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가와네 집에서 돌아오자마 키누요에게 전화를 걸었다. 옆에 의자가 있었지만 앉을 기분이 나지 않았다.
    《네. 오구라입니다.》
    《키누요?》
    《하츠? 웬 일이야? 오래간만이야―》
    정말로 오랜간만이란 느낌이 든다.
    《저기, 요전에 츠카모토에게 츠바모토라고 해서 미안해.》
    전화기너머에 짧은 정적이 흐른다.
    《하츠가 사과를 다하네―해가 서쪽에서 뜨겠네―괜찮아, 괜찮아. 신경쓰지 않아도 돼. <츠바모토, 시끄러>라는 말이 요즘 우리서이에서 아주 류행어가 됐다니까.》
    《그랩근데 말이야. 다음주 토요일에 니나가와가 좋아하는 모델의 콘서트가 있는데 티켓 남는데 있거든. 니나가와랑 나랑 너랑 셋이서 같이 가지 않을래?》
    다그치듯 성급하게 튀여나오는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러면 마치 콘서트에 따라와주길 바라서 사과한것 같잖아.
    《우와―멋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아이템인데? 잠간 기다려. 다이어리 가져올게.》
    멀어져가는 발소리에 중학교때 몇번인가 가본적이 있는 키누요네 집이 떠오른다. 전화기가 놓여있는 곳은 부엌근처. 누군가 설거지를 하고있는지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려온다. 기다리는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초조감으로 신경이 곤두선다. 키누요가 전화기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해있었다. 친구에게 그저 놀러가자고 권한것뿐인데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걸가.
    《잘됐다. 갈수 있어.》
    라고 하는 키누요의 대답이, 한심할 정도로 기뻤다.


    토요일. 약속장소인 역플래트홈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건 생기없는 모습으로 쭈크리고앉은 니나가와와 매달리는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키누요였다.
    《하츠, 왜 이제야 와! 니나가와가 이대로 가다간 콘서트에 늦을지고 모른다고 얼마나 애를 태우던지 정말 무서웠다구.》
    시계를 차고 있지 않아서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30분이상 늦은것 같다. 니나가와는 지저분한 플래트홈바닥에 주저앉은채 내가 다가가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신경쓰지 않아도 돼. 별로 애태운거 없어.》
    《애태우고있었잖아! 플래트홈안을 초조하게 왔다갔다 하질 않나, 표를 물어뜯질 않나. 읺잖아 하츠, 니나가와, 방금전까지 줄창 한곳만 노려보면서 표를 잘근잘근 씹고있었다구.》
    《표를 씹어대는건 버릇이야…라니, 원.》
    니나가와가 어쩔수 없다는듯 어구운 웃음을 토해낸다. 키누요는 한숨을 쉬고 내 귀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넌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니나가와랑 전혀 모르는 사이잖아. 느닷없이 우리 두사람만 계속 기다리게 하고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잖아.》
    《미안, 옷을 고르다보니…》
    《그래서, 그게 엄선해서 입고 온 옷이야?》
    키누요는 점점 어색함이 사라져가는, 그러나 여느때처럼 그새같이 하얀 눈으로 나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응.》
    《차라리 곤충채집망이 더 잘 어울리겠다.》
    짧게 자른 청바지에, 자주색과 갈색의 굵은 가로줄무늬가 들어간 소매부리 헐렁한 럭비셔츠, 게다가 바지 뒤주머니에 꽂은 지갑을 빼면 빈손이다. 늘 교복차림아라 옷을 살 필요성을 별로 못느꼈기때문에 예비 잠옷이나 다름없는, 천이 너덜너덜해진 옷들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발밑의 궁상은 단연 으뜸이다. 까만색 발가락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노란색 비치산다루, 낡아빠진 운동화보다야 낫다고 생각해서 신고왔지만, 이렇게 해볓아래에서 보니 썩 괜찮은 숭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압승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게다가 집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해벼이 드는 플래트홈에서 보니 해살에 그을린 체육복자국이 하얗게 드러나 무척 더운데도 럭비셔츠의 하얀 단추를 제일 위까지 채우지 않으면 안될 처지였다.
    키누요는 중학교때와 다름없이 청바지와 티셔츠 차임이였지만 자세히 보니 티셔츠에 아무렇지도 않게 브랜드로고가 들어가 있지. 철바지도 폭이 좁은 7부 바지라 발목이 귀엽게 그러나 있지. 신발은 학교에 신고온적이 없는 신상품 그 자체지. 중학교때보다 사소한 부분에서 세련되게 바꿔여있었다. 게다가 모르는 사이에 귀까지 뚫고있다. 키누요와 나란히 서자 흡사 언니와 동생 같아서 조금씩 키누요에게서 몸을 떼여냈다.
    니나가와로 말하자면 그는 영자신문 무늬의 셔츠를 입고있었다. 자하철 풍경에 동화되여버릴것 같은 영자투성이 회색 셔츠, 풀먹인것처럼 끝이 날카로운 칼라에 감싸인 목은 웬지 칼라의 날레 쓸려 아플것 같다.
    먼지투성이와 후덥지근한 바람을 몰며 전철이 플래트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우리 셋은 함께 전철에 올라탔다. 좌석끼리 마주보는 좌석이 있어서 키누요와 내가 나란히 앉고 니나가와가 맞은편에 앉았다.
    니나가와는 나와 키누요에게 티켓을 건네주었다.
    《Oli―Chang First Live Tour》라고 적혀있는.
    《이 티켓 3500엔이나 하네! 나, 돈낼게.》
    티켓을 자세히 살펴보니 확실히 가격이 쓰여있다. 백속의 지갑을 찾는 키누요를 보고 나는 당황했다.
    《네가 가고싶었던 콘서트도 아니니까, 돈낼 필요 없잖아.》 라고 한 다음 티켓을 산건 내가 아니니까 내가 결정할 일은 아니지만, 하고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괜찮아, 괜찮아. 이런 때를 디비해서 아르바이트하고있으니까.》
    처음 들었다. 키누요, 아르바이트도 하고있었구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활동적으로 변해간다. 키누요는 백속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세기 시작했다.
    《난 안내.》
    무거운 목소리로 선언했다. 아니, 못내. 난 아르바이트도 안하지. 아니,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지…아무튼, 매직테이프를 찌익 하고 떼여내는 타입의 내 나일론 지갑속에는 3000엔밖에 들어있지 않다.
    《그렇지만 교통비는 냈다.》
    하고 덧붙이고 보니 오히려 더 비굴한 느낌이 든다. 지각은 했지, 돈은 없지, 몰골은 초라하지, 어쩜 나는 중학교때보다 더 꼴사나워졌는지도 모른다.
    《돈은 됐어. 내가 불렀으니까 내가 전부 내는게 당연해.》
    니나가와의 분명한 어투에 한숨이 놓였다. 잔돈을 세고있던 키누요의 손도 멈췄다.
    《그보다 저것봐, 해가 지기 시작했어. 콘서트에는 이미 늦엇을지도 몰라. 그렇다고 해도 뭐 상관없어. 인연이 없는거겠지. 나하고 올리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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