동작으로 사람들을 젖히며 앞으로 나아간다.
    《하츠, 말리는게 좋아.》
    불안한 목소리로 말하는 키누요에게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빨리 그를 말리지 않으면 안돼.
    하지만 움직일수가 없다. 처음으로 자신의 막을 깨고 나오려 하는 그가 너무나도 멀게 느껴져서 발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니나가와에게 밀려난 사람들의 아우성이 빗발치는 가운데 드디여 니나가와와 올리짱사이의 거리는 로프 하나로 좁혀졌다. 그러나 올리짱은 겁을 내기는커녕 놀라는 시늉조차 없다. 웃는 얼굴 그대로 니나가와는 쳐다보지도 않은채―하지만 분명 시야의 한듵에 그의 모습이 걸려있었겠지―계속해서 다른 팬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발로 완만한 커브를 그리며 그가 있는 곳을 피하듯 통과해 앞으로 나아간다. 그녀만을 위해 준비된 꽃길우를 걸어.
    니나가와가 한발짝 더 앞ㄹ으로 나아가자 순식간에 벽이 가로놓인다. 스태프들의 벽이다. 등뒤에 회사명이 들어간 티셔츠를 입고있는 그들은 프린트의 전선부분을 가위로 잘라내듯 니나가와와 올리짱 사이를 깨끗하게 싹둑 하고 잘라냈다.
    《이봐 너, 이러면 곤란하지.》
    니나가와는 인파속에서 거칠게 끌어내진다. 량팔을 붙들려 끌려나오는 그 뒤편으로 미리 준비된 자동차에 오른 올리짱이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띤채 떠나가고있다.
    《다음에 또 그런 란폭한 짓을 하면 그때는 경비우너들한테 끌고 가버리라고 할테니까 명심해.》
    스태프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린다.
    니나가와는 랭정하게 《처리》되였다. 스태프들에게, 그리고 올리장에게.
    그는 엉망으로 벌어진 옷깃도 내버려둔채 텅빈 눈을 하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런 그가, 견딜수 없는것이다.
    네가 좀 더 욕먹었으면 좋겠어. 좀 더 비참해졌으면 좋겠어. 좀 더 고통스러워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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