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세만 본지 칼럼니스트
[서울=동북아신문]중국 해내외 인터넷(互联网)에 네티즌들이 올린 글, 또 사회여론을 보면 중국 정부를 폄하하는 내용이 많은데 싸늘할 지경이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해야 할 언론개방이요, 인권침해요,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베이징천안문 성루에 걸려 있는 모 주석 초상화를 놓고도 개인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많다. 모주석 생전 본인은 개인숭배를 제창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1955년, 천진에서 이미 그의 대원수복을 지었지만 그이는 대원수직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천안문 성루 앞에 모택동 동상을 세우고, 인민폐에 주석 용모도안을 넣자는 중앙 판공청 건의를 그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인민을 몹시 숭배했다. 천안문 성루 위에서 “인민만세”를 높이 외쳤다. “인민만세”를 외친 분은 모택동 주석 외에 고금 중외의 영수인물중에 찾아 볼 수 없다. 정부기관도 인민정부, 인민검찰원, 인민은행, 인민병원, 돈까지 인민폐(人民币) 수두룩하다. 모 주석에 대한 숭배는 인민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기실 개인숭배는 어느 나라든 다 있다. 한국 서울 세종광장에 세종대왕 조각상이 모셔져 있다. 미국에는 수십 미터 높이로 세워진 워싱턴 기념비가 있다. 나라 수도 이름도 초대 대통령 워싱턴 이름으로 명명된 것이다. 중국에는 중산(손중산)로, 중산대학은 있어도 모택동 이름으로 정식 명명된 도로, 기관은 밝혀지지 않았다.

중국 범죄율이 높다고 떠드는 사람이 많다. 기실 서방 국가에 비해 낮은 기록이다. 강간, 성노(性奴), 살인, 독직, 협잡은 서방 국가가 중국을 앞질렀다. 2006년 미국을 매우 숭배한 후난(湖南) 처녀가 미국 뉴욕의 한 지하철 안에서 7~8명 소년들한테서 윤간을 당했다. 하지만 주위의 군중들은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중국 지하철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처녀는 이미 ‘깨진 그릇’이라, 600명 남자들과 섹스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것이 ‘미국식 성 자유’라 일컬었다고 한다.

요즘 북한이 4차 핵무기 실험을 해서 한국 언론이 활짝 끓고 있다. 언론매체에서는 중국에서 강경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은데 서운함을 나타낸다. 기실 중국은 북한을 ‘정통적’ 사회주의 국가로 보고 있다. 실지 북한은 중국의 형제 국가이며 피로 맺은 전통 우의가 있다. 이런 인식 기초 상에서 북한에 대한 지지와 우호적인 외교는 ‘흔들리지 않는’ 국책이다. 그래서 외부 세계를 보면 북한 문제는 바로 중국 문제처럼 바라보는 시각이 있으니 중국 정부로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기실 지금 중국이 북한을 한개 보통 국가로, 주변 우호적 관계로 대하는 것은 맞는 것이다. 반드시 원조 하고 지지해야 하던 일은 한물 지난 듯싶다.

북한 문제는 사회주의 진영이 ‘부화’(卵翼)했으니 응당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데도 한계가 있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과거처럼 ‘철천지 웬수’, ’대립집단’도 없다. 세계국가 모두 자주독립, 평등으로 나가는 과도기에 들어섰다. 국문을 열어놓고 세계의 선진문화, 선진기술을 영입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 발전 운운할 수 없다.

중국 청나라 때 일이다. 강희, 옹정, 건륭시기 경제문화에서 최고 절정에 이르렀다. 북경시 서교에 있는 원명원(圆明园)은 강희 말기 옹정 초기에 세운 황가원림이다. 그 부지면적은 3천무이다. 그런데 건륭말기부터 나라는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짜르 러시아 같은 우매하고 낙후한 나라들은 상대가 안 된다면서 항구(港口)를 폐쇄해버렸다. 그후 60여년 세계에서 놀라운 기술혁명이 일어나는 것도 몰랐다.

1860년 10월, 짜르 러시아와 미국의 지지와 가담 하에 영국, 프랑스 등 8개 연합군이 북경에 쳐들어 와 원명원에서 대 약탈을 감행했다. 그런 후 불을 질러버렸다. 불은 사흘 동안(18일부터 21일까지) 타 원명원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다. 당시 3,500명밖에 되지 않은 8개연합군은 3만명의 청군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때 연합군은 기관총, 대포로 무장했다. 청군은 칼과 긴 창, ‘새총’(鸟枪)이 전부였다. 그 후 영국 한 사병의 회고록에서는 청군의 정신투지를 높이 평가했다. 청군이 만약 자기네처럼 좋은 무기를 가졌다면 그 많은 군사 앞에서 저들이 원명원에 발길을 들어놓기도 전에 전멸되었을 것이라 했다.

이것이 바로 나라 오만과 폐관쇄국(闭关锁国)의 침통한 교훈이다. 유럽, 서방국가들이 공업기술혁명을 할 때 청국은 자화자찬하며 농업에만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보수적 사고에서 벗어나 문을 열어놓고 세계 선진 기술, 선진문화를 받아들이면서 경제건설, 국방건설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 중국은 30여년의 개혁개방을 걸쳐 기꺼운 성과를 올리고 있다. 눈부시게 일어 선 경제, 국방을 두고 세계가 감탄하고 놀라워한다.

댓글 언론글이나 여론의 쓴 소리가 전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보기에는 무리인 것이다. 하지만 더 실사구시적으로 일면성도 피하며,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시사점평’(时事点评)에 나섰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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