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엄마, 행복해?”
그날따라 저녁을 특별히 맛갈스레 먹고있는 나에게 딸애가 문득 말을 걸어온다. 나의 표정이 무지 행복해보였던 모양이다.
“그럼, 행복하지. 너도 많이 먹어.”
“그지? 맛있지? 많이 먹어.”
나를 늘 뚱뚱하다며, 살 빼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딸아이에게서 이런 말을 듣자 나는 너무 의외어서 딸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오늘의 행복, 내일의 뱃살!”

그제서야 나는 또 한 방 당한줄을 알았다.
딸아이는 가끔 이런 말장난으로 엄마를 놀려대곤 한다. 나는 내가 딸아이에게 당했다는 것이 어이없기도 하지만 불과 일년전만 해도 우리말을 한 마디도 못하던 딸아이가 이제는 자유자재로 우리말을 구사하는 것에 더욱 놀라울 뿐이다.
“어머, 너 이런 말은 언제 배웠어?”
반색을 하며 물어보면 딸아이는 의례 그 시크한 표정으로 “원래부터 알고 있었어.” 하고 덤덤하게 대답한다.

“노는 아이, 공부시키려는 엄마”
한국에 오기 전 딸아이는 우리말을 전혀 할 줄 몰랐다. 태어나서부터 쭈욱 상하이에서 살았고 5년동안 한족소학교에 다녔다. 집에서도 물론 우리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 아빠가 한족이다보니 집에서는 늘 보통화만 썼기 때문이다. 우리말을 가르쳐야지 하면서도 여건이 되지 않았다. 매일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를 완성하기에도 딸아이의 시간은 빡빡했다. 그래도 내겐 딸아이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 싶은 욕망이 늘 마음 한구석에서 꿈틀거렸다. 대도시에 사는 대부분 조선족들의 자녀들이 유치원때까지만 해도 우리말을 하다가 한족학교에 입학을 해서부터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중국말만 하는 경우를 나는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딸아이가 우리말을 할 줄 모른다는 건 내겐 언제까지나 가장 큰 유감이었고 슬픔이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에 여차여차하여 계획에 없던 한국으로 이사를 와서 당분간 살게 되었다.

“기회는 이때다!” 나는 딸아이에게 이참에 한국어를 완벽하게 가르치려고 마음먹었다. 개학 첫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의 얼굴은 가을하늘처럼 맑은 표정이었다. 아침의 근심 반, 설렘 반의 얼굴과는 하늘땅만큼 차이가 났다. 원인을 알아보니 하나는 새로 사귄 친구들이 반갑게 대해줘서이고 또 하나는 숙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상해에서라면 개학 첫날, 수업을 하지 않고 교과서만 타오는데도 필기숙제를 내줬다. 그런데 여기는 숙제가 없단다. 선생님이 교과서를 학교에 두라고 했다는 이유로 빈 책가방을 메고 집으로 왔다. 환장할 노릇이다. 국어교과서를 들고 오면 과문을 읽히려고 마음먹었던 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화가 살짝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낯선 환경에서 무사히 하루를 마치고 온 딸아이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화를 삭이며 이튿날엔 꼭 교과서를 가지고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 딸애의 반급 5학년 소망반의 수업시간표


“너 한국말 할래, 안 할래?”
이튿날도 숙제가 없단다. 다행이도 국어교과서는 들고 왔다. 딸아이를 붙들고 무작정 국어교과서의 과문을 읽혔다. 낱말 풀이까지 해가며 읽다보니 A4크기 교재에 인쇄된 글 6페이지 정도를 읽는데 근 한 시간이 걸렸다. 딸아이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소리내어 읽어서 목안도 아프다고 했다. 아득하다. 이런 속도로 읽어서 언제 다른 애들의 진도를 따라갈까 싶다. 선생님이 보내주신 주간학습계획을 보니 일주일에 영어도서 적어도 3권, 한국어 도서 3권을 읽어야 하고 한글일기도 한 편씩 써야 하고 영어저널도 한 편씩 써야 하고 영어단어장도 외워야 하고......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천만다행으로 수학은 한글수학이든 영어수학이든 너무 쉽다고 했다.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말이였다.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미션스쿨 국제반이다. 한 주일에 한 번의 중국어수업도 있다. 딸아이는 학교에서 주로 말하기 편한 영어와 중국어로 선생님이랑 애들과 대화를 하고 집에 와서도 좀체로 한국말을 하지 않았다. 하루빨리 딸애의 입을 열게 하려고 나는 집에서 대화를 일절 한국어로만 했다. 그러면 딸아이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무슨 뜻이냐고 중국어로 물었다.

“이렇게 간단한 말도 못 알아들어?” 나는 조바심이 나서 닦달하기 시작했다. 나는 딸아이가 일상적인 한국말은 당연히 알아들어야 한다고 여겼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한국어는 딸아이에겐 엄연히 외국어인데도 말이다. 급기야는 중국말로 재잘거리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게 떠들어대는 딸애에게 “중국말 하지 마!” 하는 한 마디 표독스런 말로, 딸애의 말문을 막아놓았다. 중국에서 학교에 다닐 땐, 모든 것을 말로 평정할 정도로 말솜씨가 좋던 딸아이는 금새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왔으나 이미 늦었다.

“말하기보다 어려운 쓰기”
일기를 써야 하는 날이면 곤욕을 치렀다. 이건 그야말로 “이도 안났는데 콩밥을 먹는 격”이었다. 어쨌거나 써야 했다. 일기 한 편을 쓰려면 먼저 딸아이가 중국말로 구술하게 하고 그것을 내가 한국말로 번역을 하고 (혹은 어떤 구절은 딸아이가 직접 한국어로 구사하기도 한다.) 내가 다시 어휘와 조사를 고쳐주고, 딸아이가 휴대폰 메모란에 한 자 한자 적고, 마지막에 다시 일기장에 베껴적는 몇가지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이렇게 하다보면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의 일기 한 편 쓰는데 한 시간반 이상이 걸렸다.

독서록 숙제를 완성하기는 더 어려웠다. 독후감을 쓰려면 일단은 과외독서를 해야 하는데 딸아이의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억지다짐으로 읽혀보기도 했고, 내가 같이 따라읽기도 했지만 몇장을 읽자 나도 딸애도 기진맥진했다. 한 주일에 책 한 권을 읽는 거였지만 다른 숙제도 해야 했기에 독서록 쓰기는 여전히 제일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었다. 결국 독서록을 완성하기 위해 우리가 택했던 방법은 책을 반쯤 읽고 내용을 요약해서 쓰거나 혹은 딸아이가 읽었던 중국말 책의 독서록을 써서 그걸 다시 한글로 번역하는 방법이었다.
일주일에 한국어 서적 세 권 읽기는 그냥 포기해버렸다. 
 

▲ 딸애가 우리말로 쓴 두 번째 일기


“드디어 입이 열리다”
일기쓰기와 독서록 등 쓰는 숙제는 이럭저럭 해나가고 있었지만 딸아이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신경질을 있는대로 냈고, 딸아이는 딸아이대로 신경이 예민해져서 집에는 화약냄새가 풀풀 났다.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가급적이면 한국말로만 대화를 하셨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드렸다.
“하늘이에게 너무 부담이 될까봐, 한 달 동안은 영어랑 중국어로 대화하려고 했는데요. 좀 더 지켜봐주시면 안될까요?”

“아닙니다. 한국어로만 대화해주세요. 그래야 본인도 하루빨리 입을 열려고 할겁니다.” 나는 정중하게 그러나 강력하게 부탁드렸다. 집에서는 여전히 딸애가 중국어로 묻고 내가 한국어로 대답하고, 뜻을 모르는 딸애는 갑갑해하는 상황이 불안불안하게 흐르고 있었다.

개학한 지 정확히 두 주일만에 딸아이는 입을 열었다. 떠듬거리며 어설프지만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적극 협조를 했다. 인내심을 갖고 딸아이의 말을 들어주었고, 틀린 표현은 즉각 고쳐주었다. 집에 티브이가 없어서 한국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을 시청하지 못하는 것도 한국어환경이 부족한 하나의 요인이었다. 하지만 티브이를 들여놓고 싶진 않았다.

나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딸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 아빠, 밥, 우유...... 이런 말을 번지기 시작했을 때의 그 감동적인 순간을. 딸아이는 또래에 비해서 굉장히 일찍 말을 했고 18개월에서 24개월사이에 딸아이의 언어 구사능력은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하루가 다르고 반나절이 달랐다. 처음에는 두 음절씩, 반나절쯤 지나면 세 음절씩 읽다가 드디어 당시(唐詩)의 한 구절을 단숨에 읽을 수 있게 되고, 이삼일이 지나서는 당시 한 수를 줄줄 외우던 딸아이였다. 만 두살이 채 안된 딸아이를 데리고 해남도에 여행을 갔을 때, 같이 간 단체관광객들 앞에서 딸아이가 당시를 몇 수나 읊었던 기억이 아직도 눈앞에 삼삼하다.

과연, 한 번 입이 열리자 봇물 터진 격으로 딸아이의 입에선 한국말이 쉴새없이 흘러나왔다. 어느날부터인가 딸아이는 반급의 짝궁한테서 배웠다면서 사투리까지 섭렵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카이”라는 접미사로 모든 말을 끝내는표현이었다. “많이 먹었다카이, 학교에 가야 된다카이, 재미있다카이......” 표준말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무슨 사투리를 하고 살짝 걱정이 들었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중국노래만 부르던 딸아이가 한국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AOA의 “심쿵해”처럼 입에 착 붙는 노래는 나도 모르게 딸애를 따라 흥얼거리게 된다. “심쿵해 널 보면 볼수록 가슴이 쿵쿵대 나도 모르겠어 심쿵해 나 어쩌면 좋아......” 딸아이의 한국어 발음은 더 이상 교정해줄 필요가 없었다. 
 

▲ 개학한지 1개월 반만에 딸애가 읽은 책들

 
“재미있는 의성의태어”
이 글에서 거창하게 훈민정음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우수한 문자인가를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중국어에 비해 한국어의 의성의태어는 그야말로 삐어나다. 개구리 울음소리는 개굴개굴, 수탉이 홰를 치는 소리는 꼬끼오, 병아리는 삐약삐약, 기차는 칙칙푹푹...... 나는 딸아이가 하루빨리 맛깔스런 우리말의 정취에 푹 빠졌으면 하는 마음에 안달을 했다.

모든 건 “재미있다와 재미없다” 오로지 두 가지로만 통하는 딸아이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서 나는 딸아이에게 어떻게든 한국말의 취미성을 길러주려고 기회만 있으면 틈을 노렸다. 하루는 잠 자리에 누운 상태에서 김용택시인의 시집 “섬진강”을 읽다가 재미있는 시를 발견했다.  “섬진강 14”에 나오는 “호박들”이란 제목의 시었는데 압운도 딱딱 맞아 떨어지고 표현도 재미있어서 마치 노래가락 같았다. 나는 딸아이에게 이 시를 읽어주기 시작했다.

아무데나손내밀어 넝넝쿨을뻗다가
경운기에걸리면은 낫질칼질움잘렸네
잠자다가떡먹기로 돼지똥물흘러들어
어화둥둥호박꽃 어화둥둥호박꽃
호박꽃도꽃이여 호박꽃을피웠더니
호박꽃도꽃이냐고 깔보거나비웃더라
너무그리말더라고
둥게둥게겅중겅중 호박꽃도꽃이랑게
어화좋네호박꽃 호박꽃도꽃이랑게
호박꽃도꽃이라고 호박벌이날아들어
장가가고시집가고 애호박이열렸더니
놀부새끼지나면서 손톱찍고말뚝박네
......
딸아이는 어느샌가 이 노래가락같은 시에 슬며시 빠져들었고 나중에는 나와 같이 시집을 펼쳐들고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한국말은 표현이 참 재미있어.”
딸아이의 결론이었다. 어둠속에서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놀이로 하는 공부”
가끔씩 딸아이가 들고오는 국어나 사회 시험성적표를 받아볼 때면 환장할 노릇이다. 28점, 35점, 46점, 61점...... 나는 차츰 딸아이에겐 한국어가 외국어란 사실을 받아들였다. 나는 여전히 머리를 싸매고 딸아이의 한국어실력을 팍팍 늘게 하는 방법을 고민해보았고 나름 괜찮은 방법들을 고안해냈다. 하지만 공부 자체를 핵무기라도 되는 듯 싫어하며 사드배치를 해놓은 딸아이에게 나의 작전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나는 교과서를 팽개치고 생활속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요리와 화장에 관심이 많은 딸아이는 국어교과서는 펼치는 법이 없지만 그 작고 빽빽한 요리 레시피는 한글자라도 빠트릴새라 정성들여 읽는다. 가끔은 메뉴이름과 식재료, 가공법을 따로 필기장에 정연하게 베껴쓰기도 하고, 구입해야 할 식재료만 따로 정리하기도 한다. 그 종이장을 들고 슈퍼에 가서 혼자서 필요한 장을 다 봐서 온다. 화장품의 성분, 효능, 사용방법 읽기, 노래가사 베껴적는 것도 그즈음의 딸아이의 취미중의 하나였다. A4용지 두 장 분량의 긴 가사를 쉬지 않고 열심히 베껴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부는 색채어 공부하기였다. 하루는 국어교과서를 펼치더니 내게 물었다. 샛노랗다, 노릇노릇하다, 푸르다, 파랗다, 시퍼렇다 이런 색채표현에 어울리는 단어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샛노랗다는 가을날의 은행잎으로, 푸르다는 맑은 날의 하늘로, 시퍼렇다는 멍이 들다로 알려주었다. “중국말 표현에 青一塊,紫一塊란 말이 있지? 바로 그거야. 시퍼렇게 멍이 든거.” “그럼 노릇노릇하다는?” “그건 엄마가 감자전 구울 때의 색깔 있잖아. 노릇노릇하게 굽는다고 하지.” “아, 알만해.” 딸아이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자 금세 신이 나서 집안 구석구석에서 색채를 찾기 시작했다. 성경책을 가리키며 “이건 민트색”, 크림통을 찾아내서 “이건 연두색”하면서 금방 색채를 분간하기 시작한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다.

딸애가 나에게 가장 큰 불만을 가지는 건 푸른색과 초록색을 분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늘 하던대로 하늘도 푸르다, 나뭇잎도 푸르다, 신호등도 푸르다고 말하는 나에게 “엄마, 나뭇잎은 초록색, 신호등도 초록색”하고 매 번 고쳐주는 딸아이가 귀찮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이외에도 김을 좋아하는 딸아이가 밥을 김에 싸서 먹을때면 “음, 고소해.”하는 표현을 쓰게 했고 숭늉을 마실 때의 그 맛은 “구수하다”는 표현을 쓴다고 가르쳐주었다. 굳이 교과서를 펼치며 따분하게 가르치려 들지 않아도 언어공부는 우리의 생활속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뜻밖의 수확 - 언어실력 키워준 패스파인더”
겨울방학에 딸아이는 학교에서 조직하는 캠핑인 패스파인더에 참가해서 캄보디아로 원정을 떠났다. 자기 키만큼이나 큰 배낭을 짊어지고 혹독한 무더위속에서 허리를 치는 풀을 헤가르며 하루에 수십키로의 산길을 걷는 혹독한 훈련이었다. 8박9일의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딸애의 가장 큰 변화는 예상외에도 눈에 띄게 제고된 한국어 실력이었다.

딸아이는 자기가 그곳에서 고생했던 체험보다는 재미있었던 체험과 사온 선물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엄마, 이건 정말로 진귀한 물건이야.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거든. 이게 어디서 났냐며는 ...... 그리고 이 그릇은 야자껍질로 만든거야. 바닥에 그린 그림은 ...... ”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딸아이는 그전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낱말들을 구사하고 있었다. “어머, 너 한국어 실력이 왜 이렇게 늘었니?” 하고 내가 호들갑을 떨자 딸아이는 “아니야, 전에도 다 알고 있던 단어야. 요즘 엄마가 오랫동안 나랑 같이 있지 않아서 대화를 못 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거겠지.”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캄보디아에서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먹고 자며, 스물네시간 한국어가 노출된 환경에서 생활하다보니 한국어 실력은 자연스럽게 제고되었던 것이다. 역시 언어를 빨리 배우는데는 환경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 몸도 마음도 훌쩍 성장한 패스파인더

“엄마, 너 밥 먹었어?”
한국말 하면 가장 어려운게 존칭어가 아닌가 싶다. 가끔씩은 한국인들도 “-시”자를 아무데나 붙이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그런데 딸아이는 신기하게도 존댓말은 전혀 헷갈리지 않고 정확하게 사용했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셨어요.” “엄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대신에 “-은, -는, -가, -이” 이런 조사를 혼동할 때가 많았다.
“하늘이가 학교에 갈게.” 이런 경우에 딸아이는 “-이”를 빼고 “하늘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앞 단어에 받침이 있을 땐 -은, 혹은 -이를 써야 돼.”하고 주의를 주었으나 이건 아직까지도 딸아이에겐 헷갈리는 표현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피씩 나온다. 처음 한국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엄마, 너 밥 먹었어?”
“엄마한테는 너라고 하면 안된다고 했잖아. 그렇게 말하면 버릇이 없어.”
“그럼 뭐라고 해야 돼?”

딸아이에겐 “媽媽,你吃飯了嗎?” 라는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표현속의 “你”자를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 왜 너라고 하면 안되는지가 상당한 고민이었다. 이 문장속에 꼭 ‘너’를 넣어서 번역해야 한다면 “엄마, 엄마는 밥 먹었어?”라고 하거나 “당신”이라고 번역해야겠지만 번역이란 것은 너무 어려운 분야다. 뜻의 글자인 중국어를 소리의 글자인 한국어로 한 글자 한 글자 번역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젠 이런 것을 딸아이에게 굳이 해석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딸아이는 이미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줄 알고, 일상에서 제일 많이 사용하는 언어가 되었다.

“일년이란 시간”
한국에 온 지 일년, 두 학기를 마치는 시점에서 딸아이에 대한 담임선생님의 학기말  국어성적 평가는 이랬다.

읽           기 : 글쓴이의 관점을 파악하며 글 읽기 - 보통
듣기말하기: 절차에 따라 면담하기 -  매우잘함
문           법 : 고유어,한자어, 외래어의 개념과 특성을 알고 국어 어휘의 특징 이해하기 -  매우잘함
문           학 :  이야기의 구성 요소들의 관계를 생각하며 이야기의 뒷부분 상상하기 - 보통
쓰           기  :   주장과 근거가 잘 드러나도록 논설문 쓰기 -  잘함

이 손바닥만한 성적평가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나와 딸아이 또한 이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타입이다. 아직도 딸아이는 한국도서보다는 중국도서를 즐겨 읽는다. 내가 한 번씩 중국으로 출장을 갈 때면 딸아이는 dnagdnag.com에서 자기가 읽을 중국도서들을 가득 주문해놓고 사오라고 한다.

실은 한국에 온 지 반 년이 지난후부터는 딸아이의 한국어 공부를 위해 나는 거의 어떤 노력이나 작전도 짜지 않았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다.

“한국도서 읽기에 재미 붙이면 훨씬 많은 책들을 빨리 읽을 수 있을꺼야.” 하고 가끔 딸아이에게 넌지시 말해보지만 이런 것이 안 먹힌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처음엔 에베르스트 산처럼 높기만 하던 언어의 장벽을 그냥 꾸준히,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다보면 일상속에서 자연스럽게 넘어서게 된다. 작년 이맘때 신경전을 벌였던 일들도 이제는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굳이 내가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딸아이는 언젠가는 한국책을 집어들고 신나게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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