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여행중 불국사에서. 박연희 동포모니터링단장

[서울=동북아신문]나는 늘 여행을 꿈꾼다. 그리고 여가시간만 되면 친구들과 또는 혼자서도 여행을 곧잘 떠난다. 그렇게 여행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낯선 공간에 놓여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걷다가, 북새통 시장을 헤매다가, 때로는 너무나 낯선 하늘과 그 하늘의 석양을 볼 때, 이 모든 것이 너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색다른 것에 흥분했던 것도 잠시 때로는 서글퍼진다. 모르는 곳에 혼자 버려진 것 같아서,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것 같아서 서글퍼진다. 어차피 여행이란 그런 건데 그 낯섦을 찾아 떠나는 것이 여행인데, 기껏 발견한 낯섦 때문에 서글퍼지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여행에서만 그런 낯섦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살다보면 어느 순간 그냥 모든 것이 낯설 때가 있다.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내가 살고 있는 곳, 이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몇 십 년 만에 잠에서 깨어나 낯선 환경에 놓인 사람처럼 내가 어쩌다가 이런 낯선 곳에 허둥대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한국생활 5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지럼증을 느낄 때가 많다.

우선 우리가 한국에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외국국적동포 국내거소신고증이다. 국내거소신고증에 기재된 이름은 한글이 아닌 영문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영문을 모르는 우리들한테는 난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제일 많이 사용하는 114에 전화를 할 때 본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자기의 이름을 영문으로 얘기해줘야 하는데 보통 우리는 중국어 병음으로 읽어준다. 그러면 상담원도 본인도 진땀을 빼야 한다. 영어문자 생김새를 말하면서 한참 쇼를 해서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것이 싫어서 웬만하면 114에 전화를 하지 않고 핸드폰을 구매한 매점에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한다.

국내거소신고증만이 아니라 저금통장이름도 영문으로 기재되어 있다. 행사나 모임 혹은 물건을 구매할 때 사전에 계좌에 입금하면 영문이름과 한글이름을 맞추느라 애를 먹는다. 욕심나는 물건을 홈쇼핑에서 구매하려 하면 제시간에 물건이 배송되지 않는다. 영문이름으로 입금되어 있기 때문에 한글이름과 맞추지 못해서 물건배송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은행 업무에서 사인을 할 때면 한글명을 썼다가 다시 긴 영문으로 바꿔 쓰는 것도 쉽지 않다.

한번은 마음먹고 세 개 은행을 찾아갔다. 농업은행을 찾아갔더니 아예 한글이름으로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신한은행에서는 해주기는 하는데 영문으로 읽어지는 발음대로 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이상한 이름이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다. 세 번째로 찾아간 것이 하나은행인데 요행이 외환은행과 합쳐진 은행이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글 이름으로 통장을 해주었다. 이제 저금통장이름이 어떻게 되냐고 물으면 당당하게 한글로 말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동사무소에 인감증명을 만들려고 찾아간 적이 있다. 외국인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당황한 직원은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어서 묻기도 하고 동료들에게 이것저것 캐묻더니 거의 한 시간이 돼서야 한 장의 인감증명을 받을 수 있었다. 괜찮은 한 직장에 인턴으로 취직하려고 했더니 반드시 무범죄경력증명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거쳐 25만원이란 거액을 내고 겨우 증명서를 받았는데 어쩐지 마음은 한없이 서글퍼졌다. 우리가 한국계라고 하지만 분명히 외국인임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한번은 민간단체에서 후원을 받아 여러 명이 함께 일본여행을 계획했는데 나만 조건부가 많았다. 탈북자도 괜찮은데 중국인인 나한테는 13가지 요구사항이 구비돼야 갈 수 있다고 메일을 보내왔다. 일본에 보증인 2명, 재직증명서, 한국인 보증인 등 요구사항을 읽어 볼수록 동공이 커졌다. 억울한 마음으로 여행사에 항의했더니 한국에 나온 중국조선족으로서 불법체류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마디로 잘랐다. 중국에서 신청하면 일본여행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는데 한국에 나왔으니 어떤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외국인들이 취직할 수 있는 사무직은 결혼이민자나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우선이라 나는 영주권을 얻으려고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왔다. F-4비자가 5년이 되면 신청할 수 있기에 신청하러 갔더니 2016년 2월 1일부터 새로운 정책이 나와서 다음 셋 중 하나에 해당돼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연간소득이 한국은행고시 전년도 일인당 국민총소득(GNI)의 2배 이상인 자가 신청가능한데 풀이한다면 일 년간 한 가족의 월수입이 180만원이 된다는 은행통장내역이 있어야 한다.

△해외로부터 연금을 받은 60세 이상인자로서 연간연금액이 한국은행고시 전년도 일인당 국민총소득(GNI)이상인 자.

△전년도 재산세 납부실적이 50만 원 이상인 자 또는 재산세 납부실적은 없지만 전세보증금 등 이와 상당한(재산세50만 원 이상) 본인 명의(또는 동거가족)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자.

그동안 애써 준비했던 3천만 원의 저금통장, 한국어 능력시험, 85점 이상 점수제 등은 이미 물 건너갔다.

미팅이 잡혔는데 약속장소가 영문명으로 되어 있으면 찾기 전부터 겁먹고 길에서 헤매다가 늦어지기 일쑤다. 각종 인쇄물과 신문, 그리고 TV에서 영어단어가 많이 사용되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마음 같아서는 단기속성 영어교육이라도 받고 싶은데 나이를 생각하면 워워 하면서 자신을 눅잦혀야 한다.

통화 중에 한국의 모 지역을 말하면 그곳이 어느 도에 속하는지를 몰라서 답답할 때가 많다. 한국의 8도분포도를 벽에 붙여 놓고 있으면 뭐하랴.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수없이 많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이 참으로 서글프다. 인생도 여행처럼 낯선 것을 찾아 떠나는 건데 왜 나는 이 낯섦에서 서글픔을 느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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