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에서 련슴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 굵은 비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햇다. 련습은 중지되고 부원들은 체육관처마밑으로 몸을 피했다. 처마밑은 서늘했다. 젖은 등뒤로 브래지어끈이 비쳐보이는 아이들은 타월로 몸을 닦으며 지면에 부딪히는 커다란 비소리에 압도된듯 말이 없었다. 그러나 연기가 피여오르는것 같은 비속에서 운동장으로부터 이쪽을 행햐 걸어오고있는 선생님을 발견한 순간 모두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선생님 머리 풀려있어!》
    트레이드마크인 곱슬머리가 비에 젖어 이마에 찰싹 달라붙어있다. 아이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놀려대자 선생님은 바로 얼빠진 표정이 되여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눈을 끔뻑거렸다. 약삭빨라졌다. 원래는 그런 식으로 행동할 사람이 아니면서 그다음에 부원들이 할 말은 뻔하다. 선생님도 분명 알고있을것이다.
    《선생님―비도 오고 하니까 오늘은 써클활동 그만 끝내요―》
    낯익은 일부의 움직임. 선생님이 광화학 스모그경보를 숨긴날 이후로 이런 모습을 보는것이 전보다 더 꼴보기 싫어졌다. 불쑥 매트우에 앉아있는 내옆에 선배가 걸터앉았다.
    《이런 비속에서는 아무래도 련습이 불가능하겠지? 옷까지 갈아입엇는데 아깝네.》
    《이거 소나기죠? 금방 걷힐걸요.》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지금 <조르기부대>에 서두르라고 사인을 보냈어. 비가 그치기전에 선생님을 설득할수 잇느냐가 관건인데 말야.》
    선배는 재미잇다는듯한 눈으로 선생님을 에워싼 부원들을 보고있다. 심심해서 말을 걸어온건지. 정말로 친절한 사람이여서 말을 걸어준건지, 잘모르겠다.
    《피곤하면 집에 가도 돼.》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있으니까 선배가 말했다.
    《아녜요. 뒤정리할게요. 허들이 비에 젖어서 녹쓸지도 모르고.》
    《이런 비속에서 뒤정리하기 싫어요. 하고 녀자부원들 전체가 졸라대면 분명히 안하고 끝낼수 있을거야. 괜찮아. 선생님은 리해심이 있는 사람이니까.》
    선생님은 리해심이 있는 사람이니까…
    운동장정리를 빼먹어도 체육관 열쇠를 깜빡하고 잠그지 않아도, 써클활동후에 다같이 술을 마서도 오로지 이 말뿐. 하지만 경멸하는듯한 뉴앙스는 전혀 없다. 그래서 더욱 흰머리가 난 어른에게 《리해심이 있다》고 말하는것을 들으니 씁쓸해진다. 오래 살 의미가 있을가 하는 생각이 든다.
    《륙상부도 분위기 많이 좋아졌어. 작년 고문은 무작정 스파르타식에 기록수치밖에 안보는 인간이여서 그만두는 신입부원들도 많았는데 올해는 다들 선생님이랑 잘 어울리고 써클활동이 재미있어.》
    《이번 선생님은 그저 잘 길들여진거 아니예요?》
    무의식중에 내뱉고선 차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기가 불안정하게 떨리면서 소름이 끼쳐온다. 선배는 앞을 본채 낮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네 눈. 언제나 예리하게 빛나고있는데도 정말은 아무것도 못보는구나? 한가지만 말해두겠는데 우리는 선생님을 좋아해. 너보다 훨씬.》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있는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륙상부원들과 선생님사이에는 거짓이 아닌, 진정한 정이 흐르고있을지도 모른다…라니, 그런게 있을리가 없다. 조금전 선배의 말은 단지 허세일뿐이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선배들의 방식에 물들지 않고 차가운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내게 휘협을 느껴서 그때문에 나온 허세다.
    결국, 부원들의 설득이 긑나기전에 비가 그쳤다. 련습은 재개되여 두명씩 겨루어달리는 100메터 전력질주가 시작됏다. 이윽고 내 순서가 되여 선생님의 호루라기소리를 신호로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햇다. 비에 젖어 부드러워진 흙을 박차고 달려 코너를 도는 순간 조금 미끄러졌다. 따라잡기 위해 허벅지를 놓이 들어올리며 달려보지만 오히려 다리에 힙이 너무 들어가 스피드가 떨어진다. 짝지어 달리던 아이의 포니테일(머리카락을 뒤통수에서 한데 모아 묶은 머리)이 점점 멀어지고있었다.  
    골인한 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함께 달린 아이의 어깨를 두르리곤 싱긋 웃어보였다.
    《정말 빠르다. 부러워. 근데 좀 분한걸.》
    승부가 끝난후의 환한 미소. 전혀 분하지 않은듯이 분하다고 말햇다. 이런 식으로 서로를 치켜세워주면 친해지지는 못해도 그럭저럭 잘 지낼수는 있을테지. 하지만 포니테일 아이는 당혹스러운 미소를 띤채 획 하고 내곁을 떠낫다.
    《어니, 자신을 이긴 상대를 그렇게 칭찬하면 지는 버릇이 생긴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련습때도 분하다는 생각을 갖는게 중요해. 안그러면 진짜 경기에서도 똑같이 돼버린다고.련습을 통해 투지를 익히는거야.》
   선생님은 고지식한 얼굴로 열심히 말한다. 평소에는 정신이 흐리다가 잠간 제 정신이 든 할아버지를 보는것 같은 느낌이 든다.
    《허세가와는 련습을 열심히 하니까 앞으로 실력이 더욱 향상될거다.》
    힘있는 어조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선생님한테서 눈을 돌리는데 눈물이 날것만 같다. 역시 선생님이란 질색이다.
    인정받고싶다. 용서받고싶다. 비살사이에 낀 머리카락을 한올한올 걷어내듯 내 마음에 끼여있는 검은 실오라기들을 누군가 손가락으로 집어내 쓰레기통에 버려주었으면 좋겠다.
    …남에게 바랄뿐이다. 남에게 해주고싶은것 따위는 뭐 하나 떠올리지도 못하는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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