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가와는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노을에 물든채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절망적인 표정으로 바라봤다. 짓누르는듯한 공기속에서 우리 셋은 침묵을 지키며 차창밖의 석양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티켓에 기록된 공연시작시간은 벌써 림박해있었다.만일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지각을 한 나는 그 정방형의 방에서 매일밤 니나가와의 저주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해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뛰기 시작했지만 니나가와가 차표를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씹어댔던 탓에 표가 자동개찰구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 덕분에 창구의 역무원에게 확인을 받아야 했던 타임루즈.
    역을 나오자마자 라이브하우스의 위치가 그려진 략도대로 처음 와본 석양속의 거리를 다시 쉬지 않고 달렸다. 퇴근하던 회사원들이 놀란 얼굴로 달려가는 우리 세명을 피한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거리와 숨을 헐떡이며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우리의 모습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나의 비치산다루가 찍찍거리는 소리가 넓고 곧게 뻗은 도로에 바보스럽게 울려퍼지고 도로 량쪽에 일정한 간력으로 불을 밝히고 선 가로등은 벌꿀색 꼬리를 드리우며 하나하나 지나쳐갔다.
    큰 다리에 이르러서도 속력을 줄이지 않고 계속 달리면서 저녁노을을 받아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기분이 상쾌해져 속력이 더욱 빨라졌다. 몸이 바람에 녹아버릴것 같다.
    다리가 끝나자 어느새 내가 선두에서 달리고있었다. 그대로 내리막길을 달려내려가자 고가도로밑에 우주기지처럼 기발한 형태의 건물이 보였다. 《저거다!》하고 지고를 들고있던 니나가와가 소리를 지른다. 가까이 가보니 건물입구는 이미 엄청난 인파로 들끓었고 기다란 줄이 몇겹으로 늘어서있었다.
    《다행이다. 아직 시작안했어. 줄서자.》
    《난 무리야. 죽을거 같아.》
    키누요는 비틀비틀 대렬을 벗어나 지면보다 약간 높을뿐인 보도블록에 쓰러지듯 주저앉더니 고개를 들고 숨을 몰아쉬였다.
    《하츠도 좀 쉬여. 비치산다루 신고 뛰느라 힘들었지? 저기 앉아서 쉬고있어.》
    대렬을 따라 천천히 앞으로 이동하며 녹초가 된 얼굴로 니나가와가 말한다. 맞다. 나 산다루를 신고있었지. 그러고보니 발가락이 상당히 아프다. 허리를 숙여 들여다보자 량쪽 엄지발가락 모두 비치산다루끈이 밀착된 부분의 피부가 벗겨져 마치 핑크빛 자몽의 과립처럼 뽀얀살이 얼굴을 내밀고있었다. 상처가 너무 아파보이는 바람에 갑자기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키누요옆에 주저앉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줄지어 흘러가는 관객의 물결을 바라보았다.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보이는 녀성관객들이 대부분이다. 올리짱이 패션모델이라 그런지 멋지게 꾸미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허리레 작은 색을 두르고있을뿐, 거치장스럽게 큰 가방을 메고 온 사람은 없다. 더구나 남자관객은 거의 보이지가 않았다. 녀자친구에게 억지로 끌려온듯한 사람이나, 아니면 묘하게 절박한 표정으로 단독행동을 하고있는, 즉 니나가와타입의 남자만 간신히 찾아낼수 있을 정도였다.
    《쟤 괜찮은 면도 있네. 녀자라고 쉬게 해주지. 티켓값도 자기가 다 내주지.》
    옆에서 키누요가 말한다.
    《웬 일이야 갑자기?》
    《응, 그러니까―다음번 데이트는 단둘이서 가도 되지 않겠어?》
    《데이트?》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다.
    《그런거 아냐. 키누요, 오늘은 뭐라고 해야 하나. 암튼 절대 데이트같은거 아니야. 니나가와는 올리짱을 만나고싶어서 온것뿐이야.》
    《글쎄 그럴가? 니나가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자기를 더 잘 알게 해주고싶어하는게 아닐가?》
    키누요는 잘못짚어도 한참 잘못짚었다. 하지만 그 잘못짚은 정도를 제대로 설명해줄수 없으니 답답하다.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자 부끄러워한다고 착각했는지 키누요가 씨익 웃는다. 사실 어느쪽인가 하면 내게는 이렇게 키누요와 함께 있는 시간이 오히려 더 데이트같은 기분이 든다. 키누요와 제대로 이야기할수 있을지 어떨지, 가슴을 졸이고있었으니까.
    《하츠도 이런 얘기하는건 부끄러운가 보네. 하긴 중학교때는 이런 얘기 안했으니까.》
    입을 늘어진 고무밴드처럼 해가지고는 얼굴이 빨개져서 웃고있다. 조금은 바보처럼 보이는, 내가 좋아하는, 키누요의 부끄러워하는 얼굴.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