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밀랍인형 옆에 선 필자 박연희 재한동포문인협회 부회장.
[서울=동북아신문]목포여행의 세 번째 날인 2016년 2월 10일 목포시티투어 4번째 코스는 삼학도에 있는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었다. 이 기념관은 독특한 건물로 지어졌는데 6개의 돌출한 부분이 6대주를 상징했고 물을 채워둔 곳은 5대양을 의미하고 있었다. 이러한 건축은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의 정신이 5대양 6대주 세계를 향해 널리 퍼져나가길 바라는 의미를 담아 건축된 것이라고 한다.

기념관에는 고 김대중 대통령 사진과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사진, 그리고 그 앞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사용하던 승용차 에쿠우스가 전시 중이었다. 한국의 한 지인을 따라 언젠가 한번 이희호 여사를 뵌 적이 있었는지라 이 모든 것이 더욱 반가웠다. 노벨평화상 영광의 얼굴들 중 한국 부분엔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대통령 사진이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화를 위해 걸어온 길, 6년여 간의 옥고, 망명을 통한 유신 반대 투쟁, 3.1민주구국선언……. 2층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당시 입었던 의상, 노벨상에 대한 간략한 설명 코너도 있었고, 로고송 도입과 선거 구호 사용 등 현대적인 선거운동 수단을 도입하였다는 문구들이 있었다.  “나도 죽는 것이 두렵지만 지금 내가 살기위해 타협하면 역사와 국민들로부터 영원히 죽게 된다. 그러나 나는 지금 죽어도 역사와 국민 속에 영원히 살 것이다. 나는 역사와 국민을 믿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아오신 삶을 보면서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5번의 죽을 고비의 위험과 곤경에 처해진 상황에서도 인동초처럼 혹독하고 모진 겨울을 이겨내신 우리 시대의 얼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포시티투어의 5번째 코스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기념관 뒤로부터 시작되는 삼학도였다. 세 마리의 학의 섬이라 하여 삼학도라고 지어졌는데 옛날에 유달산에서 무술을 연마하던 젊은 장수와 그 장수에게 반한 세 처녀가 그리움으로 지쳐 죽은 뒤 학으로 환생했으나 장수가 이를 모르고 쏜 화살에 맞아 죽어 솟아난 섬이라는 슬픈 전설이 있다.  삼학도가 간척으로 육지가 되었다가 다시 수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복원사업으로 생긴 수로 길에는 카누 체험장도 있었다. 북미지역의 인디언들이 타고 다녔을 법한 선미의 카누, 이국적인 모습에 아이처럼 신기방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이난영공원에 있는 ‘목포는 항구다’ 노래비 옆에서 찰칵.
삼학도 중턱에는 조경수들이 아름답게 잘 꾸며진 ‘목포의 눈물’의 가수 고 이난영을 기념하는 ‘이난영 공원’이 있었다. 600여평 부지에 마련된 이 공원에는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노래비와 이난영이 수목장으로 잠들어 있었다. 그의 노래 ‘목포의 눈물’ 등을 들을 수 있는 음악장치가 돼 있어 한 번 들어 보았다. 특유의 콧소리와 애간장을 끊어내는 노래에 일제 강점기 때 겪은 한과 호남의 아픔이 녹아있는 듯했다. 해안도로변에 자리하여 바다를 보며 야외 마당에서 쉬어가기 좋은 자연사박물관에 이르니 여러 가지 동물들의 조각상이 있었다. 어린애처럼 우리 두 중년여인은 조각상을 마구마구 끌어안고 포즈를 취했다.  자연사박물관 뒤로 펼쳐진 높지 않은 산의 형체가 자꾸만 눈길을 끈다. 낮은 산이지만 온통 바위로 이뤄진 바위산의 풍채가 참 멋지다. 입암산이라는 이 바위산은 목포해양박물관을 비롯한 국립해양 박물관, 목포문학관, 목포문화예술회관 등 목포의 문화 명소들을 품고 있는 산이다.  택시를 잡지 못해 삼학도의 수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힘들기는 했지만 도보여행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다리 밑 삼학도의 수변이 장관이었다. 수로 길을 내려오니 스멀스멀 바다냄새가 났다. 이곳에서 50피드 요트 32척을 계류할 수 있는 요트 마리나를 볼 수 있었는데 크고 작은 요트들이 줄지어 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도 바야흐로 요트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포 야경중의 하나인 루미나리에는 목포역 근처에 설치되어 있었다. 5가지 모형과 5가지 색으로 설치하여 각각 ‘빛의 거리’, ‘젊음의 거리’, ‘걷고 싶은 거리’ 등으로 이름을 붙였고 터널식 소품 65개가 결합해 환상적인 야경을 이루고 있었다.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이별의 애절한 노래가 유달산에서 목포항 앞으로 파도처럼 쏟아져 내렸다. 삼학도 주변에는 이제 낚싯배의 어부와 여행자가 뒤섞여 분주한 군상을 이룬다. 내뿜는 짠 내가 바닷바람에 섞여 코끝을 빙빙 돈다. 외로운 타지에서의 비정한 현실과 사람들에 할큄 당한 마음의 상처들은 난영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연고약 바른 듯 새살이 돋아나는 것 같다. 시대와 시대를 걸쳐 ‘목포의 눈물’이 끝없이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삶을 울리는 그 저릿함에 있는 것 같다. 배들이 쉬어갈 수 있는 항구를 갖춘 목포는 유유히 흐르는 바다를 몇날 며칠을 건너온 뱃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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