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申 吉 雨 (본명 신경철)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국제적 문학지 계간<문학의강> 발행인 한국영상낭송회 회장, skc663@hanmail.net
[서울=동북아신문]양계장을 구경하러 갔다. 아는 사람이 10여 년째 경영을 하고 있는데 꽤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마을에서도 모임에서도 남보다 후하게 처신을 하여 인기도 있었다. 한 마디로 좋은 사람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의 양계장은 규모가 제법 컸다. 닭집[鷄舍]은 층층으로 쌓아 사람 키보다 좀 더 높았는데, 옆으로 길게 쭉 세워져 있었다. 마치 똑같은 모양과 구조로 된 고층 아파트를 옆으로 길게 뉘어 놓은 모양이었다. 판자로 겹겹으로 빼곡하게 만든 칸칸마다 닭들이 한 마리씩 들어 있었다. 앞쪽만은 철망으로 가로막아서 닭들이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좁은 닭장 안에 몸이 끼어 있는 듯한 닭들을 보고서 내가 주인에게 물었다.

“왜 닭장을 이렇게 좁게 만들었나요? 움직이지도 못하게.”

그러자 그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래야 살이 찌지요.”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닭들은 산란용이 아니라 육계용입니다. 닭들이 많이 움직이면 그만큼 에너지가 소비되어서 살이 더디게 찌지요.”

먹고서 살만 찌라는 것이고, 빨리 찌라고 일부러 닭장을 좁게 만들어서 운동량을 줄인 것이라고 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사업이고, 빨리 키워서 팔아야 하겠다는 것이 주인의 생각이지만, 생물체를 너무 공산품처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언짢았다.

닭은 본래 새였는데 지금은 날지도 못하는 새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어려서부터 최소공간 속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며 사는 처지가 된 것을 생각하니, 양계장 주인이 보통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부화시키고 길러서, 잡아먹으려고 어쩔 수 없이 닭의 목을 비틀어 죽이는 것도 안쓰러운 일인데, 이렇게 기르고 살게 하는 동안에도 이러니, 사람이 얼마나 악착스러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전노 같은 주인의 뒤를 말없이 따라가노라니, 그는 끝 쪽의 닭장 문들을 차례로 열어 놓는다. 닭들은 처음에는 어리벙벙해 하며 나오지 않더니, 한두 놈이 발을 헛디디어 떨어지듯 나오게 되자 이내 앞마당으로 달려가 논다. 머뭇거리던 다른 놈들도 덩달아 밖으로 나와서 뛰어간다.

나는 그의 엉뚱한 행동에 의아해서 물어보았다.

“왜 가둬 기르는 닭을 내놓는가요?”

그러자 주인은 나를 바라보며 씩 웃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이래야 닭들도 살맛이 나지요. 평생 갇혀만 산다면 무슨 희망으로 살겠어요?”

그러면서 그는 미처 나오지 못한 닭들을 손으로 잡아 밖으로 꺼내 놓는다. 닭들은 좋아라 하고 앞마당으로 달려간다.

그는 계속해서 설명해주었다. 일정 기간이 되면 닭들을 순번에 따라 마당에 풀어놓아 마음껏 놀게 둔단다. 늘 갇혀만 있던 닭들은 좋아라 하고 한 동안 즐겁게 지낸다. 다시 가두어 두어도 그들은 그 기억을 추억하며 언젠가는 또 그런 때가 올 것을 기대할 것이다. 갇혀 있는 다른 닭들도 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러고 싶어하고, 또 자신들도 저럴 때가 올 것이라고 희망을 가질 것이다. 그래서 닭들은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매일 먹고 살만 찌우면서도 희망을 가지고 죽지 않고 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가 일정기간마다 닭들을 밖에 풀어놓는 것은 닭들이 한 때나마 자유롭게 살도록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릴 만한 때에 풀어놓아서 그들이 이렇게 살 때도 온다는 희망과 기대를 가지게 하고, 그리하여 닭들이 열심히 살찌우며 계속 살아가게 하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 설명을 듣고, 나는 사람이 얼마나 영악해질 수 있는가를 느끼고, 나도 모르게 치가 떨렸다. 그리고 차라리 사람이 무식하거나 지혜롭지 않은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모든 생물은 강한 생존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 본능만으로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는 것 같은 장래가 있다고 여겨질 때 살고자 하는 의욕이 생기고, 희망이 있어야 살려는 마음도 가지게 된다. 희망이 없으면 살 욕망도 사라지고, 때로는 자포자기나 스스로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장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생존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그런 기대나 희망이 없이는 아무도 살고자 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문득 어떤 종신형 수형자가 하더라는 말이 떠올랐다.

"종신형으로 살 바에는 차라리 사형을 받고 싶다."

이 어찌 사람만의 경우이겠는가. 닭장의 닭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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