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짱을 만난 그 여름날처럼 체육부에 반바지차림으로 무지를 찾았다. 그리고 역시나 모래가 들러붙은 운동화로 바닥을 더럽힌다. 실내는 무척 서늘해서 땀이 금방 차가운 물방울이 되여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무지의 인터리어와 상품배치는 거의 변하지 않아서 안으로 들어가자 옛날처럼 카페가 있었다.
    《이 카페에 있던 올리짱이랑 유리벽너머로 눈이 마주친거야.》
    카페라고는 해도 완전히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 몇장의 유리벽으로 나뉘어져 있을뿐이여서 주문을 하지 않아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안으로 들어갈수 있었다. 나는 유리벽 바로 앞 테이블에 딸린 의자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마 이 의자에 올리짱이 앉아 있었을거야. 그치만 기억이 확실치가 않아서 틀릴지도 몰라. 이 테이블인건 확실한데…》
    《그럼 혹시 이쪽 의자일지도 모르겠네?》
    니나가와는 같은 테이블에 있던 또 하나의 의자를 뚤허지게 바라봤다. 
    《응, 그렇긴 한데 아마도 그 의자에는 일행이 앉아있었던거 같애.》
    《어? 올리짱한테 일행이 있었어?》
    《응, 어떤 외국인 남자랑 둘이서 서로 콘플레이크를 먹여주기도 하고 시시덕거리고 있던데. 아마 애인이 아니였을가?》
    니나가와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애인이라. 팬으로선 충격적인 소리네. 아내, 그래도 난 받아들일수 있어. 난 올리짱한테 애인이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주의거든. 그녀도 벌써 스물일곱살이고 인터넷 같은델 보면 그것마저 싫어하는 팬들도 있는것 같지만 그 부분은 양보해야지…》
    니나가와는 량손으로 긴 앞머리를 쓸어모아 눈을 가리는듯한 동작을 하면 중얼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가방을 여는가 싶더니 카메라를 꺼내 테이블이랑 의자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계산대에 있던 점원이 플래시 불빛이 터지자 수상쩍은듯 이쪽을 쳐다본다. 시식용 콘플레이크로 아침식사를 하던 나와 저렇게 카페의 의자를 열심히 찍어대고있는 니나가와 둘중 어느쪽이 더 해괴망측하고 민페를 끼치는 행동일가? 저기 싫어하는 성격의 나이긴 하지만 이 승부에서만큼은 이기고 싶지 않다.
    니나가와는 부산스럽게 옮겨 다니며 이런저런 각도로 계속 테이블을 찍어댔다. 옆에 조용히 붙어있으면 나까지 수상하게 보일것 같아 이야기를 계속했다. 
    《올리짱, 스물일곱살이구나. 만났을 때도 이미 스물일곱살 정도로 보였는데. 외국인이라서 빨리 늙나 보지?》
    니나가와는 내 말을 듣더니 코웃음을 쳤다.
    《왜?》
    《올리짱 특기가 뭔지 알아? 〈계란프라이 먹기〉야.》
    그는 득의양양해서 말했다. 웬지 내가 패한듯한 꼴이다.
    《뭐?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올리짱에게 로화란 있을수 없다는 얘기야.》
    아, 그래요? 그럼 계속해서 좋을대로 하시지요.
    나는 먼저 카페를 나와 밖에서 기다렸다. 이윽고 다가온 점원에게 주의를 당하는 니나가와의 모습이 유리벽 너머로 보여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콘플레이크매장은 전보다 축소되여 있었다. 시식할수 있는 콘플레이크도 세 종류로 줄어들었다. 콘플레이크를 담아놓은 접시는 해빛을 받아 먹음직스럽게 빛나고있었지만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여기서 두 사람이랑 무슨 얘기를 했어?》
    《그러니까 촬영이 있어서 이 동네에 왔다던갉》
    니나가와는 현장학습을 나온 소학생처럼 내가 말하는것을 뭐든지 메모해간다.
    《그리고 그 사람, 내 다리를 보고 빨리 달리겠대. 그러더라고.》
    《아, 그래서 륙상부에 들었구나.》
    두말할 나위도 없이 잘못 넘겨짚은 그 말에 나는 웬지 동요되였다.
    《아냐, 전혀 상관없어! 난 너랑은 달라!》
    금방 잊어버리고 말 이런 대화에 굳이 매달릴 필요가 없는데도 나는 흥이 깨진 순간 보인 올리짱의 얼굴이 불현듯 뇌리에 떠올라 부정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난, 내가 달리고 싶어서 달릴뿐이야.》
    콘플레이크매장의 사진촬영을 끝으로 무지 견학은 끝났다. 자동문을 통과해 가게밖으로 나오자 아까보다는 좀 덜해도 여전히 더워서 금방 땀이 배여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함께 빌딩의 그늘을 골라 걸었다. 역 앞의 번화한 거리라 체육복 차림이 두드러져 보이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갈아입을 교복은 학교써클룸에 놓아둔채다. 빨리 옷을 갈아입고싶지만 지금 가면 회의를 끝낸 부원들과 맞부딪치고만다. 부원들은 선생님의 허락 없이 써클활동을 빠지는것에 대해선 엄격했다. 선생님을 구워삶아 노는 시간을 따내기는 해도 제멋대로 빠지거나 하지는 않는게 암묵적인 룰이였다.
    《너네 집에서 잠간 쉬였다 가고싶은데. 괜찮아?》
    말해놓고보니 고등학교에 들어온 뒤론 불가능했던 《다른사람에게 편하게 말 걸기》라는게 니나가와를 상대로 해선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괜찮아. 상관없어.》
    니나가와도 가볍게 대답하고 무지와 학교중간쯤에 있는 자기 집을 향해 발을 옮긴다. 이런 간단한 대화가 오래간만인 탓일가, 메말라있던 물처럼 스며든다.
    어쩌만 나, 저 고양이등의 남자애랑 친구가 되면 좋을지도 몰라. 
    《남자친구》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키누요가 말했을 때는 바보같은 소리라고 생각했으면서도 가슴이 세차게 뛰였다. 
   
    니나가와네 집 현관 정면의 미닫이문은 여전히 닫혀있었지만 안에서 텔레비죤소리가 들리고 인기척이 느껴졌다.
    오늘은 가족이 있구나.
    그런데도 니나가와는 그 문을 열어보지도 않고 곧바로 안뜰로 통하는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한다. 나도 조용히 발꿈치를 세우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인사도 없이 례의 없는 짓이라는건 알고있지만. 그런 동떨어진 방에 이제부터 둘이 처박히려니까 인사하기가 좀 어색했다. 니나가와는 자기 방에 들어가자마자 에어컨을 들고 전번과 같이 곧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꼭 자취방 같다. 텔레비죤에 랭장고도 있고.》
    《일일이 일층까지 내려가는게 귀찮아서. 특히 겨울 같은때 슬리퍼 신고 마당에 나가면 얼어죽을 맛이거든. 가능하면 화장실도 만들고 싶을 정도라니까.》
    가제 같은 천으로 낡은 셔츠를 걸친 그가 단추를 채우면서 말했다.
    《그래도 랭장고까지 있고.》
    《한밤중에 물기가 있는게 근처에 없으면 불안해지니까.》
    우리 집 같으면 이런 일은 절대 상상도 할수 없다. 게다가 이건 독립이라고 할수도 없잖아? 그래도 어쩐지 니나가와가 부럽다.
    《빨래도 내가 알아서 널어.》
    창을 열자 정말 방으로 들어오려는 해빛을 전부 차단해버릴만큼 많은 량의 빨래들이 바람에 흔들리고있었다. 너무 오래 널어놓았는지 바싹 말라서 이상한 모양으로 굳어진 티셔츠, 겨자색 파자마, 힘없이 늘어진 청바지, 그리고 커튼처럼 여러장으로 겹쳐져 펄럭이고있는 ㅎ얀 목욕타월. 창밖에 있는 이 또 하나의 커튼이 이 방을 어두침침하게 만드는 원인이였던것이다.
    《빨래가 열리는 나무.》
    그렇게 소개된 건조대에는 확실히 빨래들이 가지가 휠 정도로 열려있다.
    《이렇게 해놓고 입고싶을 때는 직접 여기서 걷어 입어. 일부러 개거나 하지 않지. 꽤 합리적이지?》
    빨래집게로 고정된 타월을 휙하고 기세 좋게 걷어내며 니나가와는 대답을 구하듯 나를 본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채 그냥 건조대를 쳐다보기만 했다. 무심코 빨래를 젖히자 석양의 노란 빛줄기가 방안으로 쏟아져들어왔다. 
    《해가 지기 시작하네. 몰랐어…》
    이곳은 시간을 잊게 해주는 타임캡슐 같은 방이다. 나도 여기에 쭉 있으면 이 방의 주인처럼 앞머리가 자라는것도 모른채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아, 올리짱의 라디오방송시간이다. 미안, 좀 듣는다.》
    니나가와는 민첩하게 수납장에서  CD플레이어를 꺼내더니 은색의 안테나를 최대한 길게 뽑아 익숙한 손놀림으로 45도 정도의 위치까지 기울였다. 그리고 이쪽을 등지듯 하고 CD플레이어앞에 앉아 이어폰을 꽂는다.
    라디오, 나를 내버려두고 혼자 들을 작정인가 보다. 
    유치원 시절, 다 같이 놀고있는데 혼자 숨어서 과자를 먹거나 게임기를 독점하려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꼭 그짝이다. 그의 사교성은 유치원 정도에서 멈춰버렸는지도 모른다.
    라디오앞에 앉은 그는 이윽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방안이 썰러해진다. 아무것도 할일이 없어진 내 눈은 자연히 그럿으로 빨려들어간다.
    어두침침한 그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그 이상한 존재감.
    고동치고있는 이 방의 심장, 니나가와의 팬시 상자.
    덮개를 열자 역시 전과 같이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가 피여올라 살풍경한 이 방에는 어울리려야 어울릴수 없는 가련한 세계가 중심으로 퍼져나간다. 냄새가 전해졌는지 니나가와가 돌아보았다.
    《뭐 해?》
    《아니, 그냥 좀 심심해서…》
    《그래?》
    니나가와가 다시 라디오쪽으로 돌아앉는것을 확인한 뒤 다시 돌아보는 일이 없도록 조심조심 물건들을 헤쳐보자 작고 파란 상자가 나왔다. 그안에는 종류가 서로 다르지만 꽤 고급으로 보이는 향수가 세병 들었었다. 패시상자에서 나는 향기의 근원이 이것이였구나. 올리짱이 사용하고있는것과 똑 같은 향수를 사모았겠지. 향수에는 각각 다른 년대가 쓰인 작은 스티커가 붙어있다.
    그러나 향수의 향기로는 다 가려지지 않는 어두운 열정이 상자를 촉촉히 채우고있었다. 대부분 오래된 년도부터 빠짐없이 수집한 방대한 량의 패션잡지. 그리고 티셔츠, 가방, 과자, 액세서리, 핸드폰 줄, 책, 만화, 싸인이 들어있는 손수건 등등 여러가지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비닐봉지로 포장돼 들어있다. 분명 이 모든것이 올리짱과 관련된 물건들이겠지.
    두겹의 나일론봉지로 밀봉된 옷도 있었다. 로출된채 수납되여있는 다른옷들이 신품인것에 비해 봉지속의 이 빨간 블라우스는 천에 보파라기가 일어난것으로 보아 입던 옷 같다. 아니나 다를가 봉지속에 《6월호 독자 사은품! 올리짱 애용 이너웨어》라고 적힌 종이쪼각이 들어있다. 감정사처럼 하얀 장갑을 끼고 블라우스를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을 니나가와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 더 만지면 화낼것 같아서 재빨리 원위치시켰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낡은 고등학교졸업앨범도 있다. 표시된 부분을 펼쳐보자 라렬된 학생들의 얼굴사진가운데 《사사키 올리비아》라고 하는 이름의 촌스러운 헤어스타일 ― 아마 그 당시에는 류행이였겠지만 ― 을 통통한 녀자아이의 사진이 있었다. 이 정도면 팬의 수집품이라기보다 유품정리함이라 해도 좋을 지경이다. 《이 방은 죽은 딸이 언제라도 돌아올수 있도록 생전의 상태 그대로 두었답니다》라고 하는듯한 애달프면서도 어딘가 기분 나쁜 공기로 가득차있다.
    꽤 두툼한 파란 파린속에는 워드로 정리된 올리짱의 상세한 프로필을 시작으로 올리짱 관련기사 따위가 가득 스크랩되여있었다. 프로필에는 생년월일은 물론이고 졸업한 초, 중, 고 전문학교의 이름과 단골가게, 본가 주소, 뿐만아니라 손으로 그린 방배치도 등등이 몇장에 걸쳐 이어져있다. 정보화사회란 무섭구나. 그래도 역시나라고 해야 할지.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올리짱의 현재 주소는 물론 남자관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이 정도로 많은 정보가 갖추어져있는데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져있다니. 디즈니의 그림맞추기퍼줄로 말하자면 가장 중요한 미키마우스의 얼굴부분조각이 없는 상태다.
    파란 파일이 이 컬렉션의 마지막 물건이였기때문에 끄집어낸 물건들을 다시 원상복구시키려고 상자안을 들여다보자 바닥에 작은 종이가 붙어있는게 보였다. 지금까지 우에 놓여있던 물건들에 눌려 쭈글쭈글해지고 누렇게 변색된 종이쪼각이다. 파일에서 루락된채 발견되지 못하고 방치되여 온것일지도 모른다. 집어올려 뒤집어보았다.
    그 순간 꾹 눌러쥔 검정 볼펜으로 종이를 새까맣게 칠해갈 때처럼 숨이 막혀왔다.
    《이건 정상이 아니야…》
    정말 비정상적이였다. 올리짱의 얼굴사진에 실제 그녀의 몸과는 닮으려야 닮을수도 없는 앳된 소녀의 라체가 지문이 찍힌 셀로판테이프로 얼기설기 이어져있었던것이다. 피부색도 종이질도 완전히 다르고 원근대비도 전혀 맞지 않는다. 지나치게 도드라진 올리짱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소녀의 가는 어깨우에서 굴러떨어질것만 같다. 무엇보다도 올리짱의 어른스러운 얼굴과 소녀의 미성숙한 몸이 이루는 언밸런스가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몸처럼 추하다. 
    시큼하다.
    농축 100%의 땀냄새를 맡은것처럼 시큼하다.
    혐오감과 동시에 뭐라고 말할수 없은 감각이 엄습해왔다. 수영장물에서 맡아지는 염소(염소(鹽素))성분의 냄새.
    여름 수영시간이 끝난뒤 열기로 후덥지근한 좁은 탈의실에서 같은 반 녀자아이들과 함께 옷을 갈아입는다. 다른 아이들에게 벌거벗은 몸이 보이지 않도록 드럼통 형태의 수영용 목욕타월을 머리만 내놓고 쑥 뒤접어쓴다. 그 목욕타월은 드럼통 형태로 고정할수 있도록 단추가 달려있는데다가 흘러내리지 않게 상단 부분에 고무줄이 들어있어서 그냥 목욕타월을 두르고 옷을 갈아입을때보다 훨씬 몸을 잘 숨길수 있었다. 
    탈의실의 높은 창으로부터 비쳐 들어오는 해빛을 듬뿍 받으며 나는 거대한 테루테루보주(날씨가 맑아지기를 비는 뜻에서 처마끝이나 나무가지에 매달아 두는 종이인형)가 된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도 전부 테루테루보주기이때문에 그다지 창피한 느낌은 없다. 그런데 젖은 수영복은 몸을 적당히 잘 움직이면 테루테루보주인 상태로 어떻게 벗을수 있지만 팬티를 입을 때는 목욕타월안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두 구멍에 제대로 발을 꿸수가 없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도록 조심사면서 목욕타월의 고무부분을 살짝살짝 들여다보면 방금전까지 작은 탈의실이였던 타월속은 속이 꽉 차서 터질만큼 에로틱한 엿보기방으로 탈바꿈한다. 내 따스한 숨결로 촉촉하게 젖어가는 목욕타월속, 그 세계안에서 오직 내게만 보이는 음모 덮인 사타구니.
    얼기설기 엮인 올리짱의 사진을 보고있는 동안 그것을 보던때와 같이 온몸의 힘이 쭈욱 빠져나가면서 을어지듯한 묘한 기분이 무지개빛 도는 기름처럼 몸안 저 깊숙한곳에 고여간다. 쇠맛이 나는 포크를 혀로 핥았을 때와 같은 오한이 등줄기를 타고내리는데도 나는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내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 역시 올리짱의 누더기사진을 원래 자리에 되돌려놓지 않고 어지럽혀진 상자를 재빨리 정돈한 뒤 뚜껑을 덮퍼버렸다. 힘을 주어 밀자 상자는 다시 천천히 책상밑으로 되돌아갔다. 누더기사진은 잃어버린채.
    손가락에 걸려있는 치졸한 사진을 바라본다.
    이건 니나가와가 몇살 때 만든 《작품》일가. 종이가 누르스름하게 변색된것이나 상자바닥에 휴지처럼 눌어붙어있던것으로 볼 때 상당히 초기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굴은 올리짱이고 몸은 소녀인 이 사진이야말로 올리짱에 대한 니나가와의 감정이 원형 그대로 드러나있는게 아닐가. 고양이 등을 한 니나가와의 뒤모습을 똑바로 쳐다볼수가 없다.
    그렇게 건강한것을 잘도 이런 야비한 눈으로 보실수 있네요.
    속으로 조용히 비웃고보니 마음이 격해졌다. 그렇게 건강하고 찬란하게 빛나는것을 이처럼 만드는 동안 올리짱을 폄하하고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흐물흐물해진 이음새 부분이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사진을 반바지 뒷주머니속에 집어넣었다.
    니나가와는 처음과 똑같은 자세로 열심히 라디오를 듣고있다. 영어듣기평가라도 보는듯한 집중력이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그는 이어폰을 한쪽 귀에만 꽂고있었다. 다른 한쪽의 이어폰은 어깨에 늘어져있다. 
    나는 어느 사이엔가 일어서서 그를 내려다본다. 그의 목덜미는 피부에 닿는 감촉만은 좋을듯한 하얀 칼라에 둘러싸여있다. 세탁은 했겠지만 낡은 옷이라 칼라안쪽이 기름때에 절어 갈색으로 변색돼있다. 계속 바라보고있자니 또 그 덜 마른 푸석푸석한 기분이 부풀어올랐다. 
    《왜 라디오를 한쪽 귀로만 듣고있어?》
    돌아본 얼굴은 지극히 행복한 시간을 방해받아 곤란하다는듯한 표정을 짓고있다.
    발견! 니나가와는 곤란하다는듯한 표정이 정말 잘 어울린다. 눈섭을 찌푸린 모습이 제법이다. 예쁘게 치켜올라가있는 차가운 눈.
    《이렇게 해야 귓가에서 속삭이고있는듯한 느낌이 드니까.》
    그렇게 말하고 니나가와는 다시 고개를 돌린다.
    전률이 흘렀다. 포화상태의 기분은 진정되기는커녕 만지는것마을도 터질듯 아픈 여드럼처럼 미열과 함께 점점 더 부풀어오른다. 다시 올리짱의 세계로 돌아가버린 그 등짝을 우에서부터 내려다보고있으니 숨결이 뜨거워진다.
    이, 어딘가 쓸쓸하게 움츠린 무방비한 등을 발로 걷어차버리고싶다. 아파하는 니나가와를 보고싶다. 갑자기 솟아오른 지금까지 경험한적 없는 이 거대한 욕망은 섬광과도 같아서 일순 눈앞이 아찔했다. 
    순간 발다박에 등뼈의 감촉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니나가와가 앞으로 꼬꾸라지며 얼떨결에 잡아당긴 이어폰이 CD플레이에서 빠져나와 라디오의 음악이 방안에 큰 소리로 우려저퍼진다. 화려한 상점 같은데서 흘러나올법한 보사노바조의 곡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놀란 눈동자로, 그는 숨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미안, 너무 세게… 두드렸네. 어깨를 그저 가볍게 툭 칠 생각이였는데. 이제 그만 간다고 말하려구.》
    문을 노크하는듯한 손동자까지 덧붙여가며 거짓말이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지금 그거, 거의 펀치수준의 위력이였어.》
    저의 신곡을 보내드렸습니다 ―. 아유― 창피해. 어떠셨어요―? 라는 올리짱의 촐딱대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 정말 대단하다! 이 목소리를 실제로 들은적이 있다니.》
    발로 차인 등짝을 문지르면서 니나가와는 나를 《동경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어른》을 보는듯한 눈길로 바라본다.
    발로 찬것이 들키지 않기를. 하긴 설사 파란 멍이 들었다고 해도 등이니까. 여간해선 알아챌 일이 없겠지. 그의 등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내출혈하고 있을 푸른 멍을 상상하자 사랑스럽고 게다가 손가락으로 눌러보고 싶기까지 했다. 란폭한 욕망은 멈출줄 모른다.
    《어머, 나 가려던 참이였지. 이런 저녁때까지 체육복 차림으로 뭘 하고있은걸마. 그럼 갈게.》
    발을 옮기는 순간 갑자기 무릎의 힘이 쭉 빠지면서 슬로우모션으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재빨리 니나가와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이미 이어폰을 꽂고 또다시 올리짱과 둘만의 세계에 빠져들어있었다. 
    여전히 텔레비죤소리가 새여나오고있는 거실을 피하듯 지나 신발을 꿰신고 도망치듯 현관을 나섰다. 밖은 이미 어둑어둑하고 기온도 떨어져있다. 웬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밖에서 보니 니나가와의 방이 있는 2층 부분은 길가에 접한 1층과는 전혀 다른집처럼 보였다. 빨래투성이의 창문도 보인다. 그 너머에 가장 소중한 상자가 어지럽혀지고 도둑맞고 게다가 발로 차이기까지 한 남자애가 있다고 생각하니 웬지 견딜수가 없다. 반쯤 벌어진 입안에 뜨거운 침이 고여서 당황하며 고개를 들고 목구멍만 움직여 겨우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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