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경계를 넘어

▲ 문민 대림국제학원장
[서울=동북아신문]책 한권을 선물 받았다. 청소년 권장도서라고 받았지만 청소년 교육을 하는 나부터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제목은 ‘기억 전달자 The Giver’(비룡소 간). 미국의 대표적인 청소년 문학 작가 로이스 로리가 10년 전에 출간한 꽤 오래된 책이다. 영화로도 개봉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뒤늦게 TV에서 ‘다시보기’로 검색하여 관람했다. 영화까지 보고 나니 책의 내용이 이해가 잘 되었다.    

주인공 조너스는 12살. 여느 가정과 같이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에서 생활하였다.

엄마는 법무부에서 근무하고 아버지는 보육사. 아래로 여동생이 하나 있다.

그러나 조너스가 살고 있는 마을은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과 좀 다르다.   

조너스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원로위원회가 있는데 원로위원회에서 정한 마을의 규칙은 엄격하다.

원로위원회는 마을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독하고 마을이 정한 규칙을 어기거나 미달될 경우 바로 임무해제를 한다.  

이 마을에는 거울이 없다. 내가 누구며 나의 외모나 감정에 대해 의식할 필요가 없다.

이 마을에서는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수 없다. 12살 기념식을 통해 원로위원회에서 직업을 부여한다. 그리고 12살이면 성욕을 억제하는 약을 복용한다.

조너스는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인 12살 기념식에 참석하게 된다. 그리고 기억보유자로 임명된다.

조너스는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기억보유자로부터 기억을 전달받는 임무를 수행한다.

조너스는 기억보유자로부터 기억을 전수받는 과정에 기억보유자의 딸이 일찍 임무해제(마을에서 사라짐)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더 이상 마을의 규칙을 지키지 않다.

결국 조너스는 곧 임무해제 될 간난아이를 안고 이 마을을 떠난다. 자유와 사랑을 찾아서.

요즘같이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조너스의 결단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조너스가 살았던 마을이 이상한 마을이며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필자 역시 12살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곳은 200여 가구에 7~8백여 명이 살았던 오붓한 마을이다. 그 마을에는 12살 기념식 같은 것은 없었지만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적어도 필자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가장 충격적인 일이다.  

함께 농사짓고 함께 수확을 해서 인원에 따라 똑같이 분배하며 평화롭게 살던 마을이 내가 12살 되던 해에 넒은 논밭에 거미줄처럼 줄을 그어 집집마다 나눠주고 개인이 알아서 농사지으라고 했다.

마을 소유였던 소들을 집집마다 나눠주며 알아서 키우고 알아서 관리하라고 했다.

아이가 어리고 일손이 부족했던 우리 집에서는 소를 키울 수 없어 분배 받지 마자 이웃집에 헐값에 팔았다. 이웃집에서는 건장한 일군이 두 셋이나 있어 10마리도 쉽게 키울 수 있었다.

가을이 되면 옥수수며 벼를 거둬야 하는데 소가 없는 우리 집은 비싼 운임을 주고 이웃집에 부탁했다.

부모님들은 더 이상 그 마을에서 살수 없음을 느끼고 내가 15살 되던 해에 마을에서 20km 떨어진 작은 도시로 이사를 갔다.

그 후 성인이 된 나는 더 큰 도시에서 일하기 시작하였고 그 뒤 더 많은 자유를 찾아 국경을 넘어 한국에 오게 되었다.  

현재 눈만 뜨면 대부분 시간을 서울 대림동에서 보내고 있다. 이곳에는 내가 어렸을 적에 살았던 마을 사람들이 꽤 많이 이사 왔다. 최근 20년 동안 이곳은 나처럼 외국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나 이주민의 비례가 50%에 가깝다.

평온했던 마을이 갑자기 이주민이 늘면서 원주민이 다른 곳으로 떠나고 있다고 한다. 떠나는 것은 자유이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이 마냥 좋아만 할 일이 아니다.  

내가 12살 때 살았던 조선족마을은 현재 30가구에 50명도 안 된다. 물론 인근에 살던 한족들이 대거 이주와 전체 인구는 줄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15살에 떠났던 마을이나 현재 살고 있는 마을이 어딘가 닮은 듯하다.

아마도 나는 어제나 그제나 아무런 발전도 없이 똑같은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나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반추하고 현재의 나의 삶이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다.

며칠 전 모처럼 유익한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한국의 미래,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큰 주제로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석학의 발표를 듣게 되었다. 발표를 들으면서 나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대림동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15살 때 떠났던 마을처럼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인주의만 난무한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 교육을 하고 있는 필자는 우리 기성세대들이 현재 차세대들에게 어떤 기억들을 전달하고 있는지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공동체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기억전달자’는 자유와 사랑을 찾아 떠난 조너스의 행방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자유와 사랑을 찾아 떠난 조너스는 엄청난 고통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인 영원하지 않는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청소년 권장도서-‘기억전달자’는 성인인 나에게도 오래 동안 기억에 남을 책이다. 적어도 내가 대림동을 떠나기 전까지 만나게 될 많은 제자들에게 일독을 강력히 추천하려 한다. 그들이 이 책을 읽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해 더욱더 관심 갖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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