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병신년 새해에 시작된 해남·목포여행의 두 번째 코스는 외달도였다.

예약한 배표 두 장을 들고 목포연안선여객터미널에서 오전 10시 30분경에 신진페리호에 몸을 실었다. 3층으로 된 신진페리호는 1, 2층은 고객석이고 3층은 기사가 핸들을 잡고 있는 곳이다. 신진페리호는 목포대교 밑을 지나 고하도를 돌아 달리도, 율도를 거쳐 외달도에 이르는데 약 30~40분이 걸렸다.

배 멀미를 하면 어쩔까 하는 두려움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배라고 하지만 뜨끈뜨끈한 온돌에 누워 편히 갈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슬슬 여행욕심이 생겼다. 멀미 때문에 섬 여행은 아예 포기했는데 이제 진도, 완도, 심지어 독도까지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이 찰랑거렸다. 여행도 마약처럼 중독되는 것 같다.

외달도는 연인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준다고 하여 ‘사랑의 섬’으로 알려져 있다. 육지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바다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사뭇 그 느낌이 다르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바다, 외달도로 우리 함께 떠나보자.

목포에서 서쪽으로 6km 떨어진 외달도는 면적이 42만㎡로 앙증맞은데다 해안선도 4.1㎞로 길지 않아 아늑하고 평온한 섬이다. 달리도의 바깥쪽에 위치하였다고 하여 외달도라고 불리기도 하고 외롭게 떠 있는 섬이라 하여 외달도라고 불린다고 한다. 1700년대에 달리도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외달도에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이곳이 사람들로부터 각광 받은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외달도 선창에 내리면 오른편에 시멘트로 포장된 노란색 해변길이 나 있다. 그 해변길이 S자로 구부러져 더욱 멋스러웠다. 해변길에서 제일 처음 만난 것은 별섬이다. 섬의 생김새가 밤하늘의 별을 닮아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외달도를 밝히는 별 같은 섬이라는 뜻에서 일수도 있다. 썰물이 빠지면 걸어서 별섬에 갈 수도 있는데 자칫해서 방심하면 물이 넘쳐서 되돌아 올 수 없다고 한다.

친구와 단 둘이서 해변가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호젓한 섬의 낭만을 한껏 누릴 수 있었다. 철 지난 바다의 정취도 남달랐고 뉘엿뉘엿 걷는 발걸음이 가뿐하기 그지없었다. 그 순간, 파도가 길까지 넘어와서 우리를 반겨준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난 탓에 바다가 흥분한 건 아닐까 싶다. 배경으로 자리하는 바다와 섬 풍경은 너무 아름답다.

길은 섬의 해변으로 이어져 있는데 이곳이 밖다리 해수욕장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도 해수욕장으로 쓰였던 곳이라 규모는 비록 작지만 역사가 깊은 해변이다. 바다의 물도 깨끗하고 바다모래도 부드러웠다. 한산한 겨울철이라 인적 하나 없어서 조금은 두려움도 있었다.

외달도 해변을 지나면 바로 흙길과 만나는데 이곳이 해안을 따라가는 산책길이다. 바닷가 언덕 위에 ​‘사랑의 섬 외달도’라는 글씨가 씌어있는 하트 모양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크고 멋진 조형물인줄 알았는데 생각 밖으로 간단하고 작은 사이즈다. 그래도 이것이 외달도의 포인트인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겉옷을 길가에 되는대로 팽개치고 우리는 포즈를 바꿔 가며 셔터를 행해 하트를 날렸다. 잠깐 사진을 찍다가 조형물이 왼쪽 아니 오른쪽으로도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계획적인지 알 수는 없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도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고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조형물에서 느끼게 되었다.

하트 조형물을 지나 호젓한 숲길을 따라 걷다보니 외달도 등대가 보였다. 바로 앞 바다에 세워져 있는 등대는 푸른 바다에 떠있는 자태가 멋스럽다. 등대는 마치 낭만을 한 아름 싣고 바다로 나가는 한 척의 배와 같았다.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긴 우리는 스카프를 바람에 날리며 열심히 셔터에 몸을 맡겼다.

등대에 걸려있는 연인들의 언약을 담고 있는 ‘사랑의 자물쇠’가 우리의 눈길을 끈다. 영원히 변치 말자고 새겨놓은 것도 있다. 문득 첫사랑이 생각났다. 우리가 연애하던 그 시절에 만약 이런 ‘사랑의 자물쇠’가 있었다면 지금쯤 우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외달도가 사랑의 섬이 맞는 것 같다. 이 나이에 잊고 살았던 첫사랑마저 추억하게 만드니 말이다.

언덕 산책로 의자에 앉아 잠간 쉬어가게 됐다. 2월인데도 따뜻한 봄날 같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적막함이다. 도시의 소음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이처럼 적막한 곳에서 홀로 사색에 잠겨 본지가 언제였던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 식어버린 커피 한잔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다도해와 산들거리는 바람과 파도소리가 어울려져 외달도의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산책로는 바닷가 데크로 이어진다. 야트막한 구릉을 넘어 외달도 마을에 들어섰다. 외달도는 고려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오래 전에는 목포시 달동에 속했다가 한때는 충무동에 편입됐고 10여 년 전 유달동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고 한다. 주민이 40여 명이 살고 있는데 돌김과 파래, 미역을 채취하고 김양식도 곁들인다고 한다.

바닷가 마을에 민박집으로 된 한옥이 보인다. 한옥민박에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외달도에서 가장 높은 해발 64m의 매봉산이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거기에서 되돌아서서 바닷물을 끌어들여 만든 해수풀장으로 향했다. 해변에 원두막도 있다.

지난여름 피서객들로 북적댔던 곳인데 지금은 적막감만 흐른다. 하지만 풀장 화장실에는 여전히 음악이 흘러나왔고 풀장에는 가끔씩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외달도에서 머무는 2시간 동안 비스듬히 누워서 짖어대는 개 한 마리 외에는 사람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마치 유령마을을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행여 배가 우리를 실으러 오지 않을까 하는 위구심도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후 4시30분경 목포로 향하는 배가 들어올 즈음에 마을로부터 하나 둘 사람들의 그림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을주민들은 오히려 이 추운 겨울에 인적 드문 외달도에 찾아온 우리가 신기했나보다. ‘에그, 이 추운데 뭘 볼게 있다고 여기까지 구경 왔나? 여긴 여름에 와야 제 맛이지. 사람도 북적북적하고.’

드디어 배가 섬에 들어왔다. 오래 기다렸던 정인을 만난 듯이 반가웠다. 고동소리도 없이 배는 우리를 싣고 다시 목포로 향했다. 아직 청정해역의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외달도, 그 주변의 크고 작은 섬들이 다도해의 아늑함을 느끼게 해주는 외달도, 외로운 섬 같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던 고즈넉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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